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밖은 아직 껌껌하다
T.V를 틀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니 날이 밝아 온다
하늘
숙소 창으로 봤다
교동파크
시점이다
교동파크 바로 앞 집인데 대문 기둥에 큰 박을 하나씩 묶어 놓았다
조짜장네 중화요리
토요일에다 늦어서 음식점들이 문을 닫거나 메뉴 선택 여지가 없다
이곳도 밥이 다 팔려 면만 된다 하지만 많은 얘길 나눈 정 많은 주인 내외다
자택이 2층이고 넓어 불편하지 않으실 거라며 추어탕 끓여줄테니 자기 집에 가잔다
벌써 숙소에 돈까지 지불했다고 하니, 가서 해약하고 반이라도 받어 오란다
*
그런가 하면 숙박 3만 원 가격표 붙여 놓고 3만 5천원 달라는 파크텔 주인도 있다
암튼 음식을 다 먹고 나올 때 쫓아 나오시며 다음 올 땐 꼭 전화하고 오라고 한다
두 분 고마웠습니다~!
미용실
교동시장을 돌며 나들길로 나간다
지붕 · 벽 · 굴뚝 등이 눈에 띈다
교동이발관
교동삼거리를 지나 오른쪽 마을을 지나 논길로 들어섰다
가로수가 없어 여름 한낮엔 덥겠다
화개산 방향
강화나들길 리본
띠엄띠엄 붙어 있어서 더 반갑다
남산포선착장
옆에 있는 상여바위를 보니 상여 앞 뒤로 따르는 사람들까지 그럴 듯하다
남산포
석모도 상주산이 보인다
남산포
남산포서 동진포 가는 길은 나들길이 아닌 해변 둑길을 걸었다
통행이 않은 길이라 긴 풀과 잔 나무가지 때문에 걷기 불편했다
교동읍성 남문
교동이 도호부로 승격되고 인조 7년(1629년) 경기수영을 설치할 때 돌로 쌓은 읍성이다
둘레 430m · 높이 6m 규모로 세 개의 문을 내고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과 북문은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고, 남문은 1921년 폭풍우로 무너져 홍예문만 남아있다
안쪽 벽에는 南樓(남루) · 바깥벽에는 三道統門(남도통문)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교동읍성 남루 각자(南樓 刻字)
읍성 안 집 흙벽
담의 재료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부근당(扶芹堂)
교동으로 유배온 연산군이 1506년 9월 이곳에서 병들어 죽자
인근에 살던 사람들이 연산군과 그의 아내 신씨의 화상을 모셔놓고 원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냈다
그 뒤 연산군이 죽은 섣달에 섬 처녀 하나로 하여금 당집에 등명을 드렸는데
한 번 등명을 들고 나면 연산까시라는 귀신이 붙는다고 하여 혼인도 못하고 육지에 나가 무당이 되었다고 한다
읍성에 남아있는 유일한 사적으로 관리가 필요하다
월선포
왼쪽으로 희미하게 섬 같이 보이는 작은 산 너머가 월선포선착장이다
동진포에서 봤다
동진포 방향
수로 왼쪽에 해변 길과 사진처럼 수로와 논 사이 길이 있다
월선포로 넘어가는 낮은 언덕이다
월선포항
상주산
배가 들어온다
창후리 선착장
창후리 선착장
새우를 미끼로 망둥어를 잡으시는데 양동이를 들여다 보니 한 2~30수 하셨다
창후리 선착장
버스시간표
가게에서 물건을 사며 버스 시간을 여쭤보니 밖에 시간표가 있단다
시계를 보니 9시 50분이라 에어콘 나오는 대합실에서 T.V나 보며 기다리자며 들어가
안내원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보니 휴일은 매직으로 쓴 시간이란다
그럼 그렇게 써 놔야지...
결국 11시 30분 · 앞으로도 1시간 30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천천히 걸어 나가기로 했다
별립산
곤파스태풍으로 잘 익은 벼들이 많이 쓰러졌는데 일으켜 세워논 논은 못봤다
젖은 땅에 엎어져서 요즘처럼 날씨 따뜻하면 금방 싹이 나는데 벼 세울 사람이 없나보다
고봉 서예연구원
작품들을 길에 전시해 놓았다
고봉 서예연구원
별립산
동주향
납골당이다
창후리버스정류장
40분 쯤 걸어 나온 이강삼거리 버스정류장에 4개의 버스 번호가 써있다
아무거나 타자며 기다렸는데 결국 창후리에서 나오는 버스를 탔다
하점면민의 날 펼침막
버스정류장에 묶어 놓은 펼침막을 보니 9월 11일이 하점면민의 날이다
초청가수로 조형필과 방쉬리가 나온다
고려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