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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국립고궁박물관 제3실(왕실의 생활)

국립고궁박물관 상설전시실

조선의 국왕과 왕실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3개 층 · 10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물의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전시유물을 교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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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제3전시실은 《왕실의 생활》 전시실로

왕실 가족들의 다양한 복식과 장신구 · 생활용품인 가구와 문방구 · 생활도자기 등을 통해 조선왕실의 생활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궁중의 생활용품은 화려함보다는 기품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왕실의 생활

조선 왕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궁중의 다양한 물품에서는 품격 높은 왕실 생활문화를 느낄 수 있다

국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들을 위해 만든 의복과 음식 · 각종 기물 등은 당대 최고의 장인에 의해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들어졌다

궁중에서는 혼례나 제사 등 왕실의 중요한 의례 행사를 치르며 왕실 가족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졌다

엄격한 규정과 격식에 따라 제작된 궁중복식이나 잔치상차림 등 의례용 물품이나

일상생활용 가구 · 그릇 · 복식 · 장신구 등에는 당대 문화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은 사치를 금하고 국왕이 몸소 검약한 생활을 실천했기 때문에

궁중 생활물품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함보다는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또 왕실의 엄격한 법도와 예절에 따라 재료와 색상, 그리고 장식문양에 차이를 두었다

 

 

 

 

조선왕실의 복식

왕실의 복식은 의례복과 일상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의례시 착용하는 복식은 유교의 예를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길례 · 흉례 · 군례 · 빈례 · 가례 등 의례에 맞는 복식을 갖추었다

의례복 안에 받쳐 입는 속옷이나 일상복은 이전부터 계승되어 온 전통복식으로 일반 사대부 양반의 차림새와 같았다

 

 

 

 

영친왕 곤룡포 / 20세기 초 · 복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곤룡포를 복제한 것이다

곤룡포는 왕과 황태자가 집무할 때 입었던 평상복으로 가슴과 등 · 양 어깨에 오조룡보를 달았다

 

 

 

 

탕건 

말총을 세밀하게 엮어 짠 남성용 쓰개의 하나로 평소 집안에서 쓰거나, 외출할 때 갓 아래 받쳐 썼다

왕실에서는 면류관이나 익선관 · 전립 등을 쓸 때에도 그 아래에 받쳐 썼다

상투머리에 망건을 두르고 그 위에 착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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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건

상투 튼 머리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두르는 물건이다

말총을 직사각형으로 엮어 머리를 감쌀 수 있게 하고, 당줄을 매기 위한 금관자를 관자놀이 부분에 달았다

장식을 위해 중앙부 윗 부분에 밀화로 만든 풍잠을 달았다

 

 

 

 

영친왕 옥대 / 20세기 초

가죽으로 만든 띠에 비단을 씌우고 옥으로 장식해 만든 옥대이다

조선시대에는 왕 · 왕세자 · 왕비만 두를 수 있었다

왕과 왕세자는 조복(朝服) · 상복(常服) · 제복(祭服) 등을 입을 때 허리에 찼다

 

 

 

 

자적용포 / 20세기 초

발톱이 넷인 용을 금박한 사조룡보가 달린 옷이다

자적용포는 왕세자나 왕세손이 평소 착용하던 겉옷으로 성년식 전까지 입었다

왕세자의 옷에는 양 어깨와 가슴 · 등에 둥근 사조룡보를 왕세손의 옷에는 가슴과 등에만 네모난 삼조룡보를 달았다

 

 

 

 

창의와 사규삼 / 20세기 초

사규삼과 그 안에 입는 창의이다

사규삼은 옷자락이 네폭으로 갈라진 옷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자 아이가 성년식 때까지 입던 겉옷으로 복건과 함께 착용했다

반가의 남자아이들도 사규삼을 입었다

 

 

 

 

영친왕비 당의와 남색대란치마 / 20세기 초

조선시대 여성들이 예복으로 착용하였던 당의와 남색 스란치마이다

당의는 궁중에서 왕실 여성의 소례복으로서 크고 작은 예식과 명절, 사시사철 문안 예의 복식으로 착용했다

왕비나 빈의 당의에는 꽃무늬와 박쥐무늬 ·  · 복 등의 글자를 민간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금직이나 금박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스란치마는 왕실 여성이 예복 차림을 할 때 하의로 갖추어 입는 치마이다

스란은 각종 무늬를 금직 또는 금박으로 장식한 단으로 스란을 한 단 더한 것은 스란치마 · 두 단 더한 것은 대란치마라 한다

스란치마 안에는 무지기 치마와 대슘 치마 등의 속치마를 착용하여 치마를 풍성하게 부풀려 입었다

영친왕비가 착용하였던 당의와 대란 치마의 복제품이다

 

 

 

 

영친왕비 적의 / 20세기 초

적의는 조선시대 여성 최고 신분의 복식으로 조선 말까지 왕비와 왕세자비의 궁중 대례복으로 사용되었다

원래는 붉은 색 비단으로 지었으나 1897년(광무 원년)에 왕과 왕비가 각각 황제와 황후로 승격되면서 짙은 청색으로 바뀌었다

영친왕비가 입었던 이 적의는 친애와 해로를 상징하는 꿩과 오얏꽃 무늬로 천을 직조해 장식했다

앞뒤에는 금실로 수놓은 용무늬보를 덧붙였다. 안에는 중단을 입었으며, 청말이라는 청색 버선을 신었다

적의 위에는 무릎을 가리기 위해 앞에 늘어뜨리는 폐슬 · 뒤에 달아 늘어뜨리는 후수

허리에 매는 대대와 옥대를 착용하고 좌우에는 옥으로 엮어 만든 폐옥을 늘어뜨렸다

또한 어깨에 걸어 내리는 장식품인 하피 등으로 화려하게 치장했다

예복을 갖춰 입었을 때는 옥으로 만든 규를 양손으로 잡았다. 안에는 예복위 안에 입는 중단을 착용했다

 

 

 

 

왕실가족 사진

 

 

 

 

영친왕비 적의 착용 모습 / 1922년 경

 

 

 

 

흉배

흉배는 왕실 가족과 문무백관의 지위에 따라 의복의 가슴과 등에 다는 표장이다

왕족의 의복에 부착하는 원형의 흉배는 특별히 보(補)라 했는데

왕 · 왕세자의 일상복인 곤룡포와 왕비 · 세자빈의 대례복에는 용 문양을 금실로 수놓은 둥근 보를 가슴과 등 그리고 양 어깨에 붙였다

왕비 · 세자빈의 소례복에는 두 마리 봉황무늬보를 가슴과 등에 달았다

백관은 관품에 해당하는 무늬를 네모난 흉배에 수놓아 가슴과 등에 붙였다

 

 

 

 

기린 무늬 흉배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상상의 동물인 기린을 수놓은 흉배이다

기린 무늬는 조선시대 대군(大君)만 착용할 수 있었다

흥선대원군이 부착했던 흉배로 추정된다

 

 

 

 

쌍학 무늬 흉배

문관 당상관의 흉배로 문관을 상징하는 학 무늬가 수놓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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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학무늬 흉배

문관 당하관 흉배이다. 고종 대에는 학의 숫자로 당상관 당하관을 구분했다

 

 

 

 

쌍호 무늬 흉배

무관 당상관의 흉배로 무관을 상징하는 호랑이 무늬가 수놓아 있다

 

 

 

 

자수의 밑그림 · 수본

궁중 의복과 장신구를 장식하는 자수는 온갖 색실로 다양한 문양을 아름답게 수놓기 위해 도안(수본)이 필요했다

수본은 재료에 따라 목판과 유지로 구분된다

목판 수본은 화원이 종이 위에 그린 자수 문양의 조각장이 나무판에 옮겨 새긴 것이다

목판에 먹을 묻혀 종이에 찍고, 이를 옷감 위에 대고 수를 놓는다. 이는 대체로 보에 수를 놓기 위해 만들었다

유지 수본은 기름종이에 붓으로 문양을 그려 넣은 것이다

유지수본의 뒷면에서 흰 가루분으로 문양을 따라 그리고 흰 가루분을 옷감 위에 옮긴 다음 다시 먹으로 선명하게 그려 수를 놓았다

주로 복식과 장신구에 부분적으로 수를 놓을 때 옷감 위에 올려놓고 문양을 잡기 위해 만들었다

 

 

 

 

적의본

대한제국 황후의 12등 적의를 만들 때 사용하던 종이본으로 총 4조각이 한 벌을 이룬다

2011년 창덕궁 대조전 수리 과정에서 장판지에 배접지로 사용된 것이 발견되었다

 

 

 

 

고종황제의 보 자수본(1897년) ·  고종황제의 군복보 자수본(1898년)

뒷면 우측에 '뎡유듭츄신조', 좌측에 '흉비판 일상'이 쓰여있다

정유년은 1897년으로 광무 원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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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의 전복(戰服) 보에 자수를 놓을 때 마주보는 형태로 양각되어 있다

목판 손잡이에 '上'자와 '무슐군복흉배판'이라는 묵서가 있다

 

 

 

 

왕실여성의 인장

왕비와 후궁 · 왕대비와 대왕대비 등 왕실여성은 지방에서 올리던 공식적인 진상과 공상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고 별도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왕실 구성원의 사유재산은 궁방에서 관리했는데 각 궁방에서는 다양한 동물형 손잡이가 달린 궁방 인장들을 사용했다

 

 

 

 

덕온공주 인장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셋째 딸 덕온공주(1822~1844)의 인장이다

출생 후 '셋째 공주'로 불리던 덕온공주는 8세가 되던 1829년에 덕온이란 공식 명칭(작호)과 함께 녹봉 · 토지를 받았다

16세 때인 1837년(헌종 3), 해평 윤씨 가문의 윤의선과 혼인하면서 궁궐 밖 저동의 살림집으로 나가 살았으며 1844년 23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덕온공주의 인장은 황동제로 사각형 몸체 위에 사자 모양 손잡이가 있다. 인장의 글귀는 덕온공주지인(德溫公主之印)이다

근현대기에 국외로 반출된 것을 올해 문화재청이 구입하여 국내로 들여왔다

 

 

 

 

순화궁도서(경빈 김씨) 인장

 

 

 

 

경선궁 회계 문서 / 1901년 이후

1903년부터 1910년 사이에 경선궁에서 쓰인 물품과 돈의 지출 내역을 기록한 책이다

경선궁은 고종의 후궁이었던 순헌황귀비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던 곳이었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화장 문화

왕실 여성에게는 화장도구들을 품계에 따라 차등을 두어 매달 지급했다

비누를 만들기 위한 팥(소두)과 겨비누인 분강갱미가 진상되었고, 영양 공급을 위한 꿀(황밀)이 올려졌다

머리에 바르는 참기름인 진유도 중궁전, 빈궁 등 왕실 여성에 매달 진상되었다

절일(節日)에는 각각 머리와 관계된 장신구와 빗을 올렸는데 대전과 각 전 · 궁 등 종 4품 이상의 내명부 여성에게는 빗을 넣어 두는 화소첩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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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손질 도구 보관함 · 영친왕비 빗 · 분합 · 머리기름합

머리 손질에 필요한 빗 · 빗솔 · 빗치개 · 뒤꽂이 등을 넣어 두는 화장용 가구인 빗접으로 경대와 함께 머리맡에 두고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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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은 빗살이 굵은 반원형의 큰 빗으로 반달 모양으로 생겨 월소(月梳)라고도 한다

크기는 다양하며 빗살 또한 성긴 것과 촘촘한 것이 있다

 

 

 

 

왕비와 궁중 여성

조선시대 국왕이 문무백관의 보필을 받아 외정을 다스리듯이 왕비는 궁궐 내 후궁과 상궁 이하 여관들(내명부)과

궐 밖에서 생활하던 공주와 옹주 그리고 종친 · 문무 관료의 부인들(외명부)의 보필을 받아 내정을 다스렸다

왕비는 평상시 왕실 웃어른으로 문안하고, 여러 사람들의 문안 받는 일을 중요시했으며 왕실 친인척들의 혼인이나 각종 행사에 필요한 물품을 챙겼다

선왕과 선왕후를 추모하는 상례와 제례 때에는 제수를 살피고, 때로는 참여도 했다

국왕이 백관들의 조하(축하)를 받고, 친경과 양로연을 열었듯이 왕비는 내연에서 명부들의 하례를 받았으며

뽕을 따고 길쌈을 하는 친잠례와 여성 노인들이 참석하는 양로연을 베풀었다

 

 

 

 

궁중 여성의 머리 모양새

조선시대 왕족 여인과 일반 궁녀들의 머리형에는 차이를 두었다

평상시에는 왕비나 내인 모두 가르마 가운데 쪽을 진 첩지머리를 했고, 신분에 따라 장식을 달리했다

왕비를 비롯하여 왕자비 · 왕손비는 금 · 은 장식의 용 · 봉황첩지를 착용했다

특별히 의식이 있을 경우에는 첩지 대신 화관이나 족두리로 화려하게 장식을 하기도 했다

 

 

 

 

영친왕비 첩지머리 / 20세기 초 · 중요민속문화재 제265호

영친왕비가 사용했던 첩지머리이다

첩지는 조선시대 왕비를 비롯한 내외명부가 머리를 치장하던 장신구의 하나이다

궁중에서는 첩지를 통해 왕실 여성의 신분을 구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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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댕기

예장용의 하나로 긴 봉황 장식을 꽂은 후 그 봉잠의 좌우에 둘러 앞쪽으로 늘어뜨려 사용한다

도투락댕기(큰 댕기)와 짝을 이루어 사용하며 자주색 천에 금박으로 장식하고 양 끝에는 진주 등으로 장식했다

 

 

 

 

자수붓주머니 · 자수수저집 · 영친왕비 자수귀주머니(중요민속문화재 제265호)

홍색 화문단으로 만든 붓주머니이다

주머니 앞면은 십장생문과 '만(卍)'자를, 뒷면에는 '수여남산(壽如南山)' 글자를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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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색 무문단의 수저집으로 십장생문을 수놓아 수복 · 부귀 · 강녕의 소망을 표현했다

뒷면 왼쪽에는 '백년수외강녕'을, 오른쪽에는 '만사간중겸부귀'의 길상어문을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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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비가 사용했던 양쪽 귀가 각이 진 형태의 귀주머니이다

주머니 상단에는 '수'와 '복'자를 수놓고 뒷면에는 연화문 위에 '복'자 아래 부분에는 '아'자문을 수놓았다

 

 

 

 

밀화쌍가락지 · 자마노쌍가락지 · 호박쌍가락지

 

 

 

 

영친왕비 진주두루주머니(중요민속문화재 제265호) · 자수향주머니 · 금장식두루주머니

영친왕비의 두루주머니로 주머니 속에는 고급 향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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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향주머니는 순종이 찼던 협낭과 유사한 점으로 보아 영친왕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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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색자문단에 오색실과 금실로 수놓은 두루주머니로 이구의 돌 때 사용된 것이다

거북의 배에는 '왕'자가, 고두쇠에는 '수명'과 '장수'자가 음각되어 있다

 

 

 

 

노리개

노리개는 치마허리나 저고리 고름에 차는 장신구이다

왕실을 비롯한 상류층과 평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애용되던 장신구로 신분과 지위에 따라 사용하던 재료가 달랐다

궁중에서는 계절에 따라 노리개의 종류를 달리했는데 봄 · 여름 · 가을에는 구슬과 옥 노리개를 차고 겨울에는 마노와 향노리개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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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비 대삼작노리개 / 1922년 경

산호 · 쌍나비 · 불수를 주제로 해서 만든 노리개 세 개를 하나로 꿰어 옷 위에 착용하는 노리개이다

가장 크고 화려한 대삼작노리개는 궁중에서 대례복에 착용했다

 

 

 

 

백옥떨비녀 · 백옥나비 떨비녀 / 20세기 초

 

 

 

 

진주장잠 · 용머리장식비녀 · 백옥 호두 장식 비녀 · 비취 매조 초롱비녀 · 난초 장식비녀

 

 

 

 

백옥 봉황꽂이

 

 

 

 

후봉잠

 

 

 

 

궁궐 침전 내부공간

조선시대 궁궐의 왕과 왕비의 침전은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배치되고 그 주변으로는 퇴가 둘러싸고 있다

내부의 방들은 장지문으로 연결해 공간의 면적과 형태를 가변적으로 사용했다

 

 

 

 

수라상

조선시대 왕의 밥상인 수라상은 각 지방에서 올라온 좋은 재료를 사용해 최고의 맛과 모양을 낸 음식들로 차려졌다

수라상 상차림은 밥과 탕을 포함한 기본 음식과 12가지 반찬으로 구성된 12첩 반상으로 이루어졌다

12첩 반상은 왕실만을 위한 것으로 일반 반가에서는 차릴 수 없었다

왕의 수라상은 기본적으로 세 개의 상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왕의 앞에 놓이는 대형의 둥근 밥상(대원반)이고 다른 하나는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검사하는 기미상궁 앞에 놓이는 소형의 둥근 밥상(소원반)이며

나머지 하나는 왕의 식사를 시중드는 수라상궁 앞에 놓이는 네모난 책상반이다

 

 

 

 

궁중에서 사용한 여러가지 그릇

왕실에서는 일상생활에서나 잔치, 제사 등의 행사에 다양한 재질로 만든 고급 식기를 사용했다

도자는 왕실의 검소한 기풍에 따라 일찍부터 선호되었으며

15세기 후반부터는 경기도 광주 지역에 관영 도자기 제작소인 사옹원 분원을 설치해 잔치용 예기와 제기 · 생활용기를 제작했다

그릇 표면에 코발트 계열의 청색 안료로 그림을 그려 구워낸 청화백자는 궁중 도화서 소속 화원들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은제 그릇은 왕실 가족의 주발이나 술잔 등 식사 용도로 쓰이기도 했으나 계속된 금과 은의 절용 정책으로 인하여 주로 행사용으로 제작되었다

광물을 원료로 해서 만든 유리질의 유약을 입혀 화려하게 장식한 법랑 그릇들은 청나라로부터 들어와 장식용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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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黃)자가 새겨진 백자사발

경기도 광주군 일대에 설치된 분원에서 제작된 황(黃)자가 새겨진 백자사발이다

 

 

 

 

백자주전자

별도의 무늬 없이 푸른 빛이 도는 백자유약을 전면에 칠해 구운 순백색주전자이다

 

 

 

 

은제 복숭아 모양 표주박 / 20세기 초

 

 

 

 

법랑화로 / 청 · 20세기 초

 

 

 

 

궁궐 내 생활도구 / 주칠나전호족반

궁궐에서 사용되는 생활용품은 당대 최고의 장인에 의해 가장 질 좋은 재료로 만들어졌다

일반 민가에서는 사용을 금지할 정도로 귀하게 여겨질 주칠 가구를 비롯해 은기 등을 제작해 사용했다

왕실에서 사용되는 생활도구는 주로 십장생이나 보배문 · 왕을 상징하는 용무늬 등을 장식했다

어두운 궁궐을 밝혔던 촛대와 등잔, 왕실 가족들이 사용했던 각종 용기 등 다양한 생활도구들은 조선왕실 가족의 일상적인 생활 모습을 보여준다

 

 

 

 

궁중 주방 / 수라간 현판과 은제 솥

궁궐 내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 공간으로는 수라간 · 소주방 · 생물방 등이 있다

대전 · 중전 · 대비전 · 세자빈전 등 각 전각마다 주방 상궁이 딸려서 각각 음식을 만들었다

수라간은 왕과 왕비에게 올리는 진지(수라)를 짓는 주방이라는 뜻으로 어주(御廚)라고도 하며 소주방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

소주방은 내 · 외소주방으로 나뉘는데, 내소주방에서는 주로 아침 · 저녁으로 올릴 수라를 외소주방에서는 주로 각종 잔치 음식을 담당했다

생물방은 생과방이라고도 하며 음료 및 과자를 만드는 일을 담당했다

 

 

 

 

밥상보자기

 

 

 

 

주칠합

왕실에서 사용하던 목재 주칠합이다

주칠을 하고 뚜껑 상단에는 금색의 용으로 장식했다

 

 

 

 

주칠원형소반 / 1881년(고종 18)

전체적으로 흑칠을 하고 상판의 중앙에는 주칠을 했다

상판의 뒷면에는 신사년인 1881년 대전 곳간으로 납품된 대 · 중 · 소 크기의 소반 150벌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용연 · 동천연 · 동학연 · 종사연 · 해악연 · 수정연 · 일월연

백자청화산수문연적 · 백자사자모양연적 · 백자해태모양연적 · 백자물고기모양연적 · 모필과 납석필통 · 규연 등이 있다

 

 

 

 

연잎 모양 큰 벼루

징니석으로 제작한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연잎 모양의 벼루이다

벼루의 몸체는 연잎 모양으로 조각하고 뚜껑은 나무로 제작한 뒤 윗면에 자개를 붙여 용무늬와 구름무늬를 표현하였다

 

 

 

 

명성황후 한글 편지와 시전지

명성황후의 한글 편지에는 황후의 일상적인 모습과 여흥 민씨 집안에 보낸 개인적인 부탁 당시 정치적 상황과 개인의 생각 등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궁녀들이 대필해 쓴 편지나 궁녀들의 간찰문 역시 당시의 궁궐사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한글 궁체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왕실에서는 서간을 보낼 때 화려한 색상의 다양한 종류의 문양으로 장식된 편지지와 봉투를 사용했다

이를 시전지 또는 화전지라고 부르는데 현재 전하는 시전지들은 주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청나라에서 제작된 것이다

 

 

 

 

고비

가벼운 판자나 대나무 등으로 만들어 벽에 걸어놓고 편지나 서화 등의 두루마리를 비치하는 실내용 세간이다

 

 

 

 

조선왕실의 가구 / 주칠함 · 흑칠이층탁자 · 주칠책장

왕실용 가구는 일반 사가의 가구에 비해 크기가 크고, 가구 표면을 붉은 색으로 칠한 것이 많다

붉은 주칠은 투명한 옻칠에 수은 성분의 붉은 가루를 섞어 만든 것으로 일반 사가에서는 사용을 금할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

붉은 주칠외에도 검은 흑칠과 노란 황칠이 사용되었으며

나전으로 여러가지 문양을 섬세하게 박아 넣거나 쇠뿔을 얇게 저며 그림을 그리는 화각 기법으로 정교하게 장식하기도 했다

가구의 장식문양으로는 용 · 십장생 · 박쥐 · 팔보문 등 부귀와 장수를 상징하는 것들이 주로 사용되었다

 

 

 

 

화각함