우정총국 건물은 임진왜란 직후 16~17세기 경에 건축되어 국립병원 전의감으로 사용되었고
1629년(인조 7)에는 일본사절단의 숙소로도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884년 4월 22일 왕명으로 우정총국이 개설되고 1884년 11월 18일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행정제도인 우정업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884년 12월 4일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으로 우정업무는 잠시 중단되었다
우정총국
회화나무 지지대에도 단청이 있다
정원 중앙에 최초 우표에 넣은 음양태극장 무늬가 있다
우정총국(郵征總局) 현판
회화나무
스트레스로 줄기가 흉하게 변했다
우정총국 내부
한국우정의 발자취 1883~1905
1883. 01. 12 우정사 설치
한국우정의 발자취 1906~1960
1948. 08. 15 대한민국 체신부 탄생
한국우정의 발자취 1961~1990
1970. 07. 01 우편번호제 실시
한국우정의 발자취 1991~현재
1994. 12. 23 정부 조직 개편(체신부→정보통신부)
경성내 우정집십분전 구역도
근대우정업무가 실시되면서 마련된 경성 내 우표판매소와 집배구역도를 표시한 지도이다
종로와 동대문 · 남대문을 비롯한 경성 시내 10곳에서 우표가 판매되었으며 우표판매소마다 우체통도 설치되었다
시작의 한 걸음
1880년대 조선은 급변하는 세계 속의 당당한 일원이 되기 위해 각종 개화정책을 추진해 나아간다
새로운 근대제도와 문물을 하루 빨리 도입하고자 하는 활발한 움직임 중에서도 우정업무의 개시는 그 핵심 사업이었다
홍영식
영의정 홍순목의 둘째 아들로 열여덟 살 어린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영재였다
홍순목의 어리다는 건의로 홍영식은 급제 후에도 2년간 사가독서를 한 후 관료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이후에도 내내 초고속 출셋길을 달렸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 문하에서 김옥균 · 박영효 · 서광범과 함께 개화사상에 눈을 뜨면서부터 뒤바뀐다
그리고 그 운명의 종지부였던 우정총판이 되었을 때, 그의 나이 겨우 스물 아홉
개국에 맞춰 갑신정변이란 거사를 일으키고 일순간 우이정 자리에 오르지만 청나라의 개입으로 삼일천하로 막을 내리고 만다
홍영식은 갑신정변 실패 후, 주위의 망명 권유도 뿌리친 채 끝까지 왕의 곁에 남아 있다가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한성순보(漢城旬報)
조선 정부의 기관지로 개화정책 선전 도구였던 한성순보에 수록된 외국의 우정 관련 기사들이다
한성순보에는 서구 선진 우정제도의 이점, 특히 세계 최초로 우정업무를 시작했던 영국의 현황이 상세히 소개되었다
대조선국 우정국사무장정
1884년 우정국 설치 당시 제정한 사무장정이다
우정국은 서울 본국과 인천 분국이 함께 설치되었으며
서울 본국에는 관리사무를 관장하는 규획과, 중앙우정국의 업무를 담당하는 발착과, 경리사무를 담당하는 계산과 등 세 개의 과를 두었다
대조선국우정규칙 · 우정규칙적요
우정국 개설과 함께 마련된 우정사업 관련 규칙이다
우편물의 종류와 요금 등 우편물 취급에 관한 기본 법규들이 기록되어 있다
우정총국 사진(1906년 추정)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장정
1882년 개화정책 담당기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서 반포한 우정사 업무규칙이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우정업무의 개시가 공식적으로 선언된다
승정원일기
1884년 4월 국왕 고종이 우정총국 창설 교서를 반포하고 그 취지를 밝힌 기사다
우정총국의 설치는 공사(公私)간 이득을 위한 것임을 명시하였다
우정총국 개설 왕명
보빙사
1883년 미국에 파견된 조선사절단 보빙사의 모습이다
보빙사 사찰을 통해 조선은 서양의 근대제도와 문물을 직접 확인하였다
사진 앞줄 왼쪽이 전권대신 민영익 · 오른쪽이 전권부대신 홍영식이다
조미조약(朝美條約)
1882년 미국과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조선은 서구 사회와 직접 교류하는 첫걸음을 내디였다
홍영식복명문답기
홍영식이 보빙사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후 국왕 고종에게 올린 귀국 보고이다
이 자리에서 홍영식은 조선의 개화를 위해 우정과 전신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장했다
일본 공부성(日本 工部省)
1881년 일본에 파견된 조사사찰단의 보고서 중 일본의 근대 전신에 대한 탐방 기록이다
우정과 함께 전신 분야에 대한 조선의 관심을 알 수 있다
일본 문견사건(聞見事件)
1881년 일본에 파견된 조사사찰단의 보고서 중 일본의 근대 우정에 대한 탐방 기록이다
근대화된 일본의 변화상 중 우정분야에 대한 조선의 관심을 볼 수 있다
초대 우정총판 홍영식(1855~1884)
1883년 보빙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우정성과 뉴욕우체국 등을 시찰한 뒤
고종에게 근대 우편제도의 도입을 진언하고 1884년 우정총국을 창설하여 초대 우정총판이 되었다
하지만 갑신정변 후 군인에 의해 살해 당했다
그후 10년도 지나지 않아 갑오개혁 때 죄를 씻어 정2품으로 추증되었다
한 걸음의 의미
조선의 개화정책은 갑신정변으로 잠시 위기를 맞고 우정사업이 중단된다
하지만 우정총국의 개설과 근대 우정사업의 실현은 그 자체로 조선이 이룩한 최초의 개화 성과로서 의미가 있다
더불어 조선이 전세계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발자취이다
만국우편연합 위임장 · 여권
1897년 제5차 만국우편연합(UPU) 총회에 참석한 전권위원 민상호의 위임장과 여권이다
만국우편연합의 가입은 조선 최초의 국제기구 가입이며 이를 통한 조선은 독립국으로서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고자 하였다
우표 · 저울 · 자 · 날짜 도장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우체사 관인
서울 영등포 · 경남 창원 · 진주 · 전북 옥구 · 충남 은진 등 다섯 곳의 우체사에서 사용하던 관인이다
날짜 도장
1900년대 경북 안동 · 전북 남원 · 충남 홍주 · 전북 전주 · 경남 진주 우체사에서 사용한 날짜 도장이다
우전선로도본(郵電線路圖本)
대한제국기 전국의 우체사 · 전보사의 위치와 선로가 표시된 지도이다
이 지도를 통해 당시 우편물의 배송 경로와 소요시간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통신권이 일본에 넘어가기 전인 1905년도까지의 철로 · 전보선로 · 전화선로 · 수로 상황도 함께 표기되어
당시 대한제국이 주도적으로 이룩한 근대화 정책의 성과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저울 · 자
1900년대 우편물의 중량과 규격 측정을 위해 사용되던 도구다
이화우표
1900년 대한제국 농상공부 인쇄국에서 발행한 14종의 우표로 최초의 국산우표다
대한제국 황실 문장인 오얏꽃 문양이 들어있다
매우표
1903년 프랑스 정부 체신청 인쇄국에서 발행된 13종의 우표로 근대 한국의 우표 중 가장 큰 크기의 우표다
대한제국이 본격적인 국제우편 업무 실시에 대비하여 프랑스에 발주 · 위탁 제조한 우표다
1900년대 우체사에서 사용했던 사무용 서식지
우편요금표
1900년도 대한제국 통신원에서 제정한 국내외 우체요금표이다
문위우표 5종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 5종으로 5문 · 10문 · 25문 · 50문 · 100문의 단위로 발행되었다
특히 국제우편에 필요한 100문의 고가우표를 통해 국제우편업무가 우정사업 당시부터 계획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 선교사 알렌이 크리스마스 카드를 본국으로 보냈다고는 하나 아직 소인이 찍힌 문위우표는 한 장도 발견되지 않았다
우정총국 개국연회 배치도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의 좌석 배치도이다
이 연회는 당시 개화정책 최고 책임자들과 각국공사 및 영사, 귀빈들이 모여 축하하는 자리였다
이를 통해 우정총국 개국이 조선 내부의 근대 우정 개시 뿐 아니라 외국과의 교류 · 세계 속의 조선이 되기 위한 정책이였음을 알 수 있다
코리안 포스탈 가이드(KOREA POSTAL GUIDE)
1897년 국내의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배포한 영문 우체업무 설명서이다
우정사무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외국인에게 홍보와 안내 작업을 하였다
일안(日案)
1884년 11월 우정업무를 개시하면서 일본공사에게 통지한 공문이다
미안(美顔)
1884년 11월 우정업무를 개시하면서 미국공사관에 보낸 공문이다
조선정부는 각국 공사관에 우정규칙을 송부하고 우정사무 개시를 통지하였으며 미국공사관 측은 업무 개시에 대한 축하 인사를 답변으로 보냈다
우정총국 개설왕명(1884년)
영상홍보관의 모니터를 촬영했다
충정공 민영환 선생 동상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순국 자결한 10인 중 한 분이다
우정총국 뒷뜰에 있다
이곳도 노숙자들의 쉼터다
충정공 민영환의 유서
"슬프다 국가와 민족의 치욕이 이에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경쟁 속에서 다 죽게 되었고나
대개 구차히 살고저 하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각오한 자는 도리어 살아날 길이 있는 것이니
동포 여러분은 어찌 이를 모르리오"
*
동상 뒷면에 동포들에게 보내는 유서 전문이 새겨져 있다
미터법통일실시기념 우표
우청총국 바닥에 있는 우표 중 하나다
우정총국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