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이야기

우장춘 박사 묘

우장춘 박사(1898. 4. 8∼1959. 8. 10)는 육종학자로서 채소 종자의 국내 자급해결 외에

무균종서(無菌種薯) 생산으로 6 · 25동란 이후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논문 「채소의 육종기술」은 오랜 연구와 경험을 체계적으로 확립한 결론이며 제시된 이론들은 대부분 실용화되고 있다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 묘

경기도 삼남길 제4길을 마치고 제4길 마침점인 서호 옆에 있는 묘를 찾았다

 

 

 

 

우장춘 박사(1898. 4. 8∼1959. 8. 10)

우장춘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농학박사이자 세계적인 유전 육종학의 권위자로서

〈종(種)의 합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유전 육종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해방 후 귀국하여, 일본에 의존하던 채소종자를 국내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종자의 생산 체계를 확립하였고

채소를 제철에 관계없이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우리나라 육종 및 원예산업 발전에 공헌하였다

고랭지를 이용한 무병(無病) 씨감자 생산 및 재배 체계 확립으로 6 · 25전쟁 이후 우리나라 식량난 해결을 주도하였다

 

 

 

 

우장춘 박사 묘

1919년 일본 도쿄제국대학 농학실과 졸업

1936년 농학박사(도쿄제국대학) 학위

1950년 한국농업과학연수소장

1953년 중앙원예기술원장

1958년 원예시험장장

 

 

 

 

우장춘 박사

 

 

 

 

우장춘 박사

1898년 4월 8일 망명정객 우범선(禹範善) 공의 맏아들로 일본에서 출생

1959년 8월 10일 서울에서 62세로 별세하다

 

 

 

 

불우와 고난 속에 진리를 토파 내어

종자합성 새 학설을 세계에 외칠적에

잠잠턴 학문의 바다 물결 한 번 치니라

 

온갖 소채 종자 우리 힘으로 길러내어

겨례를 위하시니 그 공로 얼마던고

빛나는 문화훈장을 웃고 받고 가니다

 

흙에서 살던 일생 흙으로 돌아가매

그 정신 뿌리되여 싹 트고 가지 벋어

이 나라 과학의 동산에 백화 만발하리다

 

 

 

 

1960년 4월 8일 이은상은 글을 짓고 · 김충현을 제자하고

장남 원춘은 비명을 쓰고 · 윤호중은 설계 및 조각하고 · 우장춘 박사 장위위원회에서 세우다

 

 

 

 

김인환 박사 묘

우장춘 박사 묘 왼쪽 윗쪽에 있다

 

 

 

 

녹색혁명의 주역 김인환 박사 묘

1971년 통일벼 개발보급에 성공하고 1977년 주곡인 쌀의 자급자족을 달성하는 녹색혁명을 성취하여

당시 어려움을 겪던 식량문제를 해결하였다

또한, 「통일벼」를 보완한 다양한 다수확 신품종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였으며

농업 과학기술이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중앙과 지방을 연계하는 보급체계를 확립하였다

뿐만 아니라, 농업 과학기술 개발 보급에 몸담고 있는 후학들을 위해 농촌진흥청에 「송암장학회」를 설립 운영하여 후진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