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둘레길은 2011년 서울시 걷고 싶은 길로 선정된 길로
개화산 · 치현산 · 서남환경공원 · 강서한강공원을 잇는 총 연장 11.44km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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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스는 방화근린공원을 시작으로 개화산 약사사와 전망대
호국충혼위령비 · 풍산심씨사당 · 방화근린공원으로 이어지는 순환형 코스다
강서둘레길1코스 아치
강서둘레길 1 · 2 · 3코스 지도가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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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역4번출구가 시점이다
개화산 약사사로 오르는 길이다
전망대
운동기구가 있는 쉼터에 있다
개화산 안내판
전망대 쉼터를 내려와 돌아 봤다
개화산 약사사
고려 말과 조선 초기 사이에 개화산 중턱에 세워진 사찰로 주변 경치로 인해 겸재가 그림의 소재로 즐겨 찾았다
개화사(조선시대에는 개화사라 불렀다)라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절은
냉천이 있어 병자가 목욕을 하면 오랜 병도 낫는 약수터라 하여 약사사로 불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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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사 대웅전 안에는 「약사사 석불입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0호)」이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조성된 석불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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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사 삼층석탑(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9호)
대웅전 바로 앞에 있는 삼층석탑으로 그 모습이 투박하면서도 날렵하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의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의 희귀한 석탑의 예로 그 가치가 크다
강서둘레길 안내판
헬기장 · 조망대
6 · 25전쟁시 개화산전투가 발생한 이후 장기간 군부대 훈련장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주민들에게 위협감을 주던 폐타이어와 방공호 등을 철거한 후 생태복원사업과 휴식공간을 조성하여 주민에게 되돌려 준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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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전망대가 서울시 선정 우수 조망 명소로 이곳이 3코스와 1코스가 만나는 곳이다
조망대
서울시 선정 우수 조망 명소로 겸재 정선이 바라본 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개화산 봉수대
이곳으로부터 약 250m 떨어진 군부대 인근에 봉수대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1994년 11월 설치)이 남아 있었다
이에 강서구에서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중요한 문화유적임을 알리기 위해 이곳에 원형 복원이 아닌 상징적 의미로 2013년 11월 봉수대 모형을 설치했다
봉화정(烽火亭)
조선시대 봉수대가 설치되어 전라도 순천에서 오는 봉화를 받아 남산 제5봉수에 전달하던 곳이므로 봉화정이라 하였다
창고
군부대 주둔시 사용하던 건물이다
교통호
역시 군부대 주둔시 사용하던 교통호다
아라뱃길전망대 · 봉화정 방향안내판
아라뱃길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아라뱃길 한강 입구
아라뱃길 전망대에서 봤다
개화산 보호수
약 천 년전 신라시대때 「주룡산」으로 전해왔는데 주룡선생이란 도인이 친구와 술을 같이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꽃이 피어난 후로 「개화산」으로 불이어졌다
임진왜란 · 병자호란 전까지 봉화불을 올렸다하여 개화화산이라 하였는데 그후 명칭을 「개화산」으로 불렀다
이 자리에 수령이 높은 나무가 있었는데 6 · 25사변때 소실되었고 그후로 동네주민들은 제사를 지내왔는데
그 자리에 유목이 자라서 지금까지 동네주민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신선바위로 가는 데크길
신선바위
이곳의 바위는 예로부터 개화산 신선이 내려오는 바윗길이라고 한다
현재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에는 「오방산신제」를 지내며 산신을 이곳 바위 앞으로 모신다
하늘전망대 · 미타사 방향안내판
개화산 호국공원
6 · 25 남침 초기 개성에서 김포 · 개화산지역까지 후퇴하면서 수 차례 방어선을 구축하고
이를 사수하다 산화하신 육군 제1보병사단의 전사자 1,100여 명과
김포지구 전투사령부 예하 부대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94년 충혼위령비를 조성하였으며
2017년 12월 호국정신을 널리 선양하고자 명각비를 비롯하여 추모의 벽, 기념조형물을 제작하여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추모의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하였다
호국충혼위령비
한국전쟁 때 김포비행장을 지키던 육군제1사단 12연대 3대대의 대대장 김무중 소령을 비롯한 전사자 1,100명의 영령을 추모하는 호국충혼비다
미타사
한국전쟁 때 육군과 인민군이 치열한 교전을 벌이던 곳으로 당시에 절은 전소되는 비운을 맞았다
현재 미타사는 작은 법당과 요사가 전부인 단촐한 가람을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100여 년 전 창건 당시의 모습과도 별반 다름이 없다
미타사 석불 · 석탑
어머니 석불인 미타사 석불
미타사는 고려 말 창건되었다고 전해오는데 석불만 남아있다
1924년 사찰이 중창되었고 1937년 미륵당으로 석불보호각이 지어졌다
석불입상은 전체 높이 320cm · 상 높이 293cm로 현재의 위치보다 높은 산 위쪽에 묻혀 있었으나 이곳 미타사로 옮겨지면서 대좌가 새로 조성되었다
김포공항
왼쪽 뾰쪽한 봉이 시흥 군자봉이고 높은 빌딩이 중동 리첸시아빌딩이다
지금 개화산 정상엔 김포공항 경비부대가 있어 출입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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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전망대에서 봤다
계양산과 김포평야
계양산 오른쪽으로 산줄기를 짜르고 만든 아라뱃길이 보인다
개화역
계양산 아래로 보인다
강서둘레길 안내판
개화산 개화사
풍산심씨 사당이 왼쪽에 있다
풍산심씨 묘역
심정의 아들 심사손(1493~1528)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중종 18년(1523) 비변사낭관으로서 서북면의 야인정벌에 공을 세워 많은 관직에 올랐다
심사손의 아들 심수경(1516~1599)은 조선 명종 1년(1546)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풍산 심씨 묘 60여 기 중에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이 4분의 묘와 묘비 · 상석 등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대광보국숭록대부 좌의정 풍산심씨 심정 묘
조선 중기 문신 심정(1471~1531)은 연산군1년(1495) 생원시에 합격한 뒤 1506년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화천군에 봉해졌다
중종 14년(1495) 경빈 박씨를 통하여 조씨전국의 말을 퍼뜨리고 왕을 움직여 기묘사화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기도 하였으나
경주 박씨의 동궁 저주 사건이 드러나서 강서로 귀양갔다가 이황 · 김극필과 함께 신묘삼간으로 지목되어 죽게 되었다
심사순 묘(沈思順墓)
통정대부 홍문관 부제학 지제교 겸 경연참찬관 정부인 덕수이씨 묘
(通政大夫 弘文館 副提學 知製敎 兼 經筵參贊官 貞夫人 德水李氏 墓)
심정 쉼터
방화근린공원
당신의 뱃살은 안녕하십니까?
빅터는 20대
길꽃 초가집 작은도서관
방화근린공원 후문으로 가는 길에 있다
방화근린공원 야외무대
방화역 3번출구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5.9km, 소요시간 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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