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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홍천 걷기

홍천 1박 2일 걷기

2일째로 홍천 이애기둘레길을 주축으로

홍천향교을 거쳐 홍천박물관이 있는 무궁화공원을 걷는다

 

 

수정모텔

시점이다

 

 

 

 

삼광상회

홍천 이애기둘레길인 진리벽화마을이 앞이다

 

 

 

 

이애기 둘레길 · 진리벽화마을 / 진리세탁소

그 시절 유행한 밀리터리룩과 리폼

전국의 사정이 모두 그러했듯이 한국전쟁 이후 형편도 넉넉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물자를 미군부대에서 나누어 주거나 버리는 것을 주워서 재활용했다

식수와 난방, 먹거리 등은 어찌어찌 해결이 가능했다. 의복은 거의 군대에서 흘러나온 물자에 의존해야 했다

덕분에 1960년대 진리마을의 세탁소 업무는 남달랐다. 수선과 세탁을 위한 세탁소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주워온 미군 군복의 구멍을 메우거나 원단을 자르거나 붙여 입을 수 있도록 군복을 검은색으로 염색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세탁소를 거친 군복은 사람들의 작업복이자 평상복으로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교복으로 재탄생했다

 

 

 

 

물이 돈이 되던 시기

지금처럼 상수도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 아낙들에게 식수와 생활수는 더없이 귀했을 것이다

물이 많이 필요한 빨래를 하기 위해 어머니들은 바구니 가득 빨래거리를 담아 머리에 이고 진리서 홍천강까지 약 400m를 걸었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으로 방망이를 두드려가며 빨래하는 모습은 고단한 풍경의 상징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은 현재 삼천리자전거(홍천로 437) 위치인 비행장 옆이었다

식수와 생활수로 이용하기 위해 매일 우물 앞은 물을 길어가는 사람들이 모였다

비행장 옆이라는 지리적 요인으로 두 가지의 불편함을 초래했다

비행기가 자주 뜨면서 우물에 먼지가 쌓이는 것, 이것은 뚜껑을 설치해 해결했다

두번째 불편함은 마을에서 다소 거리가 있었다는 점, 이를 이용해 장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매일 물을 이고 오가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돈으로 환산한 것이다

몇몇 사람이 군부대에서 나온 드럼통을 입수해 물을 담아 손수레로 옮기며 물을 팔았다

주 타킷은 물을 많이 사용하는 번화가의 식당들이었다

가격은 한 드럼이 500원, 1970년대 물가를 보면 자장면 한 그릇이 150~350원 하던 시절이니 결코 가벼운 금액은 아니었다

우물의 시대는 1971년 홍천에 상수도가 들어오면서 끝났다

1970년대 중반 무렵부터 집집마다 펌프를 설치해 편리하게 물을 사용하게 되면서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홍천강

한국전쟁은 홍천읍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나룻배와 섶다리만 있던 홍천강에 비행장이 생긴 것이다

미군은 홍천에 비행장이 필요했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이때, 비행장으로 눈에 들어온 장소는 홍천 강변에 있는 둑이었다

홍수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쌓은 둑을 따라 활주로가 조성되고 홍천강에 비행기가 뜨고 내리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비가 내리면 범람하는 강이었다

비가 내린 뒤에는 활주로가 사라지니 공병대, 운전교육대 수고는 끝이 없었다

계속 흙을 쌓아 올리며 비행장 보수에 매달렸는데 이는 휴전 후에도 이어졌다

장마가 되면 비행기를 신작로로 올리고 길을 통제할 정도로 보수작업을 대규모로 진행했다

비행기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 비행기가 신작로로 옮겨지면 마을 행사처럼 구경꾼들이 잔뜩 몰려들었다고 한다

 

 

 

 

달려라 홍1호

홍천에 처음으로 신형 소방차가 생긴 건 1958년이다

홍1호는 미군에게 받은 G.M.C사(社) CCKW모델을 한국 정부가 개조해 2대를 만들었다

전국 통틀어 2대뿐인 소방차 중 1대가 홍천으로 배치되었고 「홍1호」라는 이름을 가진 최초의 소방차로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신형 소방차(홍1호)는 처음 서울 종로소방서에 배치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춘천을 거쳐 다시 홍천읍의용소방대로 오게 됐다

여기에는 홍천 출신 국회의운 이재학 의원이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홍천미술관

희망로 로터리 뒤로 보인다

 

 

 

 

홍천 희망리 삼층석탑 / 보물 제79호 · 괘석리 사사자삼층석탑 / 보물 제540호

비 받침돌 등이 옆에 있다

 

 

 

 

홍천 희망리 삼층석탑 / 보물 제79호 · 괘석리 사사자삼층석탑 / 보물 제540호

홍천군의회 앞에 비 받침돌이 있다

 

 

 

 

괘석리 사사자삼층석탑 / 보물 제540호

본래 홍천군 두촌면 괘석리에 있었으나, 1969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탑은 사자를 배치한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높이 3.5m 규모의 석탑이다

지대석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조각했으며 상단 기단의 각 모서리에는 돌사자 1마리씩을 배치하고, 그 위에 갑석을 놓았다

사자는 앞발을 세우고 뒷발을 웅크린 형태로, 가슴에 부착된 둥근 장식과 하트형의 꼬리가 이채롭다

사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천장의 중앙에는 연꽃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네 마리의 사자 중심부에는 보살상과 같은 석조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부는 층만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의 돌이고 2층 이상은 옥개석과 탑신석이 같은 돌로 만들어졌다

옥개석의 추녀는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는데 각 모서리에는 풍경을 달았던 못구멍이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노반(露般)만 남았는데, 찰주(刹柱)를 꼽았던 구멍이 있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사사자석탑을 계승하고 있는 고려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 · 기둥 받침돌

 

 

 

 

홍천 희망리 삼층석탑 / 보물 제79호

홍천초등학교 뒤편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49년 옛 홍천교육청 정원으로 옮겼다가 195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단층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높이 2.45m 규모의 석탑이다

기단면석에는 모서리기둥과 버팀기둥이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갑석의 상면에는 3단의 받침을 마련해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1층과 2층에는 4단, 3층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하게 조성되었으며 처마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 올라가 날렵한 일면을 보이고 있다

3층 옥개석의 상면에는 상륜부를 구성했던 방형의 찰주 구멍이 뚫려 있다

이 석탑은 비교적 작은 규모이지만, 탑신석과 옥개석에서 고려시대 후기 석탑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홍천미술관

백석 고성현서각전(柏石 高聖鉉書刻展) 펼침막이 걸려 있다

*

예전 홍천군청 건물이다

 

 

 

 

무명무위지락(無名無位之樂)

 人知名位爲樂(인지면위위락) / 사람들은 명성과 지위를 얻어 사는 것이 즐거운 것인 줄만 알고

不知無名無位最眞(부지무명무위지락위최진) / 명예도 지위도 없지만 홀가분하게 사는 즐거움이 더 참된 즐거움인 줄 모른다

人知饑寒爲憂(인기지한위우) / 사람들은 굶주리고 추운 것만이 근심인 줄 알지만

不知不饑不寒爲甚(부지불기불한위심) / 굶주리고 춥지 않은 근심이 얼마나 심한 근심인지 알지 못한다

*

-  菜根譚 前集 66章 無位之樂(채근담 전집 66장 무위지락) / 명성과 지위가 없는 즐거움이 참된 즐거움이다 -

 

 

 

 

홍천미술관 별관

출입구 옆에 전덕제의 어머니의 보석주머니가 있다

 

 

 

 

작가와의 대화

강병호 개인전이 「모든 것은 모든 것이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2022년 8월 17일부터 8월 28일까지 열린다

 

 

 

 

(사)한국장애인부모회 홍천군지부 · 홍천군지방행정동우회

 

 

 

 

홍천성당

1923년 6월 21일 춘천 고은리 본당 관할 공소였던 송정공소가 본당으로 승격하여 설립되었다

홍천 본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송정공소는 1890년 송정리 버덩말에

서병익 바오로 신부(1910년 수품)의 친족이 신자 몇 가족과 함께 정착하며 시작되었다

1923~19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송정성당은 인제군 관대리와 부평리, 홍천군을 포함하여 8개 공소를 관할하며 신자가 모두 652명이었다

송정리에 10여 칸의 한옥을 지어 교세를 확장하던 송정본당은 1936년에 현재 위치 홍천읍 희망리로 이전하였고, 명칭도 홍천 본당으로 변경하였다

이곳은 홍천군, 인제군 본당들의 모본당(母本堂)이라 할 수 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에 의해 전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아일랜드 신부들이 이곳 홍천성당에 감금되었다

그런 중에 길 헨리(Henry Gillen) 신부가 병사하기도 하였다

현재 석조 성당은 한국인 최동오 신부가 1954년 짓기 시작하여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조선희 신부에 의해 1955년 4월에 준공하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1950년대 석조 건축물의 전형적인 형태를 잘 보존한 것이 인정되어 2005년 국가등록문화재 제162호로 지정된 신앙의 터전이다

 

 

 

 

성당 내부

 

 

 

 

홍천성당 /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2호

홍천성당은 1950년대 석조 성당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물로

한국전쟁 후 홍천 주둔 미군 공병대와 신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955년 석조 성당이 완공된 뒤

옛 목조 성당은 신자들의 행사 장소뿐 아니라 홍천 주민들에게 유일한 문화 공간 역할까지 했다

당시 볼거리가 없던 시절, 예수 성탄절 전야에 공연을 하면 주민들이 모두 몰려와 관람했다고 한다

그 시절 빛바랜 공연 사진들이 교육관 내 유물 전시관에 걸려 있다

신자와 읍내 주민들에게 크리스마스 겨울밤의 추억을 남겨준 목조 건물은 1978년에 철거되었다

 

 

 

 

홍천읍 희망9리 경로당

 

 

 

 

홍천군청

 

 

 

 

 

홍천향교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99호

전학후묘로 배치되어 가장 안쪽에는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 있고 그 앞에 명륜당과 동재 · 서재가 있다

홍천향교가 세워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조선 전기 인문 지리서 「신증 동국여지승람」의 홍천현 편에 '현의 서쪽 2리에 향교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 책이 기반이 된 「팔도지리지」가 완성된 성종 9년(1478)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승정원일기」의 숙종 20년(1694) 기록에 따르면 향교를 옮겨 달라는

홍천 유생 이사원의 상소가 윤허되었다는 내용이 있어 이후 옮겨 지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건물과 자료가 불에 타 없어졌으며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명륜당(明倫堂)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25m · 둘레 234cm · 나이 304년 · 지정일자 1982.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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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삼문 오른쪽에 있다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25m · 둘레 263cm · 나이 304년 · 지정일자 1982. 11. 13

*

내삼문 왼쪽에 있다

 

 

 

 

대성전(大成殿)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  · 증자 · 맹자 · 사자 등 5성(聖)과 주희 · 정호 · 설총 · 최치원 등 성현 20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

홍천향교에서는 매년 5월 11일 10시(공부자 돌아가신 날)과 9월 28일 10시(공부자 탄생한 날)에 석전대전을 봉행한다

 

 

 

 

명륜당(明倫堂) · 석화루(石花樓)

 

 

 

 

중화각

 

 

 

 

大展宏圖(대전굉도)

원대한 계획 · 포부를 크게 펼치다는 뜻으로 사업 · 개업 · 승진 등의 축하로 중국에서 많이 쓰이는 글귀다

 

 

 

 

물만두

홍천을 사로 잡은 물만두 · 홍천에 처음 선보인 물만두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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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이애기 둘레길을 보고 찾았다

 

 

 

 

돌다방

 

 

 

 

33떡볶기 · 꼬마김밥

홍천에서 탄생한 전국구 떡볶이 맛집이라 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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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간식으로 먹었는데 맛있었다

 

 

 

 

학(鶴) 다리

예부터 이곳 근처(서쪽 약 100m 지점)에는 큰 연못이 있었고 이 연못에서 흐르는 샘물과 마지기천이 모여 맑은 물의 개울을 이뤘다

연못 주변과 개울가에는 버드나무 숲이 우거졌는데 이곳에 많은 두루미(鶴)들이 날아와 살았다고 한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46권에 의하면 그 시기는 확실치는 않으나  유추하건데 홍천고을이 처음 생길 때 이 개울을 건너기 위하여 징검다리가 있다가

조선시대에 석조교를 놓고 다리 옆 난간 돌기둥에 학다리(鶴橋부)란 표석을 세웠다고 하며

1950년대 말까지 그 표석이 존재했으나 도시정비사업으로 도로확포장 및 하천복개 때 멸실되어

이번 재정비 때 그 원위치를 확인한 후 옛 다리명을 기리기 위해 옆에 세웠다

 

 

 

 

꽃뫼공원

"학(鶴) 다리 서쪽 약 100m 지점에는 큰 연못이 있었고 이 연못에서 흐르는 샘물과 마지기천이 모여 맑은 물의 개울을 이뤘다"는 글을 보고

주위 주민들에게 물어보고 찾아봤으나 못찾았다

 

 

 

 

홍천감리교회

 

 

 

 

홍천관광호텔(예전 중앙극장 터)

홍천에서 유일한 관광호텔이었는데 영업을 안한다

 

 

 

 

홍천 진리 석불(洪川 津里 石佛)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4호

홍천 진리 석불은 높이 2.28m · 어깨 너비 0.8m이며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 입상이다

 

 

 

 

홍천 진리 석불(洪川 津里 石佛)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4호

몸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광배와 받침대인 대좌도 없이 불상만 남아 있고 불상의 머리도 없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 얹었다

굴곡이 전혀 없는 원통형의 신체에 선을 새겨 옷 주름을 표현하였다

두 손은 신체 크기에 비해 작은 편인데,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오른손은 가슴에 · 왼손은 배 부근에 두고 있다

부분적으로 형식화된 모습이나 독특한 수인 등에서 당시 지방 장인들이 조성한 지역 고유의 양식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홍천 이애기 둘레길

구 홍천군청(홍천미술관)을 시점으로 홍천성당 · 진리벽화마을 · 홍천우체국 · 신장대리 여관거리 · 당간지주로 이어지는 길이다

시간의 창이라는 기록의 틀과 연결된 둘레길은 각각의 공간을 통해 홍천군이 오랜 시간 쌓아온 역사 · 문화 · 예술의 이야기들을 만나는 길이다

*

신장대리 여관거리 벽화마을은 홍천버스터미널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가기 전

이 부근에 버스터미널이 있어 자연스럽게 숙박시설인 여관 거리가 조성된 장소이다

 

 

 

 

1960년대 홍천버스터미널 풍경

버스터미널 앞 아이스께끼 장수는 홍천 주민들의 추억의 한 장면이다

 

 

 

 

홍천읍행정복지센터

 

 

 

 

홍천군 상징새 까치 · 캐릭터 홍이와 청이

홍천군의 군조(郡鳥)는 까치이다

까치는 날씬한 몸매와 희소식의 예견 · 외유내강이라는 특징과 우리 군 방문을 "환영한다"는 상징적인 길조로 군조로 지정해 왔다

 

 

 

 

신장대리 종합안내도 / 신장대리 지명 유래

홍천읍의 중심부에 위치한 리로서 본래 홍천군 현내면(홍천읍)의 지역이었으며 새로 장(場)이 섰으므로 새장터 또는 신장대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터를 병합하여 신장대리라 하며, 3개의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

시장먹거리로는 홍총떡(메밀전병) · 올챙이국수 · 감자떡 등이 안내되어 있다

 

 

 

 

홍천 희망리 당간지주 / 보물 제80호

당간지주는 당(幢 · 깃발)을 걸기 위한 당간(幢竿)을 고정시키는 지주대로 사찰 입구에 세워졌다

본래는 석재로 조성한 두 개의 지주 사이에 철이나 석재로 당간을 세우고, 정상에는 용머리(龍頭) 장식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2개의 돌기둥으로 구성된 지주만 남아 있다. 이 당간의 높이는 3.5m의 규모로 70c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다

두 개의 지주에는 아무런 장식 없이 소박하고, 지주의 하단부는 장방형으로 조성되었는데 윗부분으로 갈수록 조금씩 좁아지고 있다

정상부 바깥쪽은 둥글게 다듬었고, 안쪽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고정쇠를 끼웠던 간공(竿孔)이 남아 있다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사찰 유적과 함께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희망8리경로당

 

 

 

 

홍천철도 아치가 가운데 교각 위에 있다

 

 

 

 

홍천교

 

 

 

 

세영더조은아파트

홍천교를 건너며 봤다

 

 

 

 

홍천 연봉리 선정비군

홍천읍 곳곳에 있던 선정비들을 모아 구 홍천군청(현 홍천미술관) 인근에 두었던 것을 현재의 위치에 옮겨 세웠다

총 17개의 비가 있었으나, 홍천현감 원만춘 선정비인 「홍천철비(문화재 자료 제51호)」를 홍천박물관으로 이전하여 현재 16기의 비가 있다

이중 남지구의 선정비가 2개 있어 13인의 홍천현감(현령, 군수)과 2인(정시성 · 윤성대)의 강원도 관찰사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며

김창일(金昌一 · 재임 1598~1599))의 청백선정비는 근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시성(鄭始成 · 재임 1681~1682) 애민선정비

 

 

 

 

반공희생자위령탑

 

 

 

 

홍천지구전투전적비 · 3 · 1운동기념비 · 한서 남궁억 선생 동상 · 국회부의장 동은 이재학 선생 공적비

 

 

 

통일정(統一亭)

 

 

 

 

국회부의장 동은 이재학 선생 공적비

1904년 서면 팔봉리 출신으로 홍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강원지사 서리 겸 춘천농대(현 강원대) 학장

초대~제5대 국회의원, 제3~4대 국회부의장 등 공무원과 정치인으로서 많은 족적을 남겼다

 

 

 

 

홍천지구전투전적비

1950년 12월 13일부터 1951년 5월 20일까지 전개된 홍천지구 전투에서

국군 제3 · 5 · 8사단과 121해병 1사단 및 캐나다 · 뉴질랜드 장병들이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중부 전선을 확보한 것을 기념하고 산화한 오국여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3 · 1운동기념비

1919년 4월 1일부터 4월 11일까지 연 10여 일에 걸쳐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홍천읍에서는 차봉철 · 서상우 · 오창섭이 주동이 되었고 도로공사 부역꾼으로 가장한 북방농민 300여 명이 이에 합세하여 독립만세가 전 군을 뒤덮었다

동면에서는 민병숙 · 민병태 의사가 피살되었고 내촌면 동창리에서는 천여 명의 군중이 무자비한 왜적의 총탄으로

이순극 · 전영균 · 이기선 · 연의진 · 김자희 · 전기홍 · 양도준 · 이려선 · 8열사가 장렬하게 숨졌다

그리고 5천여 명의 시위자 중에서 백여 명이 투옥되어 실형을 받았고 그외 수많은 양민이 고문을 당하였다

이 숭고한 선열들의 뜻을 이어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충혼탑(忠魂塔)

홍천지역은 중부전선의 요충지로 6 · 25를 전후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되었으며

이 지역 전투에서 희생당한 홍천군 출신 군경 468위의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위훈을 길이 전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한서 남궁억 선생 동상

독립협회와 황성신문을 창립(간)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고 현산학교와 모곡학교를 설립하여 학교들에게 구국교육을 실시하였으며

비밀 결사조직 십자당을 건립, 항일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족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남궁억 선생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통일타임캡슐

묻는 날 2009년 5월 8일 · 여는 날 통일이 되는 날

 

 

 

 

홍천 명개리 황장금표(洪川 明開里 黃腸金標)

황장이란 잘 자란 소나무를 잘랐을 때 심 부분이 짙고 나무의 살이 누런 색을 띄는 특징에서 따온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황장목이란 불리는 질 좋은 소나무 확보를 위하여 산을 관리하고 사사로이 소나무를 베는 것을 금하였으며

이 산의 초입에는 출입 또는 훼손하지 말라는 금표를 세워 경계하였다

명개리는 현재의 홍천과 양양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행정구역상 양양, 강릉에도 속했던 지역이다

명개리 황장금표는 구룡령을 넘는 계방천의 옛길 가장자리에 있었는데(홍천군 내면 명개리 210 인근)

남쪽으로는 오대산, 북쪽으로는 방태산 등 큰 산에 맞닿고 있고 강을 통해 소나무 운반이 용이한 좋은 입지에 있었다

2021년 7월 기존 위치에서 보존이 어려워 홍천박물관으로 옮겨왔다

바위에 새겨진 글귀 중 확인된 글자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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襄陽 箭林 黃腸山 南界百里 周回三百 三十里(양양 전림 황장산 남계백리 주회 삼백삼십리)

양양의 전림은 황장산으로, 남쪽으로 백리에 이르고 둘레가 삼백삼십리이다

 

 

 

 

홍천박물관

열린 복합문화공간으로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제공하고자

홍천의 문화재를 소재로 한 다양하고 유익한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 · 운영하고 있다

 

 

 

 

홍천9경

 

 

 

 

문인석(文人石) / 영귀미면 방량리 출토

문인석은 문인석, 석인상으로도 불리우며 무덤 앞에 세우는 문관의 모습을 한 석물로 무덤 주인 수호 및 위엄을 높이는 의미를 지닌다

이 석물은 크기가 비교적 작은 편으로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Enclosed Animal - Tiger / 조덕래

동양사상에 근거해 자연과 인간이 유기적 일원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자연에서 모든 것을 얻고 살아가며 작가인 나는 작업에 있어서도 자연에 많은 것을 기대고자 했다

돌을 지구에 일부로 보고 지층에서 떨어져 나와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이 만들어낸 조형물이라고 생각했으며

수집된 자연석의 원형 위에 산업사회의 표상이자 현대적 물질인 금속을 용접을 통해 감싸는 방식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지각으로부터 벗어나 있던 돌을 지각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시각으로 인식시키고 「감싸기」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의미와 관심을 갖게 되며 자아를 발견하는 행위의 매개체가 된다

이는 돌이 가진 자연성 위에 나의 노동성을 더한 자연과의 합작으로 인간과 자연,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홍천박물관 1층(상설전시실) 홍천역사전시실은

홍천강 주변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선사시대부터 현재 홍천의 모습까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홍천의 주요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홍천 전역에 위치한 문화재 및 유적을 소개하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홍천강, 선사시대 사람이 모여들다

세계 4대 문명이 모두 강을 중심으로 발생한 사실에서 알듯이

물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 요소이며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원천이다

사람들은 물이 풍부한 강 유역으로 모여들어 정착생활을 시작하였고, 물을 차지하기 위해 집단 간의 전쟁까지 벌였다

그리고 강 유역을 확보한 무리만이 살아남아 발전할 수 있었다

홍천은 마르지 않는 강과 양쪽으로 펼쳐진 넓은 들을 갖추어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이 정착하였으며

긴 시간 동안 훌륭한 문화를 형성하였다

 

 

 

 

홍천박물관 2층(기획전시실)

주제를 바꾸어 가며 전시를 하는데 이번 기획전시는 「홍천의 어제 그리고 오늘」이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무궁화공원

 

 

 

 

해님이 가는 곳 / 아동문학가 민현숙

 

 

 

 

무궁화동산

나오며 봤다

 

 

 

 

주택

 

 

 

 

새홍천볼링센터

 

 

 

 

홍천종합버스터미널

홍천교를 건너며 봤다

 

 

 

 

홍천 도로원표

 

 

 

 

홍천사거리

 

 

 

 

홍천종합버스터미널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20.16km, 소요시간 7시간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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