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걷기하실꺼예요?
세월호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지... 그만둘라고?
마음은 아프지만 강화나들길을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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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나들길 14코스는 철종이 19살까지 살던 잠저 용흥궁에서
철종의 외가로 가는 길로 원범이 봉이의 손을 잡고 다녔다 하여 〈강화도령 첫사랑길〉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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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가 죽고 정조가 세손이 되자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세력들은 음모를 꾸몄다
정조가 왕이 되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한 자신들을 가만히 둘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론 벽파의 음모가 발각되어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전군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남은 형제 은언군과 은신군은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은신군은 제주도에서 병사하고 은언군은 유배지를 강화도로 옮겨왔다
그 은언군의 손자가 철종이다
철종은 슬하에 5남6녀를 두었는데 영혜옹주를 제외하곤 모두 어려서 죽어 후사가 없다
1882년 최초로 태극기를 도안 제작한 금릉위 박영효가 영혜옹주의 부군이다
강화버스터미널
강화 고인돌축제 · 고려산 진달래죽체는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로 취소되었지만
계절이 좋아서인지 차량은 많았다
시점이다
벽화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차길 건너다
강화도행렬도
1849년 6월 헌종의 왕위를 계승하게 될 강화도령 변(조선 25대 철종)을 모시러 오는 행렬을 그린 역사기록화로
현재 조선미술박물관(평양)에 소장되어 있으며, 강화도 전경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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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버스터미널에서 남문 방향 강화나들길1코스 · 5코스가 나뉘는 지점에 있다
냉이 · 무당벌레
강화도행렬도 뒤편 풀밭에서 봤다
광대나물
강화성곽 풀밭을 따라간다
강화읍성 남문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이름은 늘 티내는 나무라는 뜻에서 '늘티나무'로 부르다 느티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오래된 느티나무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마을 경계목과 정자목으로 많이 심었다
마을 어귀나 집 주변 · 성곽 · 고개마루 언덕 등에 서있는 느티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상징으로 여겨 왔다
강도남문(江都南門)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지은 것인데 1234년부터 본격적 공사에 들어갔다
고려 때 쌓은 성으로 내성(內城) · 중성(中城) · 외성(外城)의 형태를 취했는데, 이 중 내성이 지금의 강화성이다
중성은 내성을 지키기 위하여 1250년 축조했으며 길이가 약 9㎞의 토성으로 모두 8개의 성문이 있다
외성은 1233년부터 강화 동쪽 해협을 따라 공사를 실시하였다
강화나들길 고려궁 성곽길 안내도
강화유수 민진원 선정비(江華留守閔鎭遠善政碑)
민진원은 조선 후기의 척신으로 민유증의 아들이며, 민진후의 남동생, 인현왕후의 작은오빠이다
1691년 과거 급제 후, 인현왕후의 폐출로 빛을 보지 못하다가
1694년 갑술환국 이후 복귀하여, 사복시정 · 사헌부집의 등을 지냈고 노론에 참여하였다
이후 전라도관찰사 등을 거쳐 좌의정을 역임했다
안파루(晏波樓 · 남문)
성문은 동서남북에 4개 · 암문(暗門) 4개 · 수문(水門) 2개가 있다
문루로는 남쪽 안파루(晏波樓) · 서쪽 첨화루(瞻華樓) · 북쪽 진송루(鎭松樓) · 동쪽 망한루(望漢樓)가 있다
강화산성 동문 안쪽 현판으로 전 국무총리 김종필의 글씨다
대명헌(大明軒)
과거 독립군을 지원하던 거부 창원황씨 황국현의 한옥으로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곳이다
1928년 백두산 잣나무로 10년의 공사 끝에 지어진 집이다
천주성전(天主聖殿 · 사적 제424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성당으로 건물의 웅장함과 견고함을 고려하여
목재는 수령 백 년 이상의 백두산 적송을 조마가 신부가 직접 신의주에서 구하여 뗏목으로 운반하여 왔고
석재와 기와는 강화산을 사용하였다
도목수는 경복궁 중수에 참여했던 도편수였으며 중국인 석공과 강화지역 교우들이 참가하여 1년여 만에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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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11월 15일 건립된 동서길이 10칸, 남북길이 4칸인 한식 중층건물로
서양의 바실리카식 교회건축 공간구성을 따르고 있으나 가구 구조는 한식 목구조와 기와지붕으로 되어 있다
할미꽃
노랫말처럼 꼬부라져 있다
매발톱꽃
성당 화단에 있다
용흥궁(龍興宮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
강화도령이라 불리던 조선 제25대 왕 철종(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처하였던 곳으로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초가였으나 철종 4년, 강화유수 정기세가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짓고 용흥궁이라 불렀다
고종 광무 7년(1903) 이재순에 의해 중건되고, 1974년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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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용 불망비(相國鄭公元容淸德愛民永世不忘生廟碑) · 정기세 생묘비(鄭基世愛民求世不忘生廟碑)
문충공 정원용(1783~1873) · 정기세(1814~1884)의 청렴한 덕행과 백성들을 아껴 준 공로와 은혜를 기리고자
1864년 3월에 강화유수부의 18개 면민들의 뜻을 모아 세웠다
정기세는 봉영의 중책을 맡은 영의정 정원용의 아들이다
용흥궁(龍興宮) 현판
비백의 힘찬 글씬데 낙관이 없다
용흥궁 내전
안채로 정면 7칸, 맞배지붕이다
장독 금줄
잡귀가 들지 못하도록 왼 새끼를 꼬아 솔잎과 고추 등을 끼운 금줄로 장맛을 지켰다
내전 옆이다
외전
사랑채로 정면 6칸, 팔작지붕이다
철종잠저구기(哲宗潛邸舊基) 비각
철종의 잠저였음을 기록한 비가 있다
강화도령 첫사랑길 안내판
용흥궁 옆에 있는 용흥궁공원에 있다
강화도령 첫사랑길 시점이다
심도직물 기념물(직조기 · 굴뚝)
1947년 고 김재소(제7대 국회의원)씨가 설립한 심도직물이 자리 잡았던 곳으로
1947년부터 2005년까지 운영됐던 국내 굴지의 섬유회사다
1960~70년대에는 직원 1,200명 정도였고 거쳐간 사람들 수만해도 1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주 생산품으로 커텐지, 카페트 특히 웸부리넥타이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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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심도직물이 자리 잡았던 곳에 용흥동공원을 조성하였고
30미터에 달했던 거대한 굴뚝 끝부분을 따로 남겨 심도직물을 기념하고 있다
선원 김선생 순의비(仙源金先生殉義碑)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묘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란했으나 청군이 이곳마저 함락하자
남문루 위에 화약을 쌓아놓고 불을 붙여 순국한 선원 김상용 선생의 위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 때 유수로 부임한 공의 7대손 김매순이 건립한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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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순절비는 예전 남문지에 있던 것을
1976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화사업의 일환으로 현 위치로 비각을 옮겨 세우던 중
숙종 26년(1700), 당시 강화유수인 선생의 종증손 김창집이 세운 구비가 발견되어 신 · 구비를 나란히 세웠다
솔터우물
예전 진전의 제사 때 이 물을 썼다
순의비에서 차길 건너 있는 중앙시장 옆에 있다
강화관광안내소
중앙시장을 지나 남산을 오른다
멀리 나들길1코스에 들어있는 북문이 보인다
벚꽃잎이 떨어져 있는 계단을 오른다
약사사 입구
원범과 봉이가 처음 만났다는 청하약수터 옆이다
남산 마루금
약사사 입구를 지나 우측 솔밭을 오르면 나온다
남산 암문
남산 성곽길
고려산
성곽에서 돌아봤다
군사관련 건물지
남장대
남산(221.75m) 위에 복원되었다
강화산성은 고려 고종(1232)때 토성으로 만들어졌다가 몽골의 요구로 헐리게 된다
이후 강화도의 전략적 중요도가 부각되면서 조선 숙종(1710)때 현재와 같은 규모로 개축되었다
2008년 발굴조사 및 기술자문회의를 거쳐 2010년 복원하였다
이곳에서 이동식을 했다
남장대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이다
멀리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유도와 김포반도 끝자락이 보인다
예전 북한 소가 떠내려왔던 유도(留島)다
남장대
남장대에서 달보기가 〈강화10경〉 중 하나다
문수산이 뒤로 보인다
고려산
강화산성 너머로 보인다
강화나들길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길 방향안내판
애기똥풀
꽃도 방향을 가르키는 듯 서있다
호텔 에버리치
민들레 홀씨
천변 공사로 인해 리본 등 안내판이 없어져 길찾기가 어렵다
천을 따라 걷다 천을 건너 처음 천을 만난 곳까지 걸어와 좌측 산으로 올라야 한다
다시 산길로 이어진다
위험표지판 뒷길로 나와 길을 건너 좌측 언덕으로 오른다
혈구산 안내판
강화도 습지연대를 지난 곳이다
찬우물약수터
노점이 많다
달걀꾸러미
무얼 파시나 보니 눈에 띄는 물건이 있다
강화도령 첫사랑길 안내판
찬우물약수터를 지나 도로를 따라 걷는다
홍매화
앵두꽃
차길을 건너 다시 숲으로 든다
혈구산
냉정리공소
매주 일요일 9시에 미사가 있다
이곳에서 이동식을 했다
강화나들길 14코스 포토존
철종 외가(인천 문화재자료 제8호)
철종 4년(1853)에 지어진 집으로 철종의 외삼촌인 염보길이 살았던 집이다
매헌서당(梅軒書堂)
안채
안채
고려국 곡성부원군 염제신 신도비(高麗國 曲城府院君 廉濟臣 神道碑)
고모부인 원나라 사람 중서평장(中書平章) 말길공(末吉公) 밑에서 10여 년간 수업을 받은 후
원나라 진종 황제를 숙위하면서 원나라에서 벼슬을 시작하였다
충숙왕 때 고려에 와서 충목왕 · 충정왕 · 공민왕 · 우왕 때까지 관직을 역임하였다
특히 공민왕 때 공민왕의 개혁, 홍건적의 난, 안동으로 피신한 공민왕을 호종 하는 일 등으로
공신과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에 책봉되었다
염제신의 묘는 그의 고향인 경기도 장단군에 있다
이곳에 신도비가 세워진 것은 냉정리에 있는 조선 철종의 외가가 용담 염씨 집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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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지나 선원면주민센터 버스정류장에서 700번 버스를 탔다
사임당 막걸리
걷기 주제였던 원범과 봉이를 얘기 했다
풀숲에서 나비가 날아오를 때 억울하게 죽어간 봉이의 얼굴이 그려졌고
두 마리의 나비가 날아오를 땐 자유로운 영혼을 보았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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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지만 강화도 이야기는 끝이 없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5.4km, 소요시간 6시간 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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