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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경복궁 건청궁

경복궁에서 열리는 건청궁 특별 개방 전시》를 보기 위한 걷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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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청궁(乾淸宮)은 1873년(고종 10) 처음 지어졌다. 건립 초기에는 임금의 초상과 글씨 등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또한 고종(재위 1852~1907)이 경복궁 후원(현 청와대 자리)에서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들러 신하들을 만나기도 했던 장소였다

건청궁이 경복궁에서 중요한 공간이 되었던 시기는 1885~1896년까지이다

1876년(고종 13) 화재로 경복궁 전각 830여 칸이 타버려, 왕실이 창덕궁으로 옮겨 갔다

1885년(고종 22) 경복궁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아직 불에 탄 전각이 모두 복구되지 못했으므로

고종과 명성황후(1851~1895)는 건청궁에서 머물게 되었다

건청궁은 이때부터 조선의 정책이 결정되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고종의 개화정책 중 하나인 전기가 처음 설치된 곳도 건청궁이었다

1895년(고종 32) 일본인이 경복궁에 침입해 건청궁에 있던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고종은 다음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며 이곳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건청궁은 1907~1909년 사이 결국 헐렸다

비어 있던 건청궁 터에 1938년 조선총독부 미술관을 지었지만, 1998년 철거하였다

문화재청은 2004년부터 2006년에 걸쳐 옛 자료를 근거해 건청궁을 다시 지었다

건청궁은 고종이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던 공간이자, 명성황후가 시해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건청궁(乾淸宮)

왕의 처소인 장안당 · 왕비의 처소인 곤령합 · 별채인 복수당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건청궁(乾淸宮) 현판

 

 

 

 

초양문(初陽門)

왕의 처소인 장안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초양문(初陽門) 현판

경복궁 장안당 동쪽에 있는 문으로 현판은 담계(覃溪) 옹방강(翁方綱 1733~1818)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든 것이다
옹방강은 중국 청나라의 저명한 서예가이자 고증학자이다
그의 서법은 당시 천하제일이라 사람들이 다투어 그의 글씨를 구하였고, 궁궐에도 그의 글자를 집자하여 만든 현판이 남아 있다
현판에는 옹방강의 서재를 뜻하는 「복초재(復初齋)」, 그의 호 담계(覃溪)라는 인장이 새겨져 있다
초양문은 양기(陽氣)가 처음으로 생기는 문이라는 뜻으로

양기가 처음 생긴다는 것은 입춘(立春)이나 초춘(初春)을 뜻하기도 하며, 태평성세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장안당(長安堂)

고종이 거처하는 생활공간이자 정치와 외교가 이루어지는 집무공간이기도 했다

고종은 각국 외교관 접견 장소로 이곳을 자주 이용해 왔다

장안당은 강녕전 같은 국왕의 정식 침전에 비해 구조가 자유롭다

본채의 서북쪽으로 침실인 정화당 · 서남쪽으로 추수부용루가 붙어 있으며, 복도각을 통해 동쪽으로 명성황후의 거처인 곤녕합과 연결된다

넓은 대청은 정면에 일월오봉도 장지문을 설치하고 그 앞에 어좌를 놓아 의례 장소로 사용했다

대청 서쪽 온돌방은 신하들과 외교관들을 접견하는 집무공간 · 대청 동쪽 온돌방은 내관들의 준비공간이나 대기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장안당(長安堂) 현판

경복궁 건청궁의 정당(正堂)으로 고종이 정사를 살피고 외국공사를 접견하던 장안당에 걸었던 현판이다
장안당은 「오래도록 평안하게 지내는 당」이라는 뜻으로, 당나라 수도 장안은 시문에서 도성을 통칭하거나 군왕을 이르기도 한다
고종의 어필 현판으로 일천성두환문장(弌天星斗煥文章 / 온 하늘의 별들이 문장에 빛난다)

주연지보(珠淵之寶 / 주연은 고종의 호) · 만기지가(萬幾之暇 / 만 가지 정무 속의 여가)라는 인장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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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장안당 현판이 한 점 더 전해지는데, 현판을 건물의 안팎에 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추수부용루(秋水芙蓉樓)

향원정을 조망하며 친밀한 분위기에서 손님을 맞이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4칸의 온돌방으로 구성된 정화당은 고종이 생활하는 곳이다

가장 안쪽이 왕이 잠을 자고 식사를 들거나 의관을 정제하는 사적인 공간이고, 그 앞의 방들은 알현실이나 내관들이 대기하는 장소이다

장안당은 본래 병풍과 보료 · 서안과 문갑 등 전통 좌식가구로 꾸몄을 것이다

그러나 1887년 건청궁에 전기가 설치되었고, 서양 각국 외교관을 접견하기 위해 카펫과 커튼 · 테이블과 의자 등

서양식 가구와 주방 설비 등을 갖추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서양식 가구와 실내장식이 적용된 공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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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3. 12 사진)

 

 

 

 

추수부용루(秋水芙蓉樓) 현판

장안당 서남쪽에 붙어 있는 누각이다

 

 

 

 

왕의 집무실 Ⅰ

장안당 넓은 대청에는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가 그려진 장지문을 설치하고

그 앞에 어좌를 놓아 의례 장소로 사용했다

 

 

 

 

왕의 집무실 Ⅱ

장안당 대청 서쪽 온돌방은 임금이 신하들과 외교관들을 접견하는 집무공간이다

 

 

 

 

왕의 집무실 Ⅱ

 

 

 

 

왕의 생활실

4칸의 온돌방으로 구성된 정화당은 고종이 생활하는 곳이다. 각 칸은 필요에 따라 문으로 막거나 개방할 수 있다

가장 안쪽이 왕이 잠을 자고 식사를 들거나 의관을 정제하는 사적인 공간이고, 그 앞의 방들은 알현실이나 내관들이 대기하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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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칠평상 · 주칠경상 · 유제촛대 등이 있다

 

 

 

 

왕의 생활실

왕이 잠을 자고 식사를 들거나 의관을 정제하는 사적인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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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문갑 · 주칠사방탁자 · 유제촛대 등이 있다

 

 

 

 

추수부용루(秋水芙蓉樓)

장안당 서남쪽에 붙어 있는 누각으로 향원정을 조망하며 친밀한 분위기에서 손님을 맞이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장안당 복도각

장안당에서 곤녕합으로 가는 복도다

 

 

 

 

곤령합 장지문

 

 

 

 

명성황후의 공간, 곤녕합(坤寕閤)

명성황후의 거처로, 생활공간만이 아닌 손님을 맞는 공간으로도 기능을 했다

곤녕합 본채는 2칸의 대청과 대청 양쪽의 온돌방, 남동쪽 누마루로 구성된다. 본채 동북쪽에 왕비의 침실인 정시합 4칸이 붙어 있다

대청 서쪽 온돌방은 남쪽 방향으로 설치된 서행각 및 복도와 연결되는데, 서행각과 복도는 고종의 거처인 장안당으로 이어진다

대청 남동쪽의 두 칸이 누마루인 옥호루이다. 곤녕합 대청 동쪽 온돌방은 알현실로 사용되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처소에서 알현했던 서양인들은 서양식 가구로 꾸며진 알현실과 식당에 대해 기록을 남겼다

동온돌에서 연결되는 정시합은 왕비의 사적인 공간이다

왕비가 잠을 자거나 식사하는 방은 가장 안쪽에 있고, 주변의 방들은 궁녀들이나 내방객의 대기장소로 사용되었다

침방을 둘러싼 퇴칸은 궁녀들이 세수물이나 의복 등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곤녕합 서행각은 궁녀들이 머물며 일하는 공간으로, 한 방은 주방으로 사용되었다

명성황후의 침실은 본래 병풍과 보료 · 주칠장 · 문갑 · 경상 등 좌식가구로 꾸며졌을 것이지만

알현실은 외국 부인들 같은 손님을 맞기 위해 서양식 가구와 실내장식을 갖추었다

 

 

 

 

궁녀 생활실(곤녕합 서행각)

곤녕합 대청 서쪽 온돌방과 남쪽으로 연결된 서행각은 궁녀들이 머물며 일하는 공간으로, 한 칸은 주방으로 사용되었다

 

 

 

 

정화당(正化堂)

4칸의 온돌방으로 구성된 정화당은 고종이 생활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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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녕합 서행각에서 봤다

 

 

 

 

궁녀 생활실

 

 

 

 

궁녀 생활실

개다리소반 · 유경 등이 있다

 

 

 

 

비숍 여사가 본 건청궁

영국 여행작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은 조선에 머무르는 동안 몇 차례 경복궁을 방문했었다

그가 쓴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는 1895년 명성황후의 초대로 건청궁을 방문하여 서양식 식사를 대접받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곤령합 남행각

 

 

 

 

곤녕합(坤寕閤) 편액

건청궁은 1873년(고종 10) 경복궁 북쪽에 세워졌는데 그때 제작한 고종의 현판으로 추정된다

 

 

 

 

옥호루(玉壺樓)

명성황후가 일상생활 공간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가 일본인 자객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7년간 왕실 의사로서 왕비를 모신 미국인 앨러스 벙커(Annie Ellers Bunker) 여사는 명성황후에 대해

성품이 부드럽고 친절하며 조선 여성의 미를 갑춘 미인이라고 회상하였다

1895년 2월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만주까지 침략하자 조선 왕실은 러시아와 손을 잡고 일본을 국내에서 철수시키려 하였다

이에 일본 군부는 왕실을 압박하는 비상사태를 만들기 위해 10월 8일 새벽에

민간인 복장을 한 한 일본 장교들이 건달들을 끌고 건청궁에 난입하여 왕비를 시해하였다

폭도들은 왕비의 시신을 건청궁 동쪽 언덕 녹산 자락에서 태우고 남은 뼈를 그 자리에 묻었다

이후 왕실에서 이를 거두어 경운궁(현 덕수궁)에 시신을 안치하고 국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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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녕합 대청 남동쪽의 두 칸이 누마루이다

 

 

 

 

옥호루(玉壺樓) 편액

일본인들은 장안당과 곤령합 사이 뜰로 황후를 끌고와 시해했으며
황후의 시신을 곤령합의 일부인 동쪽 건물 옥호루의 방 안으로 잠시 옮겨 놓았다가
건청궁 동쪽의 인공산인 녹산(鹿山) 남쪽에서 시신을 불태웠다고 기록돼 있다

 

 

 

 

사시향루(四時香樓) 편액
곤녕합 남루(南樓)의 동쪽 편액이다
언제나 꽃향기가 끊이지 않는 누각이다

 

 

 

 

녹금당(綠琴堂)
곤녕합의 뒷쪽인 북쪽에 있는 건물이 바로 복수당이고 그 서쪽의 행각이다

 

 

 

 

녹금당(綠琴堂)

 

 

 

 

녹금당(綠琴堂) 편액

 

 

 

 

복수당(福綏堂)

왕의 처소인 장안당 · 왕비의 처소인 곤령합 · 별채인 복수당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복수당(福綏堂) 현판

 

 

 

 

복수당(福綏堂) · 녹금당(綠琴堂)

 

 

 

 

녹금당(綠琴堂)

 

 

 

 

곤령합 · 장안당

 

 

 

 

녹금당 · 곤령합 · 장안당

 

 

 

 

녹금당 · 곤령합

 

 

 

 

관문각지(觀文閣址)
고종 10년(1873)에 건립된 관문각 터다
장안당 뒤쪽에 위치한 관문각은 당초에 관문당으로 불렸으나 고종 12년(1875)에 어진을 봉안하고 관문각으로 고쳤다

 

 

 

 

관문각(觀文閣) 사진
고종 28년(1891), 러시아 건축가 세레친 사바틴과 친군영이 공사를 맡아 2층(일부 3층)의 서양식 건물로 개축되었다
최초의 양관으로 불리기도 한 이 건물은 국왕의 서재 겸 집무실인 집옥채와 대조를 이루었다
집옥채와 관문각 사이에는 서양식 기계추 시계탑도 세워졌다
사바틴이 관문각에 기거하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목격하여 고발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관문각이 헐린 시기는 광무 5년(1901) 이후로 보인다

 

 

 

 

함광문(含光門)
곤녕합(坤寧閤)의 남쪽 행각문이다
함광(含光)은 빛을 머금은 문이라는 뜻이다

 

 

 

 

함광문(含光門) 현판

 

 

 

 

필성문(弼成門)

 

 

 

 

청휘문(淸輝門)
건청궁의 동쪽에서 곤녕합으로 드나드는 문이며 청휘(淸輝)는 맑은 달빛이라는 뜻이다

 

 

 

 

청휘문(淸輝門) 편액

 

 

 

 

자선당(資善堂) 기단과 주춧돌
자선당은 왕세자 및 세자비의 거처로서, 자선은 어진 성품을 기린다는 뜻이다
자선당은 세종 9년(1427) 근정전 동쪽에 건립된 이후, 여러차례 화재와 소실로 중건을 거듭하다 고종 25년(1888)에 중건되었다
조선의 국권이 상실된 이후 1914년에 일본은 자선당을 철거하여 일본으로 옮겨갔다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는 1916년에 자선당을 동경에 있는 자신의 자택으로 옮겨 조선관(朝鮮館)이라는 현판을 달고 사설미술관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건물은 모두 소실되고 기단과 주춧돌만 남게 되었다
이것을 1993년 당시 문화재 전문의원 김정동 목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가 발견하여 1995년 국내로 들여왔으나
구조 안전상의 문제로 동궁 권역인 자선당 복원 건물의 기초를 세우는 데에 재사용하지 못하고 지금 이 자리에 남게 되었다

 

 

 

 

녹산

자선당(資善堂) 기단 옆에 있는 인공 산으로

10월 8일 새벽, 민간인 복장을 한 한 일본 장교들이 끌고 온 건달들이 시해한

명성황후의 시신을 태우고 남은 뼈를 묻은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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