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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전쟁기념관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1층 전쟁역사실에서 2층 6 · 25전쟁실로 올라간다

 

 

거북선이 있는 반대편 천정 여러 대의 비행기와 낙하하는 군인들 모형이 매달려 있다

 

 

 

 

김일성 승용차

1948년 소련에서 생산된 ZIS-110리무진은 소련이 마오쩌둥과 김일성에게 선물로 준 차량이다

6.25전쟁 당시 청천강변에서 노획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미8군 사령관 워커장군 부인에게 선사하였는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인수한 이 차가 고장이 나서 다른 차로 교환한 걸

1969년부터 14년간 이 차의 행방을 탐문하다 1981년 찾아내 많은 대가를 치루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승만 대통령 의전 승용차

캐딜락 플리트우드 62세단으로 1956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기증하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도입된 방탄차량으로 2013년 6월부터 11개월간

MIGHT&MAIN(주)가 2억 원의 예산을 들여 고속도로를 주행할 정도의 완전한 상태로 복원하였다

 

 

 

 

유엔의 6·25전쟁 참전

유엔군은 3년 1개월 동안 유엔의 깃발 아래 대한민국의 자유와 국제평화를 위해 싸웠고

지구촌 21개국에서 약 194만 여 명이 참전하여 3만 7천여 명의 고귀한 생명을 이 땅에 바쳤다

 

 

 

 

유엔기념공원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이 안장되어 있는 성지로서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다

 

 

 

 

여러 개의 모니터가 6 · 25전쟁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1차 결의 (1950. 6. 25)

북한이 대한민국에 대해 불법적으로 무력공격을 감행하자 주한미국대사 무초는 이 사실을 미 국무부에 보고하였다

미국은 이를 유엔에서 해결하기로 결정하고 유엔 사무총장에게 안전보장이사회의 소집을 요청하였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의 요청에 의해 6월 25일(한국시간 26일) 개최되었고

소련을 제외한 10개국이 회의에 참여하여 미국이 제출한 결의안을 찬성 9표, 반대 0표, 기권 1표로 가결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를 통해 북한정권에게 '즉각적인 전투행위 중지, 북한군 38도선 이북 철수

유엔회원국은 결의안을 집행하는데 있어 유엔에 모든 원조를 제공하되 북한정권에 대한 원조를 삼갈 것'을 권고하였다

 

 

 

 

제2차결의안 투표장면

사진 왼쪽으로부터 제재안에 찬성하는 7개 국가(중국, 쿠바, 에콰도르, 프랑스, 노르웨이, 영국, 미국)의 대표가 거수하고 있다

소련 대표는 불참하였고 찬성 7표, 반대 1표(유고슬라비아) 기권 2표(인도, 이집트)로 가결되었다

*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제2차 결의 (1950. 6. 27)

북한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제1차 결의안을 무시한 채 전쟁을 계속하자

1950년 6월 27일(한국시간 28일)에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다시 회의를 개최하였다

소련 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미국이 제출한 결의안은 8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가결되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국들에게 '대한민국이 무력침략을 격퇴하고

그 지역에서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하여 줄 것'을 권고하였다

 

 

 

 

유엔군 사령부 설치 결의(1950. 7. 7)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50년 7월 7일 유엔회원국의 군대를 통합지휘하게 될 유엔군사령부 설치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결의안은 "유엔군사령부의 설치 및 사령관의 임명권을 미국에 부여하고 유엔기 사용을 승인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유엔이 국제평화를 파괴하거나 침해하는 국가나 단체에 대해 최초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군사지휘기구를 설치했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미국은 7월 10일 맥아더 원수를 유엔군 사령관에 임명하였고 맥아더 원수는 7월 24일 도쿄에서 유엔군사령부를 설치하였다

 

 

 

 

유엔 참전의 주역과 지도자들

 

 

 

 

콜린스 장군으로부터 유엔기를 인수하는 맥아더 장군

유엔회원국들의 군사행동에 통일성과 집단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엔군사령부의 설치'가 결의되고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안전보장이사회를 대신하여 권한이 위임되었다

이에 따라 유엔사무총장은 주미 유엔대사를 통해 유엔기를 미국에 전달하고

1950년 7월 14일 초대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미 육군참모총장 콜린스대장으로부터 유엔기를 전달받았다

 

 

 

 

전쟁과 가족 · 전쟁과 우정 · 전쟁과 사랑의 사진들

 

 

 

 

당신 곁에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참전용사 부인의 유언에 따라 유엔기념공원에 합장된 세 부부의 이야기다

 

 

 

 

세 부부 중 2010년 안장된 호주 휴머스톤 부부의 합장장면이다

케네스 존 휴머스톤은 34세에 호주군 대위로 참전했다가 1950년 10월 3일 전사하였다

자원봉사를 하며 평생을 홀로 지내던 부인 낸시 휴머스톤은 일생동안 남편을 그리워하다 2008년 10월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유엔기념공원에 잠든 남편과 함께 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고 2010년 4월 14일 마침내 남편의 곁에 잠들 수 있게 되었다

 

 

 

 

작은 영화관 세 곳에서

'참전자의 증언 잊혀진 전쟁'이란 제목의 각기 다른 다큐멘타리가 상영된다

*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유엔회원국 16개국은 전투부대를 파병하였고 5개국은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하였다

또한 전쟁으로 파괴된 한국을 돕기 위해 42개국은 원조 및 구호물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구석진 곳에 소감을 적는 필기구가 있다

 

 

 

 

유엔군 전사자 추모동판

6.25에 참전하였다가 전사한 유엔군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제작되었으며 미국 뉴욕의 유엔총회 건물 로비에 설치되어 있다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과 최후의 보루 낙동강 방어선 전투

유엔군사령부 맥아더 원수는 수도 서울을 탈환하고 적의 병참선을 차단시킬 목적으로

1950년 9월 15일 국군(육군17연대, 해병대)과 유엔군을 동원하여 '5천대 1'이라는 20세기 최대의 도박을 감행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

 

 

 

 

종군기자

6 . 25전쟁 당시 신문기자 100명, 사진기자와 시사주간지 각 50명

통신기자와 텔레비젼 라디오 기자 등 310명(1950년 9월)의 외국 통신사 특파원들이 취재를 했다

전쟁 중 순직한 종군기자는 18명으로 한국기자협회는 1977년 파주에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를 건립하였다

 

 

 

 

6 . 25전쟁 사진집

6 . 25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LIFE지의 저널리스트 던컨의 사진집이다

 

 

 

 

스피드그라프 카메라 · 8밀리 촬영기 · 스프링식 카메라

 

 

 

 

마릴린 몬로

전투에 지친 참전용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찾아온 마릴린먼로와 밥호프 등 유명 연예인들의 위문공연은 유엔 참전용사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브램튼 메도우베일묘지 한국전 참전비

 

 

 

 

피해상황

3년간 지속된 6.25전쟁은 대한민국에게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재산상 손실을 가져왔다

사상자가 150만 명에 달하였고 20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재산상의 피해액은 약 18억 달러 내지 3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공업시설은 42%, 발전시설 41%, 탄광시설 50%, 주택은 3분의 1이 파괴되었다

국가 기간시설 및 공공시설인 도로, 공공건물, 교량, 공항, 항만, 발전시설의 대부분이 파괴됨으로써 정상적인 국가운영이 어렵게 되었다

 

 

 

 

학교도 대부분 파괴되어 운동장에서 수업을 하였다

 

 

 

 

물자 및 재정지원 (39개국) · 지원 의사표명 (3개국)

물자 및 재정 지원은 최초 개전 직후부터 1952년 5월까지 한국민간구제단(CRIK)을 통해서

라이베리아 · 레바논 · 리히텐슈타인 · 멕시코 · 바티칸 · 베네수엘라 등 19개국이 지원을 하였다

1953년 12월까지 유엔한국재건단(UNKRA)을 통해서는 과테말라, 대만, 등 13개국이 지원하였다

그리고 1956년 6월까지 추가로 리히텐슈타인 등 4개국이 전후 복구를 하였다

 

 

 

 

"이 책은 한국 재건지원단(UNKRA)에서 기증한 종이로 박은 것이다"

기타 유엔 긴급구제계획(ERP)에 의거 1956년 6월 30일까지 서독 등 3개국이 물자를 지원하였다

결과적으로 개전 직후부터 전후 복구 기간까지 우리나라에 물자를 지원한 국가는 총 39개국이었다

 

 

 

 

밀가루 포대

당시 독립국가 93개국 중 63개국이 대한민국을 지지하거나 지원하였다

병력지원 16개국 및 의료지원 5개국도 많은 물자와 재정을 지원하였으나 본 현황에는 물자 및 재정을 지원한 국가만 포함하였다

 

 

 

 

눈물방울

6.25전쟁 당시 전사한 한국군과 유엔참전국 장병들의 인식표 1,300여 개를 소재로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눈물방울로 형상화 했다

가시철사는 전쟁의 공포와 비극, 억압 그리고 위험성을 상징하며 바닥부분의 원형은 방울의 파동을 상징한다

 

 

 

 

다큐멘타리 영상이 상영된 후

어둠속에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그 눈물 위에 동백꽃이 흐른다

 

 

 

 

다큐멘타리 영상 중 한 장면이다

 

 

 

 

다시 찾은 대한민국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나라가 다시 일어나기까지는 앞으로 100년은 걸릴 것이다"

- 유엔 사령관 맥아더 원수 -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국제개발협력 · 국제평화유지활동 · 유엔환경계획 한국위원회 등을 소개한다

 

 

 

 

중국군 유해송환

중국군 유해송환은 우리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과거 적대국이었던 중국에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437구의 대규모 유해를 송환했다

 

 

 

 

기증실

유물은 지나간 역사를 바르게 알 수 있는 거울이며 후손에 물려줄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신미양요 당시 사진

 

 

 

 

담배

 

 

 

 

귀향증

 

 

 

 

귀향방법

 

 

 

 

강문봉 · 백선엽 · 이대용 장군 등의 개인 부스

 

 

 

 

베트남 전쟁

1954년 7월 5일 베트남은 그들을 다시 지배하려던 프랑스와의 8년 동안의 전쟁에서 승리를 했으나

제네바협정 조인(1954. 7. 20)으로 북위 17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남북이 분단되었다

반공주의자 응오딘지엠에 의해 수립된 남베트남과 호치민의 북베트남으로 나누어 대치했다

 

 

 

 

한국 베트남 파병

1964년 5월 9일 미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자유 우방 25개국에

남베트남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먼저 9월 11일 제1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을 파견하였다

이 후 베트남 전쟁의 상황이 더욱 격화되자 미국의 파병 요청으로 한국은 주월한국군사령부를 창설했다

1965년부터 1973년 철군할 때까지 32만여 명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베트남 파병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최초의 해외 파병이었다

 

 

 

 

베트콩 지하동굴

베트콩은 평화스럽게 보이는 농촌마을 지하에 교묘한 방법으로 지하동굴을 구축하여 게릴라 활동에 적극 이용하였다

 

 

 

 

청룡부대

1965년 10월 전투부대로서는 최초로 파월되어 캄란에 상륙한 후 캄란과 동바틴지역 일대를 평정하였다

 

 

 

 

맹호부대

1965년 10월 파월 이래, 중부 월남 반딩성과 푸엔성 일대를 전술책임지역으로 맡아

이곳에 위치한 퀴논 · 송카우 · 푸캇 등 주요도시와 항만시설을 보호하면서 크고 작은 작전을 수행하였다

 

 

 

 

백마부대

1966년 8월 파월된 백마부대는 월남 중부 해안 푸엔성과 칸호아성 일대에 전술지역을 확보하였다

또한 이곳에 위치한 투이호아 · 나트랑 · 캄란 등 주요 도시와 항만에 있는 군사시설을 보호하면서

크고 작은 작전을 통하여 월맹군 제18B연대를 비롯한 지방 베트콩 섬멸에 성공하였다

 

 

 

 

십자성부대 · 비둘기부대 · 백구부대 · 공군지원단 활동

건군 이래 최초로 육군 제1이동외과병동 및 육군 태권도 교관단이 1964년 9월 11일 파월된 이후

월남 정부의 제2차지원 요청에 따라 건설공병, 의무부대 등으로 편성된 비전투부대인 비둘기부대(건설지원단)가 1965년 2월 13일 파월되어

이미 파월된 제1이동외과병동 및 태권도 교관단을 배속받아 임무를 수행하였다

 

 

 

 

걸프전 지원

걸프전쟁은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침공하여 합병하자 미국 · 영국 · 프랑스 등이 제재하려는 데서 비롯되었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국군의료지원단과 공군수송단을 걸프지역에 파병하여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동티모르 · 아프카니스탄

 

 

 

 

평화유지활동

국제연합은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분쟁을 해결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평화유지군(PKO)을 탄생시켰다

평화유지군은 분쟁 당사자간의 완충역활, 휴전감시, 합법 정부구성을 위한 선거관리 등

순수한 평화유지 활동만 하며 자위의 경우 외에는 어떠한 공격도 못하게 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1991년 9월 UN에 가입한 이후 회원국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1993년부터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국방경비대 창설

최초의 국방 조직인 국방사령부는 1945년 11월 13일 미군정청에 설치되었고

1946년 1월 15일 뱀부계획에 따라 병력 25,000명 규모의 남조선국방경비대를 창설하였다

한편 1945년 11월 11일 해안 경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창설된 해방병단은 1946년 1월 14일 국방사령부에 편입되었다

 

 

 

 

육, 해, 공군의 창설

국군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과 함께 미군정하의 국방경비대가 국군으로 정식 발족된다

발족 후 곧바로 경비대 가운데 조선경비대는 육군으로 조선해안경비대는 해군으로 편입된다

다음해인 1949년 4월 15일에는 진해에서 해군 예하부대의 하나로 해병대가 창설되었으며 그 해 10월에는 육군 항공대에서 공군이 독립했다

 

 

 

 

1984년도 여군장교모집 공고

 

 

 

 

태극기

1950년 8월 21일 최초의 여군 해병 장부현이 입대 당시 어깨에 두른 것으로 당시 대원들의 비장한 결의를 엿볼 수 있다

 

 

 

 

여군의 활약을 담은 사진들이다

 

 

 

 

미래의 전장

우주항공 기술 및 초고속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지상 · 해상(수중 포함) · 공중에서 우주 및 사이버 공간까지 전장의 영역이 대폭 확장되면서

모든 전투 요소가 상호 연결되어 실시간 정보 공유가 가능한 네트워크 중심의 다차원 통합 전장으로 변화될 것이다

또한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 및 인명 중시 경향에 따라 무기 체계의 정밀화, 무인화, 로봇화가 확대됨으로써

대량 파괴와 대량 살상이 없어도 조기에 승리가 가능한 비선형 효과 중심의 전장이 될 것이다

 

 

 

 

굴절형  총기 코너샷(CORNER SHOT) / 길이 : 약 90cm, 무게 : 4.4kg, 유효사거리 : 50m

국내 기술로 세계 3번째로 개발한 코너샷은 시가전이나 대테러전에서

효과적인 정밀 타격과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몸을 숨긴 채 총기를 꺾어 발사하는 굴절형 총기다

총기에 K5(구경 9mm) 권총을 장착하여 좌우 60도까지 꺾어 발사할 수 있으며

동영상 카메라로 적의 모습을 탐지하고 눈에 대는 액정화면을 통해 목표물을 볼 수 있다

 

 

 

 

가상현실 디스플레이 · 비디오 카메라 · 헤드폰, 음성인식 마이크 등을 갖춘

통합 헬멧을 쓰고 보고 듣고 녹음하고 촬영하는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개인화기는 20mm공중 폭발탄, 레이저 거리측정기, 레이저 목표물지시기, 미니미사일, 비디오카메라가 장착되며

주 · 야간 색깔이 바뀌는 카멜레온식 위장전투복은 냉 · 난방은 물론 화생방, 지뢰 등을 감지할 수 있다

일명 입는 컴퓨터인 개인 PC는 음성 통신과 피아 식별, 개인 위치 항법 장치까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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