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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인천 남구 숭의동

인천부 다소면 소속의 장사래 마을로 1903년에 장천리(長川里)라고 하였다

1914년에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장천리(長川里) · 여의리(如意里) · 독각리(獨脚里)를 병합하여

부천군에 편입되며 장천리(長川里)와 여의리(如意里)의 이름을 따 장의리로 되었다

그 후 일제강점기인 1936년 제1차 인천부역 확장 때 다시 인천에 편입되어 대화정(大和町)이라 명명되었다

1946년에는 해방이 되면서 의를 존중한다는 의미의 숭의동으로 개칭하였고

1955년에는 숭의동이 금곡동과 통합되는 등의 변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한국 철도 최초 기공지(韓國鐵道最初起工址) 빗돌

"이곳은 우리나라 첫 철도인 경인선을 기공한 터이다

우리나라 철도는 고종황제로부터 부설권을 특허 받은 미국인 모스가

1897년 3월 22일 이곳 인천부 우각리(현 도원역 일대)에서 공사를 시작한 데서 비롯한다

이 기공식은 1825년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철도를 개통된지 72년 만의 일이다

...정확한 기공 장소는 이곳으로부터 400m 동쪽에 있다"

*

도원역에서 숭의시장사거리 방향에 있다

 

 

 

 

전도관

1890년에는 선교사이자 의사로서 초대 주한 미국공사를 지낸 알렌의 2층 별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1907년 알렌은 미국으로 귀국했고 그 자리를 이완용의 아들 이명구가 차지했다

1927년에는 이화여전 출신의 이순희 남매가 계명학원을 세웠다. 광복 직후에는 서울의 한 대학 분교가 개교하기도 했다

1957년 10월 박태선 장로가 대표로 있던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가 '공사집' '선교사 집'으로 불리던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전도관을 세웠다

그후 신발공장과 예루살렘교회가 들어왔었으나 지금은 비어있다

 

 

 

 

배다리사거리

 

 

 

 

왼쪽 골목이 축현역에서 우각역으로 가던 선로가 있었던 길이다

예전 철길이 지났던 길을 따라간다

 

 

 

 

예전 철길이 지났던 축대 흔적이 남아 있다

 

 

 

 

부성이발관

 

 

 

 

골목 끝부분에 오래된 집이 있다

 

 

 

 

우각역(지금 자동차공업사)

우각역은 주위에 민가가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알렌만을 위한 역이었다

그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선로가 직선화되면서 역은 존재가치가 없어져 1906년 사라진다

길 건너 자동차공업사 자리가 우각역이 있었던 곳이다

 

 

 

 

풀나이트

한 때 꽤나 북적대던 곳인데 외관이 초라하다

 

 

 

 

숭의 깡시장(숭의청과물시장)

인천 시민의 농산물 공급을 책임지던 도매시장이었으나

20여 년전 구월동 농수산물시장이 생긴 후 숭의청과물시장은 그저 40년의 역사를 지닌 작은 시장이다

 

 

 

 

숭의 1 · 3동주민센터

 

 

 

 

목공예거리

숭의동 철로변에 30여 개의 목공예 관련업체가 모여 있다

대부분 30년이 넘는 가게로 처음에는 배다리에 터를 잡았으나 철로와 도로가 확장되면서 도원동을 거쳐 이곳 숭의동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숭의목공예센터

마침 오늘 1인당 천 원의 참가비를 내면 목공예를 체험하고 만든 공예품을 갖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한다

 

 

 

 

다복아파트

일제강점기에는 면화(솜)을 생산하는 군수공장이었다

솜은 마차로 수인선 남부역으로 운송돼 인천항을 거쳐 선박으로 일본이나 중국으로 건너갔다

 

 

 

 

영제한의원

1945년부터 대를 이어오는 한의원이다

이 한의원의 전신인 영제한약방을 개설한 우강 노학영은 1960, 70년대 당시 지역 내 기탁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79년 6월 수봉공원 팔각정 건립에도 큰 돈을 기탁하여 팔각정 이름이 그의 호를 딴 「우강정」이다

 

 

 

 

인천교대 본관(지금 인천광역시 청소년회관)

옛 인천교대 터도 여의실 문중의 땅이었다

개성공립사범학교는 6 · 25전쟁으로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숭의초교 교실 몇 개를 빌어쓰고 있었다

개성사범학교를 인천으로 유치하기 위해 여의실 문중의 땅을 내놓았다

이 학교는 인천사범학교에서 인천교육대학으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오늘날의 경인교육대학교로 발전했다

1990년 인천교대가 계산동으로 떠난 그 자리에 남구청과 청소년회관이 들어왔다

 

 

 

 

청소년회관과 남구의회 청사를 이어주는 회랑으로 옛 교사의 모습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커다란 운동장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여의실(如意室)

남구청 종합민원실은 경주김씨 인천 여의실 문중의 종가가 있었던 곳이다

인천의 경주김씨는 조선왕조 개국공신 김균의 후손 등이 600년 동안 살아온 경주 김씨의 집성촌이었다

6선의원으로 국회부의장을 지낸 고 김은하 씨가 대표적 인물이다

 

 

 

 

인천남구청

 

 

 

 

장미연립주택

 

 

 

 

장안예식장

지금은 여러 종류의 상점이 있는 상가로 변했다

 

 

 

 

숭의공구상가

 

 

 

 

숭의동로터리

 

 

 

 

독갑다리 빗돌

독갑다리는 인천항이 개항되던 1883년 무렵에 세워졌다

당시 마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큰 독에다가 흙을 채워 그것을 교각으로 써 독갑다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독 값을 받으러 다닌 다리라 하여 독값다리, 도깨비가 나와 놀던 다리라 하여 도깨비다리라 명명하였다 하나 그 진위를 알 길은 없다

독갑다리 너머 바다에는 일제강점기에 염전이 많았다. 독갑다리는 그 염전을 오가던 다리다

 

 

 

 

신광사거리

하나님의 교회가 있다

 

 

 

 

옐로우하우스

광복 이후까지 운영되었던 선화동 유곽이 1960년 초 박정희 정권이 사회정화의 일환으로 정리하자 지금의 숭의동 자리로 옮겼다

당시 미군부대에서 노란색 페인트를 얻어다 칠했기 때문에 「옐로우하우스」란 별칭을 얻게 되었다

지금은 창과 문 유리에 노란 썬팅을 하였다

 

 

 

 

숭의역

올해 개통한 수인선역이다

 

 

 

 

남부역

경인선 주안역과 남인천역 사이에 가설되었던 주한 미군의 화물철도가 지나던 곳이다

1957년 부평 미군부대와 남인천역 근처에 있던 미군부대간 물자수송을 위해 가설되었다

남인천역은 인천 논산 간 입영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1990년 이후 부평 미군기지의 기능이 축소되면서 1992년경부터 열차 운행이 중지되었다

지금은 LH공사가 재개발 사업중이다

 

 

 

 

뒤로 엑슬루타워가 보이는 철로변 집이다

 

 

 

 

이발관

동네 사랑방이었던 이발관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남부역에서 수인선을 따라간다

 

 

 

 

용마루 기찻길 쉼터 안내판

지난 14년간 폐선되어 방치된 수인선 기찻길 일부를

2009년 희망근로사업의 일환으로 공원을 조성하여 용현2동 주민들의 쉼터로 제공한다고 써있다

 

 

 

 

수인선을 따라가다

다시 LH공사 재개발현장이 있는 남부역 방향으로 돌아왔다

 

 

 

 

용현시장

 

 

 

 

신광이발관

60여 년간의 명백을 이어온 이발관으로 독배로에서 주인공원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있다

주인공원은 40여 년을 남인천부두와 경인선을 연결했던 주한미군의 화물철도 주인선이

1992년부터 주안역~남인천역의 1.4km 구간이 폐선되면서 2005년 주민들의 쉼터로 탈바꿈돼 붙여진 이름이다

 

 

 

 

주인공원 길을 따라 걷다 수봉공원으로 오른다

굴을 지나 직진하면 제물포시장이 나오고 수봉산은 계단으로 올라 오른쪽으로 가야한다

 

 

 

 

수봉공원 입구

 

 

 

 

자유와 평화의 5층탑

 

 

 

 

망배단(望拜壇)

 

 

 

 

수봉산 배수지

 

 

 

 

국제로타리클럽 369지구

 

 

 

 

인천지구 전적비

6 · 25전쟁 당시 마산 - 왜관 - 포항을 연결하는 낙동강 방어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던 1950년 9월

해병대가 주축이 된 국군과 UN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성공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켜 북진의 발판을 마련했다

 

 

 

 

숭의동

수봉로 육교에서 봤다

 

 

 

 

재일학도의용군 참전비로 오르는 계단이다

 

 

 

 

재일학도의용군 참전비

한국전쟁 소식이 이웃 일본에까지 알려지자 재일동포 자녀 및 유학생들은

당시 병역이행의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국방위를 위한 의용군을 조직하는 한편

당시 극동지구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에게 전선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건의문도 제출했다

 

 

 

 

재일학도의용군 참전비 앞이 꽃잎으로 가득하다

 

 

 

 

무공수훈자 공적비

조국과 민족의 자유수호를 위해 멸공전선에서 함께한 전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터전이다

 

 

 

 

무덕정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무덕정(武德亭)

1865년부터 150년간 인천 궁도의 혼을 지켜온 궁도장이라 써있다

 

 

 

 

은율탈춤전수관

 

 

 

 

국악회관(國樂會館)

 

 

 

 

문화회관(文化會館)

 

 

 

 

제물포성당

 

 

 

 

와룡양조장(지금 태양아파트)

1970년대까지 있었던 와룡양조장이 있었던 터다

 

 

 

 

 수봉목욕탕

 

 

 

 

제물포시장

현재 폐허로 변한 제물포시장은 저수지 바로 옆 논을 매립하여 지은 시장이다

 

 

 

 

다시 주인공원 길을 따라 간다

 

 

 

 

넓은 쉼터에 큰 굴뚝이 보인다

공장 굴뚝 같은데  쉼터에 있는 주민에게 물어도 모른다

 

 

 

 

주인공원에서 길을 건너면 제물포역이다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2.9km, 소요시간 5시간 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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