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스마트허브전망대 · 별망성지 · 잿머리성황당 · 홍명원 묘를 가기 위한 걷기다
시우역 2번출구
시점이다
범지기로 141번길
영풍전자 2공장이 보인다
범지기로 141번길
정도이앤피 본사가 있다
한일섬유 · 일신제약
범지기로에서 전망대로 오르는 길이다
전망대로 오르는 벚나무 길이다
희망의 숲 빗돌
소 머리 형태의 나무 뿌리가 빗돌 밑받침에 올려져 있다
안산 스마트허브전망대
안산스마트허브전망대는 안산시는 단원구 원시역 인근 전망대 공원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점심시간 낮 12시~오후 1시) 및 공휴일 제외다
안산스마트허브전망대에서는 안산시 및 안산스마트허브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망원경으로 멀리 대부도와 인천 송도신도시까지도 전망이 가능하다
또한 전망대까지 차가 올라 갈 수 있고 넓은 주차장도 있어 누구나 쉽게 이용 할 수 있다
송산그린시티전망대
타원타크라5차 지식산업센터 · 대한약품공업 반월공장이 앞쪽에 있다
안산도시개발(주) · 강옥순골프아카데미
별망성지(경기도 기념물 제73호)
조선 초기 남양만을 통해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돌로 쌓아 만든 성의 터로 군영지로도 쓰인 흔적이 남아있다
이 별망성지는 임진왜란과 한국 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1988년 복원한 것이다
앞의 산이 별망성지가 있는 산이다
범지기로와 산성로가 만나는 사거리다
별망로
신명식당
별망성지(別望城址 경기도기념물 제73호) 안내판
별망성지복원기원초석(別望城址復元祈願礎石)
1987년 5월 24일 제1회 별망성 예술제에 즈음하여
안산문화예술인협의회 · 반월공단경영인협의회 · 반월공업공단 · 안산시 · 해군본부
별망성지 성곽길
별망성(別望城) 제단
안산푸르지오아파트 · 송산그린시티5차아파트
별망성지 치(雉)
별망성지 날머리 계단
엔피씨주식회사
별망성지에서 잿머리성황당으로 가는 길이다
롯데알미늄 버스정류장
대나무 · 소나무 숲
엠티브이2로
잿머리성황당(안산시 향토유적 제1호) 방향안내판
잿머리(城頭里) 안내 빗돌
골우물(古井) · 안말(安村 · 內村) · 도란말(廻村)을 총칭하여 잿머리라고 불렀는데
이는 도란말에 있는 해봉산의 산성(山城)과 잿머리성황당을 신성시하여 주민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며 마을 구심체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법흥사
잿머리성황당 갈림길이다
법흥사 대웅전
서해유격부대전적비
법흥사 안에 있다
잿머리성황당
잿머리성황제 전수회관이 왼쪽에 있다
잿머리성황제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8호이다
잿머리성황당(안산시 향토유적 제1호)
안산의 전통 민속문화를 대표하는 곳으로, 성곡동 잿머리 주민들이 해마다 봄가을 두 번에 걸쳐 성황제를 지냈던 곳이다
봄 성황제는 성황을 모시고 유가(遊街)를 돌며, 가을에는 햇곡식으로 시루를 준비하여 신곡맞이로 올렸으나
봄 성황제는 이미 그 전통이 끊어졌고, 가을 성황제는 1985년부터 안산시의 문화행사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 성황제의 유래는 고려 때 내의시랑 서희가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기 위해 이곳 아랫편 해안에서 배를 타자
별안간 폭풍우가 몰아쳐 제사를 지내고 풍랑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날 밤 서희의 꿈에 신라 경순왕의 비 홍씨와 홍씨의 어머니 안씨가 소복을 하고 나타나
"나라가 망한 뒤 비명에 죽은 것이 한이 되어 혼령이 떠돌아다니므로 거처를 얻고자 풍랑을 일으켰다"라고 했다
다음 날 서희는 그곳에 성을 쌓게 하고 사당을 짓고서는 화가를 시켜 두 모녀의 영정을 그려 모신 후 위령제를 지내게 했다
그러자 바다가 잠잠해져서 무사히 사신 행차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그 후부터 중국에 드나 들 때면 반드시 그 사당의 혼령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성황당은 고려 초기에 처음 세워진 후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새로 지어지거나 고쳐 지어졌다가
1966년 잿머리성황당 복원 추진위원회에 의해 단청을 입힌 47.5㎡(14평) 크기의 콘크리트 기와집으로 다시 지어졌다
잿머리성황당
치성이나 굿을 하는 곳이다
송산그린시티전망대
우음도에 있는 전망대이다
해봉 홍명원 선생 묘원 입구 빗돌
시비(詩碑) · 기념비 · 거사비(去思碑) 등이 옆에 있다
홍명원 선생 묘소
해봉공 사적비(海峯公 事蹟碑) · 안내판이 옆에 있다
장덕군자 해봉 홍명원(長德君子 海峯 洪命元) · 정경부인 파평윤씨(貞敬夫人坡平尹氏) 묘
묘역은 서해바다가 바라보이는 서쪽 경사면에 위치해 있는데, 묘는 정경부인 파평윤씨와 쌍분을 이루고 있다
묘 앞에는 2기의 묘갈(墓碣) · 사적비(事蹟碑) · 상석 · 향로석이 있고, 동자석(童子石)이 양 옆에 있다
장덕군자 해봉 홍명원(長德君子 海峯 洪命元) 묘갈
왼쪽에 있는 묘갈은 현종 2년(1661)에 건립된 것으로,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이 썼다
비신은 높이 143cm · 폭 64cm · 두께 20cm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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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겸판의금부사 세자이사지경연춘추관성균관사 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
(贈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 世子貳師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 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
오위도총부도총관행 가선대부경기관찰사겸 병마수군절도사순찰사개성부유수 영평대도호부사홍공휘명원지묘
(五衛都摠府都摠管行 嘉善大夫京畿觀察使兼 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開城府留守 永平大都護府使洪公諱命元之墓)
정경부인파평윤씨부
(貞敬夫人坡平尹氏附)
효녀 홍소저 묘(孝女 洪小姐 墓)
홍우악(洪禹岳) · 숙부인 황주변(淑夫人 黃州邊) 묘가 옆에 있다
효녀 홍소저 묘(孝女 洪小姐 墓)
홍소저는 해봉 홍명원 선생의 딸이다. 홍소저는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몹시 슬퍼하였다
문중 사람들이 장지를 정하기 위하여 논의해 잿머리 마을의 산으로 결정하였는데
이때 지사(地師)가 “이곳은 게가 엎드린 모양의 지형이기 때문에 당대에는 크게 될 인물을 볼 수 있는 곳이지만
파도가 몰아치기 때문에 이곳을 장지로 하면 딸 홍소저의 목숨이 크게 위태로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문중에서는 다른 곳으로 장지를 옮기려 하였으나
“어찌 한 사람 때문에 대사를 그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곳이 길지라면 마땅히 안장(安葬)해야 할 것이다”라 하였다
문중에서는 홍소저의 결심을 막을 수 없음을 알고 이곳에 안장하였다
과연 삼우제(三虞祭)를 지낸 뒤 그녀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으며, 아버지 무덤 밑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이곳에서는 그 효행을 기려 지금까지도 매년 홍명원의 제일(祭日)이면 제사를 지낸 뒤 그 제물로 다시 그녀의 명복을 빌고 있다
홍우악(洪禹岳) · 숙부인 황주변(淑夫人 黃州邊) 묘
통훈대부하양현감겸 대구진관병마동첨절제도위홍공우악묘 배숙인평산신씨부좌
(通訓大夫河陽縣監兼 大丘鎭管兵馬同僉節制都尉洪公禹岳墓 配淑人平山申氏祔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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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우악은 해봉 홍명원 선생의 증손자이다
시흥5교
시화대교
오른쪽 산이 홍명원 선생 묘가 있는 산이다
흥일스텐 버스정류장
마침점이다
걸은 거리 11.2km · 소요시간 4시간 3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