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올레길을 디자인한 팀들이 2013년 4월에 만든 양평 물소리길 다섯 구간이 코스와 길이를 다듬어 여섯 구간으로 새롭게 태여났다
지난 해 8월, 물소리길 1코스는 휴식년이라는 펼침막을 보고 하계산 · 부용산 코스로 대체해 걸었기에 새해 들어 다시 1코스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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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스는 양수역에서 신원역까지 · 이덕형 신도비와 여운형 생가를 거치는 길로
양평군청 홈페이지에 코스 길이 9.4km · 소요시간 3시간으로 나와 있다
양수역 2번출구
시점이다
물소리길 안내소
안내소 옆에는 2018년 8월~ 12월까지 코스 운영을 잠정 중단한다는 펼침막이 아직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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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스를 걷고 난 후 양평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2월 28일까지 잠정 중단을 연장한다고 올라와 있다
가정천
용담2리로 들어가는 다리다
물소리길은 다리를 건너 왼쪽 길이고 오른쪽은 하계산 · 부용산으로 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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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물소리길은 직진이었다
물소리길 1코스 운영 잠정 중단 펼침막
가정천을 건너 왼쪽 용담교 바로 앞에 있다
상수원보호구역 안내판
역시 가정천을 따라 걷는 길이다
청계산 마루금
안개들 뒤로 보인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
심한 가지치기를 당한 가로수
부용1리 뒤벌들
가정천
두껍게 얼었다
부용2교 건너 왼쪽 집
비상에듀 양평을 지나 부용4교를 건넌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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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물소리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한음 이덕형 신도비로 가는 길이다
한음 이덕형 신도비(경기도기념물 제89호)
흔히 「오성과 한음」으로 잘 알려진 한음은 선조 13년(1580) 문과에 급제하여 1592년 예조참판과 대제학을 겸임하였고
그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정주에 이르렀고, 청원사가 되어 명에 건너가 원병을 요청하는 데 성공했다
명나라 원병이 들어오자 명장 이여송의 접반관으로 전쟁 중 줄곧 그와 행동을 같이 하였다
선조 31년(1598) 우의정에 승진 · 이어 좌의정에 오른 후 · 선조 35년 영의정에까지 승진하였다
포천의 용연서원 · 상주의 근암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 「한음문고」가 있다
한음 이덕형(1561~1613) 신도비
장방형의 화강암 비좌에 비몸을 세우고 이수를 올린 것으로 이수의 조각이 매우 섬세하다
이덕형이 세상을 떠난 40년 후인 효종 4년(1653)에 건립되었다. 묘역 아래 3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음 이덕형의 사부춘첩(沙阜春帖)에서 빗돌
크나이프 요법
양 팔뚝을 30초 동안 물에 담궜다가 수건을 사용하지 않고 바람에 말리기
월활한 혈액 순환을 방해하는 유독한 침전물은 용해하고 체온을 정상적으로 내려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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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방법으로 스트레스 해소하기다
물소리길 도보인증대
옆 쉼터에서 이동식을 했다
달구덩이산을 지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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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물소리길은 이 집 앞쪽 느티나무 버스정류장에서 오른쪽 산으로 들었다
목왕2리 마을회관
여기소(女岐沼)
옛날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서 안방골 · 우방골에서 살다가 이곳에서 목욕을 하던 한 선녀가
머리를 감다가 빗을 빠트려서 빗을 건지려다 빠져 죽고 다른 선녀들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여기소(女岐沼)라고 하였다
이 여기소라고 하는 것은 기계유씨 자산공 휘 영공(杞溪兪氏 慈山公 諱 泳公)의 5대손 첨지중추부사 휘 도기공(僉知中樞府事 諱 致基公)에 기록되어 있다
이 소가 하도 깊어서 명주실 한 꾸리가 다 풀려서 들어가도 모자란다고 전해지고 있다
여기소(女岐沼) 각자
여기소(女岐沼)를 제자(題字)하신 분이다
양근향교 전교(典校)을 역임하셨다고 한다
목왕리길에서 부용산과 형제봉 사이 골짜기로 오른다
물소리길 안내목
가끔 눈에 띈다
꺾어진 나무를 지난다
고갯마루
신원역 방향안내목이 있다
물소리길 안내목
고갯마루를 내려간다
물소리길 방향안내목
물소리길 리본
양자산 · 해협산
한강 너머에 있다
해협산 · 용마산
약수터 정자
신원리 야곡마을 빗돌
몽양 여운형 생가 · 기념관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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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물소리길과 다시 만나는 곳이다
몽양 여운형 생가 · 기념관
1층 몽양 여운형 기념관 · 2층 생가
몽양에게 설명을 듣는 빅터
몽양의 피격 당시 입고 있던 옷 · 수첩 · 은단 · 장례 때 신문
몽양기념관 개관7주년특별전 〈만장, 한반도 슬픔을 담다〉이 열리고 있다
몽양 여운형 생가
용문산 부용봉 아래 강과 산이 휘감아 따뜻하고 완만한 곳 묘골에 조선 숙종 41년(1715) 함양 이씨가 이곳에 집을 지었다
택호를 영회암(永懷庵)이라 하고 자손들로 하여금 「영원히 이름과 명예를 지켜라」는 선조의 유훈을 실천케 했다
마을 공동우물터 빗돌
조선 숙종 41년(1715년) 함양 여씨가 생가를 지으면서 판 우물로 근래까지 묘골의 유일한 식수원이었다
광동학교 터(光東學校址) 빗돌
"교육을 하여 좋은 인재를 양성하면 동양 전체를 널리 비출 수 있으리니" 몽양 여운영 선생이 1907년 설립한 광동학교 터다
당시 광동학교는 서울 밖에서 근대적 신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한 최초의 학교였다
몽양 선생 어록길
1947년 7월 서거 당시 지녔던 수첩 메모 글로 몽양 선생 어록길에 있는 16빗돌 중 하나다
1908년 양평 장터에서 《국채보상운동》 연설중에서
묘골애오와공원
묘골(妙谷)은 동네 이름이고 애오와(愛吾窩)는 여운영의 친필로 「나의 사랑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몽양기념관 개관7주년특별전 〈만장, 한반도 슬픔을 담다〉 2018. 11. 27 화 - 2019. 2. 28 목
전철 토끼굴 입구 벽화
제목: 몽양의 뜻을 기리며
양평미술협회 회원들의 작품으로 신원역 앞에 있다
신원역
마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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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물소리길 1코스는 국수역까지였는데 짧아졌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1.7km, 소요시간 4시간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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