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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봉선사 부도전

교종 본찰 봉선사는 수도권의 중심사찰인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다

고려 광종 20년(969) 법인국사가 창건하고 「운악사(雲嶽寺)」라 하였다

그 후 조선 예종 1년(1469)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조의 능침(광릉)을 운악산에 모시고는

 선왕의 명복을 비는 능침사찰로 크게 중창하면서 「봉선사(奉先寺)」라 이름하였다

조선 중엽까지 사세를 이어가던 봉선사는 임진왜란 · 병자호란 · 한국전쟁 와중에 전각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사대부중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지금의 가람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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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를 포스팅하다 승탑과 기념비 등이 많아 따로 올린다

봉선사 부도밭은 일주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있다

 

 

운악산 봉선사 일주문

일주문을 들어서면 부도밭이 오른쪽에 있다

 

 

 

 

봉선사 일주문 편액

한글 편액은 운허(耘虛) 스님의 생전의 필체에서 집자한 것이다

 

 

 

 

운허당대종사(耘虛堂大宗師) 승탑

근현대 한국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운허 스님은 189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여났다

1910년부터 평양대성학교에서 공부한 뒤 만주 봉천에서 아동교육과 독립운동을 하였다

1915년 홍유자흥등학교를 세우고 1918년 배달학교를 세워 후진양성에 힘쓰는 한편

1919년부터 독립군정기관지인 「한족신보」를 발간하고 1920년에는 광한당을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였다

승려가 된 것은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해 강원도 회양군 봉일사에 은신한 이후로, 1921년 경송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해방이 되자마자 1946년에는 광동중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에 취임했다

그 후 1957년부터 불경 번역에 힘을 기울여 1961년 「불교사전」을 편찬하고 1964년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을 설립하여 초대 원장에 취임하였다

 

 

 

 

봉선사 부도밭

奉先寺 祖室 雲鏡堂 基弘 큰스님 追慕碑(봉선사 조실 운경당 기홍 큰스님 추모비) 쪽에서 봤다

 

 

 

 

奉先寺 祖室 雲鏡堂 基弘 큰스님 追慕碑(봉선사 조실 운경당 기홍 큰스님 추모비)

 

 

 

 

池月堂淳載和尙建國有功行蹟碑(지월당 순재화상 건국유공행적비)

 

 

 

 

萬虛堂大禪師追慕碑(만허당 대선사 추모비)

 

 

 

 

雲鏡堂大宗師追慕碑(운경당 대종사추모비)

 

 

 

 

奉先寺記實碑(봉선사 기실비)

 

 

 

 

月初和尙追慕碑(월초 화상 추모비)

 

 

 

 

奉先寺重創碑(봉선사 중창비)

 

 

 

 

춘원 이광수 기념비

동갑내기 8촌동생 운허(耘虛 1892~1980) 스님과의 인연 때문이다

독립운동과 역경사업 등을 통해 근현대 한국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운허스님은 해방이 되자마자 1946년 광동중학교를 설립한다

이때 친일변절자 · 반민족행위자로 낙인 찍혀 갈 곳 없이 헤매던 동갑내기 8촌형님 이광수를 봉선사 다경향실에 들여 집필활동을 이어가도록 도왔다

당시 춘원은 봉선사에 머물면서 광동중학교에 잠시 교편을 잡고 영어와 작문을 가르치기도 했다

또한 「운악산 구름속이 우리들 배우는 집」으로 시작되는 광동중학교 교가 역시 춘원이 작사했다

현제명이 작곡한 이 교가는 지금도 광동중학교 교가다

 

 

 

 

重創大施主功德碑(중창 대시주 공덕비)

 

 

 

 

봉선사 부도밭

重創大施主功德碑(중창 대시주 공덕비) 쪽에서 봤다

 

 

 

 

봉선사 연밭

매년 연꽃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부도밭 건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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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봉선사 전각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