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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천안박물관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 〈천안 · 天安〉

930년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기 위해 태조산에 올라 지세를 살핀 후

「천하대안(天下大安)」의 땅이라는 이름을 내린 유서 깊은 고장이다

 

 

천안박물관

65만 천안시민은 물론 천안을 찾는 모든 이에게 천안의 역사와 문화를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고고실

선사시대부터 고대까지 천안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찍개

천안에서는 두정동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처음 발굴되었고 최근에는 용곡동과 청당동 등에서 유적이 확인되었다

 

 

 

 

사발

청동기시대는 돌 이외에 청동이라는 금속기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시기에는 본격적인 농경이 이루어지면서 하천 주변의 낮은 구릉이나 평야지대에 움집을 짓고 살았다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천안

원삼국시대는 삼국시대의 원형을 보여주는 시기로 대체로 1~3세기를 말한다

이 무렵 낙랑과의 접촉을 통해 철기생산이 본격화됨에 따라 철제무기류나 농공구류의 사용이 확대된다

이에 다수의 세력집단이 출현하였고 중부 이남에서는 삼한이라는 소국들이 자리하였다

 

 

 

 

원삼국시대의 천안

천안지역에서는 마한 소국의 맹주인 목지국이 자리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고 또 그에 상당하는 중요한 유적과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원삼국시대 주거지유적으로는 장산리 · 용원리 · 두정동 유적 등이 있고 분묘유적으로 청당동 · 운전리 · 두정동 · 신풍리유적 등이 조사되었다

주거지유적은 대체로 직사각형의 평면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한강유역의 출입구가 시설된 여(呂)자형 · 철(凸)자형의 중도유형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분묘유적의 경우 도랑(周溝)이 구획된 주구묘가 확인되는 등 지역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삼국시대 천안

천안지역은 백제가 고대국가체제를 확립하고, 본격적으로 마한지역을 병합해 가는 과정에서 백제의 세력권내에 편입되었다

이 무렵 화성리 · 용원리유적 등의 분묘유적은 이러한 한성 백제와의 관련성을 보여주고 있다

 

 

 

 

큰 항아리 (삼국시대)

화성리 유적은 목관 또는 목곽을 사용한 토착적 무덤인 토광묘 유적이면서

직구단경호 · 흑색마연토기(검은간토기) 등 백제초기 토기 기종이 보여지고 있어 백제 중앙의 직간접적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9호 돌덧널무덤(백제시대 · 천안 용원리 유적)

토광묘 밀집지역에서 남쪽으로 거리를 두고 1기만 조사된 구덩이식 돌덧널무덤으로

출토유물은 발형토기 · 짧은목항아리 등 토기류와 쇠창 · 쇠도끼와 다량의 관못과 꺽쇠 등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천안의 관방유적(關防遺蹟)

천안지역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관방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관방유적은 대부분 산성유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천안지역에는 20여 개소에 이르는 산성유적이 알려져 있는데 위례산성 · 사산성 · 백석동 토성 등 많은 예가 있다

대부분의 토성은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천안지역이 한강이남 지역과 남부지역을 이어주는 길목으로 이를 방어하기 위해여 많은 관방이 축성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천안 청당동 · 용원리 · 화성리 유적들이 전시되고 있다

 

 

 

 

유물의 재발견

지층으로 본 시대로 회갈색사질점토(구석기)부터 자갈혼입회색점토(현대)까지 토질로 시대를 구분해 놓았다

 

 

 

 

역사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천안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향촌사회의 생활상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봉선홍경사 사적갈비(奉先弘慶寺事跡碣碑 · 고려 · 국보 제7호)

1026년(현종 17) 건립. 화강암제로서 이수와 귀부를 모두 갖추어 일반 석비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현종이 부왕의 유지를 받들어 홍경사를 조성하였다는 뜻에서 전액(篆額)을 〈봉선홍경사갈기〉라 사명(賜名)하였다

갈기(碣記 · 비석의 기록)에 의하면, 절이 있는 곳에 인적이 끊겨 도적이 많았으므로 이러한 우환을 없애기 위하여 승려를 불러 불법을 전하고자 절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현종 7년에 기공하여 6년 여에 걸친 공사로 당전(堂殿) 등 200여 칸을 짓고, 또 절 서쪽에 객관(客館) 80칸을 세워 경연통화원(慶緣通化院)이라 불렀다

글은 당대의 유명한 유학자 최충(崔沖)이 지었으며, 글씨는 백현례(白玄禮)가 썼다

글씨는 자경 3㎝의 해서로 용필과 짜임새가 엄정하다

구양순(歐陽詢)의 「황보탄비(皇甫誕碑)」에 가까우며 고려시대 해서로는 제1급이다

 

 

 

 

천홍사 동종(天興寺銅鐘 · 국보 제280호)

성거산 천홍사 동종은 고려시대 종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다운 종으로 제작기법이나 양식에 있어 고려범종을 대표할 수 있는 우수한 범종이다

동종 당좌 사이에 2구의 비천상을 두었다

 

 

 

 

보협인석탑寶篋印石塔 · 국보 제209호)

복원된 현재의 모습은 5개의 돌만 남아 있어 완전한 형태는 아니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 형식과는 전혀 달라서 기단과 탑신의 구분이 뚜렸하지 않고 완전한 형태도 짐작하기 어렵다

 이 탑 몸돌 윗면 중앙에는 '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둥근 사리구멍이 남아있다

당나귀 귀처럼 솟은 맨 윗돌에는 그 안에 석가의 일대기가 상하로 나뉘어 새겨져 있다

 

 

 

 

천안의 읍지

천안은 선사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백제시조 온조가 졸본부여로부터 내려와 위례성에 도읍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곳이다

 

 

 

 

한명회 묘지석

네모난 모양의 분청사기 묘지석으로 중종반정 이듬해에 2차로 제작된 것이다

 

 

 

 

홍진도 시호완의(洪振道 諡號完議 ·1741년)

홍진도에게 '충목(忠穆)'이라는 시호를 내리기로 한다는 내용의 완의로 1742년 9월 27일 사간원에서 작성된 것이다

'충목'은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임금을 받들었기에 '충' 그리고 덕을 베풀고 항상 정의롭게 행하였기에 '목'이라 한 것이다

 

 

 

 

호서능수아문(湖西菱首衙門)

천안삼거리의 옛 모습을 재현한 전시실이다

 

 

 

 

엿장수와 포목점 그리고 주막이 있다

 

 

 

 

목신제

천안시 쌍용동 방축골 느티나무 앞에서 제를 지내는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마을의 수호신에게 마을사람들의 연중무병과 평온무사를 비는 제사이다

 

 

 

 

충청도 앉은굿

 

 

 

 

천안의 웃다리풍물

 

 

 

 

능수버들은 물이 많은 곳에서 잘 자라고 가로수로 널리 심고 있으며 목재는 가구나 나막신을 만드는데 쓰인다

능소아가씨와 과거 급제하고 돌아오는 선비 박현수를 재현해 놓았다

 

 

 

 

터치식 그림동화책

천안의 대표적인 4개의 전설이 있

 

 

 

 

1930년대 · 1960년대 천안삼거리

 

 

 

 

천안삼거리 음반

 

 

 

 

줄다리기

동 · 서, 남 · 여로 편을 갈라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다

 

 

 

 

거북놀이

추석날 밤에 하는 놀이로 수숫대를 벗겨 거북이 모양을 만들어 3~4명 (앞에 한 사람, 뒤에 두사람)이

그 속에 들어가서 마치 거북이가 돌아다니듯이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한바탕 논다

그러다가 모두 힘이 빠진 척 모두 쓰러져서 꼼짝도 하지 않을 때 거북을 몰고 다니는 아이가

"이 거북이가 동해를 건너 여기까지 오느라고 힘이 지쳐 누웠으니 먹을 것을 주십시오"라고 하면 집주인은 송편 · 떡 · 과실 등을 내어 놓는다

그러면 거북을 모는 아이가 "거북아! 먹이가 나왔으니 인사나 하고 가자"고 하면

거북은 넙죽 절을 하고 한바탕 뛰어 놀다가 또 다른 집으로 간다

 

 

 

 

거북놀이의 기원과 놀이 방법

 

 

 

 

천안의 소리를 찾아서

헤드폰을 끼고 아래 단추를 누르면 모심는 소리 · 김매는 소리 · 집터 다지는 소리 · 상여소리 · 회심가 등을 들을 수 있다

 

 

 

 

백석동 청동기시대 주거지 재현 모습

길이 1,064cm · 폭 300cm로 내부저장용 대형토기 · 토기 · 마제석검 · 화살촉 · 화덕 · 돌도끼 · 방추차 등이 있다

 

 

 

 

고종 어차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맞는 1903년, 미국공사 알렌을 통하여 칭경식 의전용 어차로 들여온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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