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 팽성읍(彭城邑)은 평택시의 안성천 유역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평택시의 다른 지역과 달리 충청도에 속해 있었고
1914년에 경기도 진위군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충청남도 평택군이었다
농성버스정류장
농성을 가기 위해 평택역에서 버스로 왔다
시점이다
농성(農城 ·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74호)
농성은 안성천과 아산만이 합쳐지는 지역에 형성된 평야지대에 있는 성이다
성벽은 전체 길이가 약 300m로 동벽 93m · 서벽 85m · 남벽 56m · 북벽은 71m이다
충절공 임팔급(忠節公 林八伋) 상
한국 임씨(林氏) 시조인 충절공 임팔급은 신라의 이부상서에 올랐을 때 적병이 변방을 침입하므로
공이 분연히 토벌하여 위난을 평정한 공훈으로 팽성군(彭城君)에 봉해지고 신덕왕조에서 충절공의 시호를 받았다
충절공은 중국 당나라에서 18세에 등과하여 한림학사를 거쳐 병무시랑 예부상서로 있을 때
간신배들의 모함을 받아 칠학사와 함께 850년경에 우리나라 평택 팽성에 와서 농성을 쌓고 정주하였다
서문지(西門址)
성벽의 높이는 동벽 · 북벽이 8~10m로 높고, 남 · 서쪽은 6~8m로 다소 낮다
문지는 동벽과 서벽 중간부에 위치하며 크기는 하단 너비 8~10m · 상단 너비 2m 내외다
경기둘레길 화살표
둘레길은 860km · 4개 권역 총 60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지 앞에 있다
농성
성내 면적은 약 14,900㎡이며, 높이는 4~5m 가량이다
평택브라운스톤 험프리스아파트
농성 북동쪽 방향이다
농성 북쪽 방향으로 논에 철새들이 많다
안성천 팽성대교 방향
평택 서부지역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성곽문화재가 남아 있다
이러한 문화재는 아산만 일대의 해안방어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유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은혜교회
외국인이 주로 다니는 교회다
Big Bate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빈방있음 안내판이 걸려 있는 집
집 지붕 높이가 낮다
벽화마을
일곱집매(기지촌여성 평화박물관)로 가는 길이다
역시 집 지붕 높이가 낮다
벽화마을
마토예술제 · 망궐례행사
여러 안내 사진이 붙어 있다
기지촌여성 평화박물관 일곱집매
젊은 시절 기지촌 클럽에서 지내며 민간외교관 · 달러벌이 역군으로 칭송받았으나 노년에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사회의 차별과 가족의 외면을 받으며 살다가 외롭게 떠나신 여성들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일곱집매
기지촌여성 평화박물관이 자리한 평택 안정3리의 옛 이름으로 일곱 집이 다정한 자매처럼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빈방 있음
기지촌 할머니들 중 고독사 후 발견된 한 할머니의 방 앞에 붙여진 문구다
노년의 쓸쓸하고 남루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에덴주택
다가구주택이다
안정리 로데오거리(Anjeong Rodeo Street)
K-6 미군부대 앞에 조성된 거리로
특히 주한미군과 외국인을 비롯하여 많은 관광객이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는 문화지대다
케밥 · 환전
안정리 예술인광장
2014년부터 6년에 걸쳐 주한미군 이전에 따른 평택지역개발사업의 일환으로
K-6 미군부대 앞 로데오거리에 조성되었다
We Go Together With Anjeong-ri Rodeo Street Machants
우리 함께 갑시다! 로데오거리 상인들과 함께
Giant · Pub210
안정리의 맛
글로벌 푸드 투어 가이드 맵
평택 안정 우편취급국
이전 안내판이 창문에 붙어 있다
JSA 만물
종합 수입전문점
U.S.A 밀리터리
객사5리 노인정
평택향교 외삼문(外三門)
코로나19로 잠정 폐쇄되었다
평택향교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호
조선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병자호란으로 크게 훼손된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농림학교로 사용되기 위해 외삼문이 철거되기도 했는데, 1970년대 후반 복원되었다
현재 평택향교에는 강학 건물인 명륜당과 교생들의 숙소로 사용된 동재 · 서재가 있으며
그 위쪽에는 유교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건물인 대성전이 있다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에게 드리는 제사는 봄 · 가을에 팽성읍 · 포승읍 · 현덕면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거행하며
향을 피우는 의례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거행한다
객사리 선정비각
팽성읍 객사리 평택향교 앞에 위치한 비각이다
조선시대 지방관을 기리는 비가 5기 · 대한제국의 지방관 1기 ·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비가 3기 있다
현감 유후영환 청간애민선정비(縣監兪侯永煥淸簡愛民善政碑)
유영환은 평택현감을 헌종 1년(1835)부터 헌종 5년(1839)까지 역임하였다
선정비 뒷면에는 도광십칠년십이월(道光十七年十二月 · 1837년)이라 적혀있다
유영환선정비는 평택지역의 유일한 철비다
부용초등학교
팽성읍행정복지센터
객사리는 평택현의 읍치로 평택현 관아와 객사 · 향교가 있었다
관아에는 동헌 · 내아 · 향청 · 작청 · 공수청 · 장청 · 군기고 · 형방청 · 관노청 그리고 사창과 감옥이 있었다
팽성읍행정복지센터는 동헌(東軒) 터로 추정되며 나머지 관아는 일제강점기에 사라졌다
*
팽성현 관아 터 빗돌이 앞에 있다
팽성현 관아 터 빗돌
조선시대 평택현 관아(官衙)가 있던 곳이다
평택현은 객사리에 읍치를 두고 팽성읍을 대부분 관할했다
삼국시대에는 하팔현(河八縣)으로 불렸으며 고려 때 평택현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895년 갑오개혁 때 직산군 경양면 지역인 본정리 · 노양리 · 신대리 일대를 편입하면서 현재와 같은 행정구역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위군에 편입되면서 부용면과 서면으로 나뉘었으며 1934년 두 면(面)을 통합하여 팽성면(彭城面)이라고 했다
팽성은 평택현의 별호(別號)이고 계양(桂陽)은 경양의 별호이다
팽성읍객사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7호
팽성읍객사는 조선시대 팽성현의 객사이다
객사는 궐패((闕牌))를 모시고 망궐례(望闕禮)를 하는 곳이며 여행하는 전현직 관리들을 대접하고 묵게하는 건물이다
문헌상 객사가 처음 건립된 것은 고려 충렬왕(1279) 때이며 조선건국 후 향교와 함께 모든 고을에 설치되었다
평택현은 전국 330여 개 현 가운데 가장 작아서 객사도 작고 초라했다 그러던 것을 현종 때 다시 크게 지었고 영조와 순조 때 중수하였다
일제 때는 일반인에게 불하되어 양조장과 개인주택으로 사용되다가 1995년 보수 ·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구조는 정당(正堂 · 중대청)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익실이 있으며 정당에는 궐패를 모셨다
중문과 외문이 있었으며 좌우로 부속건물인 무랑이 있었는데 현재는 외문만 있다
외문은 한 칸의 솟을대문을 두고 좌우로 행랑이 있다
정당(正堂 · 중대청) · 익실(翼室)
좌우에 관리나 사신이 숙소로 사용되는 익실(翼室)이 있다
정당(正堂 · 중대청) · 익실(翼室)
뒤쪽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
객사2리새마을회관 · 노인정
팽성농협
객사리버스정류장이 앞에 있다
*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통복시장에서 내려 시장에서 냉면을 먹고 평택역까지 걸었다
마침점이다
통복시장
평택시 통복동에 위치한 경기 남부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 1950년대에 개설된 우시장이 구 평택장으로 옮겼다가
6 · 25전쟁 직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미곡시장과 우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곳이다
현재는 상설시장과 5일장(5일 · 10일)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산물 · 채소 · 과일가게 등 다양한 점포들이 있다
천장이 높고 통행로가 넓어 장보기 편한 시장이다
평택역 1번출구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9.9km, 소요시간 4시간 5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