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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초안산~예안이씨 하동천(각심재)~북서울 꿈의숲

조선시대 내시와 궁녀들의 무덤이 천여 기나 있어 「내시네 산」이라 불리는 초안산(115.4m)

예안이씨 묘가 있는 「각심재」 그리고 서울 북쪽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북서울 꿈의 숲」을 다녀왔다

 

 

녹천역 1번 출구
시점이다

 

 

 

 

초안산 마루금
녹천역 1번출구에서 언덕을 오르면 마루금이다
하지만 길이 많아 들머리 찾기가 쉽지 않았다

 

 

 

 

군 교통호

 

 

 

 

군 초소
예전 헬기장 앞에 있다

 

 

 

 

창동저지선 교통호
초소 언덕을 오르자 타이어로 쌓은 교통호가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국군이 이곳에 창동저지선을 치고 북한군과 치열한 접전을 별여 피아간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던 곳이다

 

 

 

 

삼각점

나무가지에 선물들이 매달려 있다

 

 

 

 

헬기장
교통호 옆 정자를 지난 곳이다

 

 

 

 

초안산 마루금

 

 

 

 

문인석 · 상석
문인석 어깨 부위가 부러져 실리콘으로 붙여 놓았다

 

 

 

 

문인석

문인석 어깨 부위가 부러져 실리콘으로 붙여 놓았다

 

 

 

 

비석 · 상석

 

 

 

 

문인석

 

 

 

 

문인석
위의 문인석과 형태가 비슷하다

 

 

 

 

비석
묘는 없어졌지만 상석과 비석은 온전하다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석
통정대부란 국가 중요정책을 결정하는 정3품 벼슬이다

 

 

 

 

비석

부러진 비석 · 상석 등 석물들이 널려 있다

 

 

 

 

비석

누구의 비석인지 문양이 아름답다
널려져 있는 석물 중 하나다

 

 

 

 

비받침과 머리가 짤린 석상이 있다

 

 

 

 

절제사 김공휘만청묘 · 정부인 평산강씨부좌(節制使金公諱滿淸之墓 · 貞夫人平山庚氏祔左)
절제사는 조선시대 지방의 정3품 무관직의 하나다

 

 

 

 

문인석
다시 한 바퀴를 돌고 내려왔다

 

 

 

 

비석골근린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망주석(望柱石)

초안산의 조선시대 분묘군에서 발견되는 문인석과 같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16세기~조선 말기로 추정된다

횃불을 연상시키는 기둥 모양으로 140cm~160cm의 크기이다

*

망주석은 묘 앞 양 옆에 하나씩 세우는 대략 2m 정도 높이의 기둥으로

먼 곳에서 바라보아 묘를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표지이며 나아가 영혼이 자기의 유택(묘)을 찾아오도록 안내 역할을 한다

이는 중국에서 전하여 통일신라부터 발전되기 시작해 8세기 경에는 왕릉의 석물 배치가 정비됨에 따라

묘제석물로 자리를 굳혀 오늘날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의 괘릉과 흥덕왕릉에 보이며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능원은 물론 일반사대부의 묘에도 예외없이 망주석이 세워졌다

*

14기의 망주석이 있다

 

 

 

 

비석골근린공원

망주석은 크게 대석(臺石)과 기둥으로 나뉘는데, 일반적인 모습은 횃불을 연상시키고

기둥의 중간을 다람쥐나 쥐 모양의 세호(細虎)를 좌측(동향)에는 올라가고 우측(서향)은 내려가는 모양(左上右下)을 새겨 넣고

머리는 연꽃 모양의 다양한 형태로 만들었다

 

 

 

 

비석골근린공원

초안산과 수락산 · 불암산 등 노원구 일대에서 수습한 묘지 석물들이다

*

상석 2기 · 비석 2기가 왼편에 있다

 

 

 

 

문인석(文人石)

형태는 복두공복(幞頭公服)과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입고 두손을 모아 홀(芴)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복두공복을 입고 있는 형태의 문인석은 조선 초 ~ 조선 중기로 추정된다

금관조복 차림의 문인석은 16세기~조선 말기까지 유행한 문인석으로 추정된다

*

13기의 문인석이 있다

 

 

 

 

문인석(文人石)

문인석은 무덤 앞에 세워진 사람 형상의 석물로서 중국 한나라 때부터 세워지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순장풍습을 대신해 토용을 묻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무인석 · 석수와 함께 능묘를 수호하는 의미의 석물이다

묻혀 있는 사람이 살았던 시대에 따라 모양과 크기 · 형태가 각기 다르며

그 사람이 생전에 누렸던 지위나 후손의 권세에 따라 그 크기와 조각 수준 등이 다르다

현재 초안산 일대에 남아 있는 석인상은 금관조복 차림의 문인상이 주를 이루고 있으므로 16세기 이후부터 본격적인 묘역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자석(童子石)

초안산의 조선시대 분묘군에서 발견되는 문인석과 같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16세기~조선 말기로 생각된다

동자상은 석인상(石人像)의 일종으로 주요 인물을 수행하는 시자(侍者)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어린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문인석과 달리 관모를 쓰지 않고 두손으로 무언가를 공손히 들고 있는 모습이다

조선시대에는 묘지 내의 석물 설치에  제한을 엄격하게 두었기 때문에

동자상은 학문적 업적이 뛰어났으나 벼슬에 오르지 못한 경우나 당하관 이하의 경우에 동자석상을 세웠으며

문관상 보다 크기가 작은데 이는 묻혀 있는 사람의 신분과 무관하지 않다

동자상이 묘의 석인상으로 조성된 것은 16세기 이후로 볼 수 있다

동자상의 기원은 도교와 불교의 동자상에서 찾을 수 있으며 초안산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동자상은

대체로 쌍상투 또는 민머리이며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이것은 조선시대 사찰에 조성된 동자상의 도상과 일치되는 것으로 크기는 90cm ~ 110cm 이다

*

6기의 동자석이 있다

 

 

 

 

문인석(文人石)  · 동자석(童子石)

 

 

 

 

조선시대 분묘군 / 사적지 제440호
초안산 비석골공원 옆으로 새로 조성된 듯하다

 

 

 

 

월계고등학교

 

 

 

 

향천사

 

 

 

 

예안이씨묘하동천(禮安李氏墓下洞天) 출입문

동천(洞天)이란 신선이 사는 곳 또는 신선이 내려와 놀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일컫는다
동(洞)은 골 또는 골짜기라는 뜻을 지닌다
따라서 골짜기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자리잡고 있어서 대체로 마을과 뜻이 통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예안이씨 조역 안내도(禮安李氏 兆域 案內圖)

 

 

 

 

선성문(宣城門)
선성은 예안의 옛 지명이다
월계동 각심재 삼문이다

 

 

 

 

월계동 각심재(恪心齋) /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6호

민영휘(閔泳徽 1852~1935)의 아들 민대식(閔大植 1882~ ?)이 두 아들 민병옥과 민병완을 위해 같은 모양으로 나란히 지은 두 채의 주택 가운데 하나다

원래 이 집은 종로구 경운동 66-1번지에 있던 것을 예안이씨 대종회에 기증되어 1994년 3월 18일 현재의 장소로 이전한 것이다

건평은 약 51평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가이며 화신백화점 등을 설계한 박길용( 朴吉龍 1898~1943)의 작품으로

1930년대 후반 개량 한옥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 집으로 한옥가옥에서 현관을 만들고 변소와 목욕탕을 건물 내부에 설치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긴 복도를 둔 점 등은 한국 주택사의 변천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숭덕당(崇德堂)

 

 

 

 

좌의정 정간공 신도비(左議政 貞簡公 神道碑) /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5호
조선 명종 때 청백리인 이명(李蓂 1496~1572) 선생의 신도비로서 선조 7년(1574)에 수립되었다

이명 선생의 자는 요서(堯瑞) 호는 동고(東皐) 시호는 정간(貞簡)으로서 연산현감 이보간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종 20년(1525)에 사마시에 합격한 후 중종 23년(1528)에는 문과에 합격하여 승문원권지에 임명되었다

이후 사조를 거치는 동안 성균관적적 사헌부지평 호조정랑 홍문관교리 대사간 대사헌 이조판서 좌찬성 우의정 좌의정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그후 선조 5년(1572)에 병사하시니 그의 나이 77세였다

공이 관직에 있을 때 사심없이 직무에 충실하였을 뿐 아니라 나라의 정사에 대해서는 직언을 서슴치 않았다

그 중 그가 대사헌으로 있을 때 당시 이기 등이 정권을 휘두르며 선비들을 압박하자 이의 부당함을 공격한 것은 너무도 유명하다

비문은 선조 때 대제학을 지낸 김귀영이 지었으며 글씨는 춘추관기사관 심충겸이 썼다

묘역에는 부 조모 삼대의 분묘와 실전된 선조들의 설단이 있다

 

 

 

 

시조 보문각 제학공 휘 익 신도비(始祖 寶文閣 提學公 諱 翊 神道碑)

 

 

 

 

좌의정 정간공 신도비(左議政 貞簡公 神道碑) 신비(新碑)

 

 

 

 

각심재(恪心齋) / 서울시 민속자료 제16호
각심재는 정성껏 공경하며 근신(勤愼)하는 마음을 뜻한다
원래 종로구 경운동 66번지 1호, 천도교 수운회관 남쪽 민익두 가옥(서울시 민속자료 제15호)에 위치하였는데
도로 개설로 헐리게 되자 소유주가 예안이씨종중회에 기증함으로써 1994년 3월18일 예안이씨묘역으로 이전하였다
1919년 경성공업전문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화신백화점 등 많은 건축물을 설계했던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하였다

 

 

 

 

각심재 뒷꼍
오른쪽 건물이 사당인 추원사인데 평시에는 출입할 수 없다

 

 

 

 

두 건물 처마가 서로 붙어있다

 

 

 

 

추원사 삼문

 

 

 

 

증 영의정 휘 보간(贈 領議政 諱 輔幹 6세) 묘소

 

 

 

 

염광고등학교

 

 

 

 

염광고교를 지나 우이천을 따라간다

 

 

 

 

다둥이가족
북한산과 도봉산이 이어지는 소귀고개 아래에서 흘러 내리는 우이천을 따라 걷다 보면
출산 장려와 화목한 가정의 소중함을 알리는 다둥이가족이 있다

 

 

 

 

우이천
월계2교에서 봤다

 

 

 

 

북서울 꿈의 숲
북한산이 멀리 보인다

 

 

 

 

방문자센터로 가는 다리다

 

 

 

 

디자인 서울 갤러리

 

 

 

 

창녕위 궁재사(昌寧尉 宮齋舍) / 등록문화재 제40호
조선 23대 왕인 순조의 둘째 딸 복은공주와 부마 창녕위 김병주를 위한 재사이다
한일병합 후 김병주의 손자 김석진이 울분을 참지 못하여 자결한 곳이기도 하다
제사는 원소 곁에 지어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곳이지만 이곳은 도시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살림집을 겸하여 지어졌다
현재 안채 · 사랑채 ·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채 앞으로 아래채가 있었으나 6 · 25전쟁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안채 역시 6 · 25전쟁 때 파괴되었으나, 1955년 재건축되었다
안채의 날개채에는 제사를 위한 4칸반 규모의 제청이 있다. 이렇게 재청이 사랑채가 아닌 안채에 위치하는 것은 특이한 사례이다
집의 동남쪽에는 복은공주의 동생인 덕온공주의 집이 자리하고 있다
왕족의 집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뛰어난 재료와 구조를 지니고 있어 건축적으로 가치가 높으며 재사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경기지방 살림집의 형태를 취하는 덕온공주의 집과는 달리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월광대(月光臺) · 월광폭포(月影瀑布)
월영지로 떨어지는 월광폭포의 청량감과 달을 비춰볼 수 있는 월광대다

 

 

 

 

월영지(月影池)
전통정원의 분위기에서 달을 비춰볼 수 있는 연못이다

 

 

 

 

청혼벤치에서 빅터

 

 

 

 

청혼 벤치

 

 

 

 

월영지(月影池)

 

 

 

 

북한산
예전 케네디 대통령의 옆 얼굴이라 했던 적이 있다

 

 

 

 

문화광장
초등학생들의 그림 타일이다

 

 

 

 

볼플라자
전망대가 뒤로 보인다

 

 

 

 

볼플라자 옆 계곡이다

 

 

 

 

볼플라자

 

 

 

 

거울 못
아이들의 물놀이터가 되었다

 

 

 

 

전망대
TV 연속극 「아이리스(IRIS)」에 나온 곳이다

 

 

 

 

전망대 가는 길
경사형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전망대 내부
이병헌 · 김태희 · 정준호 사진이 기둥에 붙어 있다

 

 

 

 

북서울의 꿈 전망대

극 중 대통령 조명호(이정길)가 머리를 식히러 오는 장소로 설정되어 현준(이병헌)이 대통령을 비밀리에 만났던 바로 그곳이다

 

 

 

 

북한산 · 도봉산

180도의 시각이 확보되어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다

 

 

 

 

도봉구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다

 

 

 

 

수락산 · 불암산

 

 

 

 

북서울의 꿈 안내도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2.3km, 소요시간 4시간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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