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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청주 고인쇄박물관

청주고인쇄박물관(淸州古印刷博物館)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일명 직지)을 인쇄한
청주 흥덕사지에 1992년 3월 17일 개관한 고인쇄 전문박물관으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를 창안하여 발전시킨 문화 민족임을 널리 알리고
우리 선조들의 위업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우리나라 인쇄문화 발달사를 익히는 과학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청주 고인쇄박물관(淸州古印刷博物館)

 

 

직지 금속활자 복원판
제1전시관에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직지를 중심으로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술과 청주 흥덕사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불조직지심체요절」(하권)은 2001년 9월 4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현존하는 금속활자본 중 세계 최고(最古)임을 공인 받았다
「불조직지심체요절」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되었으며 불교에서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 선(禪)과 관련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이 책은 상 · 하 2권으로 되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하권 1권뿐이다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 佛祖直指心體要節)
백운화상은 직지를 편찬한 경한 스님의 호이다. 화상(和尙)은 스님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초록(抄錄)은 중요한 부분만을 발췌하였다는 뜻이다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의 불조는 석가모니와 선조사(禪祖師) 스님이며 직지는 바로 나를 가르킨다는 뜻이다
석가모니와 역대 조사스님들이 선의 요체를 바로 가르켜 보인 중요한 절목이다
*
백운 경한스님이 석가모니와 역대 조사스님들의 법어와 어록 등에서 선의 요체를 깨닫는데 필요한 내용만을 발췌하여 엮은 책이다
긴 제목을 줄여 〈직지〉라고 부른다

 

 

금속활자를 발명한 고려 · 전활자
고려는 각종 불경과 대장경 간행 등의 거대한 국가사업을 뛰어난 목판인쇄술로 이루어냈다
당시 고려의 우수한 종이와 사경, 각종 서적이 이미 중국으로 전해졌으며
쇠와 불을 다루는 기술과 인쇄에 필요한 먹의 제조 기술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다
13세기 혼란스러운 정세 속의 고려는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지식 정보의 확산과 공유가 필요했다
금속활자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성숙한 문화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탄생됐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상정예문발미」(1234년)와 번각본  「남명천화상송증가도」(1239년)를 보면
고려는 이미 13세기 초에 수도 개경을 중심으로 금속활자 인쇄를 실용화한 것으로 보인다
「직지」가 탄생된 1377년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고려는 이미 세계 최고의 인쇄문화를 꽃피운 문화강국이었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 목판본
금속활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1239년 번각한 목판본이다
비록 목판본이지만 고려시대 활자인쇄의 시기와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자비도량참법집해(慈悲道場懺法集解) / 목판본 · 보물 제1653호
직지와 동일한 금속활자로 인쇄한 「자비도량참법집해」의 번각본이다
이 책의 원본은 흥덕사에서 인쇄한 또 하나의 금속활자 인쇄본이지만 전하지 않고 있다

 

 

상정고금예문발미(詳定古今禮文跋尾)
「동국이상국집」에 수록된 내용으로, 1234년 무렵 이규보가 쓴 글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상정고금」 28부를 금속활자로 인쇄하였다고 하여 13세기 초 이미 고려는 금속활자로 책을 찍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목판본 · 13세기
이규보의 문집은 1241년에 아들 함(涵)이 전집 41권, 후집 12권으로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이후 1251년에 고종의 명으로 손자 익배(益培)가 분사대장도감에서 증보판을 간행된 바 있는데
본서는 1241년 금속활자본의 번각본이다

 

 

동국이상국집 활자판(東國李相國集 活字版) / 국가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 임인호 복원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간행에 사용된 활자를 복원하여 인쇄가 가능한 판을 짠 것이다

 

 

활자로 태어난 직지
「직지」는 고려 때의 승려 백운화상이 중국의 석옥선사가 전해준 불조직지심체요절을 보완하여 엮은 책이다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이 마음의 본체를 바로 가르켜 보인 중요한 절목만을 골라 수록하였다
1377년 청주목 흥덕사에서 석찬과 달잠이 비구니 묘덕의 시주를 받아 금속활자로 인쇄하였으나
현재 국내에는 전하지 않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하권 1책이 소장되어 있다
금속활자로 간행된 후 1년 뒤인 1378년에는 여주 취암사에서 목판본으로 한 번 더 간행되었다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 佛祖直指心體要節) / 필사본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 佛祖直指心體要節) / 국가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김각한 복원
1378년 여주 취암사에서 간행한 목판본 「직지」를 저본으로 하여, 목판에 새겨 인쇄한 「직지」이다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 佛祖直指心體要節)
2011~2015년 전통의 주물기법인 밀랍주조법으로 「직지」 상하권 금속활자 3만여 자를 복원하여 인쇄한 「직지」이다

 

 

직지연표
처음에 「직지」는 상 · 하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그러나 복장을 위해 두 책으로 나누어져 현재는 하권만 전하고 있다
책 표지는 조선시대에 새로 만든 것이며, 직지를 프랑스로 가져간 주한 프랑스 초대공사 꼴랭드 플랑시가 기록한
"1377년에 주조된 글자로 인쇄한 가장 오래된 한국책"이라는 기록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본문의 첫 장은 떨어져 나가 없으며, 총 38장이 남아 있다

 

 

직지연표
1377년 청주목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직지」 간행
1455년 구텐베르크가 납활자로 「42행 성서」 간행

 

 

「직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서
2001년 9월 4일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로 인쇄문화의 전파와 인류역사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 희귀성이 등재에 고려되었다
직지의 소중한 가치를 세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직지를 간행한 사람들
백운화상의 제자 석찬과 달잠이 비구니 묘덕의 시주를 받아 간행

 

 

흥덕사지의 발견
1985년 청주 운천동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흥덕사(興德寺)가 새겨진 청동금구와 청동발우가 발견됨으로써
직지를 인쇄하였던 흥덕사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흥덕사는 849년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사찰로 1377년 「직지」를 간행하고 얼마되지 않아 화재로 폐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동소종(靑銅小鐘) · 금강저(金剛杵)
12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소형 청동 종이다
몸체 위에 용의 장식을 달아서 매달 수 있게 만들었다
*
스님들이 불도를 닦을 때 쓰는 도구의 하나로, 번뇌를 깨뜨리는 보리심을 상징한다

 

 

대중삼년(大中三年)이 새겨진 기와
대중 3년은 849년으로, 이를 통해 흥덕사의 창건 시기를 9세기까지 올려볼 수 있다

 

 

흥덕사(興德寺)가 새겨진 발우
승려의 공양그릇으로, 이 발우 바깥 면에 '황통 10년(1150) 경오 4월에
승려인 영인이 왕생 정토를 위해 발우 하나를 만들어 바치는데 들어간 구리가 2근 6량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흥덕사 명문이 있어서 흥덕사의 위치를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활자를 만드는 과정 모형
밀랍글자 만들기 · 주형에 쇳물을 부어 식힌 후 주형 일부를 깬 모습 · 활자가 만들어진 모습 · 낱개 활자

 

 

금속활자 제작과정
하단 손 모양에 손을 대면 순서대로 활자를 만들고 책을 인쇄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직지 속으로
"자신이 어리석어 진실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헛되고 헛되다 하네"
직지에 담긴 문구들이 쉼터 벽에 있다

 

 

영원히 빛날 직지 / E-BOOK
직지는 팔만대장경의 축소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 선불교 최고의 교과서로 인정 받아 왔다
고승들의 가르침과 참선에 대하여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
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에 실린 한글본과 번역본의 모든 내용을 터치스크린에서 페이지를 넘기며 확인할 수 있다

 

 

유네스코 직지상
직지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고, '세계의 기록' 사업을 촉진하기 위해 2004년 유네스코가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제정한 상이다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169차 집행위원회에서 결정하여 2년마다 기록유산 보존 · 활용에 크게 공헌한 개인 단체에게 시상하고 있다
수상 후보는 유네스코 회원국 정부 정부간 기구 (IGOs, 유네스코와 공식 관계를 맺고 있는 국제 비정부기구 INGOs)가 추천한다
수상자는 국제심사위원단의 추천을 받아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추천하며 수상자에게 미화 3만 불이 수여된다
직지상은 2년마다 9월 4일 직지의 날에 시상하고 있다

 

 

2018년 말리 사바마-디
역대 수상 국가 중 2018년 받은 말리 인증서

 

 

세계인쇄문화 연표
610년 고구려 담징이 일본에 채색법, 종이와 먹 만드는 법을 전함
675년 신라 인장을 주조하여 관청에 나눠어 줌
751년 이전 불국사 석가탑에 무구정광다라니경을 목판본으로 간행하여 봉안

 

 

보협인다라니경(寶篋印陀羅尼經)
1007년에 개성 총지사 주지 홍철(弘哲)이 경전을 불탑 속에 넣어 공양하기 위해 간행한 소형의 목판 다라니경이다
이 다라니경에는 내용을 그림으로 묘사한 변상도(變相圖)가 삽입되어 있는데, 판화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리고 2007년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木造觀音菩薩坐像)의 복장 유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목판 원본의 인출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보협인다라니경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보협인다라니경(寶篋印陀羅尼經)
다라니경 내용을 그림으로 묘사한 변상도(變相圖)가 삽입되어 있는데, 판화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인쇄의 시작
우리나라에서 인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각종 그림과 기호, 문장을 비롯한 한자를 기록한 비문과 금속문 들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삼국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형태를 갖춘 기록물이 생산되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목간, 닥종이에 먹으로 쓴 사경 등이 발견되고 있으며 문헌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역사서를 편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중국으로부터 불교의 전래와 함께 각종 서적이 유입되면서, 이를 보급, 유통하기 위해 목판인쇄가 시작되었다
한편, 1966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됨으로써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8세기 이전에 이미 먹 · 종이 등의 재료를 구비한 인쇄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求禮 華嚴寺 華嚴石經)
화엄경을 돌판에 새긴 것으로, 전라남도 구례 화엄사에서 출토되었다
677년에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각황전(覺皇殿)을 세우고 화엄석경을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화재로 파손되어 현재는 약 8,900여 점의 조각으로 남아 있다

 

 

인장(印章 · 복제품)
기원 전 5,0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초기의 인장은 점토판이나 진흙 위에 눌러 찍는 형태로 시작되었다
동양에서도 일찍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인장의 조각기법이나 날인 방법 등이 인쇄술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목판(無垢淨光大陀羅尼經 木板) ·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2001년 국가무형문화재 오국진이 불국사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목판에 다시 새긴 목판이다
*
한 행에 8~9자의 다라니 경문을 인쇄한 두루마리 형식의 불경이다
1966년 10월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하였을 때, 탑 안에 있던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 경전의 발행 시기는 봉안된 탑이 751년 불국사가 중창될 때 세워진 점과
본문 가운데 중국 당나라 측전무후 집권(690~704) 당시에만 사용했던 글자들이 발견되는 점을 미루어
751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목판인쇄
고려시대는 불교가 국가적인 종교로 정착되어 정부와 사찰을 중심으로 목판인쇄술이 더욱 발달하였다
1007년 개성 총지사에서 찍어낸 「보협인다라니경(寶篋印陀羅尼經)」은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목판인쇄물로
판본의 글씨나 그림이 정교하여 당시에 이미 판각 인쇄술이 상당한 수준에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은 고려의 문화적 자존심과 불교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이라는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간행되었다
대각국사 의천(義天)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대장경의 연구 주석서인 교장(敎藏)을 간행하였다
이후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과 교장이 불에 타자 다시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재조대장경을 완성하는 등
고려시대는 불교 경전과 다양한 분야의 저술이 목판으로 간행되면서 목판인쇄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 목판본 · 고려후기 * 미사색오분계본(彌沙塞五分戒本) / 목판본 · 15세기
1011~1087년에 간행된 거질의 초조대장경이다
60권 본이라 불리는 진본 화엄경으로 그 중에서 권 제18에 해당한다
초조대장경의 판목은 대구 부인사에 보관되던 중 몽고의 침입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
*
소승 부파의 하나인 미사색부의 전승 계율 251가지가 수록되어 있다
1236년부터 1251년까지 16년에 걸쳐 완성한 재조대장경판으로 조선 세조년간에 인출하였다
권말에 수기대사의 교정기록과 간기가 수록되어 있다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 목판본 · 1340년
지장경 하권의 제5장부터 제12장까지이며 권말의 간행 기록에 의해 1340년 충청도 계룡산 동학사에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지장경 목판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인본으로 지장보살이 중생을 교화하여 구제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각류해 (圓覺類解) / 목판본 · 1376년
송나라의 승려 행정(行霆)이 원각형의 내용을 8권으로 요약하여 쉽게 풀이해 놓은 책으로 1376년에 인출된 목판본이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목판본 · 1382년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92호
중국 송나라 계환(戒環)이 1126년에 주해한 묘법연화경을 저본으로 한 천태종의 근본 경전이다
고려 소자본은 전래하는 인본이 매우 드문 자료로 구인사 소장의 보물 제960호와 동일본이다

 

 

해인사 장경판전 · 팔만대장경
고려대장경판(高麗大藏經)은 고려 고종 23년(1236)에 착수하여
1251년까지 16년에 걸쳐 완성한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의 인출에 사용된 판목으로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사간판전에 보관 된 여러 종의 사찰간본과 더불어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기증 · 기탁 유물 / 박병선 박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1972년에 프랑스 소르본느대학에서 한국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던 중에 금속활자본 「직지」의 사진을 한국에 제공하였으며
또 국내에서 영인본을 발간할 수 있도록 교두보를 마련함으로써
「직지」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청주시에서는 그 뜻을 기리기 위해 1998년 명예시민증을 수여하였으며
한국 정부에서는 1999년 은관 문화훈장, 2007년 국민훈장 동백장, 201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전수하였다

 

 

조선시대 인쇄술
조선은 개국 이후 직면한 사회, 경제적 변화와 혼란을 해결하고 새로운 성리학적 사상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가장 절실한 문제가 책의 인쇄와 보급이었다
조선은 고려의 인쇄술을 계승하였으나, 태종대에 이르러 문물과 제도가 정비되자
주자업무를 관장하는 주자소를 설치하고, 1403년 수개월에 걸쳐 동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주조하였다
이후 대략 20년 간격으로 새로운 활자들이 만들어지는데 1420년에는 경자자(庚子字)가 1434년에는 갑인자(甲寅字)가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금속활자 인쇄 1
태종대에 이르러 문물과 제도가 정비되자 주자업무를 관장하는 주자소를 설치하고 1403년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만들었다
이후 1420년에는 계미자의 단점을 개량한 경자자(庚子字)가 1434년에는 갑인자(甲寅字)가 계속해서 개량되었다
특히 갑인자에 이르러서는 처음으로 대나무나 나무조각으로 빈틈을 메우는 조립식 인판이 사용되는 등 인쇄술이 개량되었다
또 갑인자에 이르러 한글활자가 만들어졌으며, 글자 모양과 인쇄량을 개선하는 등 조선 후기까지 모두 수차례에 걸쳐 다시 주조되어 사용되었다
한편 1436년에는 병진자(丙辰字)가 주조되었는데 다른 활자와 비교하여 활자가 크고 납을 녹여 만든 최초의 금속활자라는 점이 특징이다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 목판본 · 1859년
1797년 정조의 명으로 간행된 금속활자본 오륜행실도를
1859년에 김병학 등이 철종의 명을 받아 내각에서 목판으로 다시 간행한 인본이다

 

 

금속활자본과 목활자본 구별법

 

 

주역전의대전(周易傳義大全) / 금속활자본 · 정유자본(丁酉字本) · 1793년
1777년 주조한 정유자(丁酉字)로 간행한 주역전의대전의 교정쇄본이다
본 교정쇄본은 두 번째 시험 인출한 재견지(再見紙)에 해당하며 오탈자와 활자의 높이 · 기울기 · 먹 상태 등의 교정을 지시하고 있다

 

 

금속활자 인쇄의 교정방법
금속활자 인쇄의 교정은 보통 세 번의 시험인출과 교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초견(初見) · 재견(再見) · 삼견(三見)이라 하였다

 

 

활자의 조판과 인쇄

 

 

조선시대 금속활자 인쇄 2
세조는 1455년 강희안의 글씨를 바탕으로 을해자(乙亥字)를 만들었고
1457년에는 의경세자의 명목을 빌기 위해 손수 쓴 금강경의 글자체로 대형 동활자인 정축자(丁丑字)를
1465년에는 정난종의 글씨를 바탕으로 대 · 중 · 소의 을유자(乙酉字)를 주조하였다
성종은 갑진자(甲辰字)와 계축자(癸丑字)를 만들었으며
1516년에는 금속활자를 주조를 전담하는 주자도감(鑄字都監)을 설치하고, 병자자(丙子字)를 만들었다
이후 1580년에는 갑인자(甲寅字)를 바탕으로 다시 주조한 경진자(庚辰字)가 주조되었으며
1618년에는 임진왜란으로 중단되었던 종래의 주자제도를 복구하고, 무오자(戊午字)를 주조하였다
이밖에도 달력을 인출하기 위해 인력자를 주조하여 대통력(大統曆)을 찍어내는 등 활자인쇄술의 개량과 혁신에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금속활자본 / 갑진자 · 15세기
1481년 성종의 명으로 노사신, 양성지, 강희맹 등이 각 도의 지리와 풍속 등을 기록한 관찬지리지이다
인출에 사용된 계축자는 이전에 사용하던 갑진자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1493년에 갑진자보다 그 대자와 소자를 동시에 좀 더 크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 금속활자 인쇄 3
조선후기에는 민간의 활자를 정부가 인수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1668년 김좌명이 호조와 병조의 물자와 인력을 이용하여 수어청(守禦廳)에서 무신자(戊申字)를 주조하였으며
1677년에는 낙동계라는 민간단체가 만들어 사용하던 금속활자를 인수하고 새로 4만여 자를 더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이밖에도 김석주(金錫冑)가 당대의 명필가인 한구(韓構)의 글씨를 바탕으로 한구자(韓構字)를 주조하였으며
1684년 '교서관인서체자, 1772년 임진자, 1777년 정유자, 1796년 정리자가 만들어졌다
1816년에는 전사자 20만 자가 만들어졌는데 그 실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 서울대학교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1883년 통리아문에 박문국을 설치하고, 신연활자를 일본에서 도입하여 한성순보를 발행하였는데
이로써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근대 인쇄가 시작되었다

 

 

첩해신어(捷解新語) / 금속활자본 / 병진왜언자 · 丙辰倭諺字
조선중기 사역원에서 일본어를 학습하기 위해 편찬된 교재이다
책 이름의 첩해신어는 '새 말을 빨리 깨우친다'는 뜻으로
여기서 신어(新語)는 임진왜란 이후 실제로 일본인에게 배운 새로운 일본어를 말한다

 

 

조선시대 인쇄관련 규정
서책을 찍어낼 때 감교관 · 창준 · 균자장은 인쇄된 책 한 권 당
한 자의 착오가 있을 경우 30대의 매를 치고 한 자가 더 틀렸을 때마다 한 등을 더한다
*
인쇄 잘못하면 매맞어 죽겠다

 

 

조선시대 목판인쇄
조선시대에 들어 금속활자 인쇄가 다시 시작되고 인쇄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지만
활자는 초기 비용이 많이 들고 간행부수에 제한을 받았기 때문에 목판인쇄는 조선 전 시기에 걸쳐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지방관서 · 문중 · 사찰 · 서원 등에서 주요한 인쇄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묵헌집 목판(默軒集 木板) / 1938년
조선 후기 문신 이만운(李萬運:1736~1797)의 시문집 간행을 위해 1938년 제작한 목판이다

 

 

조선시대 목활자 인쇄
나무로 만든 목활자 인쇄는 조선 초기부터 중앙관서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되었다
조선 초기에 목활자로 인출한 것으로는 1397년에 조선 건국과 더불어 공신들에게 내려준
「개국원종공신녹권(開國原從功臣錄券)」이 시기가 제일 빠르다
특히 목활자는 전란 등의 국가위기나 긴급한 필요에 의해서 활자 인쇄가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할 때
금속활자의 대용 혹은 보충을 위해 다양한 임시 출판기구에서 만들어져 사용되었다

 

 

울료자직해(尉繞子直解) / 목활자본 · 갑인자체훈련도감감자
주대(周代)의 울료자(尉繞子)를 직해(直解)한 병서이다
훈련도감자는 임진왜란 후 신설된 훈련도감에서 유휴 병력을 이용하여 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어주고
도감의 운영경비 마련을 목적으로 제작한 목활자이다

 

 

목활자와 금속활자의 비교
목활자 인쇄는 인면에 나무의 결이 나타나고, 금속활자에 비해 인쇄상태와 글자의 배열이 고르지 못하다
금속활자 인쇄는 목판인쇄에 비해 먹색이 연하고, 자세히 보면 글자에 반점이 확인된다
주로 중앙에서 제작해서 사용하여 인쇄상태가 양호한 편이지만 후기 민간 주조의 금속활자 인본은 다소 질이 떨어지기도 한다

 

 

조선시대 한글활자 인쇄 1

 

 

조선시대 한글활자 인쇄 2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 금속활자본 · 月印釋譜 한글활자
세종이 소헌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간행한 〈석보상절〉의 각 구절에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여 손수 우리말로 악장체의 찬불가를 지었는데, 이 찬불가가 바로 월인천강지곡이다

 

 

책의 판식과 명칭

 

 

세계 문자의 뿌리와 갈래

 

 

알타미라동굴벽화   ·   라스코동굴벽화   ·   쇼베동굴벽화
B.C 15,000~20,000년경 · B.C 20,000년경 ·  B.C 30,000년경
*
일반적으로 세계 문자 계통의 뿌리는 크게 세 가래로 구분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쐐기(설형)문자 · 이집트 성각문자(히에로글리프) · 중국의 한자(갑골문)가 그것이다
그중에서 쐐기문자의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세계의 문자는 대부분 이집트 성각문자와 중구구의 갑골문이 그 계통의 뿌리라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궁궐의 주자소와 규장각
동궐도 / 창덕궁 · 창경궁을 그린 회화로 모두 96폭의 그림을 모아 화첩형식으로 제작한 궁궐지도

 

 

동양의 인쇄문화
중국의 채륜에 의해 종이가 개량되고 보급되면서, 탑본기술로부터 목판인쇄가 시작되었다
11세기 들어 중국의 필승이 흙을 구워 만든 교니활자로 인쇄를 시도하였고 고려에서는 금속활자를 창안하여 직지를 인쇄하였다
일본에서는 770년에 목판으로 「백만탑다라니(百萬塔陀羅尼)」를 인쇄하였으며
중원지방의 목판인쇄기술이 서북 지역인 돈황의 위구르인들에게 전파되어 각종 불경의 번역과 판각 불화 인쇄에 응용되었다
한편 기원전부터 동 · 서양 교류의 중심이 되었던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현재로서는 당시 각 국의 인쇄 관련 자료들을 통해 그 가능성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백만탑다라니(百萬塔陀羅尼)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로는 770년경에 쇼토쿠(稱德) 여왕이 난을 평정한 뒤 은혜에 감사하다는 뜻을 담아
원흥사(元興寺) · 동대사(東大寺) 등 10개의 사찰에 각 10만 개의 소형 목탑을 만들고
그 안에 다라니경을 목판으로 인쇄하여 봉안하였다. 현재 일본 나라현 호류사(法隆寺)에 보관되어 있다
이 다라니는 「무구정광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의 일부를 낱장의 목판으로 찍은 것이다
이후 일본의 활자 인쇄는 1593년 조선에서 유입된 동활자를 활용하여 「고문효경(古文孝經)」을 간행한 기록이 있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1607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시즈오카 스루가성에 은거하면서 조선의 금속활자를 토대로 동활자를 만들어
「대장일람집( 大藏一覽集)」 11권, 「군서치요(群書治要)」 47권 등을 인쇄하였다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 목판본
868년에 당나라 왕개(王介)가 부모님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이다
중국 돈황에서 출토되어 현재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서양의 인쇄문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두기를 소망했다
이를 위해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돌, 구워진 흙,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 등의 서사재료에 기록을 쓰고 새겼으며 이러한 기록물들은 도서관에 보관되었다
그러나 전쟁이나 화재 등은 종종 이러한 유일 기록물들을 태워버렸고 여기에 담긴 내용물들은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사라졌다
15세기 중반 독일 구텐베르크로부터 시작된 유럽의 활자인쇄술은
르네상스가 유발시킨 폭발적인 서적 수요의 증대에 따라 급속하게 보편화 · 상업화되었다
다시 유럽에서 차례차례 일어난 종교개혁과 산업혁명, 자본주의의 등장에 결정적인 배경이 됨으로써
인쇄술은 유럽 근대 문명의 탄생을 돕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곧 유럽에 있어서 활자 인쇄술의 발전은 소수 지배 계급의 전유물이었던 책이
지식문화에서 소외되었던 대중 속으로 급속하게 전파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이는 근대 유럽 문명의 초석이 되었다

 

 

서양의 인쇄문화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인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400~1468)는 1400년경 독일 마인츠에서 태여났다
1430년 스트라스브르그(Strasbourg)에서 보석세공과 유리를 만드는 일을 하였으며
인쇄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인쇄용 활자를 주물로 만드는 법과 인쇄기계, 인쇄용 잉크를 고안하고 개발하였다
1450년경에는 마인츠에 인쇄공장을 세우고 면죄부 등을 인쇄했으며 2~3년 후에 구텐베르크 성서(Gutenberg Bible)라고 부르는 「42행 성서」를 인쇄했다

 

 

패트릭스 · 쿠텐베르크 금속활자

 

 

구텐베르크 42행 성서
구텐베르크 성서(Gutenberg Bible)라고 부르는 「42행 성서」는
한 페이지가 42줄 2단으로 이루어져서 붙여진 이름으로 모두 180부를 인쇄하였으나
현재 전하는 것은 49부로, 종이에 인쇄한 것이 37부, 양피지에 인쇄한 것이 12부이다
구텐베르크는 이 성서의 인쇄를 위해 290개의 서로 다른 금속활자를 만들었으며 활자 조판을 위해 적어도 10만 개의 활자를 주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주물틀(Hand Mould)과 인쇄기(Press)를 도입해 책을 대량생산해내게 된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구텐베르크 인쇄소

 

 

목판제작과정 · 목활자인판제작과정

 

 

기획전시관

 

 

시간을 그리는 책 상자 / 1인 1책 펴내기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역대 수상작(2007~2020)

 

 

직지 디지털 실감영상관
*
(2022. 7. 10)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21km, 소요시간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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