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종 본찰 봉선사는 수도권의 중심사찰인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다
고려 광종 20년(969) 법인국사가 창건하고 「운악사(雲嶽寺)」라 하였다
그 후 조선 예종 1년(1469)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조의 능침(광릉)을 운악산에 모시고는
선왕의 명복을 비는 능침사찰로 크게 중창하면서 「봉선사(奉先寺)」라 이름하였다
조선 중엽까지 사세를 이어가던 봉선사는 임진왜란 · 병자호란 · 한국전쟁 와중에 전각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사대부중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지금의 가람을 갖추게 되었다
雲嶽山 奉先寺(운악산 봉선사) 빗돌
봉선사 입구 버스정류장 옆에 있다
운악산 봉선사 일주문
일주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승탑밭이 있다
봉선사 일주문 편액
한글 편액은 운허(耘虛) 스님의 생전의 필체에서 집자한 것이다
봉선사 · 부평리 3 ·1운동 만세 시위지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면 봉선사길 32
이곳은 봉선사 승려들이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선언문을 제작한 곳이다
1919년 3월 29일 봉선사 승려 태허(김성숙) · 지월(이순재) · 완수(강완주) 스님과 약종상이었던 김석로가
봉선사에서 조선독립단 임시사무소를 설치하여 시위의 전개와 방침을 논의하고 선언문 200여 장을 제작하였다
이들은 선언문을 진접면 일대에 배포하고 30~31일에 걸쳐 부평리 광릉천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으로 태허 스님을 비롯한 4명은 전원 체포되었으며 9월 11일에 고등법원으로부터 각각 1년~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
일주문 옆에 있다
敎宗本刹奉先寺(교종 본찰 봉선사)
일주문 안쪽 현판이다
봉선사 승탑밭
奉先寺 祖室 雲鏡堂 基弘 큰스님 追慕碑(봉선사 조실 운경당 기홍 큰스님 추모비) 쪽에서 봤다
운허당대종사(耘虛堂大宗師) 승탑
근현대 한국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운허 스님은 189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여났다
1910년부터 평양대성학교에서 공부한 뒤 만주 봉천에서 아동교육과 독립운동을 하였다
1915년 홍유자흥등학교를 세우고 1918년 배달학교를 세워 후진양성에 힘쓰는 한편
1919년부터 독립군정기관지인 「한족신보」를 발간하고 1920년에는 광한당을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였다
승려가 된 것은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해 강원도 회양군 봉일사에 은신한 이후로, 1921년 경송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해방이 되자마자 1946년에는 광동중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에 취임했다
그 후 1957년부터 불경 번역에 힘을 기울여 1961년 「불교사전」을 편찬하고 1964년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을 설립하여 초대 원장에 취임하였다
춘원 이광수 기념비
동갑내기 8촌동생 운허(耘虛 1892~1980) 스님과의 인연 때문이다
독립운동과 역경사업 등을 통해 근현대 한국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운허스님은 해방이 되자마자 1946년 광동중학교를 설립한다
이때 친일변절자 · 반민족행위자로 낙인 찍혀 갈 곳 없이 헤매던 동갑내기 8촌형님 이광수를 봉선사 다경향실에 들여 집필활동을 이어가도록 도왔다
당시 춘원은 봉선사에 머물면서 광동중학교에 잠시 교편을 잡고 영어와 작문을 가르치기도 했다
또한 「운악산 구름속이 우리들 배우는 집」으로 시작되는 광동중학교 교가 역시 춘원이 작사했다
현제명이 작곡한 이 교가는 지금도 광동중학교 교가다
봉선사 승탑밭
重創大施主功德碑(중창 대시주 공덕비) 쪽에서 봤다
봉선사 연밭
매년 연꽃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승탑밭 건너에 있다
僧科園(승과원) · 승과평 터
명종 6년(1551) 봉선사가 교종 갑찰(敎宗 甲刹)로 특선되었다
교종 갑찰이란 전국 승려들의 교화 능력을 평정하는 곳으로 일종의 승려들의 과거장이다
명종 7년(1552) 승과(僧科)가 열리니 서산 · 사명 같은 고승께서도 응시하였다고 한다
그간 구전되어오던 과거장 · 승과평(僧科坪) 자리를 주변 원지(園池)와 더불어 僧科園(승과원)이라 이름 짓고 불기 2553년 7월에 표석을 세웠다
원지(園池)
봉선사 전각들이 보인다
봉선사 느티나무
500여 년 전 세조의 비 정희왕후는 먼저 가신 선왕의 위업을 기리고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절을 중창하고 절 이름도 운악사(雲嶽寺)에서 봉선사(奉先寺)로 고쳐 불렀다
이 때 절 입구 양지 바른 곳에 느티나무 한 그루를 정성스럽게 심은 나무다
*
나무 높이 21m · 둘레 5m · 나이 550년
봉선사 하마비
1469년 조선 7대 세조대왕의 위패를 어실각에 모시고 중창불사를 하면서 세워진 것으로 이곳을 지나는 정승 · 판서도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
높이 93cm · 너비 37cm · 두께 18cm 크기의 대리석으로 大小人員皆下馬(대소인원개하마)라고 음각되어 있다
봉선사 당간지주
서기 1469년 당사 초창 때 세워진 것으로 명종 6년 승과고시 부활과 더불어
전국 승려들이 모여 승과평(僧科坪)에서 시험을 치를 때 승과기(僧科旗)를 달았던 것이다
1매의 대석을 깎아내어 양쪽 기둥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제작기법이 뛰어나고 보기 드문 형태다
기둥 높이 148cm · 기둥너비 34cm · 기둥 40cm · 전체너비 108cm · 두께 100cm로 웅장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梵鍾樓(범종루)
맞은 편엔 「범종루」라 한글로 써있다
봉선사 동종 / 보물 제397호
1469년(예종 원년)에 주성되었으며, 총 높이 229.4cm · 입지름 156cm의 청동범종이다
세조대왕의 치적을 기리고 명복을 빌기 위하여 정희왕후의 발원으로 제작되었다
동종의 형태는 정상부인 천판(天板)에 음관이 없는 쌍룡의 용뉴를 나타내고 있다
전체 높이 203cm · 하단 직경 155cm · 하단 둘레 282cm · 두께 23cm · 무게 2만 근으로 조선 전기 조형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淸風樓(청풍루) / 如初居士(여초거사)
6 · 25로 전소되기 전에는 천왕문 · 해탈문 · 소설루(小雪樓)가 있던 자리에
모든 신도들이 조약돌 모으기 운동이라는 불사를 전개하여 1985년에 낙성을 보았다
*
「추사 이후 여초」라는 말을 들을 만큼 중국에서 전해온 모든 서예의 장점을 흡수해
해서 · 행서 · 초서 · 예서 · 전서와 같은 모든 서체들을 연습해 그 정화를 흡수한 뒤 마음과 손의 조화를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김충현 · 김창현과 형제인 서예가 집안으로 추사 김정희의 맥을 이은 소전 손재형 · 검여 유희강 이후 형인 김충현과 한국 서예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다
*
회화나무 왼쪽으로 큰법당으로 오르는 길이 있으나 예전엔 청풍루 밑을 통과해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큰법당으로 오르는 청풍루 밑이다
說法殿(설법전)
밖은 淸風樓(청풍루) · 안에는 說法殿(설법전)이다
청풍루 밑을 통과해 돌아 봤다
큰법당
청풍루 밑을 통과해 봤다
봉선사 정중탑(庭中塔)
정중탑은 경복궁 갈항사탑(葛項寺塔)을 모방한 탑으로 1972년에 세웠으며
1975년에 운허가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사리 1과를 봉안했다
큰법당
초창(初創)은 조선 예종 1년(1469)으로 89칸의 절 규모와 함께 서울 이북에서 가장 크다고 전해졌으며
재창(再創)은 1637년 계민(戒敏)선사에 의한 일괄 중수(重修)했다
삼창(三創)은 1970년 운허스님에 의해 건립된 지금의 전각으로 스님의 뜻에 따라 「큰법당」이라 이름하였다
큰법당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후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다포양식의 팔작지붕으로 건립하였고 불교대중화에 앞장선 운허스님의 뜻이 반영된 주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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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석탑과 당간지주가 있다
큰법당 현판
봉선사는 특징적으로 운허 스님께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경전을 한글번역작업을 하신 분이라
대웅전이라는 명칭을 큰법당이라는 한글 현판으로 달았다
큰법당 내부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 보현보살 이 좌우로 있다
큰법당 오른쪽이다
雲霞堂(운하당)
대중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봉선사 신도들의 교육장소이기도 하다
큰법당 오른쪽이다
放跡堂(방적당)
스님들이 어느 단계의 수행을 마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더 나은 수행을 준비하는 곳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당우이다
지금은 능엄학림 스님들의 교육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大醫王殿(대의왕전)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에서 구원해 준다는 약사여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약사여래 부처님
개금불사 동참금 1만원(순금 2장) 안내판이 옆에 있다
楞嚴大道場(능엄대도장) · 다경실
차를 마시며 경을 읽는다는 뜻의 「다로경권(茶爐經卷)」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1978년 원래 애월재(愛月齋)가 있던 자리에 운허 스님의 퇴로지처(退老之處)로 지은 것으로서 당사의 역대 조실스님께서 거처하시는 곳이다
地藏殿(지장전)
원래는 어실각(御室閣)으로서 세조대왕과 정희왕후의 위패를 모셨던 건물이다
이 또한 정부의 지원으로 발굴조사를 거쳐 1999년에 복원하여 지금은 지장전으로 사용되고 있다
地藏殿(지장전) 편액
지장전 내부
지장전은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이다
도명존자 · 무독귀왕이 좌우로 있다
예전 소각장
지금은 소각장이 아니니 무엇이든 절대 태우지 말라는 글이 붙어 있다
開建堂(개건당)
봉선사를 창건하여 개산(開山)한 개산대공덕주 정희왕후 윤씨와
중건공덕주인 계민선사와 정문수행을 모시기 위한 당우로 개산과 중건의 머릿글을 따서 이름한 것이다
지금의 조사전 전각이 원래는 개건당이었는데 이 당우를 신축하여 개건당으로 사용하고 원래의 개건당은 조사전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은 봉안당으로 명하여 납골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祖師殿(조사전)
1977년 7월, 대시주 정보현행의 도움으로 삼성각과 동일한 규모로 지어서 원래는 개건당으로 사용하던 당우다
근래에 들어 그 아래쪽에 새로이 전각을 지어 개건당에 모셔졌던 봉선사의 개산(開山)과 중건(重建)의 공덕주들을 모시고는
이곳은 조사전으로 장엄하여 계민선사와 월초(月初)스님을 비롯한 근대의 봉선사 조사 스님들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큰법당
삼성각 옆에서 봤다
삼성각(三聖閣)
월초(月初)화상에 의해 1926년에 건립되어 6 · 25때 소실되지 않은 유일한 전각이다
산신(山神) · 칠성(七星) · 독성(獨聖) 세 분의 성인을 모셨다 하여 삼성각이라 한다
삼성각 내부
산신(山神) · 칠성(七星) · 독성(獨聖) 세 분 성인의 그림과 상이 있다
觀音殿(관음전)
원래는 노전 스님이 머무는 노전채였던 것이 6 · 25때 전소되었다가 정부의 지원으로 발굴조사를 거쳐
1999년 복원되어 지금은 관음전으로 사용되고 있다
관음전 내부
합격기원 화분이 옆에 있다
봉선사 정중탑(庭中塔)
"어느 절을 가든 대웅전 기둥을 대고 또는 댓돌에 앉아서 앞에 있는 탑과 함께 앞 주변을 살펴보는 것이
황당한 찬사로 씌여진 문화재 안내판을 읽어보는 것보다 몇 천 곱 가치가 있다"는
유홍준 교수의 글처럼 큰법당 기둥에서 본 그림이다
회랑(回廊)
判事官務軒(판사관무헌)
어실각(御室閣)으로 인해 봉선사 주지는 조선왕실로부터 봉향판사(奉香判事)의 작위를 수여받았는데
따라서 봉향판사가 머물던 이곳은 곧 당사의 주지실이기도 하였다
이 또한 6 · 25로 소실되었던 것을 1998년 옛 모습대로 복원 하였다
禪悅堂(선열당) · 採雲觀(채운관)
반지하의 후원(식당)을 신축하며, 그 위에 지은 당우이다
애초에는 객실의 용도로 신축하였으나 객실로는 지속적인 관리가 어려워 수좌스님들의 해제철 해랑방사(解囊房舍) 등 다각적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채운관 앞에는 사찰요리 수강생 수시 모집 안내막이 붙어 있다
관세음보살 상
회랑 앞에 연지와 현대식 관세음보살 상이 있다
관세음보살 상
여인상 같기도 하고, 성모마리아 상 같기도 하다
연지
관세음보살 상 바닥이다
奉香堂(봉향당)
茶經香室(다경향실) 편액도 달려 있다
오른족 당우가 스님들의 수행 공간인 염불원이다
念佛院(염불원)
스님들의 수행 공간이다
템플스테이하는 곳이다
西雲堂(서운당)
템플스테이 접수처가 있는 곳이다
放下着(방하착) · 着得居(착득거)
근심과 걱정일랑 내려놓으시고 · 아름다운 인연들만 가져가십시오
*
"산다는 것은 비슷비슷한 나날이 되풀이 되는 것만 같아 보인다
그날이 그날 같은 타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시간은 끝도 없이 흘러간다
· · ·
똑같은 것 같은 매일매일의 일상생활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데서 날마다 좋은 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은 내 마음의 변화에서 온다"
六和堂(육화당)
육화는 불교의 진리를 깨치고자 수행하는 사람들이 서로 공경하며 화합하여 깨달음을 성취해야 하는 여섯 가지의 도리를 의미한다
猶在堂(유재당)
다른 방향에서 본 염불원이다
茶經香室(다경향실)
불교용품점과 전통찻집이 있다
불교용품점
책과 기념품도 있다
찻잔을 사려고 돌아봤으나 없다
전통찻집
한방 · 효소차뿐 아니라 커피도 판다
원지(園池)를 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수제 연꿀빵 · 광양매화빵
박스도 있지만 낱개 2개 2,500원이다
제11회 불암사 산사음악회
국화향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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