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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계룡산 남매탑

남매탑(男妹塔)은 동학사와 갑사 중간 지점인 삼불봉 밑에 탑 2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5층(보물 제 1284호) 다른 하나는 7층(보물 제1285호)으로 청량사지쌍탑(淸凉寺址雙塔)이라고도 불리며

남매탑이란 이름에 걸맞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

신라시대 때 상원조사가 이곳에 토굴을 만들어 수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울부짖으며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스님이 입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큰 가시 하나가 목구멍에 걸려 있어 뽑아주었더니

며칠 뒤에 호랑이는 은공을 보답하는 뜻으로 한 아리따운 처녀를 등에 업고 와서 내려놓고 갔다

처녀는 경상북도 상주 사람으로 혼인을 치른 날 밤 호랑이에게 물려 여기까지 오게되었다고 스님께 말하였다

그때는 산에 눈이 쌓이고 추운 겨울이라 돌여보낼 수 없어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자 스님은 처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그 처녀의 부모는 이미 다른 곳으로 시집보낼 수도 없고 인연이 그러하니 부부의 예를 갖춰주기를 바랐다

이에 스님은 고심 끝에 처녀와 의남매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서 불도에 힘쓰다가 한날한시에 입적했다

이렇게 의남매 연을 맺어 수행자로서 열심히 정진한 두 분을 기히기 위해 스님의 제자인 회의화상이 화장 후

사리를 수습하여 탑을 건립하게 되었는데 이 탑을 이름하여 남매탑 또는 오누이탑이라 부르게 되었다

 

 

카페 593

시점이다

 

 

 

 

계룡산 도예촌

 

 

 

 

계룡산 도예촌 안내도

 

 

 

 

도예촌길

 

 

 

 

상신수길

돌담 주택이 있는 곳이다

 

 

 

 

공주 구룡사지(公州 九龍寺址)

백제 말에서 통일신라 초기에 지은 절이 있던 자리이다

주변에서 「구룡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구룡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에 발굴조사를 한 결과 절의 넓이가 거의 1만㎡에 이르는 것을 확인하였고, 여러 건물이 있던 자리를 찾아냈다

그밖에 깨진 비석 · 기와 · 청자와 분청사기 등이 출토되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거대한 당간지주도 구룡사와 관련 있는 유적이다

 

 

 

 

공주 구룡사지(公州 九龍寺址) 빗돌

 

 

 

 

공주 구룡사지(公州 九龍寺址)

건물 주춧돌 같은 것들이 여럿 있다

 

 

 

 

하신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계곡이다

 

 

 

 

예전 매표소가 있던 자리다

 

 

 

 

계룡산 상신마을 산신당 안내판

계룡산 상신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두 번씩 산신제를 지내는 산신당이다

계룡산 산신제는 정월 초이틀 · 시월 초하루 일 년에 두 번 지내는데 온갖 정성을 다 들여서 음식을 장만하고 제사를 지낸다

참가 인원은 이장 1인 · 나무꾼 2인 · 아주머니 2인 등 6명 정도라고 한다

당주는 생지복덕을 헤아려 마을 어른이 지명한다

 

 

 

 

상신탐방지원센터

 

 

 

 

용산구곡(龍山九曲) / 1932년

조선시대 문신 취음(翠陰) 권중면(權重冕 1856~1936)은 1907년 일제의 강압에 의한 한일신협약(정미칠조약)을 계기로

자신의 능주군수 관직을 버린 후 1916년 계룡산 상신리 자락에 자리를 잡고 은거하며 용산구곡을 설정하였다

용을 주요 모티브 및 테마로 설정하고 상신리 계곡을 9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제1곡에서부터 제9곡까지

용이 태어나서부터 승천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펼치며 자연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국권회복을 염원하는 마음을 바위에 새겨 넣었다

 

 

 

 

유룡대(遊龍坮)

용산구곡 중 제4곡 유룡대로 용이 수련을 하다가 쉬면서 노닌다는 뜻이다

 

 

 

 

상신계곡

 

 

 

 

큰골삼거리로 가는 길이다

 

 

 

 

남매탑 · 상신탐방지원센터 방향안내판

 

 

 

 

큰골

 

 

 

 

박석지대

 

 

 

 

단풍이 잘 든 곳이다

단풍철이 이른지 아직 파란 잎의 나무들도 많다

 

 

 

 

용산구곡 제9곡 신룡연(神龍淵) 안내판

제작시기 1932년 · 설정 모티브 승천을 준비하는 용

 

 

 

 

용산구곡 제9곡 신룡연(神龍淵)

용이 승천하여 신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낼 영재들이 많이 나와 나라와 민족이 강성해질 것을 갈구하는 기원의 메시지다

*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각자는 못찾았다

 

 

 

 

큰골삼거리 방향안내목 / 해발 365m

 

 

 

 

큰골삼거리로 오른다

 

 

 

 

남매탑 · 금잔디고개 방향안내판

큰골삼거리 갈림길이다

 

 

 

 

큰배재로 오르는 돌계단이다

 

 

 

 

남매탑 방향 안내목 / 해발 576m 

 

 

 

 

동학사주차장 · 남매탑 방향안내판

 

 

 

 

큰배재로 가는 길이다

 

 

 

 

동학사주차장 · 남매탑 방향안내판

큰배재 해발 595m 안내목이 옆에 있다

 

 

 

 

큰배재 / 595m 

남매탑 방향에서 돌아 봤다

 

 

 

 

공주 청량사지 오층석탑(公州 淸凉寺址五層石塔 보물 제 1284호) · 공주 청량사지 칠층석탑(公州 淸凉寺址七層石塔 보물 제 1285호)

공주청량사지오층석탑은 청량사 터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탑이다

정밀조사를 한 결과 이 탑은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건축 양식은 목조 건축과 같이 여러 매의 석재를 이용하여 탑을 만드는 백제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는 9세기 이후 이 지역에 불교가 자리잡을 때 백제의 옛 땅이자 후백제의 영향을 받고 있었던 공주의 문화적 특징이 반영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문인 오재정의 「유계룡산록(遊鷄龍山錄)」에서 남매탑이 각각 칠층 · 구층이라고 전하고 있는데

이는 두 탑의 최초 모습이 현재와 달랐음을 말해 준다

1961년에 칠층석탑을 고쳐 짓는 과정에서 오층석탑도 일부 변형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공주청량사지칠층석탑은 청량사 터에 있는 두 개의 탑 중 하나이다

이 탑은 신라계 양식이 섞여 있고 미륵사지 석탑에서 나타나는 백제계 양식도 보인다

나란히 있는 오층석탑은 백제계 양식을 따랐다

조선 후기 문인 오재정의 「유계룡산록(遊鷄龍山錄)」에는 본래 이곳에 두 개의 석탑이 있었으며

그 중 칠층석탑은 전설 속의 스님 · 구층석탑은 전설 속의 여자를 상징한다고 전하고 있다

 

 

 

 

남매탑

예전엔 나무가 탑을 많이 가렸다

*

(1975. 8. 26)

 

 

 

 

남매탑 안내판

 

 

 

 

상원암(上元庵)

 

 

 

 

상원암(上元庵) 현판

 

 

 

 

남매탑 이야기 / 이상보 〈갑사로 가는 길〉에서

상원암에 걸려 있는 안내판이다

 

 

 

 

관음봉에서 동학사로 이어지는 마루금이다

 

 

 

 

공주 청량사지 오층석탑(公州 淸凉寺址五層石塔 보물 제 1284호) · 공주 청량사지 칠층석탑(公州 淸凉寺址七層石塔 보물 제 1285호) 안내판

 

 

 

 

삼불봉 · 동학사 방향안내판

 

 

 

 

계룡산 탐방로 안내판

남매탑 앞에 있다

 

 

 

 

극락교

33인 3 · 1독립운동기념비가 오른쪽 뒷쪽에 있다

 

 

 

 

33인 3 · 1독립운동기념비(三十三人 三 · 一獨立運動紀念碑)

 

 

 

 

극락교

세록정(洗鹿亭)이 보인다

 

 

 

 

세록정(洗鹿亭)

 

 

 

 

미타암

 

 

 

 

길상암

 

 

 

 

승탑군(僧塔群) 

경허당 성우(鏡虛堂 惺牛) · 니지관(尼智觀) · 니지현(尼智玄) 등의 승탑이 있다 

 

 

 

 

경허당 성우대사(鏡虛堂 惺牛大師 1849~1912) 

속명은 송동욱(宋東旭) 전주 태생으로 한국 근대 불교의 새로운 지평을 연 스님이다
13세에 광주의 청계사(淸溪寺)로 출가 계허(桂虛)에게 배우고, 동학사의 만화(萬化) 강백(講伯)에게 불교 경론과 유학 · 노장 사상 등을 고루 배웠다
이후 개심사 · 해인사 · 범어사 · 석왕사 등 여러 곳에서 선풍(禪風)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1900년 경허의 범어사 참선 결사 이후 범어사는 1910년 한국 불교의 선종 수사찰로 인정받는가 하면

선찰 대본산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성우는 만년에 온갖 만행(萬行)을 베풀다가 1912년 함경도 갑산 도하동에서 64세로 입적하였다

 

 

 

 

승탑(僧塔)

오래된 승탑인데 안내문이 없어 아쉽다

 

 

 

 

동학사불교문화원( 東鶴寺佛敎文化院)

새로 지은 듯하다

 

 

 

 

계룡산 동학사 일주문(鷄龍山 東鶴寺 一株門)

양쪽 하나의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형식으로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계룡산 안내도

동학사탐방안내소에 있다

 

 

 

 

걸은 거리 7.8km · 소요시간 3시간 40분

내려가는 시간 · 점심시간 등으로 짧은 산행을 했다

*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문 中

(2023.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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