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은 국외 왕실 특별전시의 하나로 12월 5일부터 내년 2월 10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과 1층 기획전시실에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 공국」은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자리한 국가로 가문의 성(姓)이 곧 국가의 공식 명칭인 나라 중 하나다
영토의 크기가 서울의 1/4 정도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작은 국가이며 ‘대공’을 국가 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도자기는 리히텐슈타인 왕실컬렉션의 중요한 수집대상이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된 도자기를 비롯하여 1718년 빈 도자기공장이 설립된 뒤에는 이곳에서 제작한 도자기를 주로 구입하였다
빈 도자기공장은 깨끗한 색채와 특유의 도자양식을 정립하여 명성을 얻었다
장인들의 섬세한 솜씨로 제작된 빈 도자기는 그 자체로 예술품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화려한 생활문화를 볼 수 있다
빈 도자기의 변화
빈 도자기공장은 독일 마이센에 이어 유럽 두 번째로 경질 도자기 생산에 성공하였다
빈 도자기는 도자기공장의 경영자가 바뀌거나 도자기 제작기술이 향상됨에 따라 시기적 변화를 보인다
도금 장식이 있는 오찬용 식기 / 1799년
도자기 장식가 안톤 코트가서가 제작한 오찬용 식기 중 일부이다
코트가서는 고전 작품과 이를 재해석한 르네상스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도자기를 디자인하였다
도자기의 표면에 도금 장식을 풍부하게 사용하였고, 새롭게 금 안료를 여러 번 칠하여 양각의 효과를 주었다
〈켄타우로스 네소스에게 납치되는 데이아니라〉를 그림 접시 / 1806년
귀도 레니의 그림을 모사한 접시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내용 중
켄타우로스 네소스가 헤라클레스의 아내 데이아니라에게 반하여 그녀를 납치하는 모습을 주제로 하고 있다
명작을 축소한 빈 도자기는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
〈벨베데레 궁전에서 바라본 빈의 전경〉이 그려진 오찬용 식기 세트 / 1808년
베르나르도 벨로토가 그린 〈벨베데레 궁전에서 바라본 빈의 전경〉을 모사한 오찬용 쟁반과 식기 세트이다
커피 주전자는 당시 사용되던 은제품을 본으로 삼았고, 설탕 그릇은 고대 향로의 모양을 따랐다
도자기는 표면에는 무광과 유광의 도금 기법을 함께 사용하여 다양한 문양을 그렸다
쟁반 가장자리에도 도금 장식을 둘러 액자처럼 보이게 하였다
받침대가 있는 튜린 / 1794년 · 나폴레옹이 주문 제작한 「로마 은도금」 식기 세트 중 촛대 / 1811년
나폴레옹이 주문 제작한 「로마 은도금」 식기 세트 중 커틀러리 / 1811년 · 마개가 있는 와인 디캔터 등이 전시되어 있다
꽃문양이 있는 다기 세트 / 1815년
길쭉한 기형의 도자기에 금색 바탕을 배경으로 다양한 빛깔의 꽃을 그려 넣은 다기 세트이다
19세기 식물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빈 미술 아카데미에 꽃 그림 수업이 개설되면서 꽃 그림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다기 세트에도 꽃 전문 화가들이 뛰어난 솜씨로 꽃 그림을 그려 넣었는데 야생화가 핀 들판이나 풍성한 정원의 모습처럼 생생하고 자연스럽다
크라테르 모양의 병 / 1826년
고대 그리스에서 사용하던 대형 용기인 크라테르 형태를 모방해 제작한 병으로 식물을 꽂아두는 화병 또는 관상용으로 사용하였다
몸체에는 도금 바탕 위에 붓꽃 · 작약 · 장미 등을 수려하게 그려 넣었다
빈 황실도자기공장은 정기적으로 꽃 그림 수업을 열어 화공들이 높은 실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파울리네 보르게세를 위한 피에트라 두라를 그린 오찬용 식기 세트 / 1812년
색이 있는 돌을 잘라 문양을 만드는 피에트라 두라 기법처럼 보이도록 제작한 오찬용 식기 세트이다
나폴레옹의 두 번째 부인인 황후 마리-루이스가 나폴레옹의 여동생 파울리네 보르게세에게 보낼 신년 선물로 제작하였다
도자기에는 조개와 산호 · 고대의 그릇 등을 그렸다
당시 프랑스의 세브르 도자기 공장에서 생산한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다
오스트리아 대공 겸 테셴 공작 카를의 초상 / 1837년
초상화가 요제프 크리후버가 석판화로 제작한 카를 대공의 초상을 클라우디우스 헤어가 작은 도자기에 묘사한 작품이다
카를 대공은 레오폴트 2세 황제의 아들이자 작센-테셴 대공의 양자로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안료의 투명한 발색과 유약의 광택이 도자기 그림 특유의 깊이감을 자아낸다
흰 포도와 꽃이 있는 정물 / 1838년
도자기 판 위에 그린 정물화로, 도자기공장의 수석 화공이었던 요제프 니그가 그렸다
그는 꽃 정물화파의 창시자 요한 밥티스트 드렉슬러의 제자이며 꽃 그림 분야에서 최고의 작가로 인정 받았다
그가 도자기에 그린 꽃 정물화는 오스트리아 황제가 유럽 궁전에 보내는 대표적인 선물 중 하나였다
유럽 귀족의 식사 문화
근대 유럽 귀족사회의 식사 문화는 프랑스식을 기본으로 하였고 이에 맞추어 식기를 제작하였다
본래 프랑스식 정찬은 한데 차려 낸 음식을 각자 덜어 먹는 것이었으나
19세기에 러시아의 영향을 받으면서 러시아식 서비스 즉 차례대로 음식을 차려내는 코스 요리가 주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코스에 따라 나오는 음료의 종류에 맞게 다른 모양의 유리잔을 사용하였다
리히텐슈타인 만찬 및 디저트용 「주름진 그릇(몬티스)」와 유리잔
와인 잔을 차갑게 보관하기 위한 그릇(몬티스)과 유리잔이다
그릇 가장자리에 톱니 모양처럼 주름을 만들고 유리잔의 바닥 부분을 가장자리에 걸어 유리잔이 얼음물에 잠기도록 제작하였다
몬티스는 18세기 중반 고급 식사용 식기 세트에서 빠져서는 안될 물품으로 자리잡았다
리히텐슈타인 만찬 및 디저트용 식기 세트 중 아이스크림 냉각용 용기(글라시에르) / 1784~1787
만찬의 디저트 코스에서 소르베나 아이스크림을 담는 용도로 사용한 원통형의 냉각용 도자기이다
가장 아랫부분인 바깥 용기에 얼음을 담고 그 위에 디저트를 담은 그릇을 걸쳤으며
가장 윗 부분을 덮는 뚜껑 부분도 오목하게 만들어 얼음을 올릴 수 있도록 하였다
위 아래에서 냉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낮은 온도를 효과적으로 보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파르미자니노의 〈활을 만드는 큐피드〉를 그려 넣은 접시 / 1795년
황실 회화 갤러리(지금의 빈 미술사박물관)에 소장된 파르미자니노의 〈활을 만드는 큐피드〉를 그려 넣은 접시이다
당시에는 도자기 표면에 회화 작품을 모사하는 것이 큰 인기를 끌었으며 식탁은 작은 미술관과 같은 역할을 했다
빈 황실도자기공장은 정교한 기술로 회화 작품을 아름답게 구현하여 명성이 높았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인물이 있는 찻주전자와 푸토가 있는 뚜껑 / 1800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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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이 있는 커피 주전자 / 19세기
조사이어 웨지우드가 설립한 영국 도자기공장에서 생산한 주전자이다
웨지우드 도자기공장은 고대에 제작된〈보르게세 병〉과〈포틀랜드 병〉에서 영감을 받아 재스퍼 도자기라고 불리는 섬세한 무유(無油) 자기를 제작하였다
재스퍼 도자기는 보통 청색 바탕에 별도 제작한 흰색 부조를 더해 만들었으며 유럽의 많은 도자기공장에 영향을 주었다
요제프 벤첼 1세 대공의 '베를린' 식기 세트 중 디저트용 접시 / 1765~1766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2세가 경제적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요제프 벤첼 1세 대공에게 선물한 만찬용 '베를린' 식기 중 일부이다
꽃을 모티브로 부조와 그림, 조각, 투각 기법 등을 사용하여 다채롭게 제작하였다
프리드리히 2세는 식기 세트와 함께 보낸 서신에 "나에 대한 당신의 우정이 내가 보내는 도자기처럼 연약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적었다
요제프 벤첼 1세 대공의 '베를린' 식기 세트 중원형 투각 과일 바구니 / 1765~1766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흩뿌려진 꽃' 식기 세트 중 타원형 접시 / 1735년 경
뒤 파퀴어가 설립한 빈 도자기공장은 1744년 경영난으로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에게 인수되었고 1746년에는 판촉 행사를 통해 많은 재고를 소진하였다
이 도자기는 행사 당시 리히텐슈타인 왕가가 구입한 15점의 만찬용 도자기 세트 중 하나이며 당시 가장 비싼 제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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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꽃가지' 장식의 커피 주전자 / 1725년 경
당시의 은제 주전자와 동일한 형태의 커피 주전자이다
'새와 꽃가지' 모티프는 중국 청대 강희연간에 제작된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당시 빈에서 커피는 최신 유행이었다
커피 주전자는 식기로 이용되거나 아침마다 화장대에 모여 음료를 마시는 여성들을 위한 '화장대용 세트'로 사용되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도자기와 식기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다양한 예술품 중에서도 도자기는 왕실의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수집 대상이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를 수입하여 사용하였다가
1718년 사업가 클라우디우스 인노켄티우스 뒤 파퀴어가 오스트리아 빈에 도자기공장을 설립한 뒤에는 이곳에서 제작한 도자기를 주로 구입하였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이마리(伊萬里) 도자기
'이마리'는 일본 규슈에서 만든 아리타 도자기를 수출하던 사가현의 항구였다
아리타 도자기는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이삼평(李參平)이 1616년 이곳에 가마를 열고 도자기를 구우면서 시작되었는데
1659년 네델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유럽지역으로 아리타 도자기를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항구의 이름이 붙여져 '이마리도자기'로 알려지게 되었다
모란꽃을 그린 이마리 양식 접시 / 중국 · 1701~1725년 경
청색과 붉은 색, 금색이 조화를 이루는 일본의 이마리 도자기를 모방하여 중국에서 제작한 접시이다
유럽의 상류사회에서는 17세기 말부터 디저트용 식기로 도자기 접시가 유행했다
특히 모란, 국화 등의 꽃을 그린 도자기는 유럽인들에게 이국적인 느낌을 주어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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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리 접시 / 일본 · 1690~1720년
일본에서 수입한 이마리 도자기 접시이다
이마리는 아리타에서 제작한 도자기를 수출하던 일본 규슈의 항구 이름이다
이마리 도자기에는 주로 부채나 화첩 · 비단 두루마리 등의 형태로 창을 내어 장식하였는데 이는 유럽 수집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마리 양식의 접시 / 1730년 경 · 사냥 식기 세트 중 튜린 / 1735년
도마뱀과 꽃문양으로 장식된 잔 / 1735년 경 · 뚜껑이 있는 잎과 띠 문양 장식의 작은 튜린 / 1730~1735년
정원 그림이 있는 큰 접시 / 도자기 1736~1796년 · 도금장식 1775~1785년
중국에서 수입한 도자기 접시로, 모란꽃밭과 대나무 정원을 그린 청화 백자이다
유럽의 수집가들은 귀중한 전시품이었던 중국산 청화 백자의 손상을 막고 취향에 맞게 장식하고자 도금 장식을 추가했다
18세기 후반 빈의 유행에 따라 접시의 테두리에 아칸서스 잎과 리본으로 묶은 월계수 모양의 도금 장식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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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술병을 따라 만든 뚜껑이 있는 마이센 찻주전자 / 도자기 1713년 경 · 채색 1725~1730년
중국의 술병을 본떠 만든 찻주전자로, 유럽 최초의 도자기 공장인 마이센에서 제작하였다
유럽 취향에 맞게 풍성한 장식을 더했고 표면에는 중국풍의 인물 · 새 · 덩굴무늬를 세밀한 솜씨로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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