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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궁산땅굴역사전시관

궁산땅굴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강점기에 굴착된 곳으로

무기나 탄약 등 군수물자를 저장하거나 김포비행장을 감시하고 공습 때에는 부대 본부로 사용하기 위한 곳이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을 건설하기 위해 인근 지역 주민을 보국대로 강제 동원하였다

일본의 패전으로 해방을 맞으면서 굴착공사 또한 중지됐지만, 이후 이곳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다

2008년 인근 주민 다수의 제보로 지하 땅굴을 발견하여 체험전시관을 조성하기 위해 진행하던 중 일부 구간에서 대형 낙석이 발생하여

진입 방지장치를 마련하고 땅굴을 폐쇄한 채로 관리하다가 2018년 출입구에서 땅굴 내부를 조감할 수 있는 전시관을 조성하였다

 

 

궁산땅굴역사전시관

개관일 화요일~일요일 10:00~16: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일요일을 제외한 관공서의 공휴일 (설 · 추석 연휴기간 중의 일요일은 휴관)

*

겸재정선미술관 3층 입구 바로 앞에 있다

 

 

 

 

궁산땅굴역사전시관 내부

 

 

 

 

궁산땅굴 전시배치도

 

 

 

 

궁산은?

궁산 정상에 자리한 양천 고성(古城)은 한강을 중심으로 각축을 벌이던 삼국시대부터 육로와 수로를 확보하기 위한 중요 군사 거점이었다

백제는 서해에서 한강을 거슬러 오는 침입을 경계하고 북방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 요충지로 삼았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은 이곳 양천산성에서 진을 치고 전쟁의 판세를 가늠했으며

행주산성으로 군대를 이동시킨 뒤 행주대첩이라는 빛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곳 궁산의 양천산성은 오랜 세월 동안 행주산성, 오두산성과 더불어 한강 하구를 침입하는 적을 관측하고 방어하는 요충지로 기능하였다

 

 

 

 

일제강점기 35년

1910년 8월 국권 피탈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에 이르는 35년 동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통치했다

이 시기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의 숫자가 780만 명에 이르는데

이는 조선총독부 총계 연보에서 밝힌 1942년 총 인구가 2,630만 명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태평양전쟁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아시아 전체를 식민지화하려는 계획 아래 중일전쟁을 일으키는 한편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도차이나 반도로 침략의 칼끝을 겨누었다

이에 반발한 연합군에 대한 대응책으로 1941년 12월 7일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전선을 태평양으로 확대시켰고 무서운 기세로 동남아시아 지역을 점령해 나갔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치열한 전투 끝에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피폭 4일만에 23만 4천여 명에 이르는 피해자를 남기고 일본은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전쟁이 끝나게 되었다

 

 

 

 

김포비행장

일제강점기였던 지난 1937년부터 총독부는 지금의 궁산 옆에 있던 선유봉을 폭파해 거기서 나온 돌로 김포비행장을 닦았고

이를 가미카제 특공대 훈련장으로도 사용하였다

이곳은 광복 이후인 1949년 미국과 한국이 협정을 맺으면서 미군 비행장으로 사용된다

군사 비행장으로 쓰였던 김포공항은 1958년이 돼서야 마침내 정식 국제공항으로 지정된다

그리고 2년 뒤인 1960년 현 국내선 청사 자리에 종합청사가 지어진 이후 60년간 대한민국 대표 관문의 자리를 지켜왔다

 

 

 

 

궁산땅굴은

2008년 가양동 235번지 궁산(해발 70m) 기슭 지하 3m 지점에서 발견된 길이 68m, 높이 2.7m, 폭 2.2m 규모의 땅굴이며

일제강점기인 1940년 대에 군사시설 목적으로 굴착된 것이다

한강변에 맞닿아 있는 궁산 일대는 일제시대 군사비행장이었던 김포공항과 3.1km 정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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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있는 그림이 땅굴 형태 그림이다

 

 

 

 

궁산땅굴

'봉인된 시간과 공간의 터널'로 새로이 단장해 역사와 문화 그리고 교육의 현장으로 삼고자 한다

*

현재는 땅굴 내부 천정의 습기가 마르면서 돌이 떨어지는 일이 있어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2008년 땅굴 입구 찾기 무속인 퇴거 입구 매립

 

 

 

 

2008년 땅굴 입구 찾기 땅굴 내부

 

 

 

 

궁산땅굴 역사전시관 조성 연혁

2008년 4월 일제강점기 말에 굴착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 땅굴 발견

2010년 2월 복원 계획에 따른 기공식

2018년 5월 출입구에서 땅굴 내부를 조감할 수 잇는 전시관 조성

 

 

 

 

궁산땅굴역사전시관

궁산땅굴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굴착된 곳으로, 무기나 탄약 등 군수 물자를 저장하거나 김포비행장을 감시하고

공습 때에는 부대 본부로 사용하기 위한 곳이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을 건설하기 위해 인근 지역 주민을 보국대로 강제 동원하였다

일본의 패전으로 해방을 맞이하면서 굴착 공사 또한 중지됐지만 이후 이곳은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돼 왔다

 

 

 

 

 

궁산 주변의 근대 역사 문화지와 궁산 역사문화지

궁산땅굴 · 상산 유묵비 · 구 양천배수펌프장 · 구 금융조합 터 · 구 양천수리조합 터 · 양천고성지 · 소악루 · 양천향교 · 관아지(현아지) · 하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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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곳씩 모두 10곳이 사진과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궁산땅굴

낙석으로 들어갈 수 없는 땅굴 내부를 TV 모니터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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