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이야기

전주감영

전주감영은 조선 초부터 1896년까지 약 500년 동안 지금의 전라북도 · 전라남도 · 제주도를 관할하던 감사(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곳이다
조선시대의 전라감영은 정문인 포정문 · 감사의 집무실인 선화당 · 감사의 주거 공간인 연신당
감사 가족의 처소인 내아 · 누각인 관풍각 등 건물이 모두 40여 채가 있었다
1896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라감영은 전라북도 도청의 행정업무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감영 건물 대부분은 근대화 과정에서 없어지고 마지막 남아 있던 선화당도 1951년 폭발 사고로 불타버렸다
이곳은 조선시대 전라도 행정의 중심지였으며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 자치기구인 집강소의 총본부 대도소가 설치된 장소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2015년에 옛 도청 건물을 철거하고, 2017년부터 전라감영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선화당 · 연신당 · 내아 · 관풍각 등을 복원하였다

내삼문
전라감영 선화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전라감영 정문 포정루로 들어와 중삼문을 거쳐 내삼문을 지나면 전라감사 집무처인 선화당이다
현재 전라감영 정문인 포정루와 중삼문은 없는 상태다
*
國家軍儲皆皐湖南(국가군저개고호남) / 나라의 군수품은 다​​ 호남에 의지하고 있으니​​
若無湖南是無國家(약무호남시무국가) / 만약 호남이 없다면​​ 곧 나라가 없는 것이다
*
이글은 이충무공전서 하권에 실려있다
후학 강암 송성용이 삼가 쓰다

 

 

선화당(宣化堂)
전라감사의 집무처이다
선화당이라는 당호는 「왕명을 받들어 교화를 펼친다」는 승류선화(承流宣化)에서 나온 말이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그 이듬해 1598년 전라감사 황신이 중건하였으며, 1771년 전라감사 윤동승이 개건하였다
이후 1792년(정조 16)에 화재로 소실되어 전라감사 정민시가 다시 중건하였다
선화당은 광복후까지도 남아 있었으나 한국전쟁 중 1951년 경찰청 무기고로 쓰이던 도청 문서고에 로켓탄이 폭발하여 도청 본관과 함께 소실되었다
선화당은 정면 7칸 · 측면 4칸 규모로 약 78평에 달하는 큰 건물이며 전주부성내에서 객사 다음으로 컸다

 

 

선화당(宣化堂) 현판

 

 

관풍각(觀風閣) · 우물
1928년 및 1937년 일제강점기 도청사 도면에 표기된 우물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우물의 평면은 원형이며 20~30cm 내외의 석재로 쌓아 올렸다
우물의 규모는 직경 150cm 내외로 확인되었다

 

 

관풍각(觀風閣)
선화당에 이어 감사가 정무를 처리하는 제2의 정청이며 감사가 쉬기도 하고 연회의 장소로도 사용했다
관풍각이란 이름은 감사의 직무인 「풍속과 민정을 살핀다」는 관풍찰속(觀風察俗)에서 유래하였다
선화당과 관풍각 당호는 감사의 직무를 상징적이고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관풍각(觀風閣) 현판

 

 

선정비군
선정비란 선정을 베푼 관리들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다
그렇지만 조선 말에는 선정비들이 으레 세워졌고 억지로 세워지기도 하였다
조선 말에는 전라감영 건너편에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가 다가공원쪽으로 옮겨졌으며 2020년 감영을 복원하면서 감영 경내로 이전하였다
관찰사 18기 · 판관 5기 · 중영장 · 별장 · 영의정 · 암행어사 각 1기로 총 27기의 선정비가 있다

 

 

관찰사 이공서구영세불망비(觀察使李書九永世不忘碑)
이서구(1754~1825)는 조선시대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 자는 낙서(洛瑞) · 호는 척재(惕齋)이다
1793년(정조 17)과 1820년(순조 20) 두 차례 전라관찰사를 지냈다

 

 

연신당(燕申堂)
연신당은 1688(숙종 14)에 전라감사 이유(李濡)가 창건한 전라감사 처소다
연신당이라는 이름은 논어 술이편에 「공자께서 집에서 쉬고 계실 때는 마음이 온화하고 너그럽고 즐거우신 듯 보였다」에서 나온 것이다
감사가 편히 쉬는 처소임을 의미한다
경상감영은 징청각(澄淸閣)이라고 하였다

 

 

전라감영 회화나무
회화나무는 흔히 선비나무 · 학자수라고 부른다
나무 가지가 선비의 기상처럼 거침없이 자유롭게 뻑어나기 때문이다
이 회화나무는 수명이 150여 년된 나무로 현존하는 전라감영의 유일한 흔적이다
구 도청사 건물 철거 전에 회화나무가 의회동 건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
나무 나이 20m · 둘레 3.7m · 나이 150년 · 지정일자 1982. 9. 20

 

 

내아(內衙)
전라감사 가족들이 거처하는 안채로 선화당 북쪽에 위치하였다
19세기 「완산부지도」에 내아가 ㄷ자형 건물로 그려져 있다
발굴조사에서 3동의 건물이 중첩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3차례 개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아(內衙) · 행랑(行廊)

 

 

행랑(行廊)

 

 

선화당(宣化堂) · 관풍각(觀風閣)

 

 

전라감영 모형도
전라감영에는 관풍각 등 건물이 모두 40여 채가 있었는데 현재 총 6개의 건물만 복원되어 있다

'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주호관광선  (0) 2021.11.20
전주한옥마을 2  (0) 2021.11.07
전주 한국집  (0) 2021.11.07
전주 풍남문  (0) 2021.11.07
전주 전동성당  (0) 2021.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