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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연미정

한강과 임진강이 합하여 흐르다가 이곳에 이르러 두 갈래가 되어
한 줄기는 남쪽 ·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흘러 마치 제비꼬리처럼 생겼다 하여 연미정(燕尾亭)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강화10경의 하나로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들어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潮流)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건립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 1244년 왕이 구제(九齊)의 학생들을 이곳에서 면학케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정묘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와 굴욕적인 형제관계의 강화조약을 맺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후 영조 20년(1744)에 중건되었고, 1891년 중수한 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

 

 

연미정(燕尾亭)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 · 조해루(朝海樓)
연미정이 있는 월곶돈대 뒤로 문수산이 보인다
조해루는 월곶돈대 오른쪽에 있다

 

 

 

 

조해루(朝海樓)
강화외성은 1233년 몽골의 침입에 맞서 강화 동쪽 해안 방어를 위해 적북돈대에서부터 초지진까지 쌓은 길이 23km의 성이다
높이 20척 · 폭 5척이고, 조해루 · 복파루 · 진해루 · 참경루 · 공조루 · 안해루 등의 문루 6개소 · 암문 6개소 · 수문 17개소를 설치했다고 한다
개경(開京)에서 천도한 정부가 38년간 육지로부터 보급물자를 지원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장무공 황형 장군 택지비(莊武公黃衡將軍宅址碑) / 향토유적 제3호
조선 중기 무신이었던 황형(1459~1520) 장군의 옛 집터 비가 있다
선생의 자는 언평 · 시호는 장무이며 본관은 창원으로 성종 11년(1480) 무과 및 진현시에 급제하고 1486년 무과 중시에 장원급제 하였다
이후 해산진 첨절제사 · 훈련도정 · 의주목사 · 회령부사 · 함경도 ·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고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중종 5년(1510) 삼포왜란시 전라좌도 방어사로 제포에서 왜적을 크게 무찔렀다
중종 7년(1512) 함경도지방에서 야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고 평안도 ·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왕이 그의 공을 찬양하며 연미정을 하사하여 이곳 월곶리에서 만년을 보냈다 한다
택지는 월곶진을 설치한 뒤 관아로 사용하였다

 

 

 

 

장무공 황형 장군 택지비(莊武公黃衡將軍宅址碑) / 향토유적 제3호 · 조해루(朝海樓)
연미정으로 오르다 돌아 봤다

 

 

 

 

연미정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22m · 둘레 4.5m · 나이 수령 500년 · 지정일자 2000. 11. 23

 

 

 

 

연미정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25m · 둘레 5m · 나이 500년 · 지정일자 2000. 11. 27
정자 양쪽에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다

 

 

 

 

문수산
염하강 건너로 보인다

 

 

 

 

유도(留島)
비무장 지대에 위치한 섬으로 김포반도 끝자락 옆에 있다
예전 북한 소가 떠내려왔던 유도다

 

 

 

 

고 공신 장무공 황형 장군 택지비(故 功臣 莊武公黃衡宅地碑) / 향토유적 제3호
황형 장군이 향년 62세로 천수를 다하자 부음에 접하신 중종이 크게 슬퍼하면서
시호를 장무로 추중하고 연미정 3만여 평 전지역을 하사해 지금까지 후손들이 매년 음력 10월 1일 자정에 제례를 지낸다
현재도 황씨문중의 소유로 되어 있다
빗돌이 연미정 옆에 있다

 

 

 

 

연미정 서쪽 방향이다

 

 

 

 

강화읍으로 나가는 길이다

 

 

 

 

연미정 홍예문

 

 

 

 

조해루
김포반도에 불빛이 반짝인다

 

 

 

 

월곶돈대
10번 버스를 기다리며 마시는 커피처럼 밤은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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