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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경복궁

경복궁은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한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으로 북으로 백악산을 기대어 자리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져 있어 왕도인 한양 도시계획의 중심이 되었다

*

운현궁과 북촌을 거닐다 경복궁 신무문으로 들어와 광화문으로 나왔다

 

 

신무문(神武門)

북쪽을 관장하는 현무에서 따와 신무문이라 이름하였으며 이름처럼 음기가 강하다 하여 평소에는 굳게 닫아두었다

경복궁 북문이다

 

 

 

 

팔우정(八隅亭) · 집옥재(集玉齋) · 협길당(協吉堂)

경복궁 후원격인 향원정 연못 북쪽편에는 중국풍의 건물인 집옥재 · 협길당 · 팔우정이 자리잡고 있다

 

 

 

 

필성문(弼成門)

장안당의 앞편 담에 있다

뒤쪽으로 관문각과 통하던 관명문과 취규문이 있다

필성은 도와서 이룬다는 뜻이다

 

 

 

 

건청궁(乾淸宮)

구 한말 서구열강의 세력다툼 속에 어지럽게 돌아가는 정세를 새로운 각오로 돌파하겠다는 고종의 의지가 어려 있다

그러나 고종은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참극을 겪은 뒤 경복궁을 떠났다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궁궐이 되었다

*

왕의 처소인 장안당 · 왕비의 처소인 곤령합 · 별채인 복수당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장안당(長安堂)

왕의 처소로 향원정 북쪽 경복궁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옥호루(玉壺樓)

일본인들은 장안당과 곤령합 사이 뜰로 황후를 끌고와 시해했으며

황후의 시신을 곤령합의 일부인 동쪽 건물 옥호루의 방 안으로 잠시 옮겨 놓았다가

건청궁 동쪽의 인공산인 녹산(鹿山) 남쪽에서 시신을 불태웠다고 기록돼 있다

 

 

 

 

향원정(香遠亭)

경복궁 후원 향원지 가운데 둥근 섬에 있는 육모지붕의 이층 정자다

우리나라에 처음 전깃불이 켜진 곳이 향원정 일대다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한 지 7년만인 1887년으로 일본이나 중국보다 2년이 빨랐다

경복궁 중건을 마친 뒤 건청궁을 지으면서 새롭게 만든 왕실 전용 휴식 공간이다

경회루와 함께 경복궁의 여러 정원과 후원 가운데에 가장 주목받는 장소다

 

 

 

 

함화당(咸和堂)

후궁과 궁녀들이 기거하던 곳이다

2009년 1월 24일 복원 개방됐다

 

 

 

 

계명문(啓明文)

북궐도형에 의하면 집경당과 함화당을 잇는 복도 사이에는 샛담을 두고

계명문이란 남쪽 담의 문과 영춘문이란 북쪽 담의 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함원전(含元殿)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세종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을 모셔두고 주로 불교의식과 행사를 열었으며, 단종이 거처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서쪽 · 흠경각 북쪽에 위치한다

함원은 원기를 간직하다라는 의미이다

 

 

 

 

교태전(交泰殿)

명칭은 주역에서 따온 것으로, 하늘과 땅의 기운이 조화롭게 화합하여 만물이 생성한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왕비의 침전(寢殿)이다

 

 

 

 

경회루(慶會樓)

연못 안에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지은 큰 누각으로 주역사상에 바탕을 둔 우주의 원리를 건축에 담고 있다

왕이 외국 사신을 접대하거나 신하들과 규모가 큰 연회를 열 때 이용하였다

활쏘기를 좋아한 세조는 경회루에서 연못 너머에 과녁을 설치한 후 활을 쏘았는데 화살이 연못에 하나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잘 쏘았다고 한다

어린 단종이 작은 아버지인 수양대군에게 눈물로 옥새를 내어준 곳이기도 하다

 

 

 

 

수정전(修政殿) / 보물 제1760호

세종 때 집현전으로 사용되었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 · 고종 때 재건되었다

 

 

 

 

근정전(勤政殿) / 국보 제223호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근정문(勤政門)

정전인 근정전의 정문이다

 

 

 

 

수문장 교대식

시작하는 북소리가 들린다

 

 

 

 

교대 수문장 입장

 

 

 

 

정문인 광화문을 향해 나간다

 

 

 

 

광화문에서 교대를 기다리는 수문장

 

 

 

 

광화문(光化門)

1395년(태조 4) 9월에 창건된 경복궁의 정문으로 정도전(鄭道傳)에 의해 사정문(四正門)으로 명명되었고, 오문(午門)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425년(세종 7) 집현전 학사들이 광화문이라고 바꾸었다

임금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이다

 

 

 

 

광화문(光化門) 현판

현판이 갈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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