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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국립고궁박물관 제10실(과학문화)

국립고궁박물관 상설전시실

조선의 국왕과 왕실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3개 층 · 10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물의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전시유물을 교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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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1층 제10전시실은 《과학문화》 전시실이다

조선시대에 과학은 통치자의 정당성을 보이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수단이었다

국왕은 민생안정과 부국강병을 위해 과학기술 연구에 많은 힘을 기울였고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천문(天文)을 살피고 역법(曆法)을 정하는 것은 하늘의 뜻을 받아 나라를 다스리는 군왕의 첫째가는 의무였다

나라 경제의 근본인 농업의 발전을 위해 기상 · 측량 · 농법 등에 대한 연구에 힘써 조선 풍토에 맞는 농사기술을 개발하고 각종 관측기구를 발명하였다

의학 분야에서도 우리나라 풍토에 알맞은 약재와 치료법을 개발하였고 국방력 강화를 위해 무기 제조 기술도 혁신하였다

 

 

과학문화 전시실

천체 관측 기구와 천문도 · 해시계와 자격루 등을 전시하여 조선의 수준 높은 과학 문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내의원에서 사용한 도구와 서적 · 왕실에서 개발하고 개선한 각종 무기를 통해 의학과 화기 분야의 발달상도 엿볼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상설전시실 제10실이다

 

 

 

 

조선의 도량형 제도

도량형은 길이 · 부피 · 무게 등을 재는 단위나 기구를 말한다

도량형은 물품의 가치를 비교하여 교환하기 위한 기준이자 국가 재정 운영을 위해 조세와 공납의 양을 재는 수단이므로

각종 경제생활의 질서와 편의를 위해 도량형을 통일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태종 대에서 세종 대에 걸쳐 정비된 도량형 제도는 경국대전 · 공전 ·  도량형조에 기록되었다

 

 

 

 

유척(鍮尺)

조선시대에는 쓰임새에 따라 각기 다른 자를 사용하였다

옷감이나 종이 등의 길이를 잴 때는 포백척 · 각종 악기를 만들고 음률을 맞출 때는 황종척 · 궁궐, 산릉, 성벽 등 건축을 공사할 때는 영조척

종, 제기 등 의례용 기물을 제작할 때는 예기척 · 토지와 도로를 측량하거나 천문, 기상을 측정할 때는 주척을 사용했다

놋쇠로 만든 표준자(유척 鍮尺)은 공조나 호조에서 제작하여 지방 관서에 나누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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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백척 · 2.황종척 · 3.예기척 · 4.영조척 · 5.주척 · 사각유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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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유척은 포백척 · 황종척 · 영조척 · 예기척 · 주척 다섯 가지 표준 척도를 하나의 사각 기둥에 새긴 자이다

푼(분 · 分) 단위까지 정교하게 표시된 각 척도의 길이를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다음과 같다

황종척 34.5cm · 포백척 49.2cm · 영조척 30.8cm · 예기척 27.4cm · 주척 20.6cm

 

 

 

 

경국대전에 보이는 길이와 무게 단위

길이 : 푼(分) 10리 · 치(寸) 10푼 · 자(尺) 10치 · 장(丈) 10자

무게 : 푼(分) 10리 · 돈(錢) 10푼 · 냥(兩) 10돈 ·  근(斤) 10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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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추

무게의 단위를 재는 금속 덩어리이다

저울의 한 쪽 끝에 무게를 측정하려는 물체를 올리고 반대편에 저울추를 올려 무게를 확인하였다

 

 

 

 

평형저울

막대 양쪽에 달린 두 개의 황동 접시에 무게를 달 물건과 단위 무게를 가진 추를 각각 올려놓아 평점을 이루게 하여 무게를 측정하는 기구이다

 

 

 

 

조선의 의학

조선시대에는 국왕이 백성들에게 의료를 베푸는 것을 어진 정치(仁政)의 한 방도로 여겼다

나라의 현실에 맞는 의학 연구가 중시되어 내의원, 전의감, 혜민서와 같은 기관이 설치되었고

환자의 치료와 더불어 의학 연구와 교육 · 약재 관리를 담당하였다

한편으로「한약집성방」 · 「의방유취」 · 동의보감」등의 의학서적은 조선 땅에서 나는 약재를 이용해 조선 사람의 몸에 맞는 치료를 하는 데 기여했다

 

 

 

 

의학입문 / 1818년 · 동의보감

중국 명나라 이천이 역대 의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종합해 편찬한 책이다

조선 초부터 중국에서 수입되어 대표적인 의학서로 인식되었다

전시중인 판본은 1818년에 재출간된 외집 11권으로 추위로 인해 생긴 병(傷寒) 과로나 정신쇠약 등에 의해 생긴 병(內傷)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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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 선조의 명으로 편찬 작업을 시작해 1610년(광해군 2)에 완성한 의서이다

의학 서적으로는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은 16세기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했으며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와 치료 기술을 상세하게 다뤄 의료의 대중화에 이바지하였다

 

 

 

 

경혈을 나타내는 청동인체상

침과 뜸을 이용하는 치료법인 침구를 공부하기 위해 동으로 사람 모형을 만들어 시술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청동인체상 표면에 경략의 흐름을 선으로 표시하고, 혈의 위치를 점으로 나타내는데 이곳이 침이나 뜸을 놓은 자리이다

궁중의 내의원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약연

가운데에 홈이 파져서 마치 배(舟)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연알의 가운데에 긴 막대를 끼워 앞뒤로 굴려 약재를 갈거나 즙을 냈다

 

 

 

 

조선의 무기

도검은 날이 있는 무기로 찌르거나 베는 용도로 사용된다

날이 한쪽에만 있는 것을 도(刀), 날이 양쪽에 있는 것은 검(劍)이라고 한다

철퇴나 철편은 쇠로 만든 몽둥이로, 자루 끝에 무거운 쇳덩이를 달아 그 무게로 적에게 타격을 가하는 무기이다

북두칠성 같은 별자리나 사학함을 물리치는 상징문양을 장식한 왕실의 무기는

적을 물리치는 기능뿐 아니라 지휘자의 권위를 드러내는 의장이나 벽사(辟邪)의 기능도 하였다

 

 

 

 

은입사귀면문철퇴 / 조선 · 보물 제1444호

손잡이와 몽둥이 끝에 은입사 기법으로 꽃과 도깨비 문양을 장식한 철퇴이다

본래 철퇴는 자루 끝에 무거운 쇳덩이를 달아서 그 무게로 적에게 타격을 가하는 무기인데 제작기술이 정교하여 의장용으로 보인다

 

 

 

 

패월도

허리에 찰 수 있도록 만든 의장용 칼이다

손잡이와 칼집을 상어가죽으로 장식하였다

 

 

 

 

삼인검 · 사인참사검

북두칠성이 금은으로 장식된 벽사용 검이다

인(寅)의 해 · 인의 달 · 인의 날 · 인의 시 중에서 세 개의 인이 겹치는 때에 만들어 삼인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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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참사검 글자와 북두칠성이 금은으로 장식된 벽사용 검이다

인(寅)은 호랑이를 가르키며 사악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인자가 들어가는 연 ·  ·  · 시,  즉 인이 네 번 겹치는 때에 제작하여 사인검으로 불린다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劒)

 

 

 

 

조선의 화약무기

화약무기는 화포 안에 장전한 화약이 폭발하는 힘으로 화살이나 철환 등을 발사하는 무기이다

조선은 고려 때 최무선이 도입한 화약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태종 · 세종 대에는 화약 생산을 늘리고 화포를 개량하여 성능을 높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전쟁을 계기로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조총 · 중국으로부터 호준포, 불량기포, 홍이포 등

새로운 화기를 도입하여 적극적으로 화약무기를 개발하였고 이를 이용한 전술도 습득하였다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를 거치면서 보다 적극적인 화기 개발이 이루어졌는데 이때 소포 · 중포 등의 무기가 제조되었다

 

 

 

 

불랑기

유럽에서 유래되어 중국 명을 통해 16세기 조선에 전래된 화포로 탄약이 장전된 자포(子砲)를 발사틀인 모포(母砲)에 장착하여 발사한다

일반 화포에 비해 발사 간격이 짧아서 성벽에 접근하는 적군을 향해 연달아 쏘기에 적합하였다

바퀴를 달거나 회전식 받침대를 얹은 수레에 올려 운반과 조준에 편리함을 더하기도 했다

 

 

 

 

소총통 / 1591년 · 보물 제856호

도화선에 불씨를 붙여 사용하는 휴대용 화기이다

총열이 길고 휘어져 있기 때문에 발사 과정에서 탄환이 힘을 받아 멀리 나갈 수 있었다

'만력십구년십월일 소총통중오근 화약삼전 장인김'이라는 명문을 통해 1591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안총

중국 명나라에서 개발한 무기로 세 개의 총열을 하나의 손잡이에 결합시킨 휴대용 화기이다

세 발을 동시에 장전하여 연속 발사한다

현존하는 유물로는 1593년에 제작된 삼안총이 가장 오래되어 임진왜란 때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비격진천뢰 / 조선 · 보물 제860호

성을 공격하거나 수비하기 위해 화포인 완구에 장전하여 발사하는 포탄의 일종이다

무기 제조 기술자인 이장손이 발명하였다

적진에 떨어지면 일정 시간 후에 폭발했으며 폭발 시에는 포탄 안에 있는 쇳조각이 별처럼 부서져 사방으로 날아가 적을 살상하였다

 

 

 

 

소포 / 1874년

포는 크기에 따라 대 · 중 · 소로 나뉘는데 전시된 유물은 소포에 해당하며 2개의 바퀴가 달린 받침대 위에 포를 설치하여 자유롭게 조준하고 발사했다

'소포이백팔십오근 화약일근 동치십삼년오월일 운현궁별주'라는 명문을 통해 1874년 5월 흥선대원군의 특별한 명으로 주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포 받침대

포를 올려두는 받침대로 2개의 바퀴가 달린 수레의 형상을 하고 있다

 

 

 

 

세종시대의 과학 발전

조선의 네 번째 왕인 세종은 나라의 통치를 원활히 하고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도량형 · 무기제조기술 · 인쇄술 · 농법 · 의약학 · 지리학 · 천문학 · 역법 등 여러 과학기술 분야를 발전시켰다

세종 대에 정리된 과학 지식과 이를 활용한 기술 및 제도는 향후 조선이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하늘의 모습을 구역을 나누어 차례로 배열하여 그린 천문도'로 돌에 새겨 전해진다

조선 건국 이전 평양성에 천문도 각석이 있었으나 전란 중 사라졌는데

태조 즉위 초 그 탁본을 구해 당대에 맞게 고쳐 1395년(태조 4) 완성하였다는 제작 경위가 적혀 있다

천문을 살피는 것은 하늘의 뜻을 받아 통치하는 국왕의 의무로 여겨졌으므로 태조는 천문도를 제작해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알리고자 했다

천문도의 가장 안쪽 원 안에는 북두칠성과 같이 1년 내내 볼 수 있는 별자리

그 바깥에는 계절에 따라 바뀌는 별자리를 새기고 별의 밝기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표현하였다

태조 대의 각석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마모되자 1687년(숙종 13) 다른 돌에 옮겨 새겼는데 현재 이 두 점이 남아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 1395년 · 국보 제228호

 

 

 

 

목판본 천상열차분야지도 / 1571년

 

 

 

 

복각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 1687년 · 보물 제837호

 

 

 

 

조선의 천문 관측

조선의 왕들은 태양과 달, 별과 행성의 운행과 같은 천문현상을 관측하여 하늘의 뜻을 파악하고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각과 절기를 알려주어 백성들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

태조 때부터 천문현상을 관측하는 전문기관인 서운관을 설치하여 천문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세종 대에는 천문학의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는데 정밀한 관측을 위해 천문대를 만들고 다양한 천문의기를 제작하였으며 독자적 역법서를 간행하였다

 

 

 

 

어제규정각기 현판 / 1732년

경희궁 규정각에 걸었던 영조의 어필 현판이다

1732년(영조 8) 경희궁에 규정각을 지어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의기인 선기옥형 즉, 혼천의를 보관하게 하였는데

그 경위와 천체 관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천문성신도

별자리를 그려 엮은 책으로 28수 중 일부를 그린 14면과 대형 천문도 1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원에 별자리를 표현한 것은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지만

별자리의 모양은 청나라를 통해 유입된 새로운 천문학을 반영한 조선 후기 천문서인 「신법보천가」를 따르고 있다

 

 

 

 

천세력(1873년)

조선시대 천문 관측 기관인 관상감에서 편찬한 책력으로 100여 년간의 역(歷)을 미리 계산해 편찬한 것이다

1782년(정조 6) 처음 편찬되어 이후 대략 10년 단위로 개정하였는데 전시된 유물은 고종 대에 제작한 것이다

매달 달라지는 달의 운행주기를 대소로 표시하고 24절기의 시작 시각을 기록해 배포하여 백성들에게 농사철을 알리는 등의 역활을 했다

 

 

 

 

혼천의

다양한 천문현상을 관측하기 위한 기기로, 선기옥형이라고도 불렀다

전시된 혼천의는 중첩된 여러 개의 환에 각각 360도 · 12시 96각 · 24절기 · 황도 12궁 등을 눈금으로 표시하였다

하루를 96각으로 나누고 서양식 별자리인 황도 12궁을 표시하는 등 서양 천문학의 영향을 반영하여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평혼의

둥근 황동판 앞뒷면에 각각 북반구와 남반구의 하늘에 보이는 별들을 새기고 위선과 경선을 표시한 한편

가장자리에는 12시 96각의 눈금을 새겨 절기와 시각을 관측한 천문기구이다

중국을 통해 전래된 서양 천문학을 반영하여 3차원의 하늘을 2차원의 평면에 담아냈다

 

 

 

 

측우대 / 1782 · 보물 제844호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의 받침대이다

정조 대에 만들어졌으나 한국전쟁 당시 측우기는 사라지고 측우대만 남았다

네 면에 세종 대에 시작되어 영조 대에 부활한 측우기의 전통과 제작 의미 · 홍수와 가뭄을 다스리고자 했던 정조의 뜻이 담긴 명문이 새겨져 있다

전시된 측우기는 기상청 소장의 보물 제561호 금영측우기를 복제한 것이다

 

 

 

 

측우기에 대한 글

1782년(정조 6) 빗물의 양을 측정하는 기기인 측우기를 창덕궁 내각 이문원 정원에 설치한 후 비가 흡족히 내렸다

정조가 이를 기뻐하며 측우대에 새기도록 명한 글의 일부이다

 

 

 

 

창덕궁과 창경궁에 설치된 과학기기

 

 

 

 

조선의 시계

백성들에게 정확한 절기와 시간을 알려주어 그들이 자연의 질서에 맞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국왕의 임무였다

시간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관측기구로 해시계인 앙부일구 · 물시계인 자격루 · 별시계인 일성정시의 등이 있었다

해시계는 해가 비치는 낮 시간에 영침(影針)의 그림자 위치를 통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자격루와 일성정시의는 밤에도 사용이 가능하였다

 

 

 

 

간평일구 · 혼개일구 / 1785년 · 보물 제841호

태양이 운행하는 경로를 각기 다른 투영법으로 그린 간평일구와 혼개일구를 하나의 돌에 새긴 독특한 형태의 해시계이다

시각뿐만 아니라 태양고도 · 북극고도 · 각 계절의 밤낮 길이 등 13가지 천문현상을 관측할 수 있도록 했다

 

 

 

 

신법지평일구 / 18세기 · 보물 제840호

서양 천문학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제작한 중국의 해시계 신법지평일구를 토대로 만든 평면 해시계이다

중국의 해시계를 바탕으로 하되 한양의 북극고도를 기준으로 제작하였다

 

 

 

 

지평일구 / 1881년

강윤이 서양 천문학을 반영해 만든 해시계로 삼각형 시계 바늘의 그림자 끝이 가르키는 점으로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시계 바늘 남쪽에는 24방위를 나타낸 둥근 홈이 있는데 여기에 물을 붓고 자성이 있는 침을 띄워 방위를 확인하고 수평을 유지했다

 

 

 

 

앙부일구(보물 제845호)

시계판이 가마솥 모양으로 생긴 해시계이다

1434년(세종 16) 처음 만들어져 조선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시계판에는 시각을 표현한 세로 선과 절기를 나타낸 13개의 가로선을 새겼다

북극을 가르키는 시계 바늘의 그림자 끝 부분을 읽으면 절기와 시각을 동시에 알 수 있다

 

 

 

 

자동 물시계 · 자격루

'스스로 치는 시계'라는 뜻의 자격루는 물시계에 자동으로 시각을 알려주는 장치를 추가한 것이다

일반적인 물시계는 용기에 일정한 속도로 흘러든 물의 양으로 시간을 측정하는데

자격루는 물을 받는 항아리인 수수호의 물이 일정량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종 ·  · 징을 쳐서 시각을 알려준다

1434년(세종 16) 세종의 명으로 장영실이 만들어 경복궁 경회루 남쪽 보루각에 처음 설치하였다

자격루가 치는 시각에 따라 궐 밖의 종루에서 북과 종을 쳐서 백성에게 오정(낮 12시) · 궁궐 및 도성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시각 등을 알렸다

1536년(중종 31) 창경궁에 설치되었던 자격루의 파수호와 수수호(국보 제229호)가 현재 덕수궁에 남아 있다

 

 

 

 

자격루 설명도

자격루의 시각 알림 장치는 종 ·  · 징으로 구성된다

조선시대에는 하루의 시간을 열둘로 나누어 자시(子時 · 밤 11시~새벽 1시)로 시작하여 해시(亥時 · 밤 9시~11시)로 끝나는 시간 체계를 사용했으며

시(時)가 시작할 때마다 자격루의 종이 울렸다

밤 시간은 다섯 등분하여 '경(更)'이라 부르고 북으로 1경은 다시 다섯 등분하여 '점(點)'이라 부르고 징으로 알렸다

밤의 길이는 계절에 따라 변화함으로 경과 점의 시작 역시 달라졌다

복원된 자격루는 밤에만 울렸던 북과 징을 관람객이 들을 수 있도록 1년 중 밤이 가장 짧은 하지를 기준으로 삼아 조정하였다

약 600년 전 물의 힘으로 움직이던 시계를 복원한 것이므로 현대의 시계와 비교하여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자격루가 울리는 시간

 

 

 

 

신시 4경 1점

해시계 설명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