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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

청와대 개방 1주년 기념 전시로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 · 초대, 장(招待, 場)》이 열리고 있다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

여기 우리 대통령들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국가 지도자 12명이 지냈습니다

1948년 8월 15일부터 2022년 5월 9일까지입니다

여기 청와대에서 역대 대통령들은 격동의 대한민국 역사를 썼습니다

청와대는 74년간 국정 최고 리더십의 무대입니다

대통령들은 권력의 정상에서 고뇌하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속에 한미동맹 · 산업화 · 민주화의 성취와 승리, 그 속에 좌절과 낙담도 있습니다

대통령들의 이야기는 새롭게 펼쳐집니다

그들의 청와대 삶 · 라이프 스타일을 압축하는 소품으로 출발합니다

대통령들의 리더십 드라마에 배치돼서 작동한 작은 물건입니다

거기에서 정치적 상징이 역동적이면서 은유적으로 드러납니다

그 상징 소품들은 그 시대의 단면을 해부하고 기억을 재생시켜줄 것입니다

이는 대통령 역사에 대한 새로운 탐방이기도 합니다

전시물들은 쉽고 · 친근하고 · 흥미롭게 다가갈 것입니다

관람객들은 우리 대통령들을 새롭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청와대 연표가 아래에 있다

 

 

 

 

본관 세종실

이승만 · 윤보선 · 박정희 · 최규하 · 전두환 · 노태우 대통령의 이야기가 있다

 

 

 

 

이승만 李承晩 / 1875. 3. 26 ~ 1965. 7. 19

제1대 대통령 1948 ~ 1952

제2대 대통령 1952 ~ 1956

제3대 대통령 1956 ~ 1960

*

1953년, 78세의 이승만은 한미동맹의 역사를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다

 

 

 

 

이승만 대통령 두루마기

1948년 8월 15일 지금은 철거된 중앙청 광장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이 열렸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은 두루마기를 입었다

이 옷은 고름 대신 단추로 여미어 입는 「개화 두루마기」 형태이다

기념식에는 태평양지역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 · 미군정사령관 존 하지 중장도 참석했다

전시된 옷은 당시 즐겨 입었던 두루마기다

 

 

 

 

대통령 사진 · 물건

 

 

 

 

영문타자기로 집무 / 1956

 

 

 

 

프란체스카 여사와 북한산 등반 / 1958

 

 

 

 

경무대 봄맞이행사 중 출산한 아기 / 1957

9개월된 아기를 안고 새해인사 차 경무대를 방문한 아기 가족 / 1958

이승만 대통령 양자 이강석 · 이승만 대통령 · 프란체스카 여사 · 아기(김경숙)와 아기 부모님

 

 

 

 

영문타자기

영문타자기는 이승만 대통령의 필수품이었다. 독립운동 시절부터 그의 가방에 들어 있었다

이승만은 신생 국가의 대외 전략을 직접 수립했다. 최고 지도자이면서 최고 외교관이었다

1953년 7월, 6 · 25전쟁 휴전 무렵 한미 양국의 최대 현안은 상호방위조약 체결 문제였다

이승만은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과 협의를 이어갔다. 협상은 철저한 보안 속에 긴박하게 진행됐다

경무실 집무실과 타자기는 외교 비사를 다루는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조연 배우다

78세 대통령 이승만은 직접 타자기를 두들리며 문서를 작성했다

타이핑 솜씨는 줄어서 두 손가락을 쓰는 독수리 타법이 되었지만,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 이외에는 누구도 타이핑을 대신할 수 없었다

 

 

 

 

한국 최초로 개발한 항공기 「부활(復活) 호」 모형

1953년 공군기술학교 정비교육대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항공기에 이승만 대통령은 「부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54. 4. 3)

이 대통령은 6 · 25전쟁 동안 군의 전력 · 특히 공군력의 부족에 큰 아쉬움을 느꼈다

부활이라는 이름에는 그의 염원과 의지가 담겨 있다

 

 

 

 

원자력직제 공포안

이승만 대통령은 원자로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1958년 원자력법을 제정했다

이듬해 대통령 직속 원자력원을 설립한 데 이어, 미국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해 서울 공릉동에 설치했다

 

 

 

 

여권(집조) / 1904

청년 이승만 대통령이 젊은 시절 받은 집조(執照 여권)이다

대한제국 광무 8년(1904) · 경기도 한성에서 살던 27세 이승만은 인천에서 미국으로 가기 위해 집조를 발급받았다

대한제국 발행 여권은 태극기와 무궁화 문양, 한문 · 영어 · 불어로 작성됐다

 

 

 

 

윤보선 尹潽善 / 1897. 8. 26 ~ 1990. 7. 18

제4대 대통령 1960 ~ 1962

*

경무대는 왜 청와대로 바뀌었나 · 윤보선은 바위에 청와대 세 글자를 새겼다

 

 

 

 

유일하게 남은 구 청와대 본관 청기와

1960년 4 · 19혁명으로 제2공화국이 출범했다

제1공화국 경무대(景武臺)란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푸른 기와집, 청와대(靑瓦臺)로 이름이 바뀌었다

정부 형태가 의원내각제로 변경했다. 실권은 국무총리에게 있었지만, 국가원수는 대통령 윤보선이었다

윤보선은 국가 새 출발의 의지를 표출했다

"여기는 일제 때 총독관저였고 자유당 때 독제체제를 강화한 곳이어서 오명의 잔영(殘影)을 씻어버리고 싶었다"

청와대에는 비취 빛 청기와에 우리 고유의 전통을 지닌 집이라는 뜻이 담겼다

윤보선은 경내 약수터 부근 바위에 친필 한자로 「靑瓦臺(청와대)」라고 새겼다

 

 

 

 

가족들과 경무대 산책 / 1960

 

 

 

 

미국 소설가 펄벅 접견 / 1960

 

 

 

 

모내기

 

 

 

 

여행용 가방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약하던 1921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대학으로 유학간다

전공은 당시 유행했던 정치학 · 법학이 아닌 순수과학인 고고학이다

가방은 중국 · 일본 · 유럽 등 그의 많은 해외 경험을 말해준다

 

 

 

 

박정희 朴正熙 / 1917. 11. 14 ~ 1979. 10. 26

제5대 대통령 1963 ~ 1967

제6대 대통령 1967 ~ 1971

제7대 대통령 1971 ~ 1972

제8대 대통령 1972 ~ 1978

제9대 대통령 1978 ~ 1979

*

박정희 대통령은 군인 이전에 초등학교 교사였다.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군인이 되기 전까지 교사로 일했다

서예 · 그림 · 음악은 교사가 되기 위한 필수 과목이었다. 그는 스스로 드로잉 수첩을 가지고 다녔다

그림을 통해 국정 상황을 입체적으로 파악했다. 그가 직접 스케치한 경부고속도로 계획안은 정밀하다

 

 

 

 

박정희의 연필 스케치 「방울이」

휴가지에서 그는 이젤에 캔버스를 올렸다. 구미 생가 · 동해안 · 서울 풍경

그가 그린 그림들은 그의 내면의 풍경이었다

반려견 방울이(스피츠)의 귀여움도 박정희의 연필 스케치에 포착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주인이 비극적 운명을 맞은 후에도 방울이는 본관 침실 문이 열리면 꼬리를 흔들고 달려갔다

방울이는 대통령이 아닌 줄 알고 시무룩해졌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완희 박사가 주고 받은 친필 서한 / 1978. 3. 15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 컬럼비아대학 전자공학과 교수인 김완희 박사에게 쓴 귀국 요청 손편지이다

최고 권력자와 세계적인 전자공학과의 의기토합은 한국 전자공학 발전의 본격 출발점이 되었다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는 1965년 박 대통령과 존슨 미국 대통령의 한미동맹 확장의 산물이었다

 

 

 

 

파독 광부와 만남 중에 눈물을 훔치는 육영수 여사 / 1964

 

 

 

 

육영수 여사 반려견과 함께 / 1970년대 초

 

 

 

 

청와대에서 탁구를 치는 대통령 내외 / 1973

 

 

 

 

박정희 대통령이 쓰던 각궁(角弓 뿔활)과 화살 · 화살을 담는 전통(箭筒 화살통)

그는 충남 아산의 현충사를 찾을 때마다 취미인 활쏘는 시간을 가졌다

전통 아랫쪽에 이순신 장군의 진중(陳中) 한시가 각인되어 있다

誓海漁龍動 盟山草木知(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

바다에 맹세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풀과 나무가 안다

 

 

 

 

최규하 崔圭夏 / 1919. 7. 16 ~ 2006. 10. 22

제10대 대통령 1979 ~ 1980

*

1979년 국무총리 최규하는 강원도 장성 탄광의 막장에 들어갔다

그는 "여러분들이 힘들여 캔 탄을 애정을 가지고 끝까지 때겠다"고 했다

지금은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서울 서교동 최규하 가옥」에는 서민의 채취가 남아 있다

최규하는 대통령 퇴임 후에도 연탄보일러를 때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응접실에는 오래된 에어컨을 달았다. 장남이 미국에서 쓰다가 가져온 것이다

그 집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촬영 장소였다

그의 검소함은 절제와 꼼꼼함으로 표출됐다

1979년 12 · 12쿠데타 때다. 최 대통령은 신군부의 정승화 육참총장 체포 결재를 요구받았다

그는 서류에 서명 시간을 적어 넣는 꼼꼼함으로 후일에 대비했다

 

 

 

 

외무부 장관 재임시 대통령표창 / 1971

1971년 6월 박정희 대통령이 5년여 간의 외무부장관을 마친 최규하에게 준 공로패이다

최규하 대통령은 농림부에서 공직을 시작했으며 1951년에 외무부로 부처를 옮겼다

박정희 대통령은 최규하의 성실 · 과묵 · 절제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대통령 외교특별보좌관을 거쳐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문패

최규하 대통령의 사저에 걸려 있던 한자 문패이다

최규하 대통령은 물건을 버리지 않았다

1950년대 생산된 선풍기 골드스타(LG 전신 금성) 로고가 부착된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전화기 · 각종 필기구 및 문방용품까지 보관했다

문패도 그 중 하나다. 그 물품들은 시대상을 담은 역사의 기록이 됐다

 

 

 

 

대통령 사진

 

 

 

 

정신문화연구원에서 국학본산(國學本山) 휘호 / 1980

 

 

 

 

전두환 全斗煥 / 1931. 1. 18 ~ 2021. 11. 23

제11대 대통령 1980 ~ 1981

제12대 대통령 1981 ~ 1988

*

전두환의 스포츠 사랑 · 프로 축구 첫 시축 · 프로 야구 첫 시구자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대구공고 시절 축구부 골키퍼였다. 육사에 들어간 뒤에도 그는 축구부에서 뛰었다

그는 골문에서 선수들을 큰 소리로 지휘했다. 1955년 전국대학 축구대회에서 그의 팀은 준결승에 올랐다

축구의 묘미가 팀워크임을 깨달았다. 축구장은 그에게 리더십 단련의 무대였다

 

 

 

 

대통령이 된 전두환은 스포츠 활성화에 나섰다

프로 야구 · 프로 축구 리그가 그때 출범했다

그는 프로 야구의 첫 시구자였고 · 프로 축구의 첫 시축자였다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의 스포츠 사랑 · 특히 축구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1985년 11월, 월드컵 본선 진출 축하 청와대 만찬에서 그는 축구공에 직접 서명했다

축구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담긴 공이였다

 

 

 

 

프로 야구 개막실 시구 / 1982

 

 

 

 

대통령배축구대회 시축 / 1985

 

 

 

 

대통령 56세 생신 가족모임 / 1986

 

 

 

 

방한모

전두환 대통령이 썼던 봉황 장식이 있는 방한모이다

1982년 1월, 그는 36년 만에 야간통행금지 해제 조치를 발표했다

통금 조치 이후의 현장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방한모를 쓰고 경찰서를 돌았다

 

 

 

 

노태우 盧泰愚 / 1932. 12. 4 ~ 2021. 10. 26

제13대 대통령 1988 ~ 1993

*

노태우의 퉁소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 앨매 맺는 나무를 좋아한다 · · · 실용의 북방외교로

노태우 대통령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애창곡 베사무 무초를 멋지게 불렀고 퉁소 연주는 수준급이었다

퉁소는 일곱 살 때 여윈 부친의 유품이었다. 퉁소는 아버지로 향하는 그리움의 통로였다

휘파람 불기도 그의 장기 중 하나였다. 그가 숲속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면 산새가 날아올 정도였다

그의 섬세한 감수성은 6공 집권 시절 정치의 유연성을 추구하게 됐다

노태우의 연희동 집 정원에는 사과나무가 있었다

그는 "향기나는 꽃보다 열매를 맺는 나무를 좋아한다"고 했다. 순간의 화려함보다 실리의 결과를 추구했다

노 대통령은 외교의 지평을 북방으로 확장했다. 고정관념을 깨면서 실리를 추구했던 대외 전략이었다

 

 

 

 

노태우의 퉁소

일곱 살 때 여윈 부친의 유품으로

「타향살이」 노래로 유명한 가수이자 영화기획자 고복수가 부친에게 선물한 것이다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굴렁쇠 / 굴렁쇠 소년 윤태웅

1988년 9월 17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개회식을 장식한 굴렁쇠이다

노태우 대통령이 5공화국 시절부터 열정을 쏟은 88올림픽에는 소련 · 중국과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전의 모스크바 · LA의 반쪽 올림픽과 달랐다

이어령 선생의 상상력이 담긴 굴렁쇠 소년은 전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멕시코 방문 환영행사 중 「베사메무초」 노래 한 소절

 

 

 

 

한국을 방문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환영 행사 / 1991

김옥숙여사 · 고르바초프 대통령 부인 라이사 여사 · 고르바초프 대통령 · 노태우 대통령

 

 

 

 

역대 대통령들 사진

 

 

 

 

김영삼 金泳三 / 1929. 1. 14 ~ 2015. 11. 22

제14대 대통령 1993 ~ 1998

*

김영삼에게 새벽 조깅은 몰입의 순간이고 결단의 의식이었다. 조깅은 김영삼 대통령의 상징이다

조깅은 그에게 건강관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김영삼은 청와대 녹지원에서 새벽 조깅을 했다

그는 30분쯤 뛰면서 자신과 대화했다. 내면과 만났다. 고뇌 속에 주요 정책을 결심하고 복잡한 국정을 정리했다

1993년 8월 12일 오후 7시 45분, 김영삼은 청와대 기자실에서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했다

그 조치는 나라를 흔들었다. 그의 정치 스타일대로 전광석화였다

청와대 참모들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날 새벽 조깅 때 조짐은 있었다

김영삼은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전격 발표의 긴장을 속도로 해소했다

조깅은 그에게 몰입의 방법이면서 결단의 의식이었다

*

본관 인왕실이다

 

 

 

 

대도무문(大道無門) / 1966년 3월 김영삼

 

 

 

 

대통령 사진

 

 

 

 

빌 크린턴 미국 대통령과 청와대 녹지원 조깅 / 1994

 

 

 

 

김영삼 대통령은 대도무문(大道無門) 붓글씨를 쓰고 지켜보고 있던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뜻을 묻자 박진 통역비서관(현 외교부장관)은 "큰길에는 문이 없다(A high street has no main gate)"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스타일로) "고속도로엔 톨게이트가 없다(A freeway has no tollgate)"라고 비유를 덧붙이자 클린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926년 건립한 조선총독부

해방 후 중앙청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였다

 

 

 

 

조선총독부 철거 기념석

김영삼 대통령이 철거한 옛 총독부 건물의 대리석으로 만든 기념석이다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돌

김영삼 대통령이 철거한 옛 총독부 건물의 돌로 만든 기념품이다

 

 

 

 

김대중 金大中 / 1924. 1. 6 ~ 2009. 8. 18

제15대 대통령 1998 ~ 2003

*

꽃들에게 말을 걸었다 · 겨울을 이겨내면서 김대중의 내면은 단단해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꽃들에게 말을 걸었다

1980년 5월 17일 신군부에 체포된 그는 독서와 꽃 가꾸기로 감옥 생활을 이겨냈다

그는 부인 이휘호 여사에게 옥중편지를 썼다

"운동하러 뜰에 나가면 국화가 한창인 듯 노란색입니다

내가 돌본 꽃들은 피기도 싱그러웠지만 다른 데 비해 한 달 더 견디어 주어서 대견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인동초(忍冬草)는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핀다. 그의 삶은 고난과 투혼으로 구성됐다

그는 가위로 꽃을 다듬으면서 정치 공간을 새로 설계했다

겨울을 견뎌낸 그의 삶은 극적으로 반전한다

대통령이 된 김대중은 전직 대통령 4명과 청와대 한 자리에서 어울렸다

헌정사에서 드문 장면이었다

 

 

 

 

옥중서신 / 1977 ~ 1981

이 서신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으로 교도소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부인 이희호 여사와 나눈 편지들이다

이 편지에는 시대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뿐 아니라 그 시대상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그 자료적 가치가 더욱 크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착용 모자 / 2002

2002년 월드컵 응원을 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썼던 붉은 색 모자이다

4강 신화를 이룬 현장에 김 대통령도 붉은 악마가 돼 「대~한민국!」을 외쳤다

거스 히딩크 당시 한국 대표팀 감독은 2022년 인터뷰에서

"16강전 전날 선수들의 군 면제를 시켜주겠다는 김 대통령의 전화를 직접 받았다"고 비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노벨평화상 메달 / 2000

2000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이 받은 노벨평화상 메달이다 

 

 

 

 

노벨평화상 기념메달 / 2003

2000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이 받은 노벨평화상 기념주화이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그리고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업적을 기렸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2000년 6월 김 대통령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한 정상회담을 했으며,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다

 

 

 

 

네 명의 전직 대통령 내외 초청 행사

최규하 대통령 부인 홍기 여사는 병중으로 불참했다

 

 

 

 

손명순 여사 · 이순자 여사 · 이희호 여사 · 김옥숙 여사

 

 

 

 

핸드폰 / 1998

김대중 대통령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삼성 휴대전화이다

1998년 6월 김 대통령은 빌 게이츠와 소프트뱅크 사장 손정의와 만났다

김 대통령이 IMF 상황 극복을 위한 조언을 구하자 두 사람의 답변은 같았다. 브로드밴드(초고속인터넷) !

직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고, 전국 모든 학교에 인터넷 회선이 깔렸다

 

 

 

 

김대중 대통령(DJ)의 상징적인 오브제는 물뿌리개와 원예가위다

1980년 5월 17일 신군부에 체포되었을 당시 DJ는 독서와 꽃 가꾸기로 감옥 생활을 이겨냈다

그는 "가위로 꽃을 다듬으면서 정치 공간을 새로 설계했다"

그의 별호 「인동초」처럼 겨울을 견뎌내고 대통령이 된 후 전직 대통령 4명을 불러서 어울리며 화합의 정치를 실현했다

 

 

 

 

노무현 盧武鉉 / 1946. 9. 1 ~ 2009. 5. 23

제16대 대통령 2003 ~ 2008

*

노무현 대통령은 특허 보유 대통령이다. 그가 존경하는 링컨 미국 대통령 역시 특허 대통령이다

그는 1974년 사법시험 준비 시절 「개량 독서대」를 만들었다. 실용신안 특허를 받았다

누워서 책을 볼 수 있게 각도 조절 기능을 갖췄다

청와대 시절엔 온라인 통합관리시스템 「e-지원(知園)을 개발했다.

그는 "대통령을 안 했으면 컨설턴트나 발명가였을 것"이라고 했다

특허는 그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도전과 돌파의 본능과 연결돼 있다. 그는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우회하지 않았다

문제 해결을 향해 직진했다. 근본 원인을 해부했다. 그리고 새롭거나, 파격적인 해법과 개선 방식을 제시했다

그런 장면은 5공청문회를 비롯한 「노무현 드라마」에서 등장한다

 

 

 

 

문무대왕함 진수식 도끼 / 2003

2003년 4월 11일 현대중공업에서 열린 문무대왕함 진수식에서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진수선을 자르는 데 썼던 기념 도끼이다

노 대통령은 축하 연설에서 "제2의 국토인 영해를 지키고 평화와 번영의 바닷길을 수호하는 신성한 임무를 완수해 달라"고 했다

 

 

 

 

자이툰부대 시계 / 2004

2004년 12월 자이툰부대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장병들에게 선물한 기념 시계이다

한국과 현지(이라크) 시간을 함께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프랑스 공식 방문을 마친 뒤 비행기의 기수를 돌렸다

최고 통수권자의 예고 없는 방문에 병사들은 환호했다

 

 

 

 

관저 현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명박 李明博 / 1941. 12. 19 ~

제17대 대통령 2008 ~ 2013

*

기업인 시절 이명박은 신속한 현장 확인을 위해 자전거로 달려갔다. 국회의원 때는 지역구인 종로를 자전거로 누볐다

대통령 때도 관저에서 본관까지 1.2km 거리를 가끔 자전거로 출근했다

그런 자세는 그의 실용적인 국정 운영에 반영됐다

2012년 4월 22일 인천 아라빛섬.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 개통행사가 열렸다

4대강 사업에는 그의 신념과 비전이 집약되었다

이 대통령은 "4대강 길을 따라 1,800km를 달리다 보면 마음껏 소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시민들과 함께 8km를 달렸다

그의 국정과 자전거의 삶이 완성된 곳은 바로 그 길이다

 

 

 

 

테니스라켓 · 안경

이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을 보고 "테니스를 쳐도 되겠다"고 비유할 정도로 테니스를 좋아했다

*

이명박 대통령은 원래 안경을 쓰지 않았다

2010년 2월 백내장 수술 후 눈 보호를 위해 1~2주 안경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EBS를 방문해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생각이 달라졌다

한 여고생이 "안경을 쓰시니까 더 멋지다"고 조언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안경과 리더십 이미지」를 고민했다. 그는 이후 안경을 계속 썼다

 

 

 

 

 

아주대학교 이국종 교수 포장증

2011년 1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치료했던 당시 아주대학교 이국종 교수가 받은 국민포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을 위한 「여명작전」 때

협조하다 중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국민훈장 동백장)과 이국종 교수(국민포장)를 격려 방문하고 나중에 훈 · 포장을 수여했다

 

 

 

 

자전거 축전 참석 / 2009

 

 

 

 

박근혜 朴謹惠 / 1952. 2. 2 ~

제18대 대통령 2013 ~ 2017

*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취임 첫 여름 휴가지를 거제 앞 작은 섬 저도로 잡았다

그는 해변에 나뭇가지로 이렇게 썼다. 저도의 추억 - .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쓴 시의 제목이다

아내 육영수 여사를 잃은 박정희는 "미소 띤 그 얼굴 다정한 그 목소리 어디서나 찾을까"라고 이야기했다

시에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깔렸다

박근혜는 아버지의 언어로 비극적 운명을 당한 부모를 떠올렸다

그 추억은 가족 모두의 저도 휴가다

박정희 - 박근혜는 헌정 사상 첫 부녀 대통령이다. 박근혜는 어머니의 죽음 뒤 5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손등과 손바닥이 보이지 않는 대통령 박근혜의 거수경례는 모범적 동작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형상화였다

 

 

 

 

한빛정

2016년 5월 박근혜 대통령에게 남수단 파병된 한빛부대 장병들이 만들어 선물한 실내등이다

박 대통령은 장병들을 초청해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진짜 주인공은 여러분이다. 노고에 깊이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누비지갑(자색)

대통령이 쓰던 누비 공예지갑

2013년 3월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에서 박 대통령이 누비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후 「박근혜 누비지갑」은 인기를 끌면서 시중에 품절 사태를 낳았다

 

 

 

 

저도의 추억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쓴 시의 제목이다

아내 육영수 여사를 잃은 박정희는 "미소 띤 그 얼굴 다정한 그 목소리 어디서나 찾을까"라고 이야기했다

시에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깔렸다

 

 

 

 

거수경례하는 박근혜 대통령

박정희 - 박근혜는 헌정 사상 첫 부녀 대통령이다. 박근혜는 어머니의 죽음 뒤 5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손등과 손바닥이 보이지 않는 대통령 박근혜의 거수경례는 모범적 동작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형상화였다

 

 

 

 

울산 십리대숲 여름휴가

 

 

 

 

문재인 文在寅 / 1953. 1. 24 ~

제19대 대통령 2017 ~ 2022

*

문재인 대통령은 등산 마니아다. 그의 등반 경력은 프로급이다. 그는 이렇게 기억했다

"히말라야에 네 번 갔다 왔다. 라다크 · 에베레스트 · 안나푸르나를 거쳐 랑탕 트래킹에서 5,900m 고지에까지 올라갔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초기 민정수석에서 물러난 뒤 히말라야에 갔다

거기서 대통령 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 대응에 나섰다

그는 산행을 이렇게 묘사한 적이 있다

"산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 · · 멀리 떨어져서 깊이 생각하는 성찰의 시간이다"

산행은 그의 삶의 방식이자 소통방식이다

그는 대통령 재임 중 아차산에서 시민들과 신년맞이 해돋이 등산을 했다

북한에 갔을 때 백두산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올랐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기념은행권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 발행한 2,000원 기념은행권이다

앞면엔 스피드 스케이팅의 역동적인 모습 · 뒷면에는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가 그려져 있다

 

 

 

 

평창올림픽 기념 마스코트 수호랑 배지 / 2018

 

 

 

 

등산스틱(대통령 취임 3주년 기념) / 2020

2020년 5월 대통령 취임 3주년을 기념해 만든 등산 스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을 정말 좋아한다

거의 산악 유전자가 있다고 느껴질 정도"라며 등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베리아 호랑이 / 앤디 워홀

2018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선물 받은 앤디 워홀의 1983년 판화 작품이다

팝아트에 거장 워홀은 이 작품을 포함하여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 시리즈 10종을 그렸다

 

 

 

 

지역주민 초청 작은 음악회 관람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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