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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인천 중구 신흥동

조선 말기 인천도호부 다소면 선창리에서 1883년 부내면 선창리로 바뀌었다

1968년 1월 1일 신흥 1 · 2동으로 편제되었고, 1983년 11월에 신흥동으로 개칭되었으며

1998년 10월 신흥동과 신선동을 신흥동으로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인천 개항과 더불어 시가지화 된 지역으로 인천의 구도심권에 해당한다

시가지는 대부분 인천항에 인접된 산업지역으로 1969년에서 1971년에 걸쳐 공유수면 매립으로 조성되었으며

도시교통 산업기능의 요충지로 보세창고와 정미소 밀집지역이다

 

 

신포역 1번출구

시점이다

 

 

 

 

제2국제여객터미널

 

 

 

 

제2국제여객터미널에서 본 철길이다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여객터미널 길 건너 언덕 위에 있다

그 아래엔 1994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생긴 소규모무역업체들이 있다

예전엔 학교 언덕 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다

 

 

 

 

인천신사(지금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1890년 6월 지대가 높고 시가지와 떨어져 한적한 이곳에 일제는 신사를 건립했다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예전 인천신사)

교내 돌계단 양옆에 석주와 석탑이 남아 있다

 

 

 

 

김포쌀상회

동네 주민이 지금은 문을 닫었다고 알려준다

 

 

 

 

신흥초등학교

1884년 4월 아사히(旭)소학교로 문을 열었다

일본인이 자신들의 어린이 교육을 위해 인천에 세운 최초의 학교로 인천공립고등소학교였다

1883년 동본원사 별원에서 아동들을 교육한것이 시초다

1896년에는 일본 인천영사관 구내에 있던 병원을 개조하여 교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학생수가 1,175명(조선인 17명 포함)으로 당시로서는 규모가 큰 학교였다

6 · 25전쟁 중 공산군은 인천의용군을 이 학교로 강제징집해 전선으로 보냈다

 

 

 

 

동본원사(지금 로얄답동맨션)

1885년 9월 동본원사 부산별원 인천지원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본인의 주택을 전전하다가 1888년 관동 1가 1번지에 임시 본당을 만들었다

1892년까지는 일본인 자녀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활동했다

1899년 10월 현재의 신흥동 로얄답동맨숀 자리에 건물을 세워 이전했다

 

 

 

 

서본원사(지금 송도중학교)

신사 주변에는 현 송도중학교에 있었던 묘각사 등 일본인들이 종교활동 흔적이 남아있다

 

 

 

 

긴담모퉁이길

신흥동에서 기독병원을 지나 경동 싸리재로 넘어가는 길이다

이름 그대로 돌담이 길게 놓여진 꼬불꼬불한 실오라기 산길이었다

1907년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던 곳에 학교와 사찰이 들어서자 구릉을 헤치고 축대를 쌓아 신작로를 만들었다

지금의 전동전환국에 주둔해 있던 일본공병대가 공사를 했다

완공 후 화수동 · 송현동 등에 살던 젊은 아낙네들이 신흥동 정미소로 출퇴근했던 길이다

 

 

 

 

일본군 무기고

긴담모퉁이길 중간 쯤에 있는 철문으로 언덕 너머의 신흥초교 내 동산으로 이어져 있다

일본군이 총 · 폭탄 등 무기를 저장하기 위해 판 굴로 알려져 있다

 

 

 

 

일본군 무기고

 

 

 

 

인천부윤 관사

전형적인 일본풍의 건물로 1966년 새 인천시장 관사(지금 인천 역사자료관)가 세워지기 전까지

인천시장 관사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오래된 집들이 있는 골목을 지난다

 

 

 

 

해광사

1908년 8월 29일 준공된 일본 불교사찰로 원래의 명칭은 화엄사이다

화엄사 본전은 1994년 해광사 대웅전을 짓기 위해 철거되었고 현재의 명부전은 원래부터 있었다

6 · 25전쟁 때는 인천을 점령한 인민군이 정치보위부를 설치하였고 인민군이 퇴각한 후 미군은 대포를 설치하기도 했다

 

 

 

 

시왕전

6 · 25전쟁 전몰장병 유해 40~50기와 일본인 위패도 있다

 

 

 

 

시왕전 정문

 

 

 

 

범종각(梵鍾閣)

 

 

 

 

승탑

 

 

 

 

옷수선

 

 

 

 

도립병원(지금 인천보건환경연구원)

 

 

 

 

경성지방법원 인천지청(지금 중구노인복지관)

1912년 4월 조선총독부가 재판소령을 개정한 결과 경성지방법원을 인천지청으로 개칭하고 관할구역은 인천부 · 부천군 · 김포군 · 강화군으로 확정했다

1932년 재정 부담으로 폐청하고 등기소만 남겨 두었다. 1935년 옛 감리서 터에 신청사를 신축하고 이전했다

 

 

 

 

뒷골목

 

 

 

 

고려정미소

1930년대 일제는 경기도 이천 · 여주 등 곡창지대의 쌀을 이곳에서 정미한 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수인선 협궤열차의 기찻길을 창고 안까지 연결시켰다

이런 붉은 창고들은 사동삼거리부터 수인역까지 줄지어 있었다

 

 

 

 

샘표식품 인천대리점

 

 

 

 

한흥무역

중국과의 수출입 통관 무역상이다

 

 

 

 

일식풍 이층 판자집

 

 

 

 

신흥사거리

 

 

 

 

신흥시장

부두 길목에 위치해 있고 시립병원이 가까워 인천에서 잘 나가던 전통시장이었다

1903년 화개동이란 이름의 시장 일대는 여자들이 몸을 파는 사창가였다

그후 유곽은 폐쇄되었지만 1960년 신흥동 일대는 방석집 · 기생요릿집 · 창녀집에 이르는 거대한 환락가였다

1953년부터 상설시장이 되었다

 

 

 

 

신일반점(新一飯店)

신흥동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점이 되자는 소망으로 '신일반점'이란 간판을 내걸은지 70년 가까이 된 중국집이다

 

 

 

 

신일반점

한국일보 한국의 노포(老鋪)에 소개된 신문이다

 

 

 

 

벽화 마을

 

 

 

 

평양옥

1945년 평양 순안 출신인 김석하씨 부부가 장국밥집을 시작한 것이 기원이다

개업 초기 광복 직후 부활된 경평전 축구시합에 출전하는 고향 선수들에게 냉면을 배달하기도 했다

평양옥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출입이었다

박대통령은 새벽 4시 통금이 해제되면 이따금 작업복에 모자를 눌러쓴 채 들어와 자리에 앉곤 했다

1980년대에는 전두환 대통령도 월미도 해역사령부를 순시하고 불시에 들어와 갈비와 냉면을 먹고 가기도 했다

 

 

 

 

태화교통

 

 

 

 

미화영양탕

1937년 건설된 협궤열차 수인선 철로는 정미소가 있던 수인역에 닿았다

1979년부턴 송도역까지만 운행했고 얼마전까진 철강 코일과 시멘트와 석탄을 실은 화물차만 하루 10여 차례 지나갔다

 

 

 

 

광교화물

영양탕집이 모여있는 철길과 빨간벽돌창고가 있는 갈림길이다

 

 

 

 

수인복집

 

 

 

 

철길 옆 골목이다

 

 

 

 

개발제한지역인지 오래된 집들이 많은 곳이다

 

 

 

 

어구와 스티로폼 박스가 많이 쌓여있는 걸 보니 바닷일 하시는 분 집 같다

 

 

 

 

수인역

수원과 인천을 오가던 수인선의 한 정거장이었다

1948년 세워진 옛 역사는 곡물시장 인근으로 현재 신광초등학교와 CJ인천공장 사이에 있었다

 

 

 

 

오복참기름

 

 

 

 

수인곡물시장

옛 수인선과 역은 사라졌지만 열차 때문에 생긴 시장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곡물상 · 고추집 · 기름집 등 40여 점포가 신광초등학교 담에 기대어 장사를 하고 있다

 

 

 

 

만수기름집

기름집은 1990년대 말이 전성시대였다

*

"자녀에게는 황금보다 양심이란 유산을 남겨라" T.V 옆 액자에 있는 글이다

 

 

 

 

연백상회

 

 

 

 

한별아파트

예전 인천 최대의 농산물 깡시장이 있었고

이후 김치공장과 농협하나로마트 등 농산물 관련 시장이 계속 이어져 왔다

 

 

 

 

신광초등학교

일제 말 연합군 포로수용소였다

1942년 말레이반도 전투에서 잡힌 영국군 포로들을 비롯해 후에 미군 포로들이 이곳까지 끌려왔다

일제는 서울 · 부산 · 인천 · 흥남 네 곳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했다. 그 중 인천포로수용소가 가장 컸다

그들의 주거지인 신흥동과 신사를 지키기 위해 400m 떨어진 이곳에 방패막이로 포로수용소를 세웠다

 

 

 

 

신광사거리

 

 

 

 

하나님의 교회

 

 

 

 

삼익아파트

예전엔 삼익아파트 앞까지 바다였다

 

 

 

 

수탈의 철길 바로 옆에 신포역이 있다

신흥동을 한 바퀴 돌고 원점회귀 했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9km, 소요시간 4시간 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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