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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수도박물관 본관

수도박물관 본관(구 송수펌프실)은 대한민국 근대 상수도 역사의 출발지인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의 이야기와 관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수도박물관 본관(예전 송수실 ·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2호)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 수원지 시설이다

미국 콜브란과 보스트윅이 1906년 8월에 송수실 및 여과지를 짓기 시작하였는데 송수실은 1907년 · 여과지는 1908년 8월에 완공하였다

사용된 기재와 시설 일체는 영국과 미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수도박물관 본관

 

 

 

 

 

건축 당시 송수실 벽체 원형

 

 

 

 

수도박물관 본관 현관

경성수도양수공장(京城水道揚水工場) · 광무십일년건축 (光武十一年建築) 표석이 양쪽 벽에 붙어 있다

 

 

 

 

광무 십일년 건축 (光武十一年建築) 표석

 

 

 

 

물장수 모형

1902년 독일인 Esson Third는 중국에서 발간된「극동」이라는 간행지 기행문에서

「...서울에서는 물장수가 지게를 지고 다니면서 걱정스런 태도라고는 전혀 없이 명랑한 음성으로 천연덕스럽게 물을 사라고 외치고 다닌다...」라고

물장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옛 도시생활과 물

상수도가 공급되기 전 도시는 물장사들이 떠 나르는 물에 의존하였다

시내에 상수도를 보급했던 대한수도회사는 물장수의 실직 등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220개의 특설 공동우물을 만들고 수상조합과 계약을 맺었다

물장수들은 공동우물에서 물을 받아 각 가정에 보급하여 원래처럼 물 사용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물장수들의 물 사용료 체납이 빈번해지자 1909년, 대한수도회사는 물 공급을 직영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물장수들의 강한 반발로 수상조합에 의한 보급이 재개되었다

일제강점 이후에도 유지되던 수상조합 체계는 1914년, 수상조합의 물 사용료 체납문제와 위생상 문제로 폐지되었다

이로써 물장수는 완전히 사라지고 시민들은 직접 공용수전에서 길게 줄지어 서서 물표와 물을 바꿔 집으로 가져가게 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100년의 역사

서울 상수도와 근대 주요 사건을 190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연대표로 보여준다

 

 

 

 

1900년대

1903. 12. 09 콜브란과 보스트위크가「상수도의 시설경영에 관한 특허」받음

1908.09 최초 급수 개시

*

1905.11.17 제2차 한일협상조약(을사늑약) 조인

1909. 11. 01 창덕궁 박물관 · 동물관 · 식물관을 일반에 공개

 

 

 

 

1910년대

1911. 01. 24 대한수도회사의 특허권 및 재산권을 신지게도사(社)가 매수

1911. 03. 31 조선총독부가 정부 경영에 필요성으로 신지게도사(社)로부터 매수

*

1910. 10. 01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

1917. 10 한강 인도교 준공

 

 

 

 

1920년대

1922 뚝도정수장 제2정수장을 급속여과지로 시설

1923 노량진 수원지 인천으로부터 인수

*

1925. 10 서울운동장 개장

 

 

 

 

1930년대

1936 노량진, 구의정수장 건설

*

1938. 07 서울 시장에 가격표 붙은 상품 등장

 

 

 

 

1940년대

구의정수장 급속여과지 증설 준공

*

1945 광복으로 미군 서울 입성 경성을 서울로 개칭

1949. 08. 15 지방자치법 시행으로 서울시를 서울특별시로 개칭

 

 

 

 

1950년대

1956 서울시 건설국에 수도과 설립

*

1950. 06. 25 6 · 25전쟁 발발

1952. 07 한강철교 복구 개통

 

 

 

 

1960년대

1961 서울시 수도국으로 승격

*

1961. 12 청계천 복개공사 완공(광교~동대문운동장)

1962. 05 남산케이블카 등장

1968. 03, 08 남산 1 · 2호터널 개통

 

 

 

 

1970년대

1971 영등포수원지 신설

*

1970. 07 경부고속도로 개통

1972 새마을운동

1974. 08. 15 서울지하철 1호선 개통

1979 성수대교 개통

 

 

 

 

1980년대

1989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발족

1989. 09. 11 뚝도 송수펌프실(현 수도박물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2호로 등록

*

1986. 09 제10회 아시안게임 개막

1988. 09 제24회 서울올림픽 개막

 

 

 

 

1990년대

1996 뚝도정수장(구 송수실)을 수도 관련 전시관으로 활용

*

1994. 11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 타임캡슐 매설

 

 

 

 

2000년 현재

2004 각종 수질 자동감시체제 구축 완료, 서울 수돗물 「아리수」로 등록 상표

*

2002. 05 한 · 일 월드컵경기 개막

2005. 10. 01 청계천 복원 완료 개방

 

 

 

 

뚝섬수원지 현판 (제작년도 1956년) · 뚝섬수원지에 걸었던 대리석 현판

 

 

 

 

수도경영의 특허를 받다 · 1906년, 첫 삽을 뜨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울 시민의 식수는 우물과 샘물에 의존하였으나 우물물의 부족현상과 콜레라의 만연으로 상수도 시설의 필요성이 절실하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상수도 기술에 관한 한 전무한 상태였다

이에 전차와 전기를 한국에 도입했던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트위크가 발 빠르게 움직여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로부터 상수도의 부설 경영에 관한 특허를 받았다

그들은 이 특허권을 영국인들이 설립한 대한수도회사에 양도하고 대한수도회사는 다시 콜브란과 보스트위크에게 공사시행을 맡겼다

1908년 8월 1일, 드디어 뚝섬에 정수장 공사가 착공되면서 서울에 본격적인 상수도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1908년, 경성수도양수공장 준공

뚝도정수장 제1수원지는 처음에는 「경성수도양수공장」이라 불리었다

경성수도양수공장은 1906년 8월 1일 공사를 시작하였고 · 1908년 8월 준공하였으며 · 1908년 9월 1일 드디어 최초의 급수를 시작하였다

 

 

 

 

대현산배수지 준공 표지석(1907년)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과 함께 완공되었던 지금의 성동구 금호동에 위치한 대현산배수지 준공표지석(제1배수지)이다

대현산배수지에 도착한 수돗물은 2개의 배수지에 저장되었다

각각의 시설용량은 제1배수지가 6,407톤 · 제2배수지가 2,795톤 · 총 9,202톤의 수돗물을 저장할 수 있었다

 

 

 

 

대현산배수지 준공표지석(1910년대)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과 함께 완공되었던 지금의 성동구 금호동에 위치한 대현산배수지 준공표지석(제1배수지)이다

침전지 - 여과지 - 정수지를 거쳐 완성된 수돗물은 마지막으로 송수실을 거쳐

정수장에서 3,334m 떨어진 79m높이의 대현산배수지를 통과한 후 사대문 안과 용산 일대에 공급되었다

 

 

 

 

생명을 품고 흐르는 한강

한강은 두 개의 물줄기인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서 흐르는 큰 강이다

양수리에서 합쳐진 한강은 서북쪽으로 흘러 서울시를 거치면서 탄천 · 양재천 · 안양천 등의 지류와 합류한다

파주시에 이르러 공릉천과 합치고, 다시 임진강과 합류한 다음 김포반도를 돌아 강화만에서 서해로 흘러들어 간다

 

 

 

 

뚝섬에서 시작된 상수도 역사

뚝섬 지역에 최초의 근대 정수장이 들어선 이유는

1900년대 당시 청계천과 중랑천이 생활하수로 인해 수질오염이 심각했기 때문에

오염이 적고 유량이 풍부한 뚝섬 지역에서 맑은 물을 취수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완성된 수돗물을 각 지역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증기터빈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러한 증기터빈을 돌리기 위한 땔나무와 숯의 집산지가 인근 뚝섬나루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정수장이 조성되었다

 

 

 

 

한강물을 끌어들이다

상수도 기술 도입 초창기에는 한강에 취수정을 설치하고 펌프를 통해 물을 끌어들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점점 수돗물의 수요가 증가하고 시설용량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방식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강의 중심 방향으로 취수탑을 설치하여 물을 취수하였다

 

 

 

 

침전지를 지나다

침전지는 물속의 무거운 불순물 등을 자연 침강식으로 가라앉혀 주는 설비이다

대략 4~5시간의 체류 시간 동안 불순물은 침전지 바닥으로 가라앉고 맑은 윗물은 다음 단계의 완속여과지로 보내진다

 

 

 

 

완속여과지를 지나다(여과수 집수블럭)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 조성 당시 5개의 완속여과지를 운영하였다

각 여과지는 동파 방지를 위해 철근 콘크리트로 뚜껑을 덮고 그 위를 60cm 흙을 덮었다

바닥에는 두께 약 25cm의 자갈과 75cm의 모래가 채워졌고, 여과 속도는 4m/일 정도였다

 

 

 

 

완속여과지의 구조 모형

 

 

 

 

경성수도양수공장(1908년)

서울 최초의 정수장 모형이다

 

 

 

 

정수지를 지나다

완속여과지를 통과한 물은 각 출구에 설치된 양수기를 거쳐 400㎜ 관을 통해 정수지로 유입되었다

정수지는 송수실 서쪽에 조성되었으며, 용량은 920㎥이다

정수지를 통과한 물은 350㎜ 관을 통해 송수실로 유입되었다

정수지는 생산된 수돗물의 양과 공급할 수돗물의 양 간의 불균형을 조절하고

여과단계 이후 주입된 염소를 균일화하여 수질을 안정시키는 최종 단계의 시설이다

정수지에서 염소와 접촉한 물은 공급과정에서 세균에 오염될 가능성이 작다

 

 

 

 

밸브 장치

네모난 장치가 역지변으로 펌프 중단시 수돗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을 자동으로 막는 장치고

둥근 밸브는 수돗물의 흐르는 양을 수동으로 조절하거나 차단하는 장치다

 

 

 

 

수돗물을 내보내다

취수-침전-여과-정수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수돗물은 이곳 송수실에 설치되어 있던 모터펌프의 동력을 이용하여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에서 3.3㎞ 떨어진 79m 높이의 대현배수지로 보내진 후 자연 유하 방식으로 사대문 안과 용산 일대에 공급되었다

 

 

 

 

상수도 사용량

1910년대부터 2014년까지의 급수 인구 · 세대수 · 보급율 등과 1일 1인 평균 급수량이 있는데

1980년 395ℓ에서 1990년 457ℓ로 늘었지만 그후 점차 줄어 2014년 298ℓ로 줄은 것을 보니 고무적이다

 

 

 

 

근대 상수도 역사의 시작

1908년 9월 1일 완속여과 방식에 의해 생산된 12,500㎥의 수돗물을

사대문 안과 용산 일대의 주민 125,000명에게 공급했던 것이 근대 상수도 역사의 첫 출발이었다

 

 

 

 

경성 수도 일반 평면도

대현산배수지로 송수된 물은 배수본관에 의해 광화문을 거쳐 시가지에 들어와 을지로5가 부근(예전 청녕교)에서 4개 구간으로 분리 공급되었다

 

 

 

 

수도박물관 본관

 

 

 

 

야외전시장 · 완속여과지

완속여과지를 통과한 물은 여과지 각 면의 출구에 설치된 양수기를 거쳐 400mm 관을 통해 정수지로 유입되었다

정수지는 송수펌프실(수도박물관 본관) 서쪽에 조성되어 있으며 용량은 920㎥이다

정수지를 통과한 물은 350mm 관을 통해 송수펌프실로 유입되었다

 

 

 

 

송수펌프실 모터펌프(영국 워싱턴사 제품)

취수 - 침전 - 여과 - 정수의 과정을 거쳐 생산된 수돗물은 송수펌프실 모터펌프에 의해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에서 3.3km 떨어진 79m 높이의 대현배수지로 보내진 후 자연유하 방식으로 사대문 안과 용산 일대에 공급되었다

 

 

 

 

완속여과지

전체 면적 총 4,344㎡ · 설치연대 1908년(융희 2년) · 운영기간 1908년~1990년

고운 입자 모래층에 물을 천천히 통과시켜 불순물을 걸려내는 정수시설이다. 1908년 5지(池)를 설치하였고, 1938년 1지를 증설하였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990년 가동을 중지한 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다

 

 

 

 

완속여과지 윗부분

 

 

 

 

완속여과지 내부

한강에서 취수된 물은 침전지에서 모래 등의 무거운 물질을 가라앉힌 후 완속여과지에 들어오게 된다

모래와 자갈층으로 구성된 완속여과지는 모래층에 증식하는 미생물을 이용하여 물속 부유물질 등을 걸려내고 분해하는 방식으로 정수가 이루어진다

이때 물의 탁도가 낮아지는 것은 물론 세균까지 제거될 뿐 아니라 철 · 망간과 같은 융해성 물질도 걸러진다

 

 

 

 

모래층의 두께는 80cm를 기준으로 하였으며 여과 속도는 4m/일이었다

동파 방지를 위해 상부 철근콘크리트로 천정 위에 60cm의 흙이 덮혀있었으나 지금은 안전문제를 고려하여 상부의 흙은 제거하였다

완속여과방식은 원수의 수질이 양호한 경우 정수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수돗물을 생산할 수 있는 정수시설이다

장치가 간단하고 운전 · 유지 관리가 쉬운 방식이나 넓은 면적의 부지가 필요하고 생산효율이 매우 낮은 단점이 있어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정수방식이다

 

 

 

 

뚝도정수장 완속여과지 모래(여과사) 교체작업

매주 1회 정도 모래 위의 부유물질을 걷어내는 작업을 했으며 매년 1회 이상 모래를 보충하는 작업을 하였다

 

 

 

 

여과지 운영 사용 당시 물높이 표

 

 

 

 

정수지와 환기장치

전체면적 672㎡(저수용량 920㎥) · 설치연대 1908년(융희 2년) · 운영기간 1908년~1990년으로

정수지는 바로 옆에 위치한 완속여과지를 통해 걸러진 맑은 물을 높은 배수지까지 올리기 전 수돗물을 일시 저장하여

생산량과 공급량의 불균형을 조절하고 염소를 균일화하여 수질을 안정시키는 최종단계의 시설물이다

*

정수지는 6개의 통풍구를 내어 정수지 내부 환기를 도왔으며 상부의 환기장치는 2012년 산화로 인한 손상을 보존처리하여 수리를 완료하였다

 

 

 

 

야외전시장

우물 · 작두펌프 · 공동수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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