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문수산(376m)은 한남정맥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정상에선 산 아래로 흐르는 조강 · 염하강 · 북한 개성의 송악산까지 볼 수 있다
더불어 조선 숙종 20년(1694)에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한 문수산성이 있다
성동검문소 버스정류장
걷기 시점이다
평화누리길 제2코스 조강철책길 아치
문수산 들머리다
문수산성 남문 희우루(喜雨樓)
「희우(喜雨)」는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기뻐한다는 뜻으로 창덕궁 보춘정 누각도 「희우루」다
산성마을 빗돌
칠장산에서 이어온 한남정맥이 잦아들어 바다로 스미는 「보구곶리」로 가는 길이다
산성마을 지도
갑곶나루가 있던 곳이다
「갑곶」이란 명칭은 삼국시대 초까지 강화의 옛 이름이었던 「갑비고차(甲比古次)」가 후대에 변천된 것이다
전설로는 고려 고종이 몽고군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할 때
이곳 염하(鹽河)의 폭이 좁고 수심이 얕아서 병사들이 갑옷을 벗어 쌓아놓고 건넜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옛 지도를 보면 갑곶나루가 문수산성의 서문인 공해루와 연결되는 나루였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때문에 갑곶나루를 「산성나루(山城津)」라고도 한다
강화 쪽 갑곶리에 있는 나루도 갑곶나루라 불리는데 18~19세기 지도에 문수산성 갑곶나루와 강화의 갑곶나루를 연결하는 뱃길이 표시되어 있다
한편 이곳은 우리 역사상 서구세력이 가장 먼저 침입했던 곳이기도 하다
고종 3년(1866) 9월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6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 갑곶나루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였다
이 때 문수산성의 주요 출입문이었던 공해루 일대가 파괴되었고 공해루와 연결되는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만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1920년 경 새 나루가 놓이면서 옛 나루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광복 후에는 배로 자동차를 실어 건널 수 있도록 도선장을 조성하였다
1970년 강화대교가 건설되면서 옛 나루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문수산성 메주 간장마을
문수산성 산림욕장 들머리
성동교를 지난 지점이다
성동저수지 둑이 보인다
문수골 빗돌
문수산성 북문
「문수산성」은 문수골과 산성포의 두 계곡을 포용하여 해안지대를 연결한 포곡식 산성이다
강화를 건너는 길목을 장악할 수 있는 요충지로서 숙종 20년에 쌓은 것으로 당시 둘레가 2.4km 여장이 2,173개에 성문이 3개 있었다
이후 순조 12년(1812년) 대대적으로 고쳐 쌓았으며 고종 3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군과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해안쪽의 성벽과 문루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이 일부 남아 있다
돌탑에 돌 하나를 얹는 빅터
김포반도 왼쪽 강화도 · 오른쪽 북한 개성
조강은 개풍군 남단에서 예성강을 만나 서해로 나아간다
염하강(鹽河江)
김포반도와 강화도 사이 바다로 헤엄치면 건너갈 만한 강과 같다고 하여 그렇게 불렀다
마니산
강화대교 너머 높은 산이다
한강은 강화도와 김포반도 사이로 염하강을 만들고
다시 강화도 북단과 개풍군 남단 사이로 흐르다 예성강을 만나 서해로 나아간다
문수산성
조강
한강이 임진강과 만나는 곳으로 오른쪽으로 애기봉이 보인다
마루금에서 휴식하는 빅터
문수산성 동아문(사적 제139호)
문수산성 총 7개의 성문 즉 문루 3개 · 아문 4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는 4개 아문 가운데 홍예식 형태의 남아문 · 평거식 형태의 동아문만 남아있다
아문은 암문이라고도 한다
문수산성 성곽이다
북문 · 용강리 방향안내판
보구곶리 방향
용강리 갈림길에서 봤다
갑곶나루
성동저수지 왼쪽으로 갑곶나루 석축로가 보인다
현재 김포 쪽에 남아 있는 석축로는 폭 12m · 길이 40m · 앞면의 깊이 1.2m 규모로
직사각형 화강석으로 양쪽에 갓돌을 축대처럼 가지런하게 쌓고 안쪽은 화강석으로 불규칙하게 채워 윗면을 고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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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성은 강화대교 쪽에 있는 남문과 북문 사이 두 개의 계곡을 끼고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바닷가로는 서아문 · 서문 · 북아문과 갑곶나루가 있었다. 문수산성은 삼면은 산 · 한 면은 바다가 방어막이었다
제2전망대로 가는 빅터
제2전망대
조강
애기봉 너머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이다
OP 문수(CURLY) 상부 제1전망대
1963년 12월 31일 해병대에서 설치하여 OP로 운용하였으며
OP CURLY로 명명되었다가 이후 858 OP로 개칭되었으며, 2008년 7월 21일부 전시 임무로 전환되었다
문수산성 장대지
문수산 동쪽의 가장 높은 지대로 장수가 주변 정세를 파악하여 지휘하던 곳이다
2009년 발굴조사를 통해 건물의 기단으로 추정되는 석열 · 기와편 · 철제동물상 등 210여 점(신라~조선)이 출토되었다
문수산성 장대지
텐트사이트
제1조망대와 정상 장대지 사이 안부다
문수산 정상석
장대지 옆에 있다
문수산성 장대지 출입문
문수산성 장대지
이동식 후 1시간 정도 휴식했다
북한 도고개 방향
파주시
앞쪽 애기봉 너머로 한강 · 임진강 사이에 있다
고양시 방향
마니산 · 진강산 · 혈구산 · 고려산
염하강 건너 강화도 산들이다
혈구산 · 고려산 · 별립산 · 봉천산
염하강 건너 강화도 산들이다
헬기장
문수제단이 오른쪽에 있다
문수제단(文殊祭壇)
아문(홍예문)
1993년 복원된 문수산성의 남아문으로 김포대학 · 고막리 방향 등산로와 연결되어 있다
아름다운 성벽에 총탄에 맞은 흔적이 있다
문수사 갈림길
아문(홍예문) 안쪽이다
벤치가 있는 쉼터를 지난다
문수사 해우소
문수사 대웅전(비로전)
문수사는 신라 혜공왕 때 처음 세운 이후, 조선 광해군 6년(1613) 화주승 도욱이 고쳐 지었으며, 순조 9년(1809) 화주승 광선이 다시 한 번 고쳐 지었다
건축물로는 대웅전과 요사채 2동이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목조 비로자나불이 있다
서쪽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1호 풍담대사 부도 및 비가 있다
본래 문수사가 자리한 문수산의 이름은 비아산(比兒山)이었는데, 문수사가 세워진 이후 문수산이라 불리게 되었고
이에 따라 산성의 이름도 문수산성이라 불리기 되었다고 전해진다
문수사는 현재 경기도 전통사찰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요사채
대웅전 동쪽 한 단 낮은 곳에 남쪽으로 조금 돌출하여 배치되어 있다
5층석탑
대웅전 동쪽 옆에 있다
대웅전(비로전)
약간 높은 자연석 기단 위에 남향하고 있다
요사채가 오른쪽으로 보인다
벽응당대사불모비(碧應堂大宗師佛母碑) · 대탑비(大塔碑)
문수사 풍담대사 승탑 및 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1호)
조선시대의 고승 풍담대사 의심의 승탑과 비로 풍담대사는 1592년(선조 25)에 태여나 1665년(헌종 6)에 입적한 승려이다
14세에 묘향산의 성순 스님에게 출가하여 원각과 화엄을 공부하였으며 서산대사의 제자인 편양 언기 스님의 수제자가 되었다
군부대 철펜스를 끼고 걷는다
문수사 풍담대사 승탑을 지나 산객이 자주 다니지 않는 길로 내려섰다
성동저수지
문수골산장 힐링캠프장을 지난 곳이다
갑곶나루 안내판
예전 갑곶나루가 있던 곳이다
문수산성 남문 희우루
평화누리길 제2코스 조강철책길 아치를 다시 지난다
성동검문소 버스정류장
마침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