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소녀상(平和少女像)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피해를 상징하는 상징물로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1,000회를 맞은 2011년 12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중심이 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 27곳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립공원 등 해외 3곳에도 세워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외부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부부 작가(김운성 · 김서경)의 작품이다
평화의 소녀상(平和少女像)
초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묘비나 비석과 같은 형태를 구상하였으나
당시 종로구청장 김영종은 비석 대신 소녀의 모습을 한 예술작품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이는 비석에 대한 허가는 불가하나 예술 작품으로 분류하면 법적인 문제를 피할 수 있었고, 건축가로 쌓은 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일본대사관을 응시하는 소녀상
이 아이디어를 통해 제작된 평화의 소녀상은
당시 조선 소녀들의 일반적인 외모를 가진 단발머리 소녀로 치마저고리를 입고 의자 위에 손을 꼭 쥔 채 일본대사관을 응시하며 맨발로 앉아 있다
단발머리는 부모와 고향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며 발꿈치가 들린 맨발은 전쟁 후에도 정착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방황을 상징한다
소녀상 옆에 놓인 빈 의자는 세상을 떠났거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모든 피해자를 위한 자리이며
소녀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되새기는 체험공간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 정부의 개입에 의해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들은 전세계적으로 약 2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고
이 중 12만~ 14만 명 정도가 바로 우리의 어린 소녀들이었다
주먹을 꼭 쥔 두 손은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의지가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평화비
표지석에는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쓴 평화비 문구와 함께
1992년부터 이 곳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의 천 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운다고 써있다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타결하였다
여기에는 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는 내용이 있었다
이에 소녀상 철거를 전제로 돈을 받았다는 등의 비난이 일자 정부는 사실과 다른 보도 자제를 부탁한다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하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은채 연일 비판의 대상이 되고있다
그로인해 '한일합의 전면 무효!'
대학생 농성이 256일째 이어지고 있다
평화비 옆 농성장 주변이다
사람들의 응원이 담긴 노란색의 작은 평화나비들이 소녀와 할머님들을 지켜드리기 위해 빼곡하다
거칠게 잘린 소녀의 머리카락은 싹뚝 잘려 강제로 끌려간 걸 상징한다
왼쪽 어깨에 앉아 있는 작은 새는 아픈 세월에 몸부림치다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과 현재의 우리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시간이 걸려도 꼭!
너를 편안히 해줄께
고단한 심신 편안히 쉬렴
우리가 새로이 역사를 써 나갈께"
*
뒤꿈치를 들고 불안해 하는 소녀상 발에 붙어 있다
벽에 붙어 있는 글을 보니 대부분 소녀상 철거에 관한 글이다
소녀상을 지켜내자
이제 평화의 소녀상은 단순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 가려지고 해결되고 있지 못한 수많은 문제를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진실을 위해 여기 선 여성
1991년 故 김학순 할머님께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과 진실을 알린 이후
진실과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시위가 지난 1992년 1월 8일부터 이곳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렸다
평화비 앞 도로와 인도의 턱에 붙어있다
소녀상이 있는 바닥에는 할머니 모습의 그림자를 별도로 새겼다
의자에 앉아있는 조각상은 소녀의 형상인데 그림자는 자세히 살펴보면 구부정한 허리와 등의 할머니임을 알 수 있다
'소녀'들이 '할머니'가 될 때까지 기나긴 시간동안 그들에게 아무것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恨)이 어려있는 그림자이다
해가 늘어지면 소녀의 왼쪽 어깨의 새가 할머니의 머리쪽으로 변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