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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종주이야기 2

동대구역~달서구 성서공단

지난 여름휴가 때 시작한 국토종주 2탄
부산 오륙도에서 강화도까지의 길을 이어 걷기 위해 동대구역으로 갔다
1박 2일에 대략 4~50km를 걷는걸 감안해 도착지를 검색하니 성주와 칠곡이 눈에 들어온다
가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고, 부수적으로 교통 · 숙소 · 다음 행선지 등을 놓고 생각하다 칠곡군 왜관역으로 결정했다
또 숙소는 시점과 마침점 중간에 있으면 이틀간 무리없이 걸을 수 있어 좋은데
이번엔 동대구역에서 가까운 곳은 17km · 조금 먼 곳은 30km지점에 있다
첫날보다는 일찍부터 걸을 수 있는 둘째 날 길게 걷을 수 있기에 가까운 성서공단에 숙소를 잡았다
거리가 짧은 만큼 대구시내를 돌아보며 천천히 가기로 했다

 

 

제93회 전국체육대회 꽃기둥
동대구역을 나서니 꽃들이 반긴다

 

 

 

 

평화시장
대구파티마병원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잠시 걸으니 닭똥집골목이 유명한 평화시장이다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은 두 가지 색깔로 나뉜다
1980년대 원조집이 모인 광장형 골목에는 지난 향수를 먹으러 오는 기성세대로 북적이며
새로 생긴 식당에는 신세대들의 젊음이 용솟음친다
옛 맛을 보려면 원조집이 모인 골목으로, 젊은 분위기를 즐기려면 새로 형성된 식당가로 가면 된다

 

 

 

 

신천
멀리 보이는 함지산 앞에서 신천은 금호강에 흡수된다
신천과 금호강을 따라가다 낙동강을 만나면 다시 낙동강을 따라걸을까도 생각했는데
걷기 편한 물길도 좋지만 대구를 느끼고 싶어 시장과 골목길을 걸었다
칠성교에서 봤다

 

 

 

 

칠성시장 노점
할머니들의 채소 난전과 찜갈비골목을 지나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으로 간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달구벌대종
대한제국 말기에 일어난 항일 독립운동사에 길이 빛날 구국정신의 결정이다
1907년 1월 29일, 애국계몽단체인 대구광문회(회장 김광제)에서 서상돈 선생이 건의함으로써 첫 횃불이 올랐다
일본 차관 1,300만원으로 국가가 존망의 위기를 맞았으니 담배를 끊어서라도 국채를 갚아
국권과 국토를 보존하자는 외침에 200여 회원들은 분발하여 즉각 전국적으로 실행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국채보상 대구군민대회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다투어 참가했으며
남일동에 사는 부인 일곱 사람이 패물을 바침으로써 전국여성국채보상운동의 선구가 되었다

 

 

 

 

국채보상운동을 주창 · 주도한 대구 광문회 김광제회장 · 서상돈선생 흉상
이 운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으로서
그 정신은 3 · 1운동과 물산장려운동 · 외환위기의 금모으기운동으로 계승됐다

 

 

 

 

국채보상운동 여성기념비
국채보상운동에서 여성의 역활은 눈부시었다
여학생은 물론 가정 부인에서 기생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성 못지않게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중에서도 남일동 7부인회는 비녀와 반지를 뽑고 깊이 숨겨두었던 보석을 헌납함으로써
그후 수많은 여성들이 그 뒤를 따르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외환위기 때의 금모으기 운동의 전형이 된 것이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솟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로 마을 입구에 세워
경계 또는 이정표의 역활과 마을에 들어오는 액이나 살 · 잡귀를 막아주고
마을의 안녕과 수호신 구실로 나무기둥을 박고 오리와 같은 새를 올려 놓았다

 

 

 

 

2 · 28기념중앙공원
옛 중앙초등학교 자리로 대구를 빛낸 많은 인물들을 길러낸 요람이자
우리나라 민주화의 진원이 된 2 · 28 민주운동의 거룩한 자취가 서린 곳이다
1960년 2월 28일 자유당 독재와 불의에 맞서 들고 일어선 대구학생의거는 들불처럼 번져
3 · 15마산의거를 촉발하였고 위대한 4 · 19혁명을 성취시켰다

 

 

 

 

야시골목
옷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야시 같은 아가씨들이 즐겨찾는 골목이라 야시골목이라 불린다
야시는 여우를 뜻하는 이곳 말이다

 

 

 

 

로데오거리
젊음과 낭만의 거리다

 

 

 

 

진(긴)골목
1907년 2월21일 대구군민대회에서 나라 빚을 갚기 위해 금연을 결의하자
진(긴)골목에 살던 일곱 부인이 패물을 헌납함으로써 패물 헌납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 골목은 100m 정도의 짧은 골목이지만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골목으로 로데오거리에서 대구전철 1호선 차길을 건너면 있다

 

 

 

 

정소아과의원
「1박 2일」에 나와 더 유명해진 곳으로,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라고 이 골목에서 만난 분이 설명해 준다
진골목은 긴골목의 경상도 말씨로 길다를 의미하는 「질~다」에서 기원한다
감영시대에서 해방 전까지 이 골목은 대구 토착세력이였던 달성서씨들의 집성촌이였으며
해방 이후에도 재력가들과 기업인들의 거주지로 각광 받았다

 

 

 

 

정화식당 은자골 탁배기
제4회 전국막걸리축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고 써놨다
목포에서 직송하는 홍어회 전문 정화식당에서 은자골 탁배기 한잔하면 좋겠다

 

 

 

 

김원일의 소설  「마당깊은 집」의 길남이 동상과 함께한 빅터
소설 「마당깊은 집」은 6 · 25 직후인 1954년 대구 장관동의 살던 피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한국대구화교소학교
길남이가 물을 떠왔던 학교로 들어가 본다

 

 

 

 

장개석 흉상
화교소학교 마당에 있다

 

 

 

 

석류나무
석류의 계절이라선지 오늘만 벌써 몇 번째 눈에 뛴다
장개석 흉상 옆에 있다

 

 

 

 

대구 근대역사관 / 대구 유형문화제 제49호
진골목을 나와 경상감영공원을 가기 위해 도로를 건너니 대구 근대역사관이나온다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하여
1954년 이후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사용되었던 르네상스풍의 근대건축물이다

 

 

 

 

대구도로원표
경상감영공원 입구에 있다

 

 

 

 

경상감영 하마비
이 비는 경상감영의 정문인 관풍루 앞에 있었던 것이다
병마절도사란 도의 병권을 맡은 책임자로서 대개 종이품관인 관찰사가 겸임하였다

 

 

 

 

선화당(宣化堂) / 대구 유형문화재 제1호
경상감영의 정청으로서 대구에 경상감영이 정착하게 된 선조 34년(1601)에 이곳에 세운 건물이다
그 후 현종 11년(1670) · 영조 6년(1760) · 순조 6년(1806) 세 차례의 큰 화재로 불탔으나
순조 7년(1807)에 새로 지었고, 1970년 중수하였다
이 건물은 현존하는 관아 건축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귀한 가치를 지닌다

 

 

 

 

굴뚝
선화당 뒷편이다

 

 

 

 

경상도 관찰사 · 대구 판관 선정비
관찰사 이경여 거사비를 비롯하여 29기가 있다

 

 

 

 

약령서문(藥令西門)
경상감영에서 다시 도로를 건너 약령시 한의학박물관을 지나 계산성당으로 가다 만났다
바로 앞에 있는 대백칼국수에서 들깨칼국수와 만두로 점심을 했다

 

 

 

 

대구 주교좌성당 계산성당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번째로 세워진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프랑스 로베르신부가 설계하였고, 서울 명동성당 건축에 참여했던 중국인들이 공사를 담당하여 1902년 완공하였다
1911년 주교좌성당이 되면서 종탑을 두 배로 높이는 등의 증축을 하여 1918년 12월 24일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당시 대구에 처음 세워진 서양식 건물이며, 현존하는 1900년대의 성당건축물로 유일한 것이여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대구 계산성당은 서울 명동성당 · 전주 전동성당과 함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3대 성당으로 뽑힌다

 

 

 

 

성수대
교황 요한 바오로Ⅱ세 성하께서 1984년 5월 5일 대구 대교구를 방문하시어
이 성당에서 기도하시고 어린이들을 축복하셨다고 써있다

 

 

 

 

계산성당
전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에서 결혼했다
이름이 「정희」라선지 아님 주례 신부가 긴장해선지 「신부 박정희 양」이라고 했다 한다

 

 

 

 

태극기
계산성당에서 이상화고택으로 가는 길이다
서울 진관사 칠성전 해체 · 복원 공사중 발견된 태극기로
1919년 3 · 1운동 전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디자인이다
현재 부착된 건곤감리 위치와 태극문양의 모양 · 방향 등은 현재의 태극기와 상이하다

 

 

 

 

이상화(1901~1943)
1901년 대구시 중구 서문로 출생, 아호 무량(無量) · 상화(想華) · 상화(尙火) · 백아(白啞)
1919년 대구에서 3 · 1운동 거사모임 참여 1928년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한 「ㄱ당사건」에 연루 대구경찰서 구금
1943년 계산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
작품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나의 침실로 · 역천 등이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고택을 찾아가는 큰 길엔 보도블럭 · 골목엔 담에 써있다
이상화의 대표작이다

 

 

 

 

이상화 고택
"나는 살련다, 나는 살련다
바른 맘으로 살지 못하면 미쳐서도 살고 말련다"
- 독백 중에서 -

 

 

 

 

민족저항시인 이상화 고택 안내판

 

 

 

 

근대 문화 체험관 계산예가 우체통 · 화장실
 계산예가는 이곳 출신 문인들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서상돈고택
국채보상운동공원에도 행사 준비를 하는 거 같았는데 이곳도 문화행사가 있다

 

 

 

 

은혜정원
청라언덕을 오르다 만났다
우리가 어둡고 가난할 때 태평양 건너 머나먼 이국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가 삶을 마감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청라언덕 노래비
감회가 새로운 동무생각을 조용히 불러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중학교 때 이 노래를 배운 후로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노래다
*
바로 이곳이 푸른 담쟁이 넝쿨이 휘감겨 있던 청라언덕이고 백합화는 그가 흠모했던 신명학교 여학생이란다

 

 

 

 

박태준(1900. 11. 22~1986. 10. 20) 연보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 기러기와 최초의 가곡 동무생각을 비롯하여 오빠생각 · 맴맴 등을 지었다

 

 

 

 

선교사 챔니스 주택
1910년경 미국인 선교사들의 거주를 위해 지은 주택으로
1907년 대구읍성 철거 때 가져온 안산암의 성돌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붉은 벽돌을 미국식으로 쌓았다
청라언덕 노래비 왼쪽에 있고 대구 제일교회가 뒤에 보인다

 

 

 

 

선교사 블레어 주택
1910년 미국인 선교사들이 지은 주택으로 전체적인 모습에서 당시 미국의 주택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건물이다
청라언덕 비 오른쪽에 있다

 

 

 

 

3 · 1운동길
선교사 주택에서 큰 길로 내려오면 작은 구름다리 아래 3 · 1운동길이 있다
3월 8일 오후에 일어난 대구 삼일운동은 순수 기독교 독립만세운동으로
당시 대구제일교회 · 대구서문교회 · 남산교회 성도들과 과거 선교사들이 세운 계성학교 · 신명여고 학생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독립운동이 바로 동산언덕 이곳에서 시작됐다

 

 

 

 

양말골목
서문시장 입구에 있다

 

 

 

 

83타워 · 반고개네거리
대구시의 직할시 승격을 기념하기 위해 1984년 10월에 착공하였으나 시행사의 부도로 공사 중단 사태를 맞았으나
대구지역 건설사인 (주)우방이 재착공하여 1992년 타워가 완공됐다
그 후 이 일대에 종합테마공원을 조성하여 1995년 오픈했다
83타워는 타워 꼭대기가 83층에 해당한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83타워는 대구타워 · 두류타워 · 두류산타워 · 우방타워로도 불린다

 

 

 

 

반고개 무침회골목
전철 반고개역에서 내당역 방향으로 잠시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무침회골목이 있다
대구는 바다에서 먼 내륙지역의 특성상 신선한 회를 맛보기 어려웠다
회 맛을 보기 위해서는 오징어를 살짝 데쳐 야채와 함께 양념에 버무려서 먹는 방법 이외에는 거의 없었다
요즘은 소라 · 우렁이 등을 추가하여 무채 · 미나리 등의 채소와 함께 즉석에서 초고추장과 마늘 · 생강 등을 섞은 양념에 버무려 낸다

 

 

 

 

두류네거리 지하 아울렛
넓은 마루 무대에서 이동식 후 편안히 쉬었다

 

 

 

 

달구벌대로 죽전네거리

 

 

 

 

감삼성당
샌드위치판넬로 지어졌다

 

 

 

 

용산역(서부법원 · 검찰청 입구)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서IC

 

 

 

 

이곡역 사거리

 

 

 

 

계명대역 네거리
길 건너 왼쪽으로 계명대 캠퍼스가 있다

 

 

 

 

성서공단 자전거길
계명대역에서 성서공단 3단지 방향으로 1.4km를 들어가면 숙소가 있다

 

 

 

 

화이트모텔
샤워 후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며 만들었다
오늘은 17km의 거리를 22km로 늘려 걸었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22.3km · 소요시간 7시간 40분
총 걸은 거리 193.7km · 총 소요시간 70시간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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