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종 13년(1413) 고려시대 고봉현과 덕양현을 통합하여 고양현으로 고치고 현감을 두었으니 올해가 고양시 600년이 되는 해이다
고양시에서는 고양시 600년을 기념하여 4월에 고양누리길 걷기대회를 열었는데
늦게나마 고양시 600년을 축하하며 고양누리길 코스 중 하나인 서삼릉누리길을 걸어본다
원당역 1번 출구
시점이다
전철교
기응세 선생 묘를 지난 곳이다
고양누리길 안내판
원당역 길 건너에 있다
고향누리길 방향안내판
누리길 리본과 안내판이 잘 되어 있다
배다리 술 박물관
5대째 술도가를 이어오고 있는 박관원 관장이 세운 전통주 박물관이다
우리나라 술의 역사와 술 빚는 과정이 재현되어 있는 전시장과 시음장이 있다
애주가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벼베기할 때 마시던 막걸리
또 현대그룹 정주영회장이 1998년 소떼를 몰고 북한에 갔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약속하여
2000년 정몽헌 회장이 북한 방문 때 가져가서 함께 마신 술이 고양막걸리 · 통일막걸리다
한양CC 옆이다
붓꽃
기와집
털레기 추어 · 참게 매운탕 음식점이다
서울 한양CC
개나리 울타리를 끼고 걷는다
고양누리길 리본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고양이라 써있다
강원도 새나래
수역이마을 동치미막국수 · 메밀만두전골 음식점이다
동치미막국수
원당역과 서삼릉 사이에 위치한 가장 큰 마을로 「쇄기」로 불리기도 한다
본래 이 마을의 정식 명칭은 수역(水域)이 마을이다
수역은 물이 많은 지역을 부르는 이름인데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수역이가 오늘날의 쇄기로 불리게 된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 이곳에 식당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지금은 덕양지역에서 유명한 먹거리촌이 되었다
점심을 먹고 천천히 언덕을 넘는다
버섯 종균 나무
버섯농장들 앞에 버섯 종균을 심을 나무들이 쌓여있다
한국스카우트연맹 중앙훈련원 빗돌
버섯농장을 지나 왼쪽으로 있다
효릉(孝陵) · 태실(胎室)
세계문화유산인 서삼릉의 비공개지역에 위치한 조선 12대 인종과 인성왕후의 무덤인 효릉과
역대 조선조의 왕과 왕비 · 공주 · 대군 등의 태(胎)를 모신 태실이 있다
이 밖에도 이곳에는 역대 후궁 및 옹주 · 공주 · 대군의 무덤도 수십 기 자리해 있어 단일지역으로는 조선시대에 가장 많은 왕실 묘소가 위치해 있다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희묘」를 비롯하여 정조의 후궁인 성송연의 무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묘소 및 태실은 일제강점기에 문화재 도굴 및 관리를 위해 전국에서 옮겨온 것이다
서삼릉 보리밥집
줄을 서서 기다리길래 안을 들여다 봤더니 만원이다
암튼 넓은 주위에 차를 댈 수 없을 정도다
원당 허브랜드
서삼릉 입구 버스정류장 앞이다
서삼릉의 명물 은사시나무길이다
서삼릉으로 들어가는 길
서삼릉(西三陵) / 사적 200호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조선 11대 중종의 계비인 장경왕후 윤씨의 희릉 · 12대 인종과 인성왕후의 무덤인 효릉 · 25대 철종과 철인왕후의 무덤인 예릉이 있다
서울 도성의 서쪽에 있다하여 서삼릉이라 불리며 왕릉이외에도 소경원 · 효창원 등의 원 · 묘 · 태실 등이 있다
화장실
한국마사회 경마교육원
경마연습장
나 하나 꽃이 되어 / 조동화
원당경마교육원(예전 종마목장)
한국마사회가 운영하고 있으며 경주마와 우수한 종마의 육종 보호를 위하여 말들이 휴식과 안정을 취하는 곳이다
파라벨라 미니어쳐
원산지는 미상 · 키는 91cm 미만 · 때때로 활기차지만, 일반적으로 차분하다
나무가 있는 쉼터
말 사육장
두 마리의 아메리칸 미니어처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아메리칸 미니어처
원산지는 미국 · 키는 86cm 미만 · 애교가 많고 신사적이며 애정이 많다
조팝나무
영춘각(永春閣)
광개토대왕비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의 능 비석으로 일명 「호태왕비」라 부른다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의 17대 세손으로 374년에 태여나 18세에 왕위에 오른 뒤 20여 년간 고구려를 다스렸다
재위기간 대왕은 나라를 막강하게 이끌면서 막비왕토의 시대를 개척했다
이 비는 광개토대왕이 돌아가시고 2년이 지난 414년 아들 장수왕이 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적비이자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금석문으로 유명하다
농협대학교로 가는 길
바람이 불면 꽃비가 내리는 서삼릉길
농협대학교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협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세웠다
홍익교회 삼송캠퍼스
서삼릉과 삼송 · 세수리 · 솔개 마을 이야기
천일약수터
솔개마을은 서삼릉 입구에 해당하는 곳으로 원흥동에 속한 자연촌락 이름이다
한문으로 송현(松峴)이며 소나무가 무성한 고개가 있어 솔고개라 했는데 후대에 솔개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도 솔개마을 입구와 서삼릉 부근에는 키가 크고 오래된 조선 소나무가 일부 남아있다
입구 안내판엔 솔개약수터라 써있다
언덕을 오른다
터널 위 생태통로를 지난다
북한산
터널 위 생태통로에서 봤다
돌탑
많은 리본이 매달려 있다
거북이바위
북한산에서 서삼릉 방향으로 이어진 한북정맥에 있는 바위로 일부는 자연적인 현상에 따라 땅에 묻혀 있다
오래 전 북한산에서 살다가 창릉천을 따라 내려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거북이라 알려져 있으며
묻혀진 다리가 땅 위로 들어나면 창릉천 개울이 마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양지꽃
숫돌고개
임진왜란 당시인 1593년 1월 삼송동과 오금동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숫돌고개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을 돕기 위해 출정한 명나라 대군과 일본군이 벽제관의 첫 전투를 벌이게 된다
명나라 총사령관인 이여송은 벽제관전투를 승리하고 서울에서 편안하게 식사를 할 생각이였다
그러나 창릉천 방향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매복에 걸려 숫돌고개에서 큰 피해를 보았고 자신이 직접 지휘한 본대도 패하여 개성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일본군을 무시한 패배였다
이여송은 후퇴하면서 훗날 복수를 다짐하며 이 고개의 큰 바위에서 칼을 갈았다고 하여 고개 이름이 숫돌고개 즉 여석령(礪石嶺)이 되었다고 한다
개성으로 후퇴했던 명나라군은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 후 일본군이 서울에서 물러나자 전투없이 숫돌고개를 넘었다
삼송동과 세수리 · 왕릉제사 이야기
서삼릉 입구에 있는 마을로 왕릉 제사를 위해 서울을 떠난 임금님이 창릉천(덕수천)을 넘어 이곳 마을에 들어서면
서삼릉의 입구란 의미로 심어진 소나무 세 그루를 보시고는 가마에서 내려 서삼릉까지 걸어 들어갔다
이 소나무 세 그루는 곧 마을의 상징이 되었으며 그 이름도 삼송(三松)이 되었다
그리고 다른 이름으로는 세 그루의 나무가 있어 세수리(樹里)가 된 것이다
이 소나무 세 그루는 1970년대까지 남아 있었으나 도로건설 및 주변환경의 변화로 고사하고 말았다
삼송동 아파트단지
산에서 마을로 내려가면서 봤다
삼성상회 · 현대한연쇄점
예전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잠시 쉬며 이야기했던 쉼터가 생각나 만들었다
삼송역 7번 출구
마침점이다
배다리막걸리
1915년부터 고양시에서 5대째 빚어내려오는 전통의 술
1966년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이 14년간 청와대에서 즐겨 드시던 술
집에 도착해 마셔 보니 맛이 정말 좋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1.1km · 소요시간 5시간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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