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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오산 양산봉~독산성

오산 양산봉(179.3m)과 독산성 세마대(사적 제140호)를 가기 위한 걷기다

 

 

세마역

시점이다

 

 

 

 

서부로 세마교차로

 

 

 

 

독산성

세마교차로를 지나서 봤다

 

 

 

 

한성윤활유

양산봉 들머리로 들어가는 길이다

 

 

 

 

삼천리 오산기술연구소

 

 

 

 

토지지신(土地之神)

 

 

 

 

늘푸른아파트 · 양산봉 방향안내판

좁은 산길을 잠시 올라 오른쪽 넓은 길로 들었다

 

 

 

 

연리지(連理枝)

두 나무가 맞닿아 오래 있으면 가지가 하나로 합쳐지고

맞닿은 두 나무의 결이 서로 통하여 세포가 하나로 합쳐 하나가 될 때 연리지라 한다

 

 

 

 

양산봉 · 한신대학교 갈림길이다

 

 

 

 

양산봉 · 독산성 · 늘푸른아파트 삼거리

 

 

 

 

양산봉 정상 육각정자가 보인다

 

 

 

 

육각정자

양산봉 정상이다

 

 

 

 

양산봉(179.3m) 안내목

다음지도에는 양산봉(179.8m)로 표기되어 있다

 

 

 

 

장승

숲 체험원 갈림길을 지난 곳이다

 

 

 

 

오산시 방향

필에너지(Philenergy) 건물이 앞에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독산성 세마사 석주(大韓佛敎 曹溪宗 禿山城 洗馬寺 石柱)

 

 

 

 

동탄시

독산성 주차장으로 오르며 봤다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안내판

삼남길 스탬프 인증대가 옆에 있다

 

 

 

 

동문(東門)

평거식 성문으로 천장석과 바닥에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이 각각 두 개씩 남아 있다

「화성지」의 기록에 따르면 문루와 이름이 없다. 동문은 사람만 다니던 문으로 성문 안쪽에 보적사가 있다

동문은 1982년에 정비하였다

 

 

 

 

보적사(寶積寺) 대웅전

독산성 동문 안에 있는 사찰로 지어진 때를 알 수 있는 옛 문헌이나 유물은 없다

임진왜란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어졌고, 용주사를 세울 당시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과 요사(寮舍) 3동이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1831년 편찬된「화성지」에 따르면 보적사는 21칸 반 규모였다고 한다

이후 1902년 약사전을 허물고 새로 지었으며, 1987년에 고쳐 지으면서 대웅전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현재는 석가여래와 약사여래 · 지장보살을 모신 대웅전과 요사 2동과 3층 석탑이 있다

*

보적사(寶積寺)는 1978년 세마사로 이름을 변경하였다가 1996년 다시 보적사로 비꾸었다

보적사라는 이름에는 전해져 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삶이 어려운 노부부가 쌀이 2되밖에 남지 않아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구차하게 사느니

부처님께 공양하기로 마음을 먹고 공양한 후 집에 돌아오니 곳간에 쌀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후 열심히 공양하면 보화가 쌓이는 신통력 있는 사찰이라 하여 보적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3층석탑 · 천진동자불손 · 미륵존불상(천진포대화상) 등이 대웅전 앞쪽에 있다

웃음을 짓고 있는 천진포대화상의 귀여운 배 · 천진동자불복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손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대웅전

약사여래불 · 석가모니불 · 아미타불 등이 있다

지금의 대웅전은 1920년 주지였던 주대식스님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보적사 삼층석탑

높은 건물들이 즐비한 동탄 일대의 전망을 볼 수 있다

대웅전 앞에서 봤다

 

 

 

 

보적사 요사채

 母年一百歲(모년일백세) 어머니 나이 백세라도

常憂八十兒(상우팔십아) 팔십되는 아들 항상 걱정하시네

欲知恩愛斷(욕지은애단) 그 은혜와 사랑 끝날 때를 알고 싶은가

命盡始分離(명진시분리)목숨이 다해야 비로서 끝난다네

*

요사채 주련에 있는 글이다

 

 

 

 

양산봉(179.3m)

보적사 지붕 너머로 보인다

 

 

 

 

양산봉(179.3m)

독산성 오른쪽 방향으로 한 바퀴 걸었

 

 

 

 

부아산(402.9m)

메타폴리스아파트( 66층) 4동 뒤에 있

 

 

 

 

필봉(144.1m)

오산대역 뒷편에 있다

 

 

 

 

여계산 · 석산

오산시공동묘지가 있는 곳이다

 

 

 

 

세마대(洗馬坮) / 사적 제140호

세마대는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의 승전과 관련하여 성 안 꼭대기에 세워진 장대로 일제강점기와 6 · 25를 거치면서 파괴되었다가

1957년 8월 15일 민관으로 구성된 세마대중건위원회에 의해 팔작지붕을 올린 정면 3칸 · 측면 2칸의 규모로 복원되었다

북쪽에는 세마대(洗馬臺)라는 현판이, 남쪽에는 세마대(洗馬坮)라는 현판이 걸렸는데, 이 중 남쪽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글씨를 썼다

1831년에 편찬된 「화성지」에는 세마대와 관련하여

"도원수 권율이 독산성에 들어갔다. 성안에는 샘이 적어 오래 지키기에 어려웠다. 적이 염탐하여 그것을 알고서는 급히 성을 공격하고자 하였다

권율은 군사에게 적을 향하여 말을 세우고 쌀을 흩날리게 부어 씻게 하였다. 그것을 본 왜적이 성안에 물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고 마침내 포위를 풀고 갔다

훗날 그곳을 세마대라 일컬으니 곧 지금의 장대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세마대 건립 중 모습 / 1956년

《산성 세마대기념(山城洗馬台記念) 4289. 6. 8》이라 써있다

안내판에 있는 사진이다

 

 

 

 

세마대(洗馬臺) / 1977년

 

 

 

 

세마대(洗馬坮) 남쪽 현판

李大統領閣下 揮毫 (이대통령 각하 휘호)라 써있다

 

 

 

 

세마대(洗馬) 북쪽 현판

 

 

 

 

세마대 중건기

 

 

 

 

세마대 중건 경위서

 

 

 

 

성곽 · 세마대 갈림길에서 세마대로 올랐다 다시 내려왔다

 

 

 

 

남문(南門)

멀리 두 개의 치(雉)가 보인다

 

 

 

 

남문(南門)

독산성의 정문으로 진남루(鎭南樓)라는 문루가 있었다

1831년 편찬된 「화성지」의 기록에 따르면 문루의 규모는 6칸이었으며 남문은 영조 · 정조 · 순조 때 고쳐 지었다고 한다

이 문으로는 말과 소가 다닐 수 있었으며 독산성의 주 출입구 역할을 하였다

지금의 모습은 파손되어 있던 것을 1979년 복원하여 정비한 것이며 바닥에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 2개가 남아 있다

(문확석이 하나만 보인다)

*

삼남길은 이 문을 나가 왼쪽 길로 따라가야 한다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유적 안내판

남문 앞에 있는 안내판이다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유적 안내판

1차(2017~2018) · 2차(2018) · 6차(2021) 발굴조사 지역이다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유적 발굴조사 지역

안내판에 있는 사진 지역이다

 

 

 

 

삼남길 이야기 / 정조의 효심이 담긴 독산성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온양온천에 행차했다가 환궁하던 중 장마 때문에 독산성에서 하루를 묵고 백성들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남기고 갔습니다

그로부터 30년 뒤 풍수지리의 문제로 독산성을 없애야 한다는 논란이 일어났지만

효심이 깊었던 정조는 아버지 뜻을 기리기 위해 오히려 독산성을 더 고쳐 쌓도록 명하여 지금의 독산성의 모습이 갖추어 졌다

 

 

 

 

치(雉)

남문을 지나 첫 번째 치다

 

 

 

 

치(雉)

남문을 지나 두 번째 치로 다시 쌓은 흔적이 있다

치는 모두 조망대로 만들었다

 

 

 

 

남문 방향

두 번째 치(雉)에서 돌아 봤다

 

 

 

 

여계산 · 석산

e편한세상오산세교아파트가 옆에 있다

 

 

 

 

학봉

e편한세상오산세교아파트 옆 산이다

 

 

 

 

학봉 · 노적봉

장애학생에게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성심학교가 앞에 있

 

 

 

 

암문(暗門)

1985년 복원하여 정비하였고, 이후 2010년 개거식 성문을 평거식 성문으로 복원하였다

평거식 성문으로 바닥에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 2개가 남아 있다

이 문은 순조 4년(1804)에 현릉원의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서문을 폐쇄하는 대신 새로 지은 성문이다

1985년 복원하여 정비하였고, 이후 2010년 개거식 성문을 평거식 성문으로 복원하였다

 

 

 

 

수로 및 수구(水路 · 水口)

수로 및 수구는 성안의 물을 빼고 생활하수를 배출하기 위한 것으로 길이 150cm · 폭 50cm이며

바닥에는 널돌이 깔려 있고 덮개돌은 일부만 남아 있다

수로와 연결된 수구는 높이 52cm · 폭 45cm로 서문과 암문 사이의 성벽에 설치되어 있다

 

 

 

 

암문(暗門)

수로를 지나 돌아 봤다

 

 

 

 

치(雉)

서문 옆에 있는 치로 남서쪽을 조망할 수 있다

 

 

 

 

서봉산 · 건달산

화성시 정남면 방향이다

 

 

 

 

서오산JC 방향

황구지천이 오산화성고속도로 옆으로 흐른다

 

 

 

 

서문(西門)

남문과 함께 독산성의 주 출입구 역할을 하였다

정조 14년(1790) 독산성에 행차한 정조가 서문을 통해 출입하였다

이 문은 순조 4년(1804) 현릉원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폐쇄되었다

파손되어 있던 것을 1983년 복원하여 정비하였으며, 바닥에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 2개가 남아 있다

 

 

 

 

치(雉)

서문과 북문 사이에 있다

 

 

 

 

북문(北門)

평거식 성문으로 천장석과 바닥에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이 각각 두 개씩 남아 있다

「화성지」 기록에 따르면 문루와 이름이 없고 사람만 다니던 문이다

1982년 정비하였다

 

 

 

 

치(雉)

예전 왔을 때 허물어져 있던 치다

북문 밖에서 봤다

 

 

 

 

일진전기 · JW중외제약

독산성은 오산 · 수원 · 화성에 걸쳐 펼쳐진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아 주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

랜드마크인 일진전기 타워가 있는 안녕동 방향이다

 

 

 

 

치(雉)

북문과 동문 사이에 있다

 

 

 

 

세마대 숲

보적사에서 이곳으로 올라와 이동식을 했다

 

 

 

 

세마대

이동식을 하며 봤다

 

 

 

 

남문(南門)

세마대 숲에서 남문으로 내려간다

 

 

 

 

e편한세상오산세교아파트

세마초등학교가 앞에 있다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유적 발굴지

검은 더미가 출토 유물을 쌓아 놓은 곳이다

 

 

 

 

남문(南門)

독산성의 정문으로 진남루(鎭南樓)라는 문루가 있었다

*

독산성 세마대 산문으로 내려가는 삼남길이다

 

 

 

 

KT

 

 

 

 

독산성 · 양산봉 방향안내판

 

 

 

 

독산성 세마대 산문(禿山城 洗馬臺 山門)

 

 

 

 

독산성 보적사

봉우리 오른쪽 나무가 비어 있는 곳에 있다

 

 

 

 

세마산업단지 버스정류장

마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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