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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수도국산의 원래 이름은 만수산(萬壽山) 또는 송림산(松林山)이다
이 주변 일대가 매립되어 바다가 땅으로 변하고 공장이 지어지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 이 자그마한 언덕은 바닷가의 조용한 소나무 숲이었다
송림산은 언덕에 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松峴洞(솔고개) · 松林洞(소나무 숲)의 지명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소나무를 베어내고 언덕에 정착하여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달동네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송림산이 수도국산으로 산이름이 바뀌게 된 데에는 근대 개항기 인천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인천은 본래 우물이 적을 뿐 아니라 수질 또한 나빠서 개항 이후 증가한 인구와 선박으로 물 확보가 큰 고민이었다
일제 통감부의 강압에 의해 한국정부는 1906년 탁지부(度支部)에 수도국을 신설하고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공사에 착수하였다
수도국산이라는 명칭은 이곳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配水池)를 설치하는데서 생겼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1960년, 70년대 달동네였던 수도국산의 모듬살이를 재현해 놓았다
그땐 그랬었지 하는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중ㆍ고등학생 교복

 

 

 

 

날자 · 요일 나오는 시계

 

 

 

 

인천에 달동네가 생기기까지

 

 

 

 

국회의원 선거 포스터
기호를 작대기로 표시했던 기억이 난다

 

 

 

 

은율솜틀집
1960년대 이전부터 동인천 구름다리에는 솜틀집이 모여 있었다
*
지금은 경인선 복복선 공사로 헐리고 없어졌지만 화평동냉면거리에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솜틀집인 은률면업사도 있었다

 

 

 

 

연탄가게

 

 

 

 

이발소
라디오, 손금고와 그림액자가 있다
그림 소재로는 대체로 초가집에 물레방아가 많았던 것 같다

 

 

 

 

간첩신고시 상금 100만원까지

 

 

 

 

화장실
붉은색 작은 전구가 많이 쓰였다

 

 

 

 

축 결혼 · 인내라 써있는 액자
항상 인내하고 살 때였다

 

 

 

 

김승호의 마부 · 엄앵란의 동백아가씨
그 땐 몰랐는데 엄앵란 얼굴이 통통하고 목살도 있었네

 

 

 

 

갓쓴 할아버지 · 쪽진 할머니 사진
마루 중앙에 있는 할머니 액자는 할아버지 것보다 작다

 

 

 

 

벽지가 비싸 벽마다 다른 벽지에 신문지까지 사용했다
대체로 찢어진 곳에다 덧붙여 사용했다

 

 

 

 

첫째 · 둘째 등 결혼사진과 손주 돌사진 등을 한 액자에 넣었다

 

 

 

 

선반에 올려 놓은 간단한 살림 도구

 

 

 

 

기념품 판매소

 

 

 

 

풍선뽑기 · 국수 · 실 · 성냥 · 초 등이 눈에 들어온다

 

 

 

 

만화가게

 

 

 

 

나무이야기
100년 전, 압록강 상류의 산림에서 벌목된 나무들은 강을 따라 뗏목으로 신의주까지 운송된 후 인천으로 이동되었다
인천 동구에 위치하였던 성냥공장 · 대성목재 · 똥마당 등 나무에 관한 이야기다
달동네박물관 내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성냥공장
신의주 나무가 인천에서 성냥으로 만들어지기까지

 

 

 

 

나무로 만드는 세상
장기판과 유모차

 

 

 

 

달동네 그림

 

 

 

 

괭이부리 마을의 삶

 

 

 

 

빨간마후라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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