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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선정릉

비온다는 일기예보로 집에서 보내려 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흐린 날씨지만 비는 안오길래 선정릉을 찾았다
실제는 선릉(宣陵) · 정릉(靖陵)을 합하여 선정릉이지만 선릉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선릉엔 조선 제9대 성종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가 묻혀있고 정릉엔 11대 중종이 홀로 묻혀있다

 

 

은행나무 / 노거수 제160호
서울의 대표적인 나무라 할 수 있고 능의 수호수(守護樹)이다
출입문을 들어서니 공사중인 관리사무소 옆 있다

 

 

 

 

은행나무 / 노거수 제160호
①나무 높이 24m · 둘레 5.5m · 수관 20m · 나이 500년
나무 높이 24m · 둘레 2.27m · 수관 10m · 나이 500년

 

 

 

 

재실(齋室) 대문
재실은 조선 제9대 성종대왕과 제11대 중종대왕의 능에 딸린 재실이다
이곳은 제관들의 제사 준비와 왕의 휴식을 위하여 사용되었으며 능을 관리하는 능참봉이 집무실로 사용하였다
원래는 선릉과 정릉에 각각의 재실이 있었으나 대한제국 시절 1개소로 합쳐 지었다

 

 

 

 

재실(齋室)

2005. 4. 22~11.28까지 대보수를 하여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선릉 · 정현왕후릉 · 정릉 제향을 모시는 향대청으로 이용하고
2006. 4. 1부터 일반관람객들에게 재실의 모습을 관람시키고 있다

 

 

 

 

재실(齋室)

 

 

 

 

오리나무 숲
길 가던 나그네가 거리를 알 수 있게 5리마다 심은 나무다
안압지의 주위를 비롯하여 전국의 습한 지역의 대부분에는 오리나무가 널리 자라고 있다
나막신을 만드는 나무이며 하회탈도 이 나무로 만든다
열매나 껍질은 붉은 물감의 재료로 썼다
*
재실에서 정릉 가는 길이다

 

 

 

 

정릉(靖陵) 홍살문

 

 

 

 

정릉 정자각(丁字閣)

 

 

 

 

정자각 내부

 

 

 

 

조선국 중종대왕 정릉 비각(婢閣)

 

 

 

 

조선국 중종대왕 정릉(朝鮮國中宗大王靖陵)

 

 

 

 

정릉(靖陵)

중종대왕의 능이다. 중종은 1488년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사이에서 태어나 1494년 진성대군에 봉해졌다

1506년 9월 박원종 등이 반정을 일으켜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성종의 차자인 진성대군을 조선11대 왕으로 추대하였다

*

비는 신수근의 딸 단경왕후 · 제1계비는 윤여필의 딸 장경왕후 · 제2계비는 윤지임의 딸 문정왕후이다

 

 

 

 

정릉(靖陵)

중종은 제1계비 장경왕후와 서삼릉에 묻혀 있었으나
중종의 제2계비 문정황후는 현재의 선릉 자리가 풍수지리상 좋다는 이유를 들어 중종의 무덤만 옮기게 한다
이면에는 장경왕후와 중종이 나란히 묻힌 것을 질투해서 중종을 홀로 옮긴 뒤 자신이 죽으면 함께 묻힐 속셈이었다
하지만 지대가 낮은 이곳은 한강의 범람으로 홍살문까지 물이 차올라
이장론이 대두하여 문정왕후는 자신의 바람대로 중종 옆에 묻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중종은 모두 3비 9후궁이 있었으나 결국은 홀로 외롭게 묻히게 되었고 제2계비 문정왕후는 현재 노원구 태릉에 묻혀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임진왜란 당시 선릉과 정릉을 왜군이 파헤쳐 관이 불타는 수모를 겪게 되는데
특히 중종이 묻힌  정릉은 그 훼손이 심해 시신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정릉(靖陵)

재위 기간 중 조광조 등 신진사류를 등용하여 왕도정치를 펼치려 현량과를 설치하였고 향약을 실시하여 향촌자치를 시도하였다

서원이 설립되기 시작하여 사림의 기틀이 되었고 주자도감을 두어 신증동국여지승람 · 소학 · 삼강행실 · 이륜행실 · 속동문선을 편찬하였다

북방야인의 침범에 대비하고 삼포왜란을 진압한 후 비변사를 설치하여 국방체제를 정비하였다

*
삼성동 빌딩에 둘러 쌓여 있다

 

 

 

 

무인석(武人石)
코가 훼손되었다

 

 

 

 

무인석(武人石) · 문인석(文人石)

 

 

 

 

곡장(曲墻)
둥근 돌을 박아 문양을 만든 담장으로 속은 진흙으로 되어 있으나 겉은 시멘트 같다

 

 

 

 

정현왕후릉으로 가는 길이다

 

 

 

 

길을 내려오니 갈림길이다
오른쪽 길로 갔다

 

 

 

 

성종대왕릉(成宗大王陵)
선릉은 동원이강릉으로 조선 제9대 왕인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릉이다

성종대왕 서쪽 언덕 · 정현왕후는 동쪽 언덕에 모셔져 있다
동원이강릉이란 하나 이상의 능이 같은 능호를 사용하지만 각기 다른 언덕에 조성된 능이다

 

 

 

 

성종대왕릉(成宗大王陵)
성종은 1457년 7월 30일 경복궁 동저에서 세조의 장자인 의경세자(덕종으로 추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이 1469년 11월 28일 재위 14개월만에 승하하자

정희대비의 명에 따라 13세에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등극하였다

*

성종은 16남 · 12녀를 두고 1494년 12월 24일 창덕궁에서 38세에 승하하니 재위 기간은 25년이다

 

 

 

 

성종대왕릉(成宗大王陵)

성종은 재위 중 경국대전을 반포하여 조선의 법전체제를 완성하였고, 관수 관급제(官收 官給制)를 실시하였다

홍문관을 설치하고 동국여지승람 · 삼국사절요 · 동국통감 · 악학궤범 · 동문선 등 많은 서적을 편찬하였다

국조오례의를 제정하여 유교예법을 확립하고 창경궁을 건설하였다

밖으로는 허종과 윤필상을 보내 압록강 · 두만강의 건주야인을 정벌하였다

 

 

 

 

정현왕후릉(貞顯王后陵)

정현왕후는 윤호의 딸로 1462년(세조 8) 6월 26일 태어나 1473년 6월 숙의에 봉해졌고

1480년 11월 8일 왕비로 책봉되어 중종과 신숙공주를 낳았고

1530년 8월 22일 경복궁에서 춘추 69세로 승하하여 10월 29일 선릉에 예장되었다

 

 

 

 

무인석(武人石)

석물들이 국조오례의에 의하여 장대하면서도 조화가 잘 이루어져 균형미가 있다

 

 

 

 

정현왕후릉
병풍석과 상석이 없고 난간석만 있다

 

 

 

 

정자각 · 비각 · 수복방

 

 

 

 

선릉 정자각
정릉 정자각보다 잡상의 숫자가 적다

 

 

 

 

조선국 성종대왕 선릉 정현왕후 부좌강(朝鮮國 成宗大王 宣陵 貞顯王后 祔左岡)

 

 

 

 

수복방(守僕房)
능을 관리하거나 제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선릉 · 정릉 사적199호 비

 

 

 

 

조선왕릉 세계유산 비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우리나라는 이미 올라있는 석굴암 · 불국사 · 해인사 장경판전 · 종묘 · 창덕궁 · 수원 화성
경주역사유적지구 · 고창 · 화순 · 강화고인돌 유적 · 제주 화산섬 · 용암동굴과 함께 모두 9건의 세계유산을 가지게 됐다

 

 

 

 

선릉 상설도

 

 

 

 

동자승
선정릉을 나와 봉은사로 가다 만났다

 

 

 

 

올림프스 빌딩
아름다운 건축물로 지정된 이곳을 지날 때 간간히 내리던 비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코스 · 봉은사는 다음으로 미루고 전철역을 탔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7.5km, 소요시간 2시간 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