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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생활 문화)

국립고궁박물관은 국외 왕실 특별전시의 하나로 12월 5일부터 내년 2월 10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과 1층 기획전시실에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 공국」은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자리한 국가로 가문의 성(姓)이 곧 국가의 공식 명칭인 나라 중 하나다

영토의 크기가 서울의 1/4 정도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작은 국가이며 대공을 국가 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생활 문화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귀족에서 왕가로 승격되었던 절대주의 시대에는 통치자를 인간이 아닌 「신의 모습」으로 여겼다

이에 따라 리히텐슈타인의 대공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고

보통사람들과 구별되는 품격있고 화려한 생활을 추구하였다

이들은 거대한 정원이 딸린 궁전에 거주하고 호화로운 의복을 입었으며 연회를 개최하고 예술가의 후원자로서 활동하였다

 

 

 

 

부초비츠(부초비체)성의 중정 / 루돌프 폰 알트 · 1841년 11월 15일

부초비츠 성 내부의 중앙 정원을 그린 그림이다

모라비아의 귀족 보스코비츠 가문의 성으로 1597년 보스코비츠와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혼인을 맺으면서

부초비츠 성과 영주의 지위가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소유가 되었다

1720년부터 1824년에는 리히텐슈타인 중앙회계사무소 본부로 사용되었다

 

 

 

 

모라비아의 플루메나우(플룸로프) 성의 전경 / 페르디난트 룽크 · 1815년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주요 영지를 기록한 연작 중 하나로 현재 체코 플룸로프 지역에 있는 성을 그린 그림이다

플루메나우 성은 카를 에우제비우스 1세 대공 때 짓기 시작하였으며 보헤미아 왕국의 주요 건축물인 체르닌 궁전을 뛰어넘고자 설계되었다

강을 마주보는 절벽 위에 세워져 웅장한 느낌을 준다

 

 

 

 

펠츠베르크(발티체) 일대의 레이스트나 콜로네이드 / 페르디난트 룽크 · 1818년

펠츠베르크 궁전 너머에 자리한 레이스트나 열주를 그린 그림이다

개선문 형태의 중앙부를 중심으로 기둥이 늘어서 있는 개방형 공간이다

벽감 안에는 요한 1세 대공과 그의 아버지, 사망한 두 형제의 조각을 배치하였다

건물 주변과 옥상에 있는 테라스에는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이스그룹(레드니체) 정원에 있는 튀르크식 탑 / 페르디난트 룽크 · 1822년

아이스그룹 궁정에 세운 튀르크 양식의 탑을 그린 그림이다

알로이스 1세 대공은 정원의 연못 너머에 튀르크 양식의 첨탑을 세웠다

첨탑 내부에는 아라베스크 양식의 방을 설치하고, 튀르크식 가구와 무기를 전시하였으며

꼭대기 층에는 화랑을 설치하여 아이스그룹 정원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빌페르스도르프 궁전의 전경 / 요한 아담 델젠바흐 · 드로잉 1721년 · 초판 1733년

1711년 안톤 플로리안 1세 대공이 상속받은 빌페르스도르프의 궁전을 그린 그림이다

빌페르스도르프 궁전은 18세기 말 완전히 개조되어 이 동판화에만 본래의 모습이 남아 있다

로코코 양식의 정사각형 건물에 우아하게 돌출된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란츠크론(란슈크로운)성의 전경 / 요한 아담 델젠바흐 · 드로잉 1722년 · 초판 1733년

안톤 플로리안 1세 대공이 화가 요한 아담 델젠바흐에게 주문해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영지를 기록한 동판화 중 하나이다

체코 란슈크로운에 있는 웅장한 성의 전경을 그렸다

크고 작은 화재를 겪으며 현재는 작은 부속 건물 한 채만이 남아 있다

 

 

 

 

노이호프 설계도면 / 요제프 하르트무트 · 1809년

펠츠베르크(발티체)와 아이스그룹(레드니체) 사이에 있는 영지 노이호프에 지은 별채의 투시도 및 전경도이다

별채는 요제프 하르트무트의 설계도를 토대로 1810년에 완성하였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중정의 양쪽에 아치형 벽을 설치하고 벽의 양쪽 끝에 부속 곤물을 배치하였다

 

 

 

 

바로크 정원이 있는 아이스그룹(레드니체) 궁전의 전경 / 요한 아담 델젠바흐 · 드로잉 1721년 · 초판 1733년

14세기부터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소유가 된 아이스그룹 궁전을 그린 그림이다

여름 별장으로 사용된 아이스그룹 궁전은 에우제비우스 1세 대공에 의해 바로크식 정원이 있는 웅장한 건물로 바뀌었다

화면 좌측에는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가 설계한 마구간과 승마학교가 묘사되었다

 

 

 

 

빌페르스도르프 궁전의 실내 도안 / 안톤 요한 오스펠 · 1713년 경

빌페르스도르프 궁전의 실내장식 도안이다

1713년부터 빌페르스도르프 궁전의 수리를 맡은 건축가 안톤 요한 오스펠이 작성한 설계도이며 바로크 양식의 건축 요소와 조각 장식을 확인할 수 있다

현존하는 안톤 요한 오스펠의 도안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궁전과 성

 

 

 

 

방크가세 도시궁전 / 드로잉 · 요제프 에마누엘 피셔 폰 에를라흐 · 1711~1713년 동판화 · 요한 아담 델젠바흐 · 초판 1713년

빈 방크가세에 있는 도시궁전을 묘사한 동판화이다

이탈리아 건축가 엔리코 주칼리가 처음 설계하였고, 도메니코 마르텔리가 뒤를 이어 건축하였다

궁전이 절반 정도 완성되었을 때 요한 아담 안드레아스 1세 대공이 구입하여 완공한 후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주요 궁전으로 사용하였다

 

 

 

 

도시궁전의 장식용 조각 〈비너스의 탄생〉 / 테라코타 습작 · 조반니 줄리아니 · 1705년

이탈리아 조각가 조반니 줄리아니는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주요 궁전인 전원궁전과 도시궁전을 장식하기 위한 조각을 다수 만들었다

이 테라코타 조각은 실내 대형 조각을 작업하기 전에 요한 아담 안드레아스 1세 대공에게 보여주기 위해 제작된 습작이다

실제 방크가세 궁전에는 이 테라코타 조각을 바탕으로 제작한 대형 대리석 조각이 장식되었다

신체 표현이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넘친다

 

 

 

 

방크가세 도시궁전 2층의 예배당 / 루돌프 폰 알트 · 1850년

빈 방크가세 도시궁전 2층의 예배당을 그린 수채화이다

도시궁전은 19세기 초 알로이스 2세 대공의 주문으로 런던의 건축가 피터 휴버트 데비뉴가 개조하였다

데비뉴는 궁전의 접견실 및 거주 공간에는 화려한 장식과 대량의 도금 장식을 사용하여

로코코 복고 양식을 적용하였으나 예배당은 고딕 양식으로 장식했다

 

 

 

 

예게르차일레의 리히텐슈타인 저택 / 루돌프 폰 알트 · 1841년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사람들이 거주했던 빈 예게르차일레의 저택을 그린 그림이다

예게르차일레는 현재 빈의 프라테르슈트라세 지역으로 이곳을 그린 루돌프 폰 알트의 수채화가 세 점이나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 저택이 리히텐슈타인 가문에게 매우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예르게차일레 리히텐슈타인 저택 실내 / 루돌프 폰 알트 · 1845년

빈 예게르차일레에 자리했던 리히텐슈타인 저택의 실내를 그린 그림이다

실내를 장식한 다양한 가구와 도자기 · 골동품 등은 오늘날 리히텐슈타인 왕실컬렉션에 조장되어 있다

 

 

 

 

새장과 시계가 있는 샹들리에와 테라코타 습작인〈비너스의 탄생〉등이 보인다

 

 

 

 

새장과 시계가 있는 샹들리에 / 피에르 자케-드로 · 1785년

새장 형태의 샹들리에로, 밑면에는 시계를 설치하고 내부에는 새 장식을 세공하였다

새 장식은 기계장치로 만들어져 고개를 흔들고 15분마다 지저귄다

바닥에도 기계장치를 설치하여 음관을 통해 6개의 멜로디가 나오도록 하였다

자케-드로가 만든 자동 장식은 유럽과 오스만 튀르크에서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에는 중국 황실까지 영향을 주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가구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가구

가구는 리히텐슈타인 왕가에서 가장 먼저 수집하기 시작한 예술품 중 하나이다

장식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카를 1세 대공은 루돌프 2세 황제의 고문관이자 궁정 책임자로 지내면서 황실의 예술가들과 교류하였고

이들에게 색이 있는 돌을 잘라 무늬에 맞추어 채워 넣는 '피에트라 두라' 기법의 가구 두 점을 주문했다

카를 1세는 리히텐슈타인 왕가가 다양하고 수준 높은 미술품을 소장하도록 초석을 마련하였고

후대 대공에게 영향을 주어 문화 예술에 대한 후원을 지속하도록 하였다

 

 

 

 

캐비넷 / 피에트라 두라 ·1625년

1625년 피렌체에서 제작한 피에트라 두라 기법의 모자이크 17개를 사용하여 만든 캐비닛이다

내부는 삼단으로 나누어 서랍을 만들고 앞면에 색이 있는 돌을 맞추어 문양을 만드는

피에트라 두라 기법의 모자이크를 붙였으며 그 둘레에는 섬세하게 조각한 상아 패널을 장식했다

 

 

 

 

서류정리함 / 1715~1720년 제작, 1765년 개조

한스 아담 2세 대공이 2010년 수집한 서류정리함이다. 상단에 시계를 장식하였고 문서 보관에 사용하였다

시계에는 파리의 시계 제작 장인인 튀레의 서명이 있다

시계 아래 누워 있는 인물은 '죽음'을 상징하며 오른손에 든 저울은 영혼의 무게를 재는 도구로 인생의 무상함을 암시한다

시계 상단의 인물은 죽음의 상징인 낫을 빼앗은 사랑의 신으로 죽음을 이겨내는 '사랑'을 상징한다

 

 

 

 

밀라노식 캐비닛 / 1560~1570년 경

여러 종류의 나무를 잘라 무늬에 맞게 끼워 넣는 상감 기법의 가구이다

외형은 단순한 상자 형태이나 내부는 다양한 크기의 서랍으로 구성하였고 표면에는 문양을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이삭의 희생 · 성모자 · 성 게오르그와 같은 종교적 주제와 디아나 · 헤라클레스와 같은 신화적 주제를 상감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카롤리네 대공비의 초상 / 엘리자베스 비제-르브룅 · 1793년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 초상화가 비제 르브룅이 헤렌가세 궁전에 걸기 위해 그린 알로이스 1세의 대공비 카롤리네의 초상화이다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초상화가 비제 르브룅은 카롤리네 대공비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외모에 영감을 받아

신화 속 주제를 선택하여 대공비를 무지개 여신인 이리스의 모습으로 그렸다

 

 

 

 

알로이스 왕자비 하나의 초상 / 한스 마카르트 · 1875년

요한 1세 대공의 손자인 알로이스 왕자의 부인 하나 폰 리히텐슈타인의 초상이다

그녀는 어두운 배경을 뒤로 하고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감각적인 붓 터치와 색채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요한 1세 대공의 초상 / 요한 밥티스트 람피 · 1816년 이전

리히텐슈타인 왕가에서 가장 훌륭한 군사적 인물로 평가 받는 요한 1세 대공의 초상이다

나폴레옹 전쟁 등 백 번이 넘는 전투에 참전하였고 공로를 인정받아 가장 높은 군사 훈장인 마리아 테레지아 대십자 훈장을 받았다

1806년에는 라인동맹에 1815년에는 독일연방에 가입하여 독립국으로서 입지를 공고히 하였고

공국 경영에도 힘을 쏟아 농경과 산림 분야의 관리 방식을 근대화하였다

 

 

 

 

러시아 성 안드레아 기사단 훈장 / 알베르트 콘슈탄틴 카이벨 · 1897년

프란츠 1세 대공이 1903년 뮈르츠슈테크 조약을 체결하여 발칸 반도를 둘러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의 이권 분쟁을 정리한 공으로 받은 러시아의 성 안드레아 기사단 훈장이다

그는 1890년대에 오스트리아 대사로 재직하며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였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관계 개선에 공을 세웠다

 

 

 

 

오스트리아 황실 레오폴트 기사단 대십자 훈장 / 1897년

1897년 프란츠 1세 대공이 외교적 성과를 인정받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에게 받은 레오폴트 기사단 대십자 훈장이다

레오폴트 기사단은 1808년 설립되었고, 훈장은 대십자 · 사령관 · 기사 세 등급으로 나뉘었다

 

 

 

 

황금양모 기사단 훈장 / C. F. 로테 & 네페 · 20세기 초

리히텐슈타인 왕가가 받은 황금양모 기사단 훈장이다

기사단의 상징인 숫양의 털과 숫양 모양의 장식을 금과 에나멜로 만들어 달았으며 별도로 제작한 가죽 상자에 보관하였다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3세가 1430년 창단한 기사단에 소속된 귀족들은 모든 궁정 연회에서 다른 귀족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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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왕립 성 이슈트반 기사단 대십자 훈장 / 1896년

1896년 리히텐슈타인의 왕자 루돌프가 받은 성 이스트반 기사단의 훈장이다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가 설립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의 영예의 공로 훈장으로

요제프 벤첼 1세는 성 이슈트반 기사단 훈장을 처음 받은 인물 중 하나였다

 

 

 

 

마리아 테레지아 기사단의 대십자 훈장 / 1801년

요한 1세 대공이 1799년 6월 프랑스를 상대로 한 트레비아 강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함을 인정받아 1801년에 받은 마리아 테레지아 기사단 훈장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기사단 훈장은 합스부르크 황실이 군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무공 훈장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는 1757년 6월 18일 보헤미아의 콜린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프로이센에 승리를 거두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기사단을 설립하였다

 

 

 

 

오스트리아 영지 대표단 연미복 / 1820년 경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2세가 오스트리아 동북부 영주들에게 하사한 연회용 제복이다

황실 공식행사 때 예복으로 착용하였으며 요한 1세 대공의 제복으로 보인다

연미복은 붉은 천에 은실로 화려하게 장식했고, 소매는 벨벳에 은실로 자수를 놓았다

영주들의 제복은 황실에 대한 충성과 연대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이에 황실 행사에서 제복을 착용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하르트만 왕자의 초상 / 1630년 경

카를 1세의 조카인 하르트만 왕자의 초상화이다

그는 흰 셔츠 위에 팔 부분이 트인 자켓인 더블릿을 입고 목과 소매에 풍성한 레이스 깃을 달았다

허리에는 새틴 리본을 달아 허리선을 강조했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반바지인 브리치스 안에는 비단 스타킹과 레이스를 단 겉 스타킹을 신었고 덧신과 굽이 높은 부츠를 신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복식과 훈장

 

 

 

 

퓌르슈텐가세 방면에서 바라본 정원궁전 / 페르디난트 룽크 · 1816년

빈 로사우 정원궁전의 정면 출입구와 그 앞을 지나는 인물을 묘사한 그림으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영지를 그린 연작 중 하나이다

좌측에 커다란 액자를 옮기고 있는 두 명의 남성은 정원궁전이 대중에게 개방된 미술관으로서의 새로운 기능을 지니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헤렌가세 도시궁전의 초기 도면 / 요제프 하르트무트 · 1790년

빈 헤렌가세 궁전의 새로운 정면(파사드)을 설계하면서 작성한 도면이다

1793년 완공된 헤렌가세의 도시궁전은 대공의 거주지로 이용되었으며

마구간 · 승마실 · 도서관 · 문서보관소 등 대공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편의시설이 배치되었다

헤렌가세 궁전은 1912년에 매각되었으며 이후 철거되었다

 

 

 

 

헤렌가세 도시궁전의 실내장식 패널 / 요제프 하르트무트 · 1792년

헤렌가세의 리히텐슈타인 궁전에 설치됐던 도금 장식판으로, 실내 덧문에 부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후반 유럽 전역에서 유행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정교한 새와 꽃 · 식물 문양을 전반에 배치하고 중앙에는 풍경을 새겨 넣었다

조각 양식이 이번 특별전에 전시된〈카놀리에 대공비 초상〉액자 장식과 매우 흡사함을 확인할 수 있다

 

 

 

 

교회에 주요 축일을 알려주는 만세력 / 요한 안드레아 텔로트 · 1705년 경

금 세공사이자 제도사, 동판화가인 요한 안드레아스 텔로트가 제작한 만년달력이다

액자 상단 모서리의 부조와 하단 중앙의 메달리온에 회전이 가능한 은제 판을 달아 만년력의 기능을 부여하였다

상단 좌측의 판에는 날짜를 새겼고 우측 상단 판에는 달의 위상 변화를 새겼다

하단의 원판에는 주요 교회의 축일과 황도 12궁 · 각 월(月)의 라틴어 명칭을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