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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인천도호부청사

조선시대 지방행정조직은 태종 13년(1413) 전국을 8도(道)로 나누고, 도(道)아래 대도호부 · 목 · 도호부 · 군 · 현을 두었다
인천도호부 내에는 10개의 면(面)과 그 밑에 다수의 동(洞) · 리(里) · 촌(村)이 있었고
동 · 리의 밑에는 매 5호(戶)를 한 개의 통으로 하는 5가작통제(五家作統制)가 시행되었다
인천부읍지에 의하면 영조 24년(1748) 당시 관할구역은 강화도 · 영종도 · 덕적도 등이 인천에 속했으며
인구는 2천6백여 가구에 8천여 명이 거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도호부가 설치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초기 학자인 강희맹(姜希孟)이 쓴 인천부승호기(仁川府陞號記)에
1424년 이미 객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그 이전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도호부청사
인천도호부에는 객사(客舍)를 비롯하여 동헌(東軒) · 내동헌(內東軒) 등 15~16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하나
이 곳에 복원한 건물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화도진도(花島鎭圖)를 근거로 객사 · 동헌 · 공수 등 7동의 건물만 복원하였다

 

 

 

 

인천도호부청사 내삼문
객사를 출입하기 위해 설치한 문으로 아문인 외삼문과 구별하여 내삼문이라 한다
입춘대길 · 건양다경의 글이 붙어 있다

 

 

 

 

소성관(邵城館)
삼문을 들어서면 객사(客舍)인 소성관이 보인다
객사는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로 관아시설 중 규모가 제일 크고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전패를 모시고 있는 가운데 채가 전청이며 좌우의 익사는 중앙에서 내려온 사신의 접대와 숙소로 이용되었다

 

 

 

 

소성관(邵城館)
전패를 모시고 있는 가운데 채인 전청이다

 

 

 

 

소성관(邵城館) 현판
언제 누가 썼는지 낙관이 없다

 

 

 

 

망궐의식(望闕儀式)
외직에 근무하는 관원이 궁궐에 나아가 임금을 직접 뵙지 못할 때 궁궐을 향해 행하는 의식으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전패와 궐패를 향하여 절을 올리는 삭망례를 거행하였다
또 임금이나 왕비의 탄신일을 비롯하여 정월 초하루 · 한식 · 단오 · 추석 · 동지 등의 명절에도
객사 앞뜰에서 대궐을 향해 절을 올리는 의식을 행하였다

 

 

 

 

소성관(邵城館)
좌우의 익사는 중앙에서 내려온 사신의 접대와 숙소로 이용된다
좌우의 익사 옆에 붙은 마루가 넓다

 

 

 

 

소성관 좌익사 방

 

 

 

 

굴뚝
객사 뒤쪽에 있다

 

 

 

 

도호부청사(都護府廳舍)
오른쪽부터 공수 · 삼문 그리고 높은 건물이 아문이고 그 앞 건물이 중문

그리고 작은 문이 객사와 동헌으로 통하는 내협문이고 왼쪽에 처마만 조금 보이는 건물이 동헌이다

 

 

 

 

공수(公須)
객사의 부속건물로 부엌 · 곳간 · 온돌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객사를 관리하는 인원과 중앙 사신을 수행한 수행인력들이 유숙하고 객사의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던 곳이다
이들 업무를 주관하는 곳이 공수청이다

 

 

 

 

공수 왼쪽 첫째 방
짚과 대로 만든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공수 왼쪽 둘째 방
다양한 거북선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공수 왼쪽 셋째 방

 

 

 

 

공수 네째 칸

 

 

 

 

왼쪽부터 공수 · 객사 · 동헌이다

 

 

 

 

동헌(東軒)
부사의 집무실로 객사의 동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건물의 격식은 객사보다 한 단계 떨어졌으나 그 지역 최고 실력자의 지위에 합당하게끔 설계되었다
현판이 붙어있지 않다

 

 

 

 

부사(府使) · 이방(吏房)
동헌 중앙에 마루로된 대청에선 지방의 일반행정업무와 재판이 행하여졌다

 

 

 

 

동헌 좌우에 있는 온돌방
사무공간이나 응접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충의비(忠義碑)
조선 개국(1392)부터 경술국치(1910)까지 인천도호부사를 지낸 355인의 성명을 새긴 비다
동헌 앞마당에 있다

 

 

 

 

충의비 옆에 있는 곤장
조선시대 형구의 하나로 버드나무로 넓적하게 만들어 도둑이나 군률을 어긴 죄인의 볼기를 치는 것으로
중곤(重棍) · 대곤 · 중곤(中棍) · 소곤 · 치도곤(治盜棍)의 5가지가 있었다

 

 

 

 

중문
수령의 집무실인 동헌으로 들어가기 위한 문으로 6방관속의 집무처이기도 하다
동헌에서 봤다

 

 

 

 

물레가 있는 방
중문에 달린 6개의 방 중 오른쪽 첫째 방이다

 

 

 

 

오른쪽 두번째 방

 

 

 

 

세번째 칸

 

 

 

 

볏섬과 반닫이

 

 

 

 

화로가 있는 다섯째 방

 

 

 

 

여섯째 칸
마루방으로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중문 · 사주문
동헌의 부속건물로 수령의 개인 비서와 자제가 머무르는 책방 외에 가족이 머무르는 내아(內衙)가 따로 배치되었는데
사주문은 내아에서 동헌으로 왕래할 때 사용되는 문이다

 

 

 

 

중문

 

 

 

 

아문(衙門)
관아의 정문으로 2층으로 된 누대에 위풍당당한 팔작지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문은 세문으로 나누어져 있어 외삼문이라 하는데
가운데 문은 수령만이 출입하고 일반인은 좌우의 문을 사용하였다

 

 

 

 

아문(衙門)
수령이하 모든 사람이 말에서 내려 걸어서 출입하는 것이 통례였으며
또한 대문의 공간 일부를 이용하여 민원인들의 임시 대기실로 사용하였다

 

 

 

 

아문에 딸린 방으로 화로가 있다

 

 

 

 

도호부청사 전경
문학산이 바라 보이는 동헌 뒤쪽에서 봤다

 

 

 

 

인천도호부청사 안내도
참고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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