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이어 서울역사박물관을 찾았다
대한문(大漢門)
지난 주 동아일보사 앞 펼침막엔 십자가 예수가 있더니
이번엔 억울하게 탄핵 당한 거룩한 희생양이라는 듯 십자가를 들고 흔든다
시청역 2번출구가 시점이다
덕수궁 돌담길 가로수들이 털실로 줄기 감쌓다
대체로 평창올림픽을 상징하는 그림들이다
온기우편함
소중한 고민을 익명으로 넣어주시면 느린 손걸음으로 손편지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장독대 / 이환권 作
멀리서 보면 장독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 같은데 다가가보면 사람을 장독에 꾹꾹 눌러 담았다 꺼내 놓은 것 같이 보인다
작품에 반영된 가족들은 작가 친구의 가족 3대로 구성하였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로터리
정동제일교회
1897년 아펜젤러에 의해 세워진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다
교회에 시설물 개선공사 안내판이 붙어 있다
작곡가 이영훈 추모비
광화문 연가 · 난 아직 모르잖아요 · 사랑이 지나가면 등 100여곡의 발표곡이 있다
친구들이 세워준 추모비 뒤에 2018년 2월 14일 10주기 펼침막이 있다
예전 신아일보 별관
한국 최초로 다색인쇄를 시도했던 일간신문사로 1980년 제5공화국을 세운 전두환 정권에 의해 경향일보에 흡수되었다
이화박물관(정동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이곳은 미국인 사라 심슨이 죽을 때 위탁한 기금으로 1915년 이화학당에 세워진 건물이다
이화학당은 1886년 감리교 여 선교사 스크랜턴이 정동에 있던 자택에 세운 학교다
손탁호텔 터 빗돌
이화박물관 앞에 있다
구 러시아공사관 탑
1890년 스위스계 러시아인 사바틴이 설계한 르네상스식 건물로 벽돌조 2층 본관은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고 현재는 3층 규모의 탑만 남아 있다
일부가 발굴된 지하 밀실은 비밀통로로 경운궁(현 덕수궁)까지 연결되었다고 한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1898년(건양 1년) 2월 1일부터 고종이 세자(순종)와 함께 약 1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역사에 나오는 「아관파천」이다
구 러시아 공사관 구조 안내도
전차 381호(등록문화재 제467호)
제조시기 1930년 경 · 운행기간 1930년 경~1968년 11월 29일 · 제조사 일본차량제조주식회사
전차는 1899년 5월, 서울에서 첫 운행을 시작하였으며, 1960년대 초반까지 서울시민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이었다
서울역사박물관
유서깊은 서울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정리하여 보여줌으로써 서울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심화하는 한편
서울시민 및 서울을 찾는 내외국인들에게 서울의 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박물관이다
1층 안내 데스크
서울역사자료실
방문 기념으로 한양도 · 어보 등을 찍어 간직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의 서울 파노라마사진 중 현재의 사진에서 시청을 중심으로 한 부분만 짤랐다
도성연융북한합도(19세기 전반)
도성 · 연융대 · 북한산성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지도다
고종황제 초상(대한제국기)
경성유람안내도(1920년대)
서울 모형도(2002년)
도시모형영상관
경희궁 흥화문 터
구세군회관(하얀 빌딩) 자리가 예전 경희궁 흥화문 터다
빌딩 앞쪽으로 하얀 금천교 난간석이 보인다
고등학생이 함께 세우는 평화비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님께서 처음으로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라고
용기를 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밝힌 일년 후, 일본군 위란부 할머님들의 수요집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난 2011년 12월 14일 수요집회 1,000회를 맞이하여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으로 소녀상을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
2015년 11월 3일 학생의 날, 오직 고등학생의 힘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 소녀상은 53개의 고등학교 학생 약 16,400여 명이 만들어 냈다
*
소녀의 한 손엔 평화의 의지를 담아 세상을 향해 날아갈 듯한 나비가 앉아 있고 또 한 손은 친구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
어서각 터 빗돌
최규서(1650~1735)의 집터 안에 있던 영조의 어필을 봉안한 곳이다
조선 경종 ·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최규서는 영조 즉위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일어난 무신란을 평정한 공을 세웠으나
그 공이 문서에 기록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에 영조는 일사부정(一絲扶鼎)이란 어필을 내렸다
일사부정은 지조와 신의가 하나되어 사직의 안위를 지켰다는 뜻이다
정동회화나무(서울시 보호수)
캐나다대사관은 2007년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했는데
이 나무를 고려해 건물 디자인도 한발 물러섰으며 굴착 시기도 나무의 동면 주기에 맞춰 진행했다
*
높이 17m · 지름 5.16m · 나이 500 · 지정일자 1976. 11. 17
남도식당
늦은 점심으로 추어탕을 했다
개통된 영국대사관과 덕수궁 사이 돌담길을 걸었다
철대문의 과거 · 현재 사진
철문으로 막혔던 길이 시원스럽게 열렸다
빅터가 예전 덕수궁 관련 사진을 보고 있다
1936년 정동길에서(배제고등학교 1936년 졸업 앨범)
덕수궁과 영국대사관 담장 사잇길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열며...
1959년 영국대사관의 임대로 통행이 제한된 지 58년 만이다
덕수궁 돌담길 흔적
덕수궁 담장 기초석(사적 제124호)이다
영국대사관 철문 · 덕수궁 문
덕수궁 돌담길은 이곳에서 더는 걸을 수 없지만
서울시는 주한 영국대사관과 협의해 덕수궁 돌담 둘레를 한 바퀴 빙 둘러 산책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구세군 서울제일교회 100주년 비전 선언문
옆에 구세군 중앙회관 옆에는 구세군역사박물관이 있다
하지만 관람시간은 평일 10시부터 16시까지 / 토 · 일 · 공휴일은 휴관이다
구세군 교회 안이다
왼쪽 예배용 장의자(1953) · 중앙의 백주년 타임캡슐 · 오른쪽 신문로 풍금(1955년 3월~1962년 12월)이 있다
풍금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힘들고 어려운 시절, 신문로에 위치한 옛 예배당에서 사용되었던 악기다
1층 예배당
2층 예배당은 문이 잠겼다
도로원표
우리나라 도로원표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 4월 세종로 중앙광장에 세웠으나
세종로 도로가 확장됨에 따라 1935년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 있는 「고종 즉위 40년 칭경비각」 안으로 옮겼다
이후 1997년 서울시에서 일본식 도로원표를 한국식으로 바꾸어 광화문 미관광장에 설치하였다
황궁우(皇穹宇)
대한제국 시기의 제단인 환구단(圜丘壇)은 천자가 하늘의 제를 드리는 둥근 단으로 된 제천단이다
환구단 건설은 대한제국 출범과 함께 계획되어 1897년 8월 17일 광무(光武)로 연호가 바뀌고 그 해 10월 11일 완공되었으며
10월 12일 환구단에서 하늘의 제사지내는 의식을 거행한 후 고종이 황제에 즉위하였다
1913년 일제는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지금의 조선호텔)을 짓는 바람에
지금은 부속건물인 황궁우와 석고(石鼓)만 남아 호텔의 장식품 역할을 하고 있다
황궁우 삼문과 답도
세 개의 아치로 구성되었으며 문 앞을 장식한 석조 계단은
궁궐의 월대를 장식하고 있는 답도와 형태가 흡사하여 건물의 위계를 짐작케 한다
소공동
조선 태종의 둘째 딸 경정공주의 집이 있어 소(小) 공주(公主)골이라 불린 게 기원이다
임진왜란 때는 적장의 진지가 있었고 후에는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던 영빈관이 있었다
이 때문인지 일제강점기 이후 많은 화교들이 이 주변에 살았다
*
마침점인 시청역으로 가기 위해 소공동 지하상가로 들어갔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1.8km, 소요시간 6시간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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