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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인천 동구 송림동

1900년대 초 일본군이 중구 전동 부근에 주둔하면서 쫓겨온 사람들이 송림산에 움막을 지었다

이어 6 · 25전쟁이 터지자 황해도 등 이북사람들이 산등성이에 모여들었고

1960, 70년대 접어들면서 공장의 일자리를 찾아 충청도 · 전라도 사람들이 들어왔다

현재의 송림동은 동인천 · 제물포 · 인천교 등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인천 원도심에 해당하는 주택 밀집지역이며 송림로에 접한 일부 지역은 상가지구로 조성되어 있다

 

 

도원역

시점이다

 

 

 

 

창영방아간

6 · 25전쟁 후부터 할머니부터 아버지 · 손자까지 이어온 3대 떡집이다

강화 교동에서 생산된 쌀과 찹쌀로 떡을 만든다

송림동은 아니지만 지나는 길에 만들었다

 

 

 

 

인천 동구청

1916년 9월 6일부터 인천보건조합이 운영했던 도축장이 있던 곳이다

1964년 1월 1일부터 동구청사로 사용하였다

구청 마당에는 도축장에서 희생된 동물의 넋을 위로하는 비석이 있었다

 

 

 

 

동명초등학교

설립자 박창례 선생은 1929년 도원동 보각선원에서 관서학원으로 시작해

1931년 유동에 일본인 땅을 빌려 현 동명초교의 근간이 된 동명학원을 설립한다

그러나 1933년 일제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의 이름을 딴 간판을 내걸 수 없다고 트집을 잡아 일본식 이름인 소화강습회로 개명했다

1946년 8월 일본 동경대 전염병연구소의 실험용 우사를 인수해 지금의 동명초교 터를 만들었다

 

 

 

 

노다장유 공장(지금의 인천기동대)

1905년 일본 모기와 다카나시 가문이 설립한 일본장유(주) 인천공장 터다

일본장유(주)는 8대에 걸친 노다장유의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해 1917년 노다장유(주)로 명칭을 바꾸고

된장 · 간장 · 조미료 · 향료 · 청주 · 소주 등을 생산하는 종합식료품 제조회사로 변신했다

 

 

 

 

수도국산

원래 이름은 송림산 혹은 만수산이었으나

1910년 노량진에서 끌어온 물을 저장하는 배수지를 산꼭대기에 만들면서 수도국산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송림산의 동서로 송림동과 송현동으로 나뉜다

 

 

 

 

배다리에서 수도국산을 통과하는 산업도로를 만들려다

아벨서점과 박의상실의 건의와 스페이스 빔이 이전해 옴으로 도로 개통은 무산되었다

집을 철거한 공터에 마을 주민들이 농사를 짓는다

 

 

 

 

송림초등학교

1933년 4월 5일 인천송림심상학교로 개교했다

 

 

 

 

왼쪽 계단이 송림유치원 담을 끼고 송림동 성당으로 가는 길이다

 

 

 

 

송림동성당

1956년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로 유명한 이희태에 의해 세워진 성당이다

이희태는 명수대성당(1954) · 혜화동성당(1960) 등을 지었다

송림동성당은 종탑과 성당이 구분된 구성이 독특하다

 

 

 

 

용현엑슬루타워멀리 보인다

수도국산에서 봤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1904년에 왜병이 전환국(현재 전동) 근처에 주둔하였는데

이때 이곳 주민들을 강제로 철거시켜 송현동 산 언덕에 새로운 주거를 정해 주었다고 한다

또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1960, 70년대 산업화에 의해 모인 3천여 가구 사람들이 모듬살이를 한 곳으로

2005년 개관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이 지난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부처산

수도국산에서 본 동쪽 방향으로 멀리 재능대학교 등 학교들이 몰려있다

 

 

 

 

향적사 불골진신사리오층석탑

이 탑에는 인천지역 최초로 부처님의 진신사리 4과가 모셔져 있다

2001년 4월 13일 건립됐다

 

 

 

 

송림삼거리 방향

 

 

 

 

똥고개를 내려간다

송림동 사람들이 수도국산 옆으로 해서 화수동과 만석동을 다니던 고갯길로 1960년대 말까지 주로 배추를 심던 비탈진 밭이었다

농부들은 배추 수확을 하고 난 자리에 인분을 퍼 날랐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이게 얼어붙어서 땅과 구분이 되지 않아 이웃동네에서 온 아이들은 비탈길을 가로지르다 웅덩이에 빠지는 사고를 심심치 않게 당했다

 

 

 

 

송림체육관(예전 송림위생처리장 터)

1977년 똥고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송림위생처리장이 설립되었다

인천 각지에서 수거된 분뇨가 이 똥공장에서 처리되는 등 이 동네는 인분과 관련이 많았다

이 처리장은 1996년 9월 폐쇄되고,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배구장으로 재탄생했다

 

 

 

 

황금고개사거리

그런 연유로 백병원 앞 사거리의 명칭은 인분을 미화한 황금고개사거리라 명명되었다

 

 

 

 

인중로

황금고개사거리에서 봤다

 

 

 

 

현대극장

1960년대 초 500평 규모에 2층 영화관으로 개관했다

시내도 아닌 변두리에 극장이 들어섰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시내 영화관에서 몇 달전에 내린 영화 두 편을 동시상영했다

이 일대는 송림동이란 명칭보다 현대극장 동네로 통했다

1998년 2월 문을 닫었다

 

 

 

 

현대예식장(지금 파리바게뜨)

현대극장 옆에는 현대예식장이 있었다

중구 용동의 신신예식장과 쌍벽을 이루던 예식장이었다

 

 

 

 

현대상가(주상복합 건물)

1971년 현대극장 바로 옆에 아래층은 가게, 위층은 살림집인 일종의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다

이 터는 인근에서 키운 배추 등으로 채소 경매를 하며 노점상들이 장사를 하던 곳이었는데

상가 건립을 추진하면서 노점상들을 길 건너 시장 깡마당 빈터로 강제 이주시켰다

쫓겨난 노점상들은 결속을 다지며 상권을 형성해 동부시장을 설립했다

 

 

 

 

현대상가

현대상가 2층은 각 집을 통해서만 오를 수 있으며 각 동은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해가 좋은 날에도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어두워 곳곳에 백열등이 켜져 있다 

 

 

 

 

현대시장

동부시장 설립 이후, 원예협동조합공판장 · 동구상가 · 궁현상가 · 송육상가 · 중앙상가 등을

현대시장이란 이름으로 한데 어우르며 한 때 인천 최대의 시장으로 발전한다

 

 

 

 

닭알탕거리

현대시장 길 건너 닭알탕 전문 주점들이 모여있는 거리다. 닭알은 죽은 암닭 배속에서 꺼낸 달걀이 못된 알이다

50년 전 맞은편 현대시장 닭전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닭알을 포장마차에서 얼큰하게 찌게로 끓여 내놓으면서 신메뉴가 되었다

현대제철과 인근 철공소에 다니던 노무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닭알탕 전문 주점들이 생겼다

 

 

 

 

송림아뜨렛길

숭의로터리와 상벽을 이루던 송림오거리 지하 문화공간이다

LED조명을 이용해 상추 · 배추 · 무 등을 키우는 식물공장 '동이네 다랑채'를 비롯해

차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북카페와 사진과 그림을 볼 수 있는 갤러리가 조성되어 있다

작은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무선학교(지금 재능대학교)

1955년 부처산 꼭대기에 설립한 학교로 모르스 부호와 진공관 라디오 기술을 가르켰다

당시 모르스 신호 등 무선 기술이 각광받던 시절로 졸업생들은 체신부 등에 취업했다

1965년 미군의 시멘트와 철근의 원조로 교사를 짓는 등 학교를 확장했다

대헌공고 · 대헌전자공업전문학교 등을 거쳐 현재의 재능대가 되었다

 

 

 

 

동산중 · 고등학교

1938년 7월 율목동에서 인천 10대 부호 중 한 사람이었던 이흥선의 주도로 인천상업강습회를 설립했다

이는 조선인의 순수 재원으로 운영된 유일한 민족학교였다

1939년 상업전수학교로 개편했고, 1941년 영원농원 배밭이 있던 현 위치에 교사를 신축하고 1946년 동산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류현진거리 안내판

 

 

 

 

박문여자중 · 고등학교

1940년 5월 18일 송림심상소학교(지금 송림초등학교)의 교실 두 칸을 빌려 2개 학급에 120명(조선인 · 일본인 각 60명)을 모아 소화고등여학교로 개교했다

당시 인천부에는 인천공립고등여학교가 유일했기에 이 학교의 개교는 인천부민의 염원을 이룬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1945년 9월 30일 인천박문여자중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했고, 1956년 8월 30일 부평교사에서 현 위치로 신축 이전하였으나

박문여중은 2014년 2월, 박문여고는 2015년 2월 연수구 송도동으로 이전했다

 

 

 

 

계명원(지금 진로아파트)

1951년 11월에 세워진 고아원이다. 1996년 10월 21일 강화군 양도면으로 이전했다

 

 

 

 

도화동 성당

도화동 성당 전신은 샛골공소로 1910년 설정되었다

본당으로 승격된 후 박문여자고등학교 교실 3칸을 임대하여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1963년 4월 25일 성당 봉헌식을 열었다

 

 

 

 

오목골

메밀우동으로 점심을 했다

 

 

 

 

제물포역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9.7km, 소요시간 3시간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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