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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정순왕후 유적지

어린 임금의 비통함과 애처로움이 배어 있는 영월 청령포와 장릉을 다녀오고 나서 정순왕후 유적지를 돌아본다
*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는 조선 6대 단종(1441~1457)의 비(妃)다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하자 조선 최고의 여인에서 노비로 신분이 강등되는 비운의 삶을 살았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는 그녀가 64년 세월을 홀로 살아간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창신역 3번출구
왼쪽 비탈길로 올라야 한다
시점이다

 

 

정업원 옛터 90m 안내판
창신역에서 돌아오르는 비탈길 끝에 있다

 

 

청룡사(정업원 터)

 

 

삼각산 청룡사(三角山 靑龍寺)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의 말사로 922년(고려 태조 5)에 도선(道詵) 국사의 유언에 따라 태조 왕건이 어명을 내려 창건했다
풍수지리적으로 한양의 외청룡(外靑龍)에 해당하는 산등에 지었다고 하여 사호를 청룡사라 하였다

 

 

삼각산 청룡사(三角山 靑龍寺) 현판
구당 여원구(丘堂 呂元九)  선생의 글씨다
구당 선생은 우리나라 국새를 만드신 서예가이다

 

 

청룡사 대웅전
1036년(정종 2)에 만선 비구니스님이 퇴락한 절을 창건 이후 처음으로 중창하였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창하여 10차의 중창 역사를 갖고 있다
1923년 다시 옛이름인 청룡사로 불리게 되었고, 1950년대에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으며, 1973년에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청기와 지붕이다

 

 

대웅전(大雄殿)

 

 

우화루(雨花樓)
우화루는 석가모니가 설법을 할 때 꽃이 비처럼 떨어져 내린다는 뜻이다 
단종이 영월로 귀양 가기 전날 정순왕후와 마지막 밤을 보낸 곳이다

 

 

우화루(雨花樓) 현판
청남 오제봉(菁南 吳濟峯) 글씨다

 

 

명부전(冥府殿)
1868년(고종 5)에 제작된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등 여러점의 문화재가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冥府殿) 내부
1868년(고종 5)에 제작된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 칠성도(七星圖) · 현왕도(現王圖)가 있으며
1898년(광무 2)에 제작된 감로도(甘露圖) · 1902년에 제작된 신중도(神衆圖) · 가사도(袈裟圖) · 석조삼불상(石造三佛像)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업원 터(淨業院址 서울시 유형문화제 제5호)
단종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정업원은 왕실가 출신 여인들이 출가해 머물던 곳으로 단종비는 이곳에서 시녀 3명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
이곳은 출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정업원구기 비각 편액
“전봉후암어천만년 세신묘구월육일흠체서(前峯後巖於千萬年 歲辛卯九月六日欽涕書)”
「앞산 뒷바위 천만 년을 가오리 신묘년(영조 17) 9월 6일에 눈물을 머금고 쓰다」라는 뜻이다
정조의 친필 편액이다

 

 

창신 · 숭인마을탐방로

 

 

청룡사에서 나와 왼쪽 언덕 사거리에서 왼쪽은 자주동샘 · 오른쪽은 동망봉가는 길이다
*
자주동샘으로 가면서 봤다

 

 

서울명신초등학교

 

 

비우당(庇雨堂)
조선 초 청백리로 명성이 높은 유관(柳寬 이수광의 외5대조)이 살았는데
지붕이 새자 손수 우산을 받치고 살면서 부인에게 "우산 없는 집은 어떻게 견띨꼬?"라 농담을 하여
유재상의 유상수산(柳相手傘)이라는 고사가 생겼다
*
이곳은 외손인 이수광 집안으로 상속되었는데 그 집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이수광이 새로 짓고 그 이름을 비우당이라 하였다

 

 

지봉선생 비우당(芝峯先生 庇雨堂) 옛 터 빗돌
「겨우 비를 가리는 집」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실학자인 지봉 이수광(芝峯 李睟光)이 살던 곳이다
낙산 동쪽 상산(商山)의 한 줄기인 지봉 아래 있었는데 이수광의 호가 여기에서 나왔다
*
원래는 창신동 쌍룡2차아파트 자리에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낙산공원을 조성하면서 이곳에 복원하였다
조선 시대 실학자 지봉 이수광(1563~1628)이 저서 「지봉유설」을 지은 곳으로 알려졌다
예전 너럭바위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자지동천(紫芝洞泉)
「자줏빛 풀의 계곡에 있는 샘물」이라는 뜻으로 《자주동샘》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단종비가 시녀들과 함께 샘에 지초(芝草) 뿌리를 풀어 저고리 옷고름 · 댕기 등에 자주색 물감을 들이는 일을 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단종비를 돕기 위해 여인시장 상인들이 옷감 염색하는 일을 맡겼다고 한다
*
비우당에 가려진 자주동샘
비우당을 옮겨 지을 때 꼭 이 자리여야 했는지?

 

 

자지동천(紫芝洞泉)
지금은 샘물이 말라있지만 단종비 송씨가 비단을 빨면 자주색 물감이 들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는 샘이다
예전 자주동샘의 빗돌이 옆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예전 원각사
단종의 넋을 천도하는 사찰이었는데 땅이 시유지인 관계로 사찰은 나가고
현재 도서관으로 리모델링 중이다
비우당 옆에 있다

 

 

지봉선생 비우당(芝峯先生 庇雨堂) 옛 터
원래는 창신동 쌍룡2차아파트 자리에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낙산공원을 조성하면서 이전 · 복원하였다

 

 

창신쌍용아파트 앞 절벽이 보인다
예전 청룡사 노스님이 저 절벽으로 인해 신분이 높은 여인들이 많이 오나보다 하셨다 한다

 

 

동망봉(東望峰)
예전 공원으로 꾸미기 전인 20여 년 전 이곳에서 정순왕후의 제를 지내던 분이 있었다
현재는 동네 주민들이 운동할 수 있는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동망봉(東望峰) 빗돌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단종의 명복을 빌었던 곳이다
지금은 아파트가 가려 전망이 없다

 

 

비운의 왕비 · 단종비 정순왕후 그림이야기

 

 

동망봉 절벽
조선 영조는 1771년 친히 「동망봉(東望峰)」이란 글자를 써서 이곳 바위에 새기게 하였지만
일제강점기 때 채석장이 되면서 글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중앙청 공사 때 이곳 바위가 사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남산
동망봉 동쪽은 아파트 때문에 전망이 없지만 다른 쪽은 볼 수 있다

 

 

정순왕후 유적지 종합안내판

 

 

동망각(東望閣)
성북구 보문동과 종로구 숭인동 사이 청량사 앞에 우뚝 솟은 큰 봉우리를 동망봉이라 부른다
동망봉은 조선시대에 어린 단종이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내어주고 영월로 귀양가 있을 때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청룡사에 기거하면서 매일 산 봉우리에 올라 단종이 있는 영월을 바라보며 평안을 빌었던 곳이다
현재 보문동 지역 주민들이 매년 가을 길일을 택하여 동망각에서 정순왕후의 넋을 기리며
마을 주민들의 무사 안녕과 평온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있다
*
기존 보문동6가 209-192호에 목조 건물로 있던 동망각은 보문제3구역주택개발사업으로 철거되고
2017년 1월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청량리 롯데캐슬건설현장
제일 높은 건물이다

 

 

정순왕후 기념공간
지상 1층에는 정순왕후 기념공간 · 주민 커뮤니티 공간 · 다목적 화장실 · 지하 1층에는 공원 관리실 · 다목적실이 있다
예전 공원관리사무소 자리다

 

 

운동장

 

 

축대돌탑
노태우정권 때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잠실 · 성남 등지로 강제 이주 당했다
그 때 살던 집들의 축댓돌로 돌탑을 만들어 놓았다
이런 돌탑이 여러 개 있다
*
애환이 서린 탑이다

 

 

동망정(東望亭)
동망봉이라 부르게 된 유래에 따라 정자를 건립하여 동망정이라 하였다

 

 

동망정 동남쪽 방향
멀리 롯데월드타워가 보였는데 날씨 때문인지 안보인다

 

 

국세청우편물자동화센터

 

 

안동반점
맛집이라 점심을 하러 왔는데 문이 닫혔다

 

 

청계천
무학교에서 봤다

 

 

무학교

 

 

존치교각(存置橋脚)
비우당교 앞에 예전 청계천고가도로에 사용되었던 교각 3개가 철거되지 않고
예전의 모습을 알리기 위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란히 서있다

 

 

갈비탕집
맛집인데 이집은 재료 소진으로 못판다고 한다
보통 오후 3시 마감인데 오늘은 이르다

 

 

청혼의 벽
두물다리 옆에 있다

 

 

두물다리에서 봤다

 

 

서울시설공단

 

 

청계천 판자집테마촌

 

 

내부순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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