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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인천 중구 도원동

도원동은 다소면 장천리의 일부와 독각리의 일부를 합하여 1906년 5월 도산리로 되었다

1912년 5월에는 도산리 일부가 부도정(敷島町)에 편입되었고

1914년 10월 1일 인천시 부제 시행시 인천부에 편입되어 도산정(桃山町)이라 불리다가 광복 이후 1946년 1월 1일 도원동으로 개칭되었다

도산 혹은 도원이란 예전 이곳에 복숭아밭이 널리 분포하였던 데에서 기원하는 지명이다

오늘날 도원동은 대부분 주택지구를 중심으로 한 시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도원역

도원역은 경인선 기공식이 열렸던 곳이다

개항 당시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에 소뿔처럼 굽이져 있었다고 해서 이름 붙은 쇠뿔고개를 뚫고 철길은 놓였다

역 앞 아래쪽에 「한국철도최초기공지비」가 있다

시점이다

 

 

 

 

도원교

1955년 9월 28일 경인선 위로 도원동과 송림동을 연결하는 도원교가 건설되었다

이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창영동 건널목으로 통행했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

 

 

 

 

보각선원

1912년 애관극장을 개관한 인천의 유지 정치국의 대지를 기증받아 김적음 스님이 창건했다

일본 불교의 정토진종 본원사파이나 조선인 포교를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동명초교의 설립자 박창례 선생은 1930년 4월 보각선원 강당을 빌려 관서학원이란 야학 간판을 내걸고

성냥공장과 정미소에서 일하는 소년, 소녀 직공 100여 명에게 한국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동명초교의 뿌리가 되는 곳이다

 

 

 

 

 

조봉암 주택

사법(司法)살인을 당한 죽산 조봉암의 도원동 집이다

죽산은 "나는 공산당도 아니고 간첩도 아니오 이승만은 몇 사람을 잘 살게 하는 정치를 했고

나는 모든 백성이 잘 살게 하는 정치를 했다고 생각하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

2011년 1월 20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재심 판결에서 전원합의체 재판부는 "1959년 대법원 최종 판결이 잘못된 판결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재심 판결로 그 잘못을 바로 잡는다"고 판결했다

 

 

 

 

예전 화장장 자리다

 

 

 

 

인천도원실내체육관

 

 

 

 

시립도원실내수영장

제 59회 전국체전을 대비해 1978년 건립된 인천 최초의 실내 수영장이다

 

 

 

 

인천제2교회

산 밑으로 개천이 흐르는 도원동은 인천의 끝이였다

개천은 지금의 인천제2교회 앞을 휘돌아 독갑다리 밑으로 해서 바다로 흘렀다

 

 

 

 

피병원 · 덕생원(지금 중앙여상)

전염병 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병원으로 원래는 인천여상 아래쪽에 있었던 것을 1898년 당시 공동묘지 화장장 부근인 답동 9번지로 이전했다

이 공동묘지에 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1921년 3월 31일 도원동 12번지로 이전하였다

이 병원은 설립 당시 피(避)병원으로 명명되었다. 그 후 인천병원 분원 · 사정병원 · 전염병원을 거쳐 덕생원으로 변경되었다

덕생원 일대는 제물포해전 후 일본군의 군사용지로 중대 규모의 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인천남부소방서 숭의119안전센터

 

 

 

 

인천숭의공구상가

 

 

 

 

인천 숭의공구상가

인중로16번길이다

 

 

 

 

독갑다리 빗돌

독갑다리는 인천항이 개항되던 1883년 무렵에 세워졌다

당시 마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큰 독에다가 흙을 채워 그것을 교각으로 써 독갑다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독 값을 받으러 다닌 다리라 하여 독값다리, 도깨비가 나와 놀던 다리라 하여 도깨비다리라 명명하였다 하나 그 진위를 알 길은 없다

독갑다리 너머 바다에는 일제강점기에 염전이 많았다

독갑다리는 그 염전을 오가던 다리다

 

 

 

 

시정찹쌀순대

'since1966'이 붙어있는 아바이순대집이다

 

 

 

  

예전 조일양조장(朝日釀造場) 터

조일(아사히) 양조(주)의 양조공장이 있던 곳으로 평양의 조선소주보다 넉 달 늦은 1919년 10월 12일에 설립됐다

1928년에는 전국 소주양조업자연합회 회장사를 맡을 정도로 성장했다

사업이 잘되자 우리나라 최초의 실업축구팀인 조일양조장 팀을 창단해 각종 대회를 휩쓸었으나

일제가 전쟁으로 곡물 소비를 통제하고 미군정에 양조 금지령이 내려지는 등으로 인해 경영의 어려움을 겪다 6 · 25전쟁 직후 문을 닫았다

 

 

 

 

광성중 · 고등학교

일본인들이 도원신사를 참배하기 위해 40계단과 70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현재 산 정상에는 광성중 · 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도원동 40계단

도원동을 품고있는 「모모산」은 높이 50m 정도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가파른 산을 직코스로 오르기 위해 '40계단'과 '70계단'을 만들었다

 

 

 

 

도원동주민자치센터

 

 

 

 

도원동 70계단

도원동주민자치센터 옆에 설치되어 있다

 

 

 

 

산 하나가 도원동을 품고 있다

일제는 이곳을 복숭아밭으로 만들고 1906년 이 동네를 도산정(挑山町)이라 했다

그래서인지 동네 벽화에 복숭아 그림이 많다

 

 

 

 

율목동 방향

70계단 옆에서 봤다

 

 

 

 

파란나무대문집 앞을 지난다

 

 

 

 

인일철공소

2, 30년 전 경인선 철길이 있는 참외전로는 철공소거리였다

이젠 3곳이 남아있고 없어진 철공소 대신 기성품점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

2008년 6월 13일 숭의종합경기장(예전 인천공설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2012년 지하 3층 · 지상 5층 · 수용인원 23,000명 규모의 축구전용경기장을 건설했다

*

마침점은 도원역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5.5km, 소요시간 2시간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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