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갤러리 그리브스 기획전 《젊은 날의 초상, 우리들의 젊은 날》
1950~2023 한국전 발발 73주년 ·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한 2023년 ·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에서 이슬처럼 사라진 젊은 날의 초상을 만난다
어린 나이에 UN군의 이름으로 참전했던 파병 용사를 만나고 어린 나이에 학도병 · 소년소녀병의 이름으로 참전했던 어리고 젊었던 용사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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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젊은 날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전쟁 · 평화 · 안보의 이름으로
70여년 전, 전장 속에서 젊은 나날을 보낸 그들의 젊은 날의 초상을 그려 보낸다
임진각 평화곤돌라
DMZ 하늘길을 지나 임진강을 건너 임진강전망대와 갤러리 그리브스까지 즐길 수 있다
민통선을 오가는 총 길이 1.7km의 곤돌라이다
갤러리 그리브스
갤러리 그리브스
옛 주한미군 시설인 볼링장을 갤러리 그리브스로 탈바꿈했다
전시 현황 안내도
우리들의 젊은 날 · 젊은 날의 초상
전시 소개 글이다
포토존 #2 / 우리들의 젊은 날
한국전쟁 / 1950 한국전쟁 발발 ~ 1953 캠프그리브스 주둔
1950년 6월 25일 4시, 한국전쟁은 북한이 기습적으로 남침하여 발발했다
유엔군과 중국인민지원군 등이 참전하여 세계적인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될 뻔하였으나
1953년 7월 27일에 체결된 휴전협정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정전협정체결과 캠프 그리브스 주둔
6 · 25전쟁을 휴전하기 위해 유엔군과 조선인민군, 중국 인민지원군 간에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협정이 정전(휴전)협정이다
정전협정 체결 후, 대한민국 정부는 주한 미군에게 토지를 제공하고, 군영을 설치하는 것으로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하였다
캠프 그리브스 명칭 유래는 인디언 아파치족과 싸워 이긴 전쟁 영웅 클린턴 그리브스 하사로 알려져 있다
캠프 그리브스에는 냉전 동안 미국 제2보병사단에 예속되어 있던 제9보병연대 1대대, 제20보병연대 1대대 등이 교대로 배치되었고
마지막으로 제506보병연대 1대대가 주둔하였다
2002년 체결된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에 따라 미국 시설관리사령부는 캠프 그리브스를 2004년 11월에 폐쇄하고
주한 미군에서 2007년 8월에 우리나라로 반환하였다
전쟁과 일상 / 존 리치 이야기
미국의 NBC의 전설적 기자인 존 리치(John Rich)가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참여해 촬영한 컬러사진이 2010년에 공개됐다
그는 미 해병대원으로 2차대전에 참전하기도 했는데 한국전의 개전과 종전을 내내 지켜본 미국 기자이다
전쟁 속에서 다양한 일상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은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그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국전쟁의 모습을 다양한 시각으로 사진 속에 담아냈으며
전쟁으로 황폐했던 전시 상황부터 한국전에 처음 도입되었던 신무기
전시 상황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네 모습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존 리치 作
전쟁의 목격자 / 마거릿 히긴스 이야기
미국의 여성 종군기자로 한국전쟁 · 베트남전쟁에 종군해 취재하였으며 1951년 여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50년 도쿄 특파원으로 발령받고 부임하자마자 한국전쟁이 일어났으며 그녀는 재빨리 서울의 미8군 군사고문단을 찾아갔다
그 다음 날 새벽에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었고 어렵게 서울을 탈출
수원에서 미군 군용기를 타고 도쿄로 날아가 한강 인도교 폭파 기사를 송고한 후 맥아더 원수와 함께 한국에 다시 들어왔다
그녀는 1950년 12월까지 한국전쟁을 취재하였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951년 봄에 〈War in Korea〉를 집필했다
2010년, 대한민국 정부는 마거릿 히긴스의 공을 기리기 위해 훈장을 수여했다
"한국에는 자네에게 맞는 설비가 없네. 여성용 설비 말일세"
"한국에서 화장실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전 독일에서 살아 남았고, 서울에서도 걸어 나왔어요. 그리고 다시 걸어 들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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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장군과 히긴스와의 대화
War in Korea 中
서울에 이르는 길은 피난민으로 붐볐다
수많은 한국 여인들이 아이들을 등에 업고 큰 짐을 머리에 이고 피난길을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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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 in Korea 中
한강 인도교
1950년 6월 28일 새벽, 폭파된 한강 인도교이다
그녀의 유해는 워싱턴의 알링턴국립묘지에 묻어져 있다
우리들의 젊은 날 #1 / 파병장병들의 가려진 이야기
한국전쟁 당시, 유엔의 지원 결의에 따라 유엔 21개국은 유엔 창설 이후 처음으로 유엔기를 앞세우고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6 · 25전쟁에 참전했다
한국의 지형이 산악지대가 많고, 또 겨울에는 몹시 추워서 일부 어린 나이의 유엔군들은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낯선 한국 땅에서 피를 흘리며 자유를 수호하며, 이들이 남긴 수많은 전공과 희생은 오늘날 우리 세대가 깊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젊은 날
1951년 4월 24일, 24번째 생일을 맞이한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미8군 보병으로 한국전쟁에 파병되었다
그 후 8개월 동안 전쟁터를 누비며 300번의 공연을 했다
포화 속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20대의 젊은 청년, 번스타인은 어느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됐다
반세기를 훌쩍 넘길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한국전쟁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프랭크 프레이터 상사의 젊은 날
프랭크 상사는 1950년 미 해병대에 입대한 뒤 해병대 1사단 소속으로 6 · 25전쟁에 참전했다
벙커 근처에서 총격으로 엄마 고양이를 잃고 울고 있는 아기 고양이를 발견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는 고양이에게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서 태여났다는 의미로 「미스 햅(Miss Hap)」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십, 몇백 명이 죽어 나가는 전쟁터에서도 작은 고양이를 위해 애쓰는 그의 모습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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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25전쟁 당시 새끼 고양이에게 우유를 먹이던 美 참전용사 사망 / YTN뉴스 2018. 1. 28
지미 밴 플리트의 젊은 날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 지미 밴 플리트 2세 공군 중위는 한국전에 참여할 의무가 없었음에도 아버지가 사령관으로 있는 한국전에 참전하였다
하지만 그는 전장에서 전사했고, 그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가 마지막 편지가 되었다
밴 플리트 아들 지미의 비행기는 1953년 4월 북한의 순천지역에서 야간 폭격 임무 수행 중 격추 당해 실종되었으며
밴 플리트 중위는 그후 2년 뒤 전사자로 공식 판정받았다
후크고지, 영국 장병들의 젊은 날
6 · 25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이자 영국 연방군의 일원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해 대한민국을 지켜낸 영국군 장병들
17~20세 나이의 청년(청소년)들이 징병 병사로 후크고지 전투에 참전했다
후크고지는 임진강 북단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판부리 사미천 좌측 군사분계선을 끼고 형성된
해발 200미터 남짓한 서북에서 동남으로 비스듬하게 걸쳐 있는 능선 고지이다
지형이 후크(hook)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후크 고지 전투는 1952년 10월부터 1953년 휴전 직전까지 미군과 영연방군이 4차에 걸쳐 중공군과 격전 끝에 사수함으로써
임진강 북단의 연천군 장남면 · 백학면 · 미산면 · 왕징면 일대를 대한민국 영토로 귀속시킨 위대한 전투이다
포토존 #1 / 젊은 날의 초상
영상 상영관
1951년 7월 10일 정전회담을 앞두고 임진강 임진나루에 임시다리가 건설되었다
포토존 #2 / 우리들의 젊은 날
주제영상관에서 영상을 보여준다
우리들의 젊은 날 #2 / 우리들의 젊은 날
학도병은 1950년 6 · 25전쟁 당시 학생 신분으로 자진 참전하게 된 대한민국 학생들로, 학도의용대 · 학도호국단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제대로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계급장이나 군번도 없이 오로지 이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일념으로 뛰어들었다
책 대신 수류탄 몇 개에다 총 한 자루만을 들고 전장에 뛰어들어
악전고투하면서 싸우다 죽거나 다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포로로 붙잡혀 간 학생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대부분 나이가 14~17세에 불과했다
조국을 위해 피어보지 못하고 저버린 이름없는 영웅들, 그들의 젊은 날을 대한민국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학도병 이우근 이야기
6 · 25전쟁에 16세에 학도병으로 참전하여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중 전투 중 포항여자중학교 앞 벌판에서 전사했다
당시 동성중학교 3학년이던 이우근 학도병(1934~1950)의 옷 속 수첩에서 핏자국에 얼룩진 그의 일기와 어머니께 전하는 편지가 발견되었다
이 이야기는 2010년 개봉한 영화 《포화속으로》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그의 일기와 편지는 전쟁이 가져오는 파괴에 대한 두려움,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조국을 위해 담대히 전쟁 속에 몸을 던진 어린 학도병의 당시 심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십여 명을 될 것입니다
저는 2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괴뢰군은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저희들 앞에 도사리고 있는 괴뢰군 수는 너무나 많습니다. 저희들은 겨우 71명 뿐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랑, 형제들도 다시 한 번 못만나고 죽을 생각하니, 죽음이 약간 두렵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제가 아니고 제 좌우에 엎디어 있는 학우가 제 대신 죽고 저만 살아가겠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천주님은 저희 어린 학도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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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중학교 3학년이던 이우근 학도병의 옷 속 수첩에서 핏자국에 얼룩진 그의 일기와 어머니께 전하는 편지가 발견되었다
1950 그날의 기억 / 미디어 아트
끊어진 대동강 철교 위의 난민들 등과 같은 동영상이다
캠프 그리브스 소개
캠프 그리브스는 DMZ 남방한계선에서 2km 떨어진 곳으로 민간인출입통제선 내 위치하고 있다
캠프 그리브스는 국내 가장 오래된 미군기지 중 한 곳으로 미군이 1953년부터 조성하여
미 육군 2사단 506연대가 2004년 8월 철수할 때까지 50여 년간 주둔했던 곳이다
2007년 우리나라로 반환 이후, 경기도가 2013년 역사 · 문화 체험시설로 개방한 이곳은
미군이 사용했던 건축물을 원형 그대로 보존 활용한 민통선 내 유일한 역사 · 문화 · 예술의 장소로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있다
2016년 문화재생사업으로 리모델링한 10개 전시관을 중심으로 DMZ평화정거장(DMZ peace platform)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역사 · 문화 · 예술이 집약된 DMZ평화 관광의 거점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캠프 그리브스 볼링장 재현 디오라마
미군 506연대 본부 중대 깃발
미군 공수부대 정복
미군 공수부대 정복 착장
캠프 그리브스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