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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용마산~망우산

용마산(龍馬山 348m)

망우산과 아차산 등 주변 산지와 연결되어 있고 조선시대까지는 이 모두를 아차산이라고 불렀다

예로부터 아차산의 최고봉으로 중랑천 지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고구려가 전쟁에 대비해 만든 소규모 요새지인 보루 유적이 있다

용마산이란 이름은 《아기장수설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용마산역 2번출구

중랑둘레길과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시점이다

 

 

 

 

용마산 등산로 바닥안내판

 

 

 

 

용마산 아기장수설화

삼국시대에는 장사가 태여나면 가족을 모두 역적으로 몰아 죽이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백제와 고구려의 경계였던 이곳에서 장사가 될 재목의 아기가 태여났는데, 걱정하던 부모가 아기를 죽여버렸으며

그 뒤 용마산에서 용마가 나와 다른 곳으로 날아간데서 용마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인천 천마산 아기장수설화와 같다

 

 

 

 

중랑 스포츠클라이밍 경기장

산행 전 용마폭포공원을 돌아본다

 

 

 

 

용마폭포

세 갈래의 폭포 줄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운데 폭포가 용마폭포 · 왼쪽 청룡폭포 · 오른쪽 백마폭포이다

 

 

 

 

중랑둘레길 · 용마폭포 방향 안내판

용마산과 중랑둘레길 들머리는 농구장을 지나 왼쪽에 있다

 

 

 

 

벤치쉼터

농구장을 지난 초입 들머리는 공사장 출입금지 테이프가 쳐져 있다

그렇게 들머리 몇 곳을 지난 곳이다

 

 

 

 

용마산정

쉼터에서 계단을 올라서니 전망바위 위에 있다

 

 

 

 

용마교

 

 

 

 

용마산정(龍馬山亭)

서울시 선정 우수조망명소 안내판이 있다

 

 

 

 

서울시 선정 우수조망명소

청계산에서 북한산까지 안내되어 있다

 

 

 

 

실제 전망은 미세먼지로 용곡초등학교만 보일 뿐 바로 앞 중랑천조차 잘 안보인다

 

 

 

 

용마산정

용마산정에서 마루금으로 올라 봤다

 

 

 

 

계단을 오른다

 

 

 

 

전망대

이곳에서 만난 산객 두 분의 대화다

산객 1 · 아무 것도 안보이네

산객 2 · 야! 우리가 저 속에서 사는거야??

*

중국만 탓할께 아니라 대책을 세워야 한다

 

 

 

 

중곡동 방향

전망대에서 봤다

 

 

 

 

다시 계단을 오른다

 

 

 

 

전망대

계단을 올라 돌아봤다

 

 

 

 

용마산(348m) 정상 빗돌

1910년 우리나라 최초 토지조사사업을 위하여 서울지역에 설치된 2개의 대삼각점(1등삼각점) 중 하나가 뒤에 있고

앞쪽엔 정상 빗돌에 서서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을 수 있는 휴대폰 거치대가 있다

 

 

 

 

용마산 정상 · 망우공원 관리사무소 방향안내판

 

 

 

 

아차산 · 용마산 마루금

정상과 용마산 4보루 사이에서 이동식을 하며 봤다

 

 

 

 

용마산 4보루(사적 455호)

제3헬기장이라 표기되어 있다

 

 

 

 

제2헬기장

이동매점이 있다

 

 

 

 

아차산 4보루

제2헬기장에서 봤다

 

 

 

 

용마산 5보루

서쪽 중랑천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용마산 7개 보루 중 하나다

 

 

 

 

망우리의 유래 안내판

망우리에 조선 태조와 동문수학하던 정씨가 살고 있었는데

정치에 골치가 아프던 태조가 자기가 묻힐 자리를 찾는다고 돌아다니다 동구릉 자리를 찾아냈다

묘 자리를 정해놓고 흐뭇해 하던 태조는 동문수학하던 정씨의 조상 집이 가까이 있어

그 집에 가서 "이제 나 후세에 들어갈 자리를 마련해 놨으니 이제 모든 시름을 잊었다네"라고 말한 후

그 다음부터 걱정을 잊었다는 의미로 「망우(忘憂)」라고 했다 한다

 

 

 

 

구리둘레길 안내판

 

 

 

 

서울둘레길 리본

깔딱고개 570계단을 내려간다

 

 

 

 

전망대

서울둘레길 리본 · 구리둘레길 안내판이 함께 있다

 

 

 

 

천마산부터 금암산까지 안내되어 있다

 

 

 

 

하지만 바로 앞 암사대교만 겨우 보일 뿐이다

 

 

 

 

맞은편 전망대는 북한산 비봉부터 불암산까지 안내되어 있다

 

 

 

 

깔딱고개 쉼터

빨간 서울둘레길 스탬프 보관대가 있다

 

 

 

 

망우산 1보루

망우산 보루 중 훼손이 심한 2 · 3보루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망우산 남쪽 끝 봉우리(280.3m)에 자리하고 있으며 용마산 보루와 시루봉 보루가 잘 조망된다

 

 

 

 

산불감시탑

 

 

 

 

시루봉 · 용마산 갈림길 안내판

오른쪽 용마산 방향에서 내려와 돌아봤다

 

 

 

 

망우산 순환도로

정자 옆으로 망우산 마루금이 보인다

 

 

 

 

망우전망대

도로에서 마루금으로 올라 10여 분 거리다

 

 

 

 

망우전망대

북한산부터 불암산까지 안내되어 있다

 

 

 

 

봉화산(159.8m)

 

 

 

 

망우산(282m) 정상

확성기 지지대에 붙여놓은 망우산(282m) 나무 팻말과 바닥에 모아놓은 돌들이 정상임을 알게 한다

망우산 3보루 구역이다

 

 

 

 

망우산 묘역 구간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 묘역

1973년 도산공원으로 이장되었다

 

 

 

 

화가 이인성의 묘

서양화가 이인성은 1912년 8월 28일 대구시 북내정 16번지에서 태여나

17세 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두각을 나타낸 이래 한국근대미술 도입기와 성장기에 빼어난 창작활동을 펼쳤다

일본 도쿄 태평양미술학교 재학 시절, 제국미술전람회 · 문부성미술전람회 · 광풍회공모전 등에 입선, 일본에서도 명성을 떨쳤다

1935년 귀국한 뒤 대구와 서울에서 활약하면서 선전 · 제전 등에 여러 차례 입선 · 특선했으며

선전 추천작가 · 국전 심사위원을 지내는 등 우리 화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굳혔다

한국미술사에 길이 빛날 작품들을 남긴 그는 1950년 절정의 기량을 더 펼쳐보지 못한 채 38세로 요절, 불꽃같은 예술적 인생을 마감했다

 

 

 

 

역사의 전망대

풍수적으로 이곳 망우리가 배산임수의 명당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이다

고구려 보루 유적이 말해 주듯 한강 유역은 중국과의 교역로이며 땅은 비옥하고 전쟁에 유리한 지형으로 삼국시대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는 외사산의 좌청룡의 자리로 한양을 병풍처럼 크게 둘러싸며 조선 500년을 지켜왔다

 

 

 

 

송촌거 지석영 묘(松村居士池錫永墓)

종두법과 한글전용운동 및 가로쓰기를 주장했다

대구판관 · 한성부윤 · 동래부사 · 부산항재판소 초대판사를 겸임했다

 

 

 

 

구리시

전망 좋은 묘지에서 봤다

 

 

 

 

계단에서 내려서니 망우산 순환도로다

 

 

 

 

경서노고산천골취장비(京西老姑山遷骨聚葬碑)

1938년 서울 서쪽 노고산(서강대 뒷산) 공동묘지의 무연고 묘를 합장하고 세운 비석이다

오세창의 글씨다

 

 

 

 

격동적인 근현대사를 살다 망우리공원에 묻힌 유명인사 50여 명의 사진과 약력 등이 있다

 

 

 

 

망우산

걸어나오다 봤다

 

 

 

 

오작교

 

 

 

 

소통(疏通)의 문

예로부터 서울의 도심은 4대문을 기점으로 안쪽에 위치하여 왔다

도심은 광역화되고 서울로의 접근 방법이 다양화 된 오늘날 4대문은 더 이상 서울의 관문이라 할 수 없다

이제 서울의 근교와 인접한 많은 지역들이 서울의 관문으로써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다

그 중 중랑구는 서울과 구리시를 연결하는 동북쪽의 관문이다

 

 

 

 

소통의 문

대문(大門)의 한자인 문(門) 자(字)를 형상화하였다

*

동부제일병원 버스정류장

시속 2km의 느린 삶을 마친 곳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거리 8.7km, 소요시간 4시간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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