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씨버선길은 경상북도 청송군의 주왕산국립공원부터
영양군 ·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의 관풍헌까지 4개 지역 총 길이 240km를 연결하는 문화생태탐방로다
「외씨버선」은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서 따온 말로 「오이씨처럼 볼이 조봇하고 갸름하여 맵씨가 있는 버선」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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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씨버선길1길(주왕산 · 달기약수탕길)은 주왕산국립공원 탐방안내센터을 시점으로
용추폭포 · 달기폭포 · 달기약수터 · 소헌공원을 잇는 총거리 18.5km · 소요시간 6~7시간의 길이다
용전천 느티나무
청송성당에서 자고 이곳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왕산행 버스를 탔다
청송의 명품 사과 형상이다
청송교 옆에 있다
찬경루(讚慶樓) · 운봉관(雲鳳館)
주왕산 행 버스정류장 뒤쪽에 있다
주왕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
오른쪽 사과가 그려진 빨간버스를 타고 왔다
외씨버선길1길 시점이다
주왕산
주왕산을 대표하는 기암이다
주왕계곡
주왕계곡에 비친 주왕산 기암과 장군봉이다
주왕산은 우리나라 3대 암산 중 하나로 12번째로 국립공원에 지정됐다
국일도대선사양종정사경월당지비(國一都大禪師兩宗正事慶月堂之碑)
경월대화상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로 1768년 백련암으로 출가하여 1845년 입적하였으며
그로부터 1년 뒤인 1846년 탑비와 부도가 세워졌다
향토음식점
주왕계곡을 따라 대전사까지 올라가는 길이다
대전사
주왕산의 상징적인 풍경 중 하나인 기암을 배경으로 한 풍경이다
대전사 보광전
대전사는 주왕산의 설화를 품고 있는 사찰이다
주봉 마루길 아치
주왕계곡과 마루금 갈림길이다
외씨버선길은 왼쪽 주왕계곡으로 올라야 한다
주왕동천길
급수대 맞은편 구암(龜巖)에는 「주방동천 문림천석(周房洞天 文林泉石)」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주방의 빼어난 산천 경관은 문림랑공(청송심씨의 시조)의 것이다」라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산수와 경치가 아름답고 좋은 곳이라는 의미이다
주방산은 주왕산의 옛 이름이다
아들바위
바위를 등지고 다리가랑이 사이로 돌을 던져 바위에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많은 돌이 올려져 있다
주왕산 수달래 전설 안내판
주왕굴에 숨어 지내던 주왕의 전설로 매년 5월경 주왕의 혼을 달래기 위해 수달래축제를 한다
구암(龜巖) 각자(刻字)
구암(龜巖) 상단에는 세로로 「주방동천 문림천석(周房洞天 文林泉石)」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빼어난 산수의 주왕산과 물과 돌은 문림랑공(청송심씨의 시조)의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문림은 고려시대 「문림랑위위시승」 벼슬을 지낸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를 칭하는 것으로 청송심씨 봉토 《완문표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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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 글씨 아래 끼워 넣은 사각의 표석은 상단 암벽에 새겨진 큰 글씨에 대한 유래를 설명한 것으로
청송심씨 종유사 심호창과 심호택이 주방천 자연석에 새긴 주방동천 문림천석(周房洞天 文林泉石)의 원석이 파손되어
1990년 5월에 당시 종유사 심완택 · 심상일이 이 바위에 옮겨 새겼다는 기록이다
급수대 주상절리
주왕산 최고의 주상절리다
급수대 주상절리
주왕산 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는 대표 암석은 응회암이다
응회암은 화산폭발 때 뿜어져나온 화산재가 굳어져 만들어진 암석이다
주상절리는 주로 빠르게 식는 암석에서 형성되어 기둥 모양의 틈이 생긴 것을 말한다
시루봉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옆에서 바라보면 마치 사람의 옆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루봉에는 옛날 어느 겨울에 한 도사가 바위 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으며
바위 밑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한다
학소대(鶴巢臺)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절벽 위에는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巢)를 짓고 살았다 하여 학소대로 불린다
어느 옛날 백학이 사냥꾼에 잡혀 짝을 잃은 청학은 날마다 슬피 울면서 바위 주변을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져 오고 있다
지금 학은 간데 없고 그들의 보금자리 터만 남아 옛 주인을 그리워하고 있다
용추협곡
속세와 천상을 가르는 침식협곡으로 예부터 청학동이라 불리며
선비들이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협곡에 들어서면 마치 신선세계의 발을 딛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응회암이 발달하는 수직절리를 따라 침식작용이 일어나면서 첩첩산중의 보배를 만들게 되었다
용추협곡
속세와 천상을 가르는 용추협곡을 들어서서 본 풍경이다
용추협곡
용추협곡에서 본 들머리다
용추협곡
용이 승천한 폭포라는 뜻이며, 총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1단과 2단폭포 아래에는 각각 선녀탕 · 구룡소라고 불리는 돌개구멍이 있고, 3단 폭포 아래에는 폭호가 있다
절구폭포
주왕산 응회암이 발달한 세로 방향의 틈에 생긴 폭포이며, 2단폭포로 이루어져 있다
1단폭포 아래에는 선녀탕이라 불리는 돌개구멍이 있으며, 2단폭포 아래에는 폭호가 발달되어 있다
절구폭포
돌개구멍은 암석이 깨어진 틈을 따라 자갈과 모래가 갇혀 물과 함께 소용돌이치면서 생긴 원통형 구멍이고
폭호는 폭포 아래에서 떨어지는 물에 의해 만들어진 웅덩이다
즉 물이 흐르면서 생긴 것이 돌개구멍 · 물이 떨어져 만들어진 것이 폭호이다
용연폭포(龍淵瀑布)
용연폭포는 2단폭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왕산 폭포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 폭포는 두 줄기의 낙수현상으로 인해 쌍용추폭포라고도 불린다
용연폭포(龍淵瀑布) 하식동굴
1단 폭포의 양쪽 벽면에서는 각각 3개씩의 하식동굴을 관찰할 수 있다
폭포가 형성되고 발달하면서 침식에 의해 폭포면이 차츰 뒤로 물러나게 된다
지금의 폭포면에서 가장 먼 곳의 하식동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폭포가 점차적으로 후퇴하면서 두 번째 · 세 번째 하식동굴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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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식동굴은 폭포나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생겨난 동굴이다
용연폭포
2단폭포 위에서 내려다 봤다
층층나무
가지가 층층이 달려서 옆으로 퍼지기에 층층나무라 한다
소나무의 상처
1960년대 중반 주왕산의 울창한 소나무는 당시 경제 사정에 의해 개발 대상이 되었으며 3년 동안 송진 채취 후 원목으로 벌채되었다
이 사업은 한창 진행되던 1976년에 주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중단되었으나
송진 채취 과정에서 생겨난 빗살무늬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
천남성
뿌리에 강한 독성이 있어 예부터 사약(賜藥)의 재료로 활용됐다
장희빈과 폐비 윤씨 · 송시열의 목숨을 끊은 독초다
천남성 꽃 모양도 마치 독사가 머리를 치든 것처럼 보인다
나무 줄기가 미끈한 여인처럼 느껴져 가져왔다
소나무
청(靑)은 오색지수(五色之首) · 송(松)은 만수지장(萬樹之長)이라는 말처럼 청송에는 굵은 소나무들이 많다
금은광이삼거리
장군봉 · 월외탐방지원센터 갈림길이다
월외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이다
월외계곡으로 가는 다리다
금은광이탐방로 아치
월외계곡에서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두 번째 이동식을 했다
머물고. 가소서
너구마을 빗돌이다
월외계곡
금은광이탐방로 아치를 지나면 계속 도로 걷기다
라일락
나비는 덤이다
달기폭포
높이 11m에 달하는 웅장한 폭포이며 폭포 아래에서는 용이 승천하였다고 해서 용소라 불리는 폭호가 발달해 있다
노루용추계곡
노루용추는 계곡 초입에 있는 작은 폭포 아래 형성된 폭호로서 높이 1m 내외인데 비해 폭호의 넓이는 넓다
주왕산 월외탐방지원센터
탐방지원센터 앞을 지나는데 직원이 나와서 친절히 인사한다
소헌공원 6.3km지점 안내판
월외리자연회귀마을로 가는 길이다
월외성당
청송성당과 건물이 비슷하다
월외리
월외경로당 앞에서 본 월외성당 방향이다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18m · 가슴높이 지름 118cm · 가슴높이 둘레 370cm · 나이 362년 · 지정일자 2001년 6월 11일 · 관리자 청송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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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금줄이 쳐있다
달기약수탕 상탕
평일이라 사람이 없다
달기약수탕 상탕
탄산 방울이 떠오르며 파문을 그린다
한 모금 마셨다
달기약수탕 중탕
달기약수탕 근처에는 닭백숙집들이 많다
달기약수탕 하탕
달기약수탕 하탕
조선 철종 때 금부도사를 지낸 권성하가 낙향하여 이곳 부곡리에 와서 살면서
마을 사람들과 수로공사를 하던 중 바위 틈에서 솟아오르는 약수를 발견하게 되었다
물을 마셨더니 트림이 나오고 속이 편안하여 그후 즐겨 마셨다고 한다
약수는 아무리 가물어도 솟아나는 양에 변함이 없고 엄동설한에도 얼지 않으며 빛과 냄새가 없다
약수로 밥을 지으면 밥이 푸른색을 띠며 찰기가 있다
매년 음력 3월 30일 마을사람들은 권성하 공을 기리며 약수가 끊이지 않기를 기원하는 약수령제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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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에서 엿을 팔고 있어 한 봉투 샀다
부곡2교
청송군 다리 머릿돌 위에는 사과와 고추가 올려져 있다
청송 농특산물이다
청송군민운동장
괘천 국골교 건너로 보인다
달빛사과 솔부엉이
부 · 지혜 · 명예를 상징하는 주왕산 깃대종인 솔부엉이(천연기념물 324-3호)가
사랑과 지혜를 상징하는 청송의 사과를 품고 있는 것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곳 지명인 월막리(月幕里)가 상징하는 달을 타고 있는 의미를 디자인하였다
용전천
원형의 청송문화예술회관 건물이 보인다
우송당(友松堂)
조선 성종 때 통정돈영부도정을 지낸 파평윤씨 34세손 우송 윤두석 선생이 용전천 강변을 산책하며 자연을 감상하던 곳으로
그의 손자 윤상영이 그 뜻을 기리기 위해 1931년에 건립한 것이다
건물 구조는 정면 3칸 · 측면 2칸 팔작지붕 형태의 건물로 대청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좁은 방이 배치되어 있다
인근의 망미정(望美亭)과는 바로 마주 보이는 곳에 위치하며, 주변 경관이 매우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다
망미정(望美亭 청송군 향토유형문화유산 제15호)
고종 26년(1899) 당시 군수로 재임하던 장승원이 용전천 강가 기암절벽의 자연 바위를 주춧돌로 삼아 건립한 정자로
「아름다움을 바라본다」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
정면 3칸 · 측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정면 오른쪽에 대청이 있고 왼쪽으로 방 2칸이 꾸며져 있다
대청을 가운데 두지 않고 정면 오른쪽에 배치한 건물 구조는 우리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구조이다
이곳의 경치는 예로부터 매우 아름다워 봄부터 가을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옛 선비들은 이곳에서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으며, 달밤이면 그윽한 퉁소 소리가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다고 한다
그리고 정자 아래 깊은 소에는 용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는데 정자 바위에 새겨져 있는 10m 정도의 흔적은 소에서 용이 승천할 때 만들어진 길이라 한다
용전천 데크길 아치
청송교 앞이다
찬경루(讚慶樓)
1428년(세종 10)에 운봉관과 함께 지청송군사(知靑松軍事) 하담이 2층 16칸으로 건립한 누각으로
조선시대 관아 건물 배치에 있어 객사와 누각은 인접한 위치에 공존하면서
사신들을 위한 연회나 지방 유생들의 시문회(백일장) 장소로 사용되어 왔다
찬경루는 건립 후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792년(정조 16)에 재건하였고, 그 이후 여러차례 중수가 이루어졌다
찬경루의 명칭은 청송심씨 가문에서 소헌왕후가 탄생하였고
이 누각이 청송심씨 시조 묘소를 바라보고 있음에 인연하여 「우러러 찬미한다」는 뜻으로 찬경루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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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 연못 · 왼쪽 관리사 · 뒷편 운봉관이 있다
청송 송덕비 군
비 앞에는 비명 · 재임기간 · 치적 등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운봉관(雲鳳館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2호)
청송의 객사로 1428년(세종 10)에 지청송군사(知靑松軍事) 하담이 건축하였다
객사는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의 사신들이 머무는 공공 숙박의 기능 외에
객사의 중당(中堂)에 임금의 전패를 모셔놓고 출장 중인 관원과 고을의 부사가 임금께 예를 올렸던 곳이다
특히 이곳 운봉관은 명성왕후 시해사건과 단발령 이후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날 무렵인
1896년 3월 12일에 청송의 유생들이 분연히 일어나 청송의진(靑松義陳)을 창의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이후 운봉관은 일제강점기에 중당과 우익사가 강제 철거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으나 소실되었던 부분은 2008년에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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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씨버선길 1코스 마침점이다
향나무 보호수
수령이 오래되고 수고 및 흉고가 보호수 기준 이상으로, 250년 전 이 마을에 사는 5형제가 심었다고 전해지며
해방전까지는 5주가 생육하고 있었으나 3주는 고사하고 현재 2주만 자라고 있다
주왕산온천관광호텔
걷기 후 이곳에서 샤워를 했다
생탁 주(酒)산지
샤워 후 저녁과 함께 했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거리 21.8km, 소요시간 8시간 35분
(2020, 0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