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뱃길
서해(인천 서구 오류동)와 한강(서울 강서구 개화동)을 잇는 길이 18km의 우리나라 최초 운하로
여의도~김포 · 김포~인천 · 인천~서해의 섬 4곳 덕적도 · 팔미도 · 세어도 · 이작도을 연결하는 여객선도 운항한다 했지만
현재 그저 걷기와 자전거길로만 이용될 뿐이다
계양역
시점이다
계양산
계양역 앞에서 봤다
귤현프라자 대포분수
계양역에서 귤현프라자로 나오면 있다
귤현프라자 시민참여 벽
수향원
「만경원」이라고도 불리며 한국 전통경관 연출을 주제로 하여
선착장과 한국 전통정원 · 담장 · 전통누각(수향루) 등을 조성해 한국적 이미지를 살린 곳이다
두리생태공원
경인아라뱃길 천변저류지 생태공원으로 제13회 자연환경대상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습지초화원으로 가는 데크 길이다
노을쉼터
아라뱃길과 굴포천이 만나는 모습과 아라뱃길의 아름다운 석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쉼터다
아라등대
굴포천이 경인아라뱃길로 스미는 지점이다
오토캠핑장
캠핑 트레일러가 여럿 있다
두리나루
수향6경이지만 설렁한 나루 뒤로 계양산이 있다
플라잉가든 전망대
들판도크
물가 가까이 갈 수 있는 도크가 여럿 있다
기러기 떼
계양산
아라파크웨이 앞이다
아라파크웨이
뱃길 조각공원
「국민과 함께하는 아라뱃길 문화만들기」라는 취지로
서울시립대 · 성신여대 · 중앙대 학생들이 참여하여 제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Revival Gorilla / 정의지(중앙대)
노란 양은냄비로 만든 작품이다
아라자전거길 탑
아라자전거길 시점을 나타낸다
경인항
경인아라뱃길 시점이다
경인항(김포) 컨테이너부두
컨테이너가 있어야할 부두는 승용차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
수향7경이다
왼쪽이 동부간선수로로 내려가는 길이다
금포로에서 봤다
경인항(김포) 컨테이너부두 · 경인항
북한산
아라한강갑문 옆에서 봤다
아라한강갑문 관제탑
아라한강갑문 엘리베이터 이용 안내판
덕양산
행주대교 너머에 있다
전호야구장으로 가는 길이다
전호산
북한산
덕양구 아파트단지
덩굴 아치
출입금지 펼침막
전호야구장으로 오르는 데크길이 옆에 있다
평화누리 자전거길 안내도
전호야구장 앞이다
김포대교
백마도로 들어가는 갑문이다
신곡양배수장
영사대교에서 봤다
영사대교
전호산이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뒤에 있다
백마교
일반인 출입금지인 백마도로 들어가는 다리다
영사정 터(永思亭址) 빗돌
강 기슭에는 소나무 숲이 우거지고 200미터 떨어진 곳에 작은 축뿌리 섬이 있어 한강 하류쪽에서는 으뜸가는 절경을 이룬 곳이다
이조판서를 지낸 윤행임(尹行恁)이 정조로부터 정자의 이름을 하사 받았던 영사정 정자가 있었던 곳이며 남원 윤씨 가문묘역이 가까이에 있다
남원윤씨 영사정(永思亭) 묘역
16세기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남원윤씨의 묘역으로 1529년 윤은(尹訔) 공의 묘가 현 위치에 자리를 잡으면서
총 19개소의 묘가 조성되었으며 현재까지 종중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묘역에 설치된 묘표 · 묘갈 · 상석 · 혼유석 · 향로석 · 문인석 · 망주석 · 석양 등 옛 석물 55기는
16세기 이후 각 시대의 양식적 변화를 보여주며 김노 · 한호 · 송시열 · 윤덕준 · 윤봉오 · 황운조 등의 글씨가 각종 석물에 새겨져 있다
조선 정조가 장릉으로 행차할 때 "저 멀리 경치 좋은 곳에 있는 묘소는 누구의 묘인가"라고 묻자 "남원윤씨 판관공 은의 산소입니다"라고 하니
"경치가 아름다워 영원히 생각이 나겠다"고 하며 「영사정」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화중원(和仲園)
임진왜란 · 병자호란 등의 충신들과 항일지사의 빗돌이 모여 있다
윤은(尹訔) 묘비
증(贈)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 행 통훈대부 군자감 판관옥과 현감 남원 윤공 휘 은(訔)
증 숙부인 배천 조씨의 묘다
진사공 후손이 심은 은행나무
옛날 이 마을에 경주 임씨 진사공 응옥이라는 사람이 낙향하여 살다가 죽었다
당시 조선시대 공조참판이던 진사공의 후손 임창문은 선조를 추모하며 이곳에 향나무 두 그루와 은행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이후 원래 나무의 원줄기는 죽고 곁가지가 자라 이 나무가 되었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보고 한 해 농사를 점쳤는데 봄에 나뭇잎이 일제히 피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
나무 높이 20m · 가슴높이 굵기 1.2m · 줄기 폭 20m · 나이 350년
김포한강로를 토끼굴로 지난다
은행정이 있던 곳
성당에서 알아보니 은행나무는 농사에 방해 된다고 없애버렸고 정자는 집을 짓기 위해 부셨다고 한다
암튼 이 부근이 은행정이 있던 곳이다
*
은행나무는 농사에 방해된다고 없앴지만 지금은 묵밭이다
은행정이 있던 곳 맞은 편이다
고촌 세례자 요한성당
천주교 고촌성당은 공깃돌 송해붕 묘소가 있는 곳이다
고(故) 송해붕(세례자 요한 · 1950. 10. 11 선종)은 1926년 경기도 부천구 계양면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모태 신앙을 갖고 태어났다
계산초등학교 · 인천공립직업학교(현 인천기계공고)를 거쳐 1944년 4월 덕원신학교에 편입하여 신학생 생활을 하던 중
1945년 해방이 되자 사제가 되기 위한 학업과정을 중도에 포기하고 고촌 은행정마을에 들어와 야학을 운영하며 전교활동을 한다
이후 몇 년 간 은행정과 누산리공소를 오가며 펼친 전교활동은 가히 성인 수준이 아니고는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1950년 6 · 25전쟁 당시 천주교가 동네에 전파되는 데 반감을 가진 주민의 밀고로 청년 송해붕은 빨갱이로 몰려 총살형을 당하고 만다
그의 죽음은 신앙 전파 때문이었기에 그의 죽음은 순교였다
나중에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의 유해를 발굴할 수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과 묻혔지만
그의 십자가와 새까만 주단과 묵주가 썩지 않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다
야외성당 제대
고(故) 송해붕(세례자 요한 · 1950. 10. 11 선종) 묘
평소 세례자 요한처럼 살다가 순교하기를 소원했던 송해붕이 선교의 열정을 쏟아내던 고촌공소에는 인천교구 고촌성당이 들어섰고
그가 열심히 교리를 가르쳤던 누산리공소에는 인천교구 사목연구소가 들어섰다
*
故 송해붕(세례자 요한)
"내 별명은 공깃돌이야, 누구든 갖고 놀고 싶은 만큼 갖고 놀고 필요 없어지면 버리라는 의미지 여러분은 공기놀이 하듯 나와 함께 신나게 공부해 보자"
이렇게 해서 공깃돌 선생이라 불렸는데 그의 가르침이 얼마나 명쾌하고 재미있고 엄했는지
당시의 제자로서 지금 생존하는 이의 증언을 들어보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라 한다
고촌119안전센터
대보천(서부간선수로)
고촌역 뒷편에 있는 찬우물정육점을 찾아 갔는데 이전했다 한다
은행정 · 고촌읍 신곡6리
찬우물정육점을 찾아 간다
찬우물 정육식당
갈비탕을 먹으러 왔는데 다 떨어졌다 해서 육회비빔밥을 했다
대보천(서부간선수로)
식사 후 다시 마침점인 고촌역으로 간다
대보천(서부간선수로)
경기옛길 리본
대보천(서부간선수로)
김포 고촌 헤센 스마트오피스텔 신축공사장이 보인다
김포복지재단
고촌역이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6.4km, 소요시간 6시간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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