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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말 사육과 사냥)

국립고궁박물관은 국외 왕실 특별전시의 하나로 12월 5일부터 내년 2월 10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과 1층 기획전시실에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 공국」은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자리한 국가로 가문의 성(姓)이 곧 국가의 공식 명칭인 나라 중 하나다

영토의 크기가 서울의 1/4 정도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작은 국가이며 ‘대공’을 국가 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말 사육과 사냥

근대 유럽에서 말 사육과 사냥은 귀족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취미였다

왕가에서는 좋은 품종의 말을 기르고 다루는 능력이 중시되었으며 리히텐슈타인 왕가에서도 승마술과 말의 사육기술이 크게 발전하였다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전원 지대에 사냥터를 소유하였으며 이곳에서 사냥을 즐겼다

이들에게 사냥은 취미이자 운동이었고 전쟁을 대비한 훈련이었다

승마와 사냥은 평민과 다른 신분을 보여주는 상징적 활동이었기 때문에 그를 위한 도구는 화려한 세공으로 장식되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에서 말 사육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인물은 카를 1세의 동생인 군다커로 1625년에는 이에 대한 책을 저술하여 출판하였다

카를 에우제비우스 1세 또한 뛰어난 품종의 말을 얻기 위해 노력했고 요한 아담 안드레아스 1세는 아이스그룹 궁전에 마구간을 겸한 승마학교를 지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가 요한 게오르크 폰 해밀턴에게 주문한 말 그림은 말에 대한 왕실의 관심과 애정을 잘 보여준다

 

 

 

 

사냥의 수호성인 성 에우스타키우스 / 1515~1520년

로마 장군 에우스타키우스가 사냥 중 사슴의 뿔 사이에 나타난 십자가를 보고 경배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에우스타키우스는 이 일을 계기로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며, 사냥꾼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이 그림은 본래 날개 판이 달린 제단화의 일부였으며, 1819년 요한 1세 대공이 구입하였다

 

 

 

 

석궁과 크레인 퀸(독일  석궁) / 1547년 · 크레인퀸 / 1580~1590년 경

화살을 중앙에 놓고 방아쇠를 당겨 발사하는 석궁과 화살을 발사할 수 있도록 몸체에 부착하는 발사 장치이다

석궁은 간단한 훈련만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었고 강력한 파괴력을 가졌으나 발사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저격용 무기로 적합했다

15세기 말 화약무기가 개발되면서 점차 사냥용으로 쓰이게 되었다

 

 

 

 

사냥칼 / 독일 17세기 중반

사냥감의 숨을 끊는 '최후의 일격'을 가할 때 사용한 칼(행거 hanger)이다

한쪽 칼날에는 용맹한 헝가리 보병인 판두르 모습을 칼의 양날에는 오스트리아의 황후이자 헝가리 여왕인

마리아 테레지아를 향한 판두르의 충성을 보여주는 글귀를 새겼다

 · 판두르여 만세, 그러나 그가 주신 내 영혼을 드립니다 / 뒤 · 판두르여 만세, 저는 여왕에게 봉직하며 목숨도 바칠 것입니다

 

 

 

 

사냥도구 / 16세기

사냥으로 잡은 동물을 해체할 때 사용한 도구이다

날이 넓은 칼 두 개와 작은 칼 두 개 · 포크로 구성되었으며 덩굴 문양으로 장식한 가죽 칼집에 보관하였다

 

 

 

 

리히텐슈타인의 '사냥' 식기 세트 중 황소 사냥 장면이 그려진 팔각 받침접시 / 1730~1740년 경

사냥을 주제로 한 식기 세트 중 하나이다

요한 엘리아스 리딩거의 동판화 연작 '사냥'을 도자기에 옮긴 것으로

황소를 공격하는 사냥개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식물과 새의 모습을 추가적으로 그려 넣었다

왜가리를 공격하는 매의 모습은 사냥 장면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와 사냥

 

 

 

 

용수철식 소총 / 17세기

오스만 튀르크 소총으로, 다양한 재료를 상감 기법으로 장식하였다

합스부르크 황실과 오스만 제국은 수백 년에 걸쳐 전투를 거듭했는데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황실 군대에 소속되어 전투에 참여하고 공을 세웠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무기류 목록에 포함된 튀르크식 무기는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 중 전리품으로 획득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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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식 소총 / 1670년

요한 아담 안드레아스 1세 대공의 소총이다

귀한 재료를 사용하여 화려하게 장식한 소총은 주로 전시용이었다

개머리판에는 상아를 이용하여 그리스 로마 신화의 장면과 사냥의 수호성인 성 에우스타키우스를 장식하였다

 

 

 

 

부싯돌식 권총 한 쌍 / 1675~1680년 경

합스부르크 황실에서 주문, 소장했던 것으로 보이는 권총이다

1648년, 30년 전쟁이 끝나며 정국이 안정되자 17세기 후반 황실에서 사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총기 제작 장인들이 빈에 정착하였다

파리 출신의 자크 라마크가 제작한 이 권총은 다양한 재료와 색채로 정교하게 장식했으며 총열을 열 수 있게 하여 빠른 장전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룬덴부르크(브르제츨라프)의 사냥용 건물 '포한슈코' / 1815년

룬덴부르크 남동쪽 목초지에 세운 사냥용 건물 '포한슈코'를 배경으로 멧돼지 사냥이 이뤄지는 장면을 그렸다

건물은 건축가 요제프 하르트무트가 설계하였는데 여러 개의 방이 연결된 2층의 홀을 중심으로 양측에 회랑을 만들고

2층에는 테라스를 설치하여 사냥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사냥도구 / 1755년

사냥으로 잡은 동물을 해체할 때 사용한 도구이다. 날이 넓은 칼과 두 개의 작은 칼, 포크 등이 세트로 구성되었다

날이 넓은 칼에는 너른 들판에서 사냥개에게 쫓기는 동물들을 음각으로 새겼다

18세기 전반 빈에서 제작한 전형적인 사냥용 칼 세트로, 뛰어난 기법을 보여준다

 

 

 

 

사냥 노획물과 함께 있는 프란츠 1세 대공과 엘자 대공비 / 1930년 경

프란츠 1세 대공과 대공비 엘자가 룬텐부르크(브르제츨라프) 지역에 있는 사냥용 건물 아우프 덴 라넨의 입구에 서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이들 앞에는 방금 사냥한 붉은 사슴 두 마리와 커다란 사슴뿔이 계단을 따라 놓여 있다

 

 

 

 

펠츠베르크(발티체)궁전 총기류의 방 / 1845년

펠츠베르크 궁전에 있는 총기류의 방을 그린 수채화이다

벽면에는 총기류를 빼곡하게 걸어놓았으며 샹들리에와 의자 · 바닥은 사냥으로 얻은 동물의 가죽과 뿔 등으로 장식하였다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1911년에 펠츠베르크 궁전이 개인용 저택으로 개조되자 무기 일부를 파두츠 성으로 옮겨 보관하였다

여러 세대를 거치며 수집한 예술품과 무기류가 지금까지 보존되어 왔다

 

 

 

 

말에게 굴레를 씌우는 법 / 동판화 마크달레나 울리히, 요한 콘라트 클뤼펠 · 출판 그레고어 겔프하어 · 1625년)

카를 1세 대공의 동생인 군다커가 저술한 말 조련에 관한 책이다

말은 귀족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젊은 남성 귀족들은 승마술과 말 사육, 말 조련을 심도 있게 교육 받았다

뛰어난 말 전문가이자 애호가였던 군다커의 책은 많은 인기를 얻었고 군다커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들도 말에 관한 저서를 출판하였다

 

 

 

 

안톤 플로리안 1세 대공이 황실 대사 자격으로 로마에 정식으로 입성하는 모습 / 1692년

레오폴트 1세 황제의 보좌관으로 일했던 안톤 플로리안 1세 대공이 1691년 12월 27일 황실 대사로서 교황청에 입성하는 모습을 그린 동판화이다

'카로차'라는 화려한 마차와 아름다운 리히텐슈타인의 말을 타고 왕가의 위엄을 드러내며 입성하는 안톤 플로리안이 그려져 있다

 

 

 

 

입구에서 바라본 펠츠베르크(발티체)의 승마 학교 / 1721년

펠츠베르크 궁전의 승마학교 실내를 그린 그림이다

바로크 시대에 승마학교는 소유주의 부와 지위를 반영하는 중요한 건물로 여겨졌기에

안톤 플로리안 1세 대공은 펠츠베르크 궁전을 개조하여 대규모의 마구간과 승마학교를 지었다

대공의 말들을 살펴보고 있는 귀족들의 모습과 '고등 승마술' 수업이 진행되는 장면이 그려졌다

 

 

 

 

1760년 9월 3일 요제프 벤첼 1세 대공의 파르마 입성을 위해 제작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문장이 있는 마구 / 1760년

요제프 벤첼 1세 대공이 프란츠 1세 황제와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의 대리인으로

그들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요제프 대공의 신부를 빈까지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을 때 제작한 마구이다

붉은 벨벳에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문장을 입체적으로 화려하게 수놓아 만들었다

 

 

 

 

말 사육의 역사와 의미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말 사육은 카를 에우제비우스 1세의 재위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고급 품종의 말은 희귀하고 가격이 높았으므로 훌륭한 말을 소유하는 것은 귀족의 권세와 직결하였다

카를 에우제비우스 1세는 아들인 요한 아담 안드레아스 1세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이 유럽 최상의 말을 기르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적어, 말 사육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에게 말 사육은 예술과도 같았다

종마 · 암말 · 망아지는 원산지와 품종에 따라 각기 다른 마구간에서 사육되었고

종마를 수용하기 위해 펠츠베르크와 아이스그룹에 새로운 마구간과 승마장을 지었다

리히텐슈타인산 말은 귀한 품종과 아름다움으로 명성이 높았고 1660년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혼인 선물로 봉헌되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에서 기른 훌륭한 말들을 왕실의 고귀한 혈통을 상징하였고 그 아름다움은 왕가에서 주문한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펠츠베르크 궁전 마구간

 

 

 

 

말 두 마리, 사냥개와 함께 있는 마부 / 얀 페이트 1640~1645년

두 마리의 말과 사냥개, 마부를 그린 그림으로 사람이 아닌 말이 중심인 작품이다

근세 귀족들은 가치가 높거나 아끼는 동물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순혈종의 말이나 개를 그린 그림은 귀족들의 전유물인 사냥 · 승마와 관련하여 귀족들이 누리던 고급문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풍경을 배경으로 회색 종마와 함께 있는 경기병 초상 / L. 데비테 18세기 전반

회색 말을 데리고 가는 경비병을 그린 그림이다

말갈기는 금빛 술로 장식했으며 화려한 안장을 얹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말은 아이스그룹(레드니체)에 있는 대공 가문에 있는 대공 가문의 말 사육장에서 길러졌던 것으로 보인다

동물 그림은 귀족들과 말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며 귀한 동물을 소유할 수 있는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제작되었다

 

 

 

 

흰 조랑말을 탄 어린 시절 요한 2세 대공의 초상화를 위한 유화 스케치 / 프리드리히 폰 아멜링 1844~1845년

알로이스 2세 대공의 막내 아들이자 후에 대공이 되는 요한 2세를 그린 습작으로 흰 조랑말 위에 앉아 있는 다섯 살의 요한 2세를 빠른 필치를 포착하였다

완성작에 나타난 요한 2세가 어린 나이임에도 근엄한 모습으로 묘사된 것과 다르게 이 스케치 속 요한 2세는 해맑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