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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사육신공원

사육신공원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죽은 사육신의 묘역 공원이다

사육신묘(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호)는 오늘날 성역으로 가꾸어져 있다

한강 인도교와 노량진역 중간 높은 언덕에 자리한 사육신묘는 조선조 단종을 강제로 내쫓고 왕위를 빼앗은 세조에 항거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성삼문 · 박팽년 · 하위지 · 이개 · 유성원 · 유응부 · 김문기 등 일곱 충신의 묘역이 있다

 

 

사육신공원 정문

 

 

 

 

홍살문

사육신을 의미하는 육각형 주추의 홍살문이다

충신을 기리는 홍살문 안으로 의절사 불이문이 보인다

 

 

 

 

태양광 상록수 파빌리온

사육신의 충절과 도심 속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디자인을 접속해 조성했다

*

앞쪽에 조망대가 있다

 

 

 

 

63빌딩

사육신공원 조망대에서 봤다

 

 

 

 

사육신역사관

단종 복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전시관이다

 

 

 

 

사육신역사관 1층 전시실

서울의 중심을 흐르는 한강 남쪽에 위치한 「동작구」는 구릉지대로 서초구 · 영등포구 · 관악구 · 용산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명칭은 조선시대 「동재기나루(銅雀津)」에서 유래되었다

*

충효의 고장 동작을 알리는 공간이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 신흠(申欽)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로항장곡) /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 있고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 매화는 일생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倒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이 남아 있고

柳經百別又新枝(류경백별우신지) / 버드나무는 백 번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

*

퇴계 이황 선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시로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박팽년의 「정부연」과 함께 있다

 

 

 

 

충신들의 이야기 /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어떠한 역경이 오더라도 결코 그 향기를 팔아 안락을 구하지 않는다매화는 일생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2층 전시관 입구에 있다

 

 

 

 

사육신역사관의 일곱 충신

세조에 항거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성삼문 · 박팽년 · 하위지 · 이개 · 유성원 · 유응부 · 김문기의 형상이다

 

 

 

 

문종의 고명을 받다

 

 

 

 

조선왕조의 시대적 배경

 

 

 

 

1441년 단종의 탄생부터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에게 충의공이라는 시호를 내린 1877년까지의 연표다

세종의 부탁 · 문종의 고명 · 계유정란의 발생 등이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다

 

 

 

 

계유정란 발생

 

 

 

 

김질이 세조에게 역모를 고발하여 실패

 

 

 

 

금성대군의 2차 단종 복위 모의 계획 발각

 

 

 

 

단종에서 노산군으로 강등, 단종의 유배 · 단종의 죽음

 

 

 

 

사육신역사공원에 묘가 7기인 까닭은?

사육신의 충절과 그 의로움을 추모하여 1691년(숙종 17) 이곳에 민절서원을 세우고, 1782년(정조 6)에는 무덤 곁에 비석을 세웠다

세조 당대는 물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육신 묘에 대한 기록은 찾기 어렵다

그러다 1614년에 나온 「지봉유설」에서 이수광은 성삼문 · 박팽년 · 유응부 3인의 묘가 있다고만 기록하였다

이후 1650~1670년 사이에 박팽년의 후손 박숭고의 노력으로 노량진 육신 묘가 재정비되고 국가의 인정도 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사육신 가운데 유성원 · 하위지의 묘는 이곳에 있었다는 기록이 없어서 재정비할 때 함께 정비하지는 못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1950년대까지는 무덤과 비석 등이 훼손된 상태로 방치되다가

1972년 성삼문 · 박팽년 · 유응부 · 이개의 4기 묘가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77~1978년에는 서울시의 사육신묘 정화사업 때 하위지와 유성원

그리고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 모의를 추진한 김문기의 가묘를 추가로 안치 · 정비하여 지금에 이른다

 

 

 

 

어린 단종 즉위하다

 

 

 

 

수양대군 왕위에 오르다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

 

 

 

 

성균사예 김질과 우찬성 정창손이 성삼문의 단종 복위 모의 내용을 고하다

 

 

 

 

유응부 충의가

 

 

 

 

유성원 충의가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

정조가 내각과 홍문관에 명령하여 세조실록을 비롯한 국내의 참고 문헌에 기초하여 증거를 찾고 신중히 결정하게 한 국가적인 의전이다

 

 

 

 

충신들의 복권과정

 

 

 

 

지도로 보는 충신들의 문화유적지

 

 

 

 

창절사 · 육신사

 

 

 

 

의절사(義節祠)

조선 제6대 왕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은 세조에 반대해

단종복위를 꾀하다 죽은 성삼문 · 박팽년 · 하위지 · 이개 · 유성원 · 유응부 · 김문기 등의 일곱 충신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의절사에서는 이들 7명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10월 9일 추모제향을 올린다

*

조선시대에는 노들섬이 있던 백사장에 배를 만들던 조선소가 있었다

조선소 인근에는 역적이나 중죄를 지은 죄인을 참수하는 형장이 있었다

단종 복위 운동을 추진하다 실패한 사육신도 이곳에서 참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도비각(神道碑閣)

 

 

 

 

신도비(神道碑)

"유명조선국 육신묘비명"으로 시작하는 비문은 당나라 안진경의 글씨를 집자해서 새겼다고 적혀있다

정조 6년(1782)에 세워졌다

 

 

 

 

육각비

육각형의 사육신비는 1955년에 세워진 것이다

신도비각과 마주보고 있다

 

 

 

 

의절사(義節祠)

7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불이문(不二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불이문이다

 

 

 

 

유성원 · 성삼문 · 하위지의 묘

앞 건물이 이들의 위패를 모신 의절사(義節祠)다

의절사 뒷문으로 나가 계단을 오른 곳이다

 

 

 

 

유성원 묘

 

 

 

 

성삼문 묘

 

 

 

 

하위지 묘

 

 

 

 

이개 · 유응부 · 박팽년 · 김문기 묘

 

 

 

 

이개 · 유응부 · 박팽년 · 김문기 묘

원래 이곳에는 박팽년 · 성삼문 · 유응부 · 이개의 무덤만 있었으나 그후 하위지 · 유성원 · 김문기의 묘도 추봉되었다

 

 

 

 

이개 묘

 

 

 

 

유응부 묘

 

 

 

 

박팽년 묘

 

 

 

 

김문기 묘

 

 

 

 

사육신 묘 언덕을 오르자 일곱 개의 주초석이 있다

 

 

 

 

주추석 아래 경사면에 문인석 두 구가 있다

한 구는 허리춤까지 땅에 묻힌 것으로 보아 꽤나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허리춤까지 땅에 묻힌 문인석

 

 

 

 

뒷편에 있는 문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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