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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조선)

14세기 후반 고려 내부의 폐단이 심화되고 대외적으로 원 · 명이 교체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1392년 조선이 건국되었다

신진사대부와 신흥 무장 세력을 주축으로 건국된 조선은 성리학사상에 따라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정치를 지향하였다

 

 

동궐도(조선 순조 26~31년 · 1826~1831 · 국보 제249호)

조선왕조에서 여러 왕궁 가운데 가장 크고 으뜸으로 삼은 왕궁은 경복궁이며 그 별명은 북궐이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경복궁 동쪽에 있다 하여 동궐이라 불렀다

창덕궁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탄 이후 1867년 복원되기까지 270여 년간 경희궁과 함께 조선의 대표적 왕궁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이후 훼손된 동궐을 복원하는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조선시대 연표

조선은 500여 년간 고유한 문화를 꽃 피우고 발전한 나라였다

현재 전통문화의 대부분은 조선시대에서 비롯되었다

 

 

 

 

태조 이성개 어진(고종 9년(1872) / 국보 제317호 복제품)

조선시대에는 국초부터 전주 경기전 등 전국 여섯 곳에 태조 진전을 설치하여 태조 초상화를 봉안하였다

기록상으로는 태조의 초상화가 26축 제작되었다고 하나 현재는 경기전 초상화가 유일하다

이 초상화는 태종 10년(1410) 전주부에 봉안한 것을 영조 39년(1872)에 새로 모사한 것이다

 

 

 

 

선원계략기보(광무 4년 · 1900)

조선시대 왕실 족보로 총 8책 26권으로 되어 있다

 

 

 

 

 

국조보감(조선 후기)

조선왕조 역대 군주의 좋은 말과 선정 가운데 중요한 것을 뽑아 기록한 편년체 사서다

세조 때 최초의 국조보감인 태조, 태종, 세종, 문종의 '사조보감'이 편찬된 이후 지속적으로 편찬되어

태조에서 순종에 이르기까지 총 90권 28책의 방대한 분량으로 집대성되었다

이 책은 역대 군주의 공덕을 드러내어 후대 임금들에게 정치적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편찬되었다

 

 

 

 

경복궁 근정전 닫집 · 어좌 · 일월오봉도

 

 

 

 

훈민정음(세종 28년 · 1446 · 국보 제70호 복제품)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세종 25년(1443)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세종 28년 백성에게 반포한 책이다

세종이 지은 서문에 이어 해석과 쓰임법인 용례, 정인지의 해례 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 이름은 훈민정음이며 해석과 용례가 있는 것이 특징이므로 보통 '해례본'이라고 부른다

 

 

 

 

용비어천가(세종 29년 · 1447)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 한글로 엮은 최초의 책으로 15세기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다

조선 왕조가 하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읊은 노래 가사와 그 배경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능엄경언해 (세조 7년 · 1461)

세조가 직접 번역하고 세조 7년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능엄경'의 한글 번역본이다

15세기 국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두공부시언해 (조선 15세기)

유윤겸 등이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를 번역하고 분류해서 간행한 책이다

한시를 한글로 번역한 최초의 예로 초기 한글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을해자병용 한글 금속활자(조선 15세기)

세조 7년에 간행된 '능엄경언해'에 사용된 한글 활자다

제작 시기는 을해자가 주조된 세조 1년(1455)과 '능엄경언해'를 인쇄한 세조 7년 사이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활자다

 

 

 

 

해안군 명 청동병 (조선 16세기 · 허제 묘지명 · 조선 인조 23년 · 1645)

'해안군'이라는 한글이 새겨진 청동 병이다

병의 형태로 보아 이 청동병은 중종의 아들인 해안군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하나는 굽이 높은 제기 모양의 묘지명이다

묘지에는 성씨, 이름, 자, 본관, 묘 위치, 세계, 어머니, 부인, 묘, 자손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특히 굽 밑바닥에는 '한우물 허씨'가 기록되어 있는데

한우물(전북 남원시 화정동 한우물마을에 있는 오래된 우물 이름)에 사는 허씨 가문 사람이라는 뜻이다

 

 

 

 

홍길동전(조선 후기)

허균(1569~1618)이 지은 최초의 한글 소설로 적서 차별에 대한 비판 부패한 정치에 대한 개혁 등 저자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왕자 금원군 태지(조선 중종 14년 · 1519)

조선 중종의 왕자 금원군의 태실에서 나온 태지다

 

 

 

 

폐비 윤씨 태호

폐비 윤씨(1455~1482)는 1476년 성종의 왕비가 되었다가 1479년 폐출되었다

그 녀의 아들은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연산군이다

 

 

 

 

회암사 출토 와당(조선 세종 18년 · 1436)

세종의 둘째 형인 효령대군의 칭호와 '정통병진'(1436) 글씨가 새겨진 기와 '천순경징'(1460)이 새겨진 봉황무늬 기와와 용무늬 기와들이다

용과 봉황무늬 기와가 함께 사용된 것은 회암사가 왕실 관련 사찰이었음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태종 2년 · 복제품)

권근의 주도 하에 김사형, 이무, 이회 등이 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다

 

 

 

 

경국대전 (현종 2년 · 1661 · 국조오례의서례)

조선왕조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과 국조오례의를 시행하는데 필요한 참고사항을 정리한 책이다

 

 

 

 

성학십도(조선 후기)

조선 중기 학자 이황이 왕이 이해하기 쉽도록 성학의 개요를 10개의 도설로 그린 것이다

 

 

 

 

성학집요 (영조 31년 · 1755)

조선 중기 학자 이이가 왕이 알아야할 성리학의 가르침과 여러 학설 즉 성학의 핵심을 보기 쉽게 뽑아 엮은 책이다

 

 

 

 

우계집 (순조 9년 · 1809)

조선 중기의 학자 성혼의 시문집이다

문인들에 의해 광해군 13년(1621)에 처음 발간되었다

이 책은 순조 9년에 성긍주에 의해 밀양에서 간행된 것으로 창녕의 물계서원에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성혼은 율곡 이이와는 평생지기였으며 여러 차례 선조의 부름을 받았으나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선비의 공부법

 

 

 

 

사기(조선 전기)

중국 한나라의 역사가 사마천이 쓴 '사기'를 조선시대 갑인자로 찍어낸 책이다

사기는 조선시대 학문에 뜻을 둔 사람들이 공부해야 할 필독서였다

 

 

 

 

퇴계 이황

역시 매화가 소재다

 

 

 

 

조선 전기의 혼인 풍습

 

 

 

 

초충도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하는 8폭 가운데 5폭 그림이다

 

 

 

 

딸도 제사를 지낸 조선 전기

 

 

 

 

한호 필적(조선 17세기)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명필 한호(1543~1605)가 쓴 글씨를 모은 서첩이다

 

 

 

 

한호 필 천자문(조선 순조 9년 · 1809)

한문을 처음 배우는 사람을 위해 쓰이던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조 16년(1583) 명필인 석봉 한호(1543~1605)가 중국 양나라 주흥사가 지은 천자문을 해서로 쓴 것이 처음 간행되었다

 

 

 

 

현자총통(조선)

임진왜란 당시 임진산성(경기 용인시 수지구 소재)에서 실제 사용하였던 화포다

임진산성은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과 일본군이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조선통신사행렬도(20세기 초)

영조 24년(1748) 제10차 통신사 일행이 해상 여행의 종착지인 교토 남쪽의 요도조에 내려 행진하는 무습을 그린 것이다

 

 

 

 

효현양묘어필첩(조선 17세기)

효종(재위 1649~1659)이 봉림대군 시절,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 있을 때 장모의 편지를 받고 쓴 답장이다

이 편지에는 청나라의 출병 요구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청나라에 끌려간 김상헌을 걱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집 초상화(조선 후기)

윤집은 병자호란 때 척화론을 주장한 삼학사 중 한 명으로 병자호란이 끝난 후 홍익한, 오달제와 함께 청나라 인질로 갔다가 순절하였다

 

 

 

 

홍준기 준호구(순조 4년 · 1804)

1804년 한성부에서 관내에 거주하던 홍준기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홍준기의 가족과 소유 노비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적었다

준호구는 백성의 요청에 의해 관청에서 보관 중인 호적대장에서 해당 호에 기재된 내용을 그대로 베껴 발급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호적등본 또는 주민등록등본과 유사한 자료다

 

 

 

 

의례문해(조선 후기)

김장생의 예론을 그의 아들 김집(1574~1656)이 모아 편찬한 책이다

이 책에는 상례, 제례를 비롯하여 관례, 혼례 등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는데

경전에 나타나지 않는 여러 가지 변칙적인 사례에 대한 예(변례)에 대한 문답을 담고 있다

 

 

 

 

대동법 시행 기념비 탁본(조선 효종 10년 · 1659)

김욱이 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하여 백성에게 혜택을 준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대동법은 광해군 즉위년(1608)에 경기도에 처음으로 실시된 이래

효종 2년(1651) 김욱의 주도 하에 충청도에서 시행되었고 이후 숙종 대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이 비문은 김육에  대한 기념비인 동시에 대동법이 시행되기까지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자료다

 

 

 

 

붕당정치

선조 대 이후 성리학적 가치관을 지닌 사림이 중앙 정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들은 기존 세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동인과 서인이라는 붕당이 생겨났다

동인에는 이황과 조식의 문인이 많았고 서인에는 이이와 성혼의 문인이 많았다

 

 

 

 

수세패(조선 후기)

세금을 걷는 관리의 신분증이다

평시서라는 관청은 한성부 종로에 있는 큰 가게(시전)를 관리하고 각종 물가에 관한 일을 담당하였다

평시서에서는 시전을 관리하는 방법의 하나로 몇몇 가게를 정해 세금을 거두도록 하였는데

세금을 거둘 때 수세패를 착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수세패는 한성부에 있는 족두리전(족두리를 파는 가게)에서 관할 점포로부터 세금을 거두며 착용했던 것이다

 

 

 

 

상평통보(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전국에 걸쳐 널리 사용된 동전이다

만들어진 시기와 장소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지만  크기와 재질 등에 관계없이 모두 같은 값으로 쳤다

상평통보는 '언제나 고르다'는 상시표준에서 유래한 것으로 유통 가치에 등가를 유지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앞면에는 상평통보라는 문자를 뒷면에는 주조한 관청과 주조 번호를 새겨 넣었다

 

 

 

 

노비자매문서(조선 순조 22년 · 1822)

가난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노비로 파는 문서이다

32세 복쇠라는 남성이 아내와 함께 자신의 몸을 25냥에 파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 후기 경제적인 위기에 처한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노비로 자신을 팔아야 했던 절박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토지매매문서(조선 정조 22년 · 1798)

박수천이라는 사람이 보성군수를 지낸 윤아무개 집안에 토지를 매매한 사실을 기록한 문서이다

당시 양반가문에서 상거래를 할 때 집안 소유 노비가 대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토지 매입자가 윤씨가의 종인 삼취로 문서에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 토지 구입자는 그 주인인 윤아무개였다

 

 

 

 

김희 호패(조선 정조 8년 · 1784)

18세기 문신 김희(1729~1800)의 호패다

상아로 만들어진 호패의 앞면에는 '김희 기유생 계사문과' 뒷면에는 갑진이라 적혀 있다

갑진년 즉 1784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김희는 영조 49년(1773)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 직각, 대사성, 경기도 관찰사, 이조참의를 거쳐 우이정에 오른 인물이다

 

 

 

 

영조 어진(광무 4년 · 1900 · 보물 932호 복제품)

조선 21대 왕인 영조의 51세 때 모습을 그린 초상화로

영조 20년 장경주와 김무량이 그린 그림을 광무 4년 당대의 일류 초상화가들이 보고 그린 것이다

 

 

 

 

정순왕후 가상 존호도감의집

정조 11년 1월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에게 존호를 높여 올리는 의식 절차를 기록한 의례이다

 

 

 

 

정조가 신하에게 보낸 편지

국립박물관에는 66건의 정조 편지가 소장되어 있다

이들은 정조가 외삼촌인 홍낙임에게 보낸 것과 심환지에게 보낸 것이다

 

 

 

 

 

낙남헌양로연도, 한강주교환어도

8폭 병풍으로 된 '화성능행도' 가운데 윤2월 14일, 정조가 낙남헌에서 영의정 홍낙성을 비롯한 노인 관료 및 화성의 노인들에게 양로연을 베푸는 장면이다

화성능행도 중 화성에 가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베풀고 돌아오는 장면이다

행차의 마지막 날인 윤2월 16일 노량진에서 배다리를 건너 환궁하는 모습이다

 

 

 

 

동국대지도 (조선 영조 31년~43년 · 보물 제1538 복제품)

정상기의 동국대지도에 기초하여 제작된 우리나라 전국지도다

이 지도에 이르러 비로서 북부지방이 정확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지도에는 정상기가 고안한 백리척이 활용되어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져 지도상에서 실제 거리를 산출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의 독도인 우산도,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 등이 분명하게 표기되어 있어 당시의 영토의식을 잘 보여준다

 

 

 

 

성호사설 유선

이익의 제자인 안정복이 '성호사설'의 중복되고 번잡한 것을 삭제하고 다시 종류별로 엮어 원래의 3분의 1정도로 줄여 엮은 책이다

 

 

 

 

반계수록(조선 후기)

조선 중기의 학자 유형원(1622~1673)이 통치제도에 대한 개혁안을 중심으로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은 유형원이 관직생활에서 물러나 전북 부안에 머물며 22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물이다

반계수록은 현실법제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지역적인 불균등과 신분적 특권을 해소하여

모든 사람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목민심서(조선 후기)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정약용이 지방관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논한 책이다

전라남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에 저술한 것으로 유배가 끝난 해인 순조 18년(1818) 완성하였다

 

 

 

 

연하일기(조선 후기)

박지원이 북경에 다녀와서 편찬한 기행일기로 박지원의 문집 '연암집'에 수록되어 있다

 

 

 

 

휴대용 앙부일기(고종 8년 · 1871 · 보물 제852호)

1871년 강건(1843~1909)이 만든 휴대용 해시계와 나침반이다

강건은 강세황의 증손이자 혼천시계를 제작한 강이오의 아들로

형 강윤과 함께 휴대용 해시계를 비롯해 서구식 평면해시계까지 다양한 해시계를 제작하였다

 

 

 

 

박문수 초상화(조선 후기 보물 제1189호 복제품)

암행어사의 대명사로 알려진 박문수(1691~1756)의 초상화다

박문수는 조선 영조 때의 문신으로 경종 3년 병과에 급제한 후 암행어사로 활약하면서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하여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는데 힘썼다

그는 영조 4년 이인좌의 난 때 전공을 세워 경상도 관찰사에 발탁되기도 하였으며 영조가 탕평책을 실시할 때 사색의 인재를 고루 등용해야함을 강조했다

 

 

 

 

대한제국의 성립

 

 

 

 

척화비(조선 고종 8년 · 1871)

19세기 후반의 조선은 안으로 세도 정치의 폐해에 항거하는 농민들의 봉기와 밖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문호 개방 요구에 직면하였다

어린 국왕 고종을 대신하여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흥선대원군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후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외세의 침입에 대항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 척화비는 서울 종로에 세워졌던 것으로 임오군란 이후 철거되어 묻혔다가 1915년 보신각 이전시 발굴되었다

 

 

 

 

독립신문(대한제국 광무 3년 · 1899 · 5월 16일)

1896년 4월 7일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이자 최초의 한글 신문이다

창간 당시에는 타블로이드판 총 4면에 격일간지로 발행되었다가 판형이 두 배로 확대되고 일간지로 발행되었다

1896년 7월 독립협회가 창립된 뒤에는 기관지의 역활도 하다가 1899년 12월 4일자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다

 

 

 

 

중등학교 산수 교과서(대한제국 광무 4년 · 1900 · 세계지리 교과서)

갑오개혁 이후 근대식 교육제도가 마련되었다

1895년 국가의 부강은 국민의 교육에 있다는 내용의 '교육입국조서'가 발표되고 같은 해 학부가 설치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소학교, 외국어학교, 의학교 등 각종 관립학교를 세우고 '국민소학독본'이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국정교과서를 편찬하였다

 

 

 

 

에비슨 수술 사진(대한제국 광무 8년 · 1904)

에비슨이 제중원 후신인 세브란스병원에서 한국인 조수 박서양의 도움을 받아 수술하는 장면을 찍은 유리건판이다

박서양은 1908년 세브란스병원의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모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후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알렌의 진단서(1885)

제중원 의사로 활동한 알렌이 1885년 9월 13일자로 작성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의학 진단서다

 

 

 

 

우표수집가의 우표(대한제국 1900년대)

근대 우편제도는 1884년 우정총국이 창설되면서 시작되었으나 갑신정변으로 우정총국과 우편제도가 중지되었다

1895년에 이르러 우편제도가 재정비되어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 우체사가 설치되었으며 중앙은 통신원이 생겼다

1900년에는 만국우편연합에도 정식 가입하여 외국과의 우편도 시작하였다

 

 

 

 

그림엽서(대한제국기 1897~1910)

대한제국 시기에 발행된 그림엽서다

이 당시에 발행된 그림엽서들은 주로 서양과 일본 등에서 발행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발행된 것 가운데에는 한일병합의 전조를 알리는 내용의 것들이 많았다

 

 

 

 

불어판 춘향전(1892)

고전소설 춘향전을 프랑스어로 각색하여 번역한 책이다

프랑스 소설가 로니는 조선인 최초 프랑스 유학생 홍종우의 도움을 받아 춘향전을 번역하였다

감미롭게 묘사된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야기는 아시아 문학에 대해 프랑스인들이 가지는 이국적인 감정을 자극하였다

이 책의 삽화에는 춘향과 이도령의 모습이 서양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로니의 번역본은 1999년 프랑스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조선에 대한 서양인들의 기록

19세기 후반 조선이 문호를 개방한 이래 많은 서양인들이 조선을 다녀갔고 그들은 조선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들 중에는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제국주의적인 관점에서 서술된 부분도 있지만

조선의 정치, 문화, 지리, 생활풍습, 종교 등 서양인 시각에 비친 조선의 이미지를 다양한 측면에서 보여주고 있다

 

 

 

 

고종황제 옥보, 명성황후 옥보, 황세자 책봉 내용을 담은 금책

 

 

 

 

서양화법 수용

 

 

 

 

운낭자상(1914)

채용신이 그린 최연홍(1785~1846)의 초상화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기독교의 성모자상을 연상시키며 옷주름 묘사에 있어 서양화법의 영향이 보인다

선에 주로 의존한 전통 초상화와 달리 골이 파인 부분에 엷은 먹을 반복적으로 칠함으로써 입체감을 나타내려 했다

그러나 개성이 결여된 얼굴과 치마 밖으로 살짝 드러난 버선발 표현 등 전통성도 뚜렸하다

운낭자는 원래 평안남도 가산의 관기로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군수 부자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지내고 부상 당한 군수의 동생을 치료해줬다고 한다

조정에서 이를 가상히 여겨 기적에서 빼주고 사후에 그 초상화를 평양 의열사에 봉안했다고 한다

 

 

 

 

이규상 초상화(20세기 초)

19세기 무관을 지낸 이규상의 초상으로 전통 관복을 입고 가슴에는 고종 황제 망육순 기념장과 황태자 가례 기념장을 달아

그 자체만으로도 시대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통초상화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큰 변화를 겪는데 이규상 초상화에는 기법 면에서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얼굴 묘사를 보면 왼쪽보다 오른쪽을 밝게 그려 빛의 원리에 입각한 서양의 명암법을 수용했지만

좌우 균형을 중시하는 동양초상화의 관례에 따라 명도차를 최소화하였다

화문석의 문양을 뒤로 갈수록 작게 처리한 것도 서양화 투시법의 영향이다

 

 

 

 

딱지본 소설(1908~1926)

딱지본이란 책의 표지가 아이들이 갖고 노는 딱지처럼 울긋불긋하게 인쇄된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당시 시장터의 국수 가격인 6전 정도로 한 권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육전소설'이라고도 한다

1908년경부터 나오기 시작한 딱지본 소설은 1920~193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파격적인 색상과 민화형식과 서양화 기법을 사용한 일러스트가 결합되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김구 '백범일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1947)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1층

구석기실 '주먹도끼'로 시작해 조선 5실 '백범 글'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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