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밖 네거리로 불렸던 서소문 순교성지는 새남터와 더불어 조선시대 공식 처형장이었다
이곳은 신유박해를 포함하여 기해박해 · 병인박해를 거치며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이 가운데 정하상 바오로 성인을 비롯하여 기해박해 순교자 41위와 병인박해 순교자 3위가 1984년 성인반열에 오르셨으며
신유박해 순교자 25위와 1819년 순교자 2위가 복자로 선포되었다
서소역사공원 순교성지 안내판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탑
한국천주교회에서는 성인의 탄생을 기리기 위해 1984년 이곳 서소문공원 안에 순교자 현양탑을 건립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1997년 공원이 새로 단장되면서 기존의 현양탑이 헐리게 되었고 이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는 오늘 이 자리에 새 순교자 현양탑을 세웠다
현양탑 앞에 두 발과 사진 동판이 있다
계단에 박혀있는 동판을 보니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밟았던 자리다
화강암석으로 제작된 세 개의 탑은 형구인 칼의 형상으로 박해와 순교자들의 죽음을 상징하며 탑에 새겨진 일곱 개의 줄은 칠성사를 상징한다
순교탑 아래 물속에 잠긴 조약돌은 수많은 순교자들을 상징한다
계단에 박혀있는 동판
2014년 광화문 광장에서 거행된 시복식을 이곳을 참배하며 시작하셨다
십자가 예수님과 칼을 쓴 순교자들
오른쪽 탑 뒷면에는 서소문 순교성인 44위의 이름이 있다
왼쪽 탑 뒷면에는 하느님의 종 27위를 포함한 서소문 순교자 54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순교자 현양탑 뒷면
"나는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것입니다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탑 비
서소문 즉 소의문은 아현과 남대문 밖의 칠패시장으로 통하던 문으로 일찍부터 사람이 붐비던 곳이었다
조선시대의 사형집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어 범죄를 예방하려는 목적에서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에서 행해졌으며
서소문은 이러한 이유에서 1416년(태종 16)에 서울의 주요한 형장으로 지정되었다
1784년 겨울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100여 년 동안 박해가 계속되면서 천주교회는 전국적으로 1만 명 내외의 순교자를 탄생시켰다
특히 이곳 서소문 밖 형장에서는 1801년의 신유박해 이래 1871년 무렵까지 수많은 신자들이 처형되었으며
그 중 44명의 순교자는 1984년 5월 6일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이하여 103위 성인 가운데 포함되었다
이로써 서소문 밖은 성인 44명이 순교의 영광을 얻은 거룩한 믿음의 터전이요
또 다른 성인을 낳게 될 약속의 터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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