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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이야기

연천 신탄리역~동송 두루미펜션

철원은 민통선의 아름다운 자연과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6 · 25전쟁 전에는 북한, 휴전 후 지금은 남한의 최전방으로 개발이 보류된 곳이다
38선과 휴전선에 갇혀 있는 외로운 철원을 찾았다

 

 

신탄리역
고대산을 찾는 등산객과 노인들로 4량의 차량은 만원이다

 

 

 

 

통일출발역
세계 1등 대륙철도, 한반도의 통일을 꿈꾸며 !

 

 

 

 

철도종단점
신탄리역에서 철길을 따라 올라가면 평화누리길 연천길 마침점인 철도종단점이 있다
오른쪽엔 통일시대를 대비한 경원선 복원 지반공사가 한창이다

 

 

 

 

차탄천
경원선 복원 지반공사 소음을 피해 신탄교에서 건넜다

 

 

 

 

차탄천변

철조망을 따라 올라간다

 

 

 

 

사람 통행이 없어 길이 희미하다

 

 

 

 

대전차방어벽
신탄2교 못미쳐서 3번국도로 나왔다

 

 

 

 

고롱이 · 미롱이
고롱이는 사람들에게 역사속에 깃든 의미를 되새겨 주는 일을 하고
미롱이는 희망찬 미래를 알리는 일을 하며 아름다운 연천을 만들기 위해 바쁘게 뛰어 다닌다

 

 

 

 

대전차방어벽

 

 

 

 

경기도 연천군 · 강원도 철원군 경계지점

 

 

 

 

풍년기원미사(손모내기 및 우렁이 넣기 행사)
가톨릭농민회 대광리분회 용담농장에서 행사중이다

 

 

 

 

논에 들어간 아이들의 신발이다

 

 

 

 

논에 뿌려질 우렁이들이다

 

 

 

 

농악

농자천하지대본 깃발이 흥겹게 춤춘다

 

 

 

 

엉겅퀴
용담마을로 가는 길가에 많이 피어 있다

 

 

 

 

용담마을
쇠둘레평화누리길 2코스인 금강산가는 길의 시점이다
용담이란 지명은 궁예가 금학산이 아닌 고암산을 태봉국 진산으로 정하자
용이 바닷물을 이끌고 들어오다 노해 되돌아갔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대전차방어벽
"경원선 복원 통일시대의 시작입니다"라고 써있다

 

 

 

 

개척마을 대마리
백마고지 전투의 앞마당이였고 남방한계선이 관통하고 있었던 대마리에
1968년 8월 29일, 첫 150세대 830명의 가족들이 2만5천 개의 지뢰를 제거하며 논밭을 넓혔다

 

 

 

 

묘장초교 · 철원두루미평화마을정보센터
백마고지(산정에 건물이 있는 곳) · 김일성고지(고암산 · 중앙에 제일 높은 산) · 대성산(오른쪽)이 뒤에 있다

 

 

 

 

대마사거리

 

 

 

 

철원역(폐역)으로 가는 길이다

 

 

 

 

대마리 백마고지 빗돌
백마고지 들머리에 있다

 

 

 

 

백마고지 위령비
백마고지에서 희생된 국군 898위의 영혼을 진혼키 위해
5사단 전 장병과 대마리주민 · 백마고지 참전전우회의 뜻을 모아 세웠다

 

 

 

 

백마고지 전적비

 

 

 

 

지뢰표지
백마고지에서 노동당사로 가는 길이다

 

 

 

 

철원도호부사 박공병청백애민선정비 신 · 구 빗돌
선조 20년 정해 1587년에 나셔서 현종 계묘 1663년에 졸함
인조 24년 · 1646년 10월 29일 철원부사로 부임하여 효종 2년 1650년 5월까지 이도(吏道)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오래된 석비엔 총탄의 흔적이 보인다

 

 

 

 

철원경찰서 터
일제식민통치기구에 의해 간행된 「철원읍지」에 의하면 1937년 경찰본서 인원은 34명이였으며
철원역전 주재소를 비롯하여 10개 주재소와 1개 출장소가 있었으며
주재소당 4명의 경찰력을 배치하여 일제식민통치의 전위기구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6 . 25 전쟁 당시 노동당사와 더불어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었으나, 후에 완전히 파괴되어 그 터만 남아있다

 

 

 

 

노동당사 / 등록문화재 제23호
1946년 초 북한 땅이였을 때 세워진 러시아식 건물로 한국전쟁 때까지 사용한 조선 노동당 철원군 당사다
현재 2 · 3층이 내려앉아 골조만 남아 있고 1층은 각방 구조가 남아 있다

 

 

 

 

노동당사 뒷 벽
남 · 북으로 주인이 바뀌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숙청된 노동당사엔 총탄의 흔적이 뚜렸하다

 

 

 

 

노동당사 벽

총탄의 아픔을 알리 없는 잡초가 상처난 외벽에서 자라고 있다

 

 

 

 

노동당사 내부

 

 

 

 

소이산 생태숲 둘레길
봉수대가 위치했던 소이산에 둘레길이 만들어져 「생태숲 녹색길 · 소이산가는 길」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 길로 가면 쇠둘레평화누리길 2코스에 있는 수도국지 · 새우젓고개 · 용담마을이 나온다

 

 

 

 

철원제일감리교회 /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제23호
1936년 지하 1층 · 지상 3층으로 건립되었으며 신도 수는 500여 명에 달했다
해방 후 공산치하에서는 이 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청년학생들의 반공투쟁이 활발했다
6 · 25 당시, 북한군이 막사로 쓰면서 지하실을 양민과 반공투사들을 고문 · 학살하는 만행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6 · 25전쟁으로 파괴되었고, 2002년 등록문화재 제23호로 등록되었다

 

 

 

 

월하2길
철원향교로 가는 길이다

 

 

 

 

철원향교
孔紀(공기) 2562년(2011)에 복원되었다
월하삼거리에서 도피안사로 가는 길에 있다

 

 

 

 

명륜당(明倫堂)

 

 

 

 

금강산가는 길 방향안내판
향교에서 도피안사로 가다 만났다
철원에 있는 2개의 「쇠둘레평화누리길」 중 하나다

 

 

 

 

도피안사(到彼岸寺)
통일신라 말기 부패하고 혼탁한 세상을 구하고자 도선국사를 주축으로 철원 향도 1,500명이 창건한 사찰이다
미륵신앙을 신봉한 이들은 후일 태봉국 건국의 주역이 되었으며 이러한 전통에 힘입어 일제시대 3 · 1만세운동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철조비로사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 / 국보 63호
신체와 대좌가 모두 철로된 신라 말의 보기 드문 불상이다
뒷면에 새겨진 139자의 명문 가운데 「함통6년 기유 정월」의 문구가 있어서 이 불상의 제작시기는 신라 경문왕 5년(865)임을 알 수 있다

 

 

 

 

학저수지
도피안사에서 다시 464번지방도로로 나가다 보니 멀리 보인다

 

 

 

 

대위리 정미소
가끔 보이는 정미소 건물들이 새로 칠한 듯 깔끔하다

 

 

 

 

금강산 가던 철길
1924년 8월 1일 철원과 김화 사이에서만 승객을 운송했고 나머지 구간은 창도광산을 수탈하기 위한 것이였다
그러다가 1931년 7월 1일 내금강까지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대전차방어벽

 

 

 

 

제2땅굴 안내판

 

 

 

 

雖死不敗 靑星鬪魂(수사불패 청성투혼)
「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라는 청성부대의 투혼이다

 

 

 

 

옛 초소

 

 

 

 

오성산
한국전쟁에서 가장 처절한 전장인 밴플리트의 김화공세가 오성산을 뺏기 위한 작전이었다
북방한계선 너머에 있는 산이다

 

 

 

 

모내기

조용하고 한가로워 보이지만 가장 바쁜 모내기철이다

 

 

 

 

양지리 빗돌
철새마을 양지리로 들어간다

 

 

 

 

양지보건진료소

 

 

 

 

양지구판장
이곳에거 저녁과 아침을 위한 식료품을 샀다

 

 

 

 

두루미펜션 황조롱실

 

 

 

 

양지리
두루미펜션 황조롱실에서 봤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25km, 소요시간 7시간 51분
총 걸은 거리 246.6km, 총 소요시간 79시간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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